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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고는 불안했다. 그는 누워서 지붕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을음이 낀 보풀들이 양치식물과 풀로 된 지붕에 걸려 있고, 모든 것이 그의 심장을 겨누고 있었다. 맑은 물방울이 그의 몸 바로 위에 아슬아슬하게 걸려 있었다. 물방울이 점점 커지면서 그을음이 스며들어 더러워지더니 막 떨어지려 했다.
그는 눈을 감으려고 해봤지만 눈이 감기질 않았다. 머리를 움직이려고도 해봤지만 침대에 붙어 꼼짝할 수 없었다. 물방울은 더욱더 커지면서 눈 가까이로 달려들었다. 손바닥으로 눈을 가리고 싶었다. 그러나 손발 등 모든 것이 말을 듣지 않았다. 무고는 절망적으로 마지막 몸부림을 치다가 잠에서 깨어났다.
그는 담요 속에서 꼼짝하지 않았다. 꿈에서처럼 한 방울의 찬물이 갑자기 그의 눈을 찌를 것 같아 두려웠다. 담요는 딱딱하고 낡은 것이었다. 담요의 뻣뻣한 올이 그의 얼굴, 목, 맨살이 드러난 온몸을 골고루 콕콕 쑤셔댔다. 그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야 할지 어떨지 망설였다. 침대는 따스했다. 해는 아직 떠오르지 않았다. 새벽이 벽에 난 구멍으로 스며들었다.
무고는 한밤중이나 새벽에 잠이 달아났을 때 하던 게임을 해보려 했다. 어둠 속에서 물체들은 윤곽을 잃어버리고 서로 어우러져 보이게 마련이다. 그런 상태에서 방 안에 있는 여러 가지 물건들을 분간해내는 게임이었다.
그러나 오늘 아침은 정신을 집중하는 것이 어려웠다. 그것이 꿈이었음을 알았는데도 눈으로 떨어지는 찬물에 대한 생각으로 오한이 났다. 그는 하나, 둘, 셋을 세고 담요를 밀쳐낸 다음 세수를 하고 불을 지폈다. 구석에 놓인 그릇들 사이에 있는 봉지에서 옥수수 가루를 꺼내 냄비에 담았다. 그리고 물을 부어 불에 올려놓고 나무 수저로 저었다. 그는 아침에 죽 먹는 것을 좋아했다. 그러나 먹을 때마다 수용소에서 먹었던 설익은 죽이 생각났다.
‘시간이 참 더디게 가는구나. 모든 것은 어제와 똑같고……. 내일도 어제나 그제와 마찬가지겠지.’
마지막 수용소였던 마구이타를 나온 이후 줄곧 해오던 생활을 반복하고자 그는 괭이와 낫*을 집어 들었다. 타바이의 저쪽 끝에 있는, 새로 갈게 된 좁고 긴 밭까지 가려면 더러운 마을길을 지나야 했다.
* 여기에서 낫으로 번역된 것은 ‘팡가panga’인데, 중남미 여러 나라에서 사탕수수를 자르고 잡초를 베거나 무기로 사용하는 ‘마체테matchete’와 흡사한, 길고 무거운 아프리카 칼이다.
늘 그렇듯이 여자들이 그보다 먼저 일어나 남편과 아이들에게 줄 차와 죽을 끓이려 강에서 물을 길어 오고 있었다. 그들의 가냘픈 등이 물통을 지고 오느라 휘어져 있었다. 해가 막 떠오르고 있었다. 나무와 오두막, 사람들이 가늘고 긴 그림자를 땅에 드리웠다.
“오늘 아침은 기분이 어떤가?”
와루이가 오두막에서 나오며 말을 건넸다.
“괜찮습니다.”
평상시 같다면 무고는 그렇게 대답하고 가던 길을 계속 갔을 테지만 오늘은 와루이가 얘기를 하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일찍부터 밭일을 하려고?”
“예.”
“그게 내가 늘 하는 얘기라네. 땅이 말랑말랑할 때 일을 해야지. 그런 다음에 해가 떠야 해. 해를 이기는 거지. 일도 하기 전에 해가 먼저 뜨면 문제일세.”
마을 원로인 와루이는 새 천을 두르고 있어서인지 주름진 얼굴과 흰머리, 뾰족한 턱에 난 하얀 수염이 한결 나아 보였다. 무고에게 곡식 심을 땅을 준 사람이 바로 그였다. 무고의 땅은 그가 수용소에 있을 때 정부에 몰수되고 없었다. 와루이는 얘기하는 것을 좋아했지만 무고의 과묵함을 존중했다. 그런데 오늘은 달랐다. 무고를 바라보는 눈길에 뭔가 새로운 호기심 같은 게 엿보였다.
