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과 혀
Ⅰ부
비린내 풍기는 도마 위에서 생애 첫날을 맞이한 사람이 있다.
나의 아버지 왕채판王彩板이 그 주인공이다. 5척 단신인 아버지는 돼지감자를 빼닮은 몸통에 머리가 유난히 큰 이족異族 사람이었다. 벗어진 이마에는 주름이 찹쌀죽처럼 흐물거렸고 맛을 보느라 실룩이는 입술은 늘 욕구불만에 젖어 있었다. 목과 턱에도 주름이 많아 웃을 때마다 머리가 몸통 속에 숨어버리곤 했는데, 주방 동료들은 그런 아버지에게 ‘나비애벌레’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아버지는 자신이 광둥에서 첫손가락에 꼽히는 요리사로 불리길 원했다. 아버지는 어스름이 채 가시기도 전에 숨을 헐떡이며 주강 삼각주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서쪽 언덕으로 뛰어올라갔다. 그곳엔 흰 페인트로 마감된 최신식 주강호텔이 자리하고 있었다. 식당은 2층이었다. 아버지는 주방 뒷문을 슬그머니 따고 들어가 화덕에 불을 피운 뒤 물이 끓으면 쌀을 넣어 주걱으로 저으며 중얼거렸다.
“나는 광둥 제일의 요리사야. 음, 그렇지!”
아버지는 태어날 때부터 요리사로 운명이 정해졌다. 믿거나 말거나지만 아버지는 피가 임리한 통나무 도마 위에서 첫 울음을 터뜨렸다. 목격자들에 따르면 횃대에 올라선 수탉처럼 패기가 넘쳤다고 한다. 아기 엄마는 도마 옆에 쪼그린 자세로 죽어 있었다. 태반조차 완전히 쏟아내지 못한 채였다. 탯줄이 팽팽하게 엄마와 아기를 잇고 있었는데, 갓 태어난 아기가 어떻게 제 몸 길이의 세 배가 넘는 통나무 도마 위로 기어 올라갔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필경 제 어머니가 죽기 전에 있는 힘을 다해 아이를 도마 위에 올려놓았겠지만 아버지는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정월 초하루면 자식들 앞에서 자주 그날의 무용담을 떠들어댔다.
“불행하게도 어머니는 굶주린 개들이 우글거리던 곳에서 나를 낳았어. 산통이 닥쳐 아랫마을 노파를 찾아 나선 길이었는데 하필이면 개고기 도살꾼들이 몰려 사는 토막 근처에서 다리가 풀려 쓰러졌지 뭐니. 나는 살기 위해 높은 곳을 찾아 기어올라야 했어. 그게 도마인 줄은 나중에야 알았고. 음, 진실이지!”
‘음 진실이지!’ 이 말을 아버지만큼이나 자주 썼던 사람이 또 있을까? 아버지는 말끝마다 ‘음, 진실이지’를 덧붙이며 자신의 이야기가 결코 과장되지 않았음을 강조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동네에서 소문난 허풍선이었다. 한번은 이웃이 집을 짓기 위해 터를 다지다 공룡 뼈 몇 조각을 수습한 적이 있는데 아버지는 전설에 나오는 용의 뼈가 발견됐다며 허풍을 쳐댔다. 일본 제국주의자들이 만주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도 이미 북경이 점령됐다고 호들갑을 떨고 돌아다녔다.
자신의 주장대로 아버지는 개들이 우글거리는 곳에서 태어났다. 그 말만은 거짓이 아니다. 아버지의 고향인 남녕시 모란촌은 매년 하지에 열리는 여지구육제荔枝狗肉際에 3천 마리가 넘는 죽은 개를 공급하는 중요한 마을이다. 축제에선 매년 3만 마리 이상의 개들이 도살된다. 하지가 다가오면 상인들은 우마차를 끌고 모란으로 몰려가 각종 개고기 부속들을 주문한다. 아버지가 첫발을 디딘 도마 위에서도 매번 수십 마리의 개들이 목이 잘리고 내장을 해체당했다. 간혹 우리를 탈출해 숲으로 들어간 개들은 민가로 내려와 보복하듯 아이들을 물어 죽였다. 할머니가 제 죽음을 밀쳐내며 아기를 통나무 도마 위에 올려놓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도마가 놓인 곳은 젊은 부부가 사는 두 칸짜리 토막 앞마당이었다. 대추나무로 만들어진 그것은 속이 단단했고 넓이는 대략 한 자尺 반이 넘었다. 아기를 낳지 못해 고민이 깊던 부부에게, 도마 위에서 들려오는 아기 울음소리가 어땠을지를 상상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부부는 아이를 거두어 제 자식처럼 소중하게 길렀다. 걸음을 떼자 아이는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자기가 첫발을 디딘 도마로 기어올라가 부부를 놀라게 했다고 한다. 말을 익힌 뒤에는 개나 돼지의 등뼈를 끊어낼 때 쓰는 무식하게 생긴 칸다오砍刀를 손에 쥐고 한바탕 허공에 휘둘러대며 “정말 쓰기 좋은 칼이군” 하고 중얼거리기를 즐겼다.
