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우리에게 북극성이 필요한 때다.
지난겨울 촛불이 우리 가슴에 지펴준 것은
사람의 사회, 좋은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희망과 다짐의 불꽃이다.
그런데 그런 사회는 어떻게 만들 수 있는가?
책은 길잡이, 등불, 북극성이다.
26명의 필자들이 대통령에게 권하고 싶은 책
스물여섯 권을 뽑아 소개한 것이 이 책이다.
단순한 추천 목록이 아니다.
추천의 글 한 편 한 편이 깊은 성찰과 빛나는 제안을 담고 있어서
그것들 자체로 뛰어난 읽을거리다.
《대통령의 책 읽기》는 대통령의 책 읽기이면서 우리 모두의 책 읽기다.
─ 도정일(책읽는사회만들기국민운동 상임대표)
01
《명상록》
철학이 없는 대통령은 통치자로 남을 뿐이다
─ 이진우(포스텍 인문사회학부 석좌교수)
대통령에게 책을 추천하는 것만큼 난감한 일도 없습니다. 복잡한 업무에 시달리는 대통령이 과연 책 읽을 시간이 있을까 하는 평범한 의구심도 들고, 통치자들 대부분이 책을 읽지 않는다는 편견도 크기 때문입니다. 독서 캠페인을 벌이기 위해 도서전을 참관할 때에나 대통령이 몇 권의 책을 지목하기는 하지만, 그 책들을 정말 읽었을 것이라는 생각은 솔직히 들지 않습니다. 외국의 경우에는 대통령이 휴가를 떠날 때 어떤 책을 들고 갔는지가 드물게 세간의 관심을 끌기도 합니다. 하지만 휴가조차 제대로 갖지 않는 한국 대통령들에게 읽을 만한 책을, 그것도 철학 분야의 책을 추천하는 것은 언감생심焉敢生心입니다.
‘책을 읽는 대통령’으로 기억이 되는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1974~1982년까지 독일 총리를 지낸 헬무트 슈미트Helmut Schmidt는 총리직에서 물러난 후 일체 정당정치에 관여하지 않았지만 2015년 9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좌우를 넘어서 독일 국민 전체의 존경을 받은 명망 높은 ‘국가 정치인Stateman’이었습니다. 그는 1983년부터 죽을 때까지 독일의 유명한 주간지 〈디 차이트Die Zeit〉의 공동 발행인으로 활동하면서 수많은 글과 강연을 통해 공동의 관심사에 관한 입장을 표명했습니다.
슈미트는 책을 읽을 뿐만 아니라 쓰는 정치인이었으며, 피아노 연주를 하는 예술인이기도 했습니다. 2008년 내가 독일에서 연구년을 보낼 때 그는 90세 생일을 맞이했는데, 국민 모두와 나라 전체가 일 년 내내 그의 삶을 축하하고 기념하는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끔찍한 애연가이기도 한 슈미트가 공공장소에서 토론하거나 강연하는 중에 담배를 피우더라도 사람들은 개의치 않았습니다. 한 신문에 게재된 생일 축하 문구가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국가에 대한 당신의 공헌을 생각할 때 그 정도의 이산화탄소 배출은 허용합니다.”
이제까지 한국 대통령들이 겪은 퇴임 후의 비극적인 삶과 겹쳐지면서 한 정치인이 국민의 존경을 받는다는 사실이 무척 부러웠습니다. 왜 우리에게는 존경하는 정치인이 없을까? 왜 우리 대통령들은 정치적 열정과 이에 비례하는 통찰력과 평정심을 갖지 못하는 것일까? 왜 우리 대통령들은 책을 읽지 않을까? 이런 의문이 들수록, 평생 책을 가까이 했을 뿐만 아니라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Marcus Aurelius의 《명상록》, 이마누엘 칸트Immanuel Kant의 《영구 평화론》 그리고 막스 베버Max Weber의 《직업으로서의 정치》 같은 철학 책도 즐겨 읽었다는 슈미트가 더욱 불가사의하게 여겨졌습니다.
통치자가 철학을 가져야만 국가는 번성한다
대통령에게 책을 추천하는 것이 어렵기는 하지만 감히 한 권을 추천한다면 나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을 꼽고 싶습니다. 대통령이 책을 읽는다는 것은 세상에 관한 통찰을 얻고, 급변하는 정세에 거리를 둠으로써 평정심을 잃지 않으며, 국민에 대한 자신의 도덕적 신념을 따르는 책임 의식을 갖는 것입니다. 이것이 책을 읽지 않고서는 국가를 이끌 수 없는 이유입니다. 이를 몸소 실천한 사람이 ‘로마 5현제’의 마지막 황제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입니다. “철학자가 통치하거나 아니면 통치자가 철학을 가져야만 국가는 번성한다”는 플라톤의 가르침에 따라 철학을 통해 통치하고 통치하면서 철학을 한 유일한 정치인이 바로 아우렐리우스입니다. 나는 대통령들이 철학하기를 결코 원치 않지만 자신의 철학은 갖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철학이 있는 대통령은 성공하여 국가 정치인이 되고, 철학이 없는 대통령은 실패하여 단지 통치자로만 남을 뿐입니다.
아우렐리우스가 왜 성공한 국가 정치인의 본보기일까요? 일찍이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대왕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나의 영혼을 강하게 만들기 위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명상록》을 읽는다. 나는 나보다 걱정이 많은 그에게서 위안을 얻는다.” 헬무트 슈미트는 아우렐리우스에게서 두 개의 가르침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하나는 내면의 초연함이고, 다른 하나는 자신의 도덕적 신념을 따르라는 의무이다.” 두 국가 정치인이 공동으로 지적하는 것은 바로 내면의 초연함과 강한 영혼입니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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