고은강 │ 2006년 『창작과비평』을 통해 등단했다.
고양이의 노래
*
삶은 최전방이다
나는 싸우고 싶지 않았다
삶이 너무 촘촘해서 삶에 질식할 것 같은
그 모든 격렬한 문장 속에서
목덜미를 풀어헤치고
나는 다만 노래 부르고 싶었을 뿐,
포효하고 싶었을 뿐,
아무리 소리쳐도 소리가 안 나
뻐끔뻐끔 담배나 피워대는
이 몸은 발암물질이다
불순분자다
근본 없는 혀다
버릇없는 어린아이다
나는 맹신하지 않았지
세상에 당연한 것 없으니까
이글거리는 나무 아래서
살갗이 타들어가는 슬픔 때문에
나는 무채색이다
뒤척이는 수면睡眠이다
아직은 고양이, 정복되지 않은 존재시다
*
우리는 피가 엉겨붙지 않는
거대한 혈족 같지
손가락이 부러지지 않을 정도로만
꽉 끌어안고,
사랑은 말자
사랑해도 아이는 낳지 말자
가장 합리적인 방식으로
아이는 무럭무럭 시들어갈 테니
이렇게 이상하고 슬픈 나라에서
어쩌다 사랑에 빠졌다고 결혼하지 말자
나이 때문에 결혼하지 말자
효도한다고 결혼하지 말자
다수의 일이라고 결혼하지 말자
외롭다고 결혼하지 말자
가난하다고 결혼하지 말자
아이를 원한다고 결혼하지 말자
그림처럼 어여쁜 우리들의 집
아이는 두렵고 지쳐 차라리 맹신할 테니
맹신으로 더럽혀질 테니
사랑이 사랑으로 살지 못하는
이렇게 나약한 나라에선
사랑을 말자
삶으로 성공하지도 말자
냄새나는 줄도 모르고
서로의 악취를 빨갛게 비벼댈 테니
푹푹 썩어갈 테니
번식할 테니,
동의를 말자
실패하자
말하자면 이건 우리들의 이야기
우리는 지금 고양이 씨다. 원숭이도 아니고 고양이도 아닌 고양이 씨. 쥐떼처럼 불어난 고양이 씨다. 우리는 마냥 취해 있다. 잠에 취했고 어리석음에 취했고 삶에 취했고 성공에 취했다. 역사는 오염됐고 부모는 쓸모없고 예는 사라졌는데 이 모든 게 당연하다. 우리는 중심을 잃고 옳고 그름을 잃고 누가 진짜인지 무엇이 참인지도 모른 채 참 열심히도 성공해버렸다. 그 성공을 배우고 익혀 또 성공하고 또 성공해버렸다. 이 모든 게 당연하다. 젊음은 젊지 않고 사랑은 사랑스럽지 않고 삶은 너무 과열되어 이파리들이 다 죽어나가는데 이 모든 게 당연하다. 너무 차갑거나 너무 뜨겁거나 너무 게으르거나 너무 빠른, 이렇게 안락하고 캄캄한 세계에서 우리는 부자연스럽게 서로의 손등을 핥아주며 이미 충분히 썩었고 이미 충분히 훼손되었다.
그러니까 이건 너무 무섭고 슬픈 이야기.
구현우 │ 2014년 『문학동네』를 통해 등단했다.
공중 정원
한낮의 정원에서 아픈 꿈을 꿨다 막연하니까 더 분명한 마음이 있었다 한밤의 초목 완연한 구조물 앞에서도 통증이 지속되었다
꿈속에는 둘만 있었고
모르는 너를 아는 이름으로 불러주고 싶었지만 혀끝이 굳어버렸고 흙냄새가 지독하게
너무나 독하게 감돌았다
실재하는 정경이 꿈의 정원을 닮아간다는 게 아름답지만은 않았고 한낱 코끝에 맺혀 있는 네가
어떻게 미워질 수 있는지 신비로웠다
마지막을 짐작하지 못해서 꿈은 다만 끝을 향해가고만 있었다
물린 데가 없는데도
말할 수 없는 어느 부위가
참을 수 없이 가려웠다
아무도 나를 기다리지 않고 아무것도 끝난 건 없어서
아픈 곳이 늘어난 후에야 비로소 천국을 그리워했다
예술이 있는 정원을 벗어나고도 나의 서사는 정원의 일부였고 하나의 그늘은 나만의 것이 아니었으니까
그만두는 일은 죽는 일이었다
불행한 냄새를 그렇게 계속 맡고 있었다
도중에 네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막막한 사실이었다
이제 그만 눈을 뜨라는 건 살면서 들어본 가장 잔인하고 슬픈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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