성장한 아버지는 여지구육제 기간에 백정 부부가 개를 팔아 장롱에 숨겨둔 돈을 훔쳐 광둥으로 건너갔다. 고등학교에 입학하던 해였다. 초창기에 광둥에서 아버지가 무엇을 했는지는 구체적으로 알려지지 않았다. 아버지는 자신에게 불리한 질문이 나올 때마다 기침을 하거나 눈을 끔뻑거리며 딴청을 피웠다. 그 덕분에 아버지의 무용담은 백정 부부의 도마 위에서 갑자기 식당 주방으로 건너뛴다. 서른셋이 되었을 때, 아버지는 프랑스 사람이 광둥 남쪽에 세웠다는 주강호텔 중식당의 수석 요리사가 되어 ─ 아버지의 표현을 빌리자면 ‘당당히!’ ─ 있었다.
“돌이켜보면 그때가 내 인생 최고의 시기였다. 너희 엄마를 만난 곳도 그곳이지. 솔직히 말하면 너희 엄마는 미인이 아니었다. 광둥엔 상상할 수도 없이 예쁜 여자들이 넘쳤거든. 매일 3백 명이 넘는 사람들이 식당을 찾곤 했어. 요리사만도 스무 명이 넘었지. 다른 건 몰라도 박하잎에 싸서 약한 불에 푹 익힌 뒤 더우반장豆瓣醬, 정식 명칭은 쓰촨라더우반장. 콩에 고추, 향신료를 버무려 발효시킨 중국식 장에 찍어 먹는 개고기 요리 하나만큼은 나를 따라올 사람이 없었다. 애간장을 녹이듯 혀 끝에 졸깃하게 와 닿는 박하 향, 씹을 때 입안에 고이는 육즙은 어떤 요리도 대적할 수 없는 완벽함을 지녔지. 신선이 먹는 요리가 있다면 바로 그런 걸 거야. 비린내 나는 토끼 고기 따위는 감히 범접할 수 없는 기품을 지녔거든. 기름기 가득한 돼지고기는 비교 축에도 들지 못했어. 너무 흔해서 광둥 거지도 먹지 않는 소와 닭이 주강 식당의 수습 요리사 몫일 때, 개고기 요리는 늘 메뉴판의 높은 곳을 독차지했다. 죽기 전 신이 한 가지 음식을 선택하라고 하면 나는 맹세코 칭탕거우러우淸汤狗肉, 개고기찜!라고 말할 거야.
아버지는 정말로 죽기 전 칭탕거우러우라고 외쳤을까?
불행하게도 그런 순간은 주어지지 않았다. 아버지는 죽음의 순간을 느끼기도 전에 목이 부러졌으니까. 그게 백정 부부의 도마 때문이었단다면 과장이겠지만 아무튼 아버지는 그 도마 때문에 죽었다. 주강호텔 부주방장에까지 오르며 앞만 보고 달리던 아버지의 인생은 마흔다섯이 될 때까지 평탄했다. 나라가 국공國共으로 나뉘어 전란에 휩싸이고 바다를 건너온 제국주의자들로 곳곳이 어수선할 때에도 아버지의 지위는 흔들리지 않았다. 한쪽에서 죽고 죽이는 전쟁이 계속되어도 다른 쪽의 사람들은 부지런히 먹고 마셨으니까. 그게 광둥인들의 삶이다.
(본문 중 일부)
★ 저작권법에 의해 한국 내에서 보호를 받는 저작물이므로 무단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