“케냐타가 말했듯이 요즘은 우후루 나 카지*의 나날들일세.”
그는 이렇게 말하더니 울타리에 침을 뱉었다. 무고는 당황한 채 가만히 서 있었다.
“자네 집은 우후루를 맞을 준비가 되었는가?”
“예, 그럭저럭요.”
* ‘우후루 나 카지’는 ‘독립과 일’을 의미하는 스와힐리어. 1963년 12월 12일, 영국 식민지였던 케냐가 독립우후루을 선포했으며, 이날은 독립기념일로 제정됐다.
이렇게 답한 무고는 실례한다며 와루이 곁을 떠났다. 마을을 지나면서 그는 와루이의 마지막 물음이 무슨 의미인지 헤아리려고 했다.
타바이는 큰 마을이었다. 여러 마을들, 즉 타바이, 카만두라, 키힝고, 웨루 일부 지역을 통합한 마을이었다. 1955년, 타바이는 풀 지붕과 흙벽으로 급하게 집을 지으면서 만들어졌다. 당시 백인들은 숲속의 형제들로부터 마을 사람들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사람들의 목에 칼을 들이댔다.
그런데 지금 1963년에도 마을은 그다지 달라진 게 없었다. 몇 집은 그냥 허물어졌고, 몇 집은 강제로 허물어졌다. 마을은 평화로웠다. 멀리서 보면 마을은 뭔가를 태워 신에게 제물을 바치듯 하늘로 연기가 솟아오르는 거대한 풀 더미 같았다.
무고는 주변을 돌아보는 것이 수치스러운 것처럼 고개를 숙이고 땅을 내려다보며 걸었다. 그는 와루이와 만났던 것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때 누군가가 갑자기 그의 이름을 불렀다. 목발을 짚고 절뚝거리며 다가오는 사람은 기투아였다. 그는 찢어진 모자를 들어 올리며 소리쳤다.
“흑인의 자유를 위해 문안 인사 여쭙습니다.”
그런 다음 그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고개를 여러 번 숙였다.
“아, 당신도 잘 지내나요?”
무고는 얼떨결에 이렇게 말했다.
두세 명의 아이들이 모여들어 기투아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바라보며 웃었다. 기투아는 무고의 물음에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찢어진 셔츠의 깃은 때에 절어 거무튀튀했다. 왼쪽 바짓가랑이는 잘린 부위를 가리려고 접어 핀으로 고정하고 있었다. 그가 느닷없이 무고의 손을 움켜잡았다.
“안녕하십니까! 안녕하십니까! 이렇게 일찍 밭에 가시다니 좋습니다. 우후루 나 카지. 하! 하! 하! 일요일에도 말이죠. 저도 비상사태* 이전에는 당신과 마찬가지였습니다. 백인이 총알로 저를 이렇게 만들기 전에는 두 손으로 일할 수 있었답니다. 당신의 기백을 보니 제 가슴이 다 뜁니다. 우후루 나 카지. 대장님. 인사 올리겠습니다.”
무고는 손을 빼려고 했다. 가슴이 뛰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아이들의 웃음 때문에 더욱더 곤혹스러웠다. 기투아의 목소리가 갑자기 바뀌었다.
“비상사태가 우리를 망쳐놓았습니다.”
그는 울음 섞인 목소리로 말하고 나서 휙 가버렸다. 무고는 기투아의 눈길이 등에 쏟아지는 것을 의식하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강에서 돌아오던 세 여인이 그를 보자 걸음을 멈췄다. 그중 한 명이 무슨 말인가를 큰 소리로 외쳤지만 무고는 아무런 응수도 하지 않고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먼지를 일으키며 달리듯 걸음을 서둘렀다. 그러면서 그는 마음속으로 여러 가지 것들을 자문했다.
‘내가 오늘 왜 이러지? 사람들이 왜 갑자기 나를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쳐다보는 거야? 내 바짓가랑이에 똥이라도 묻었나?’
그는 곧 노파가 살고 있는 중심가의 끝 가까이에 이르렀다. 아무도 그녀의 나이를 몰랐다. 그녀는 예나 지금이나 익숙하게 늘 거기에 있었다.
예전에 그녀는 귀머거리이자 벙어리인 외아들과 함께 살았다. 아들 이름은 기토고였는데, 무슨 말을 하고자 할 때는 두 손을 휘저으며 짐승처럼 쉰 소리를 냈다. 그는 잘생기고 건장했다. 젊은이들이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소일하던 옛 룽에이 중심가에서 그는 인기가 대단했다.
* 1950년대 케냐는 기쿠유족을 중심으로 영국 식민 통치에 항거하는 ‘마우마우’ 무장봉기를 전개했다. 당시 식민 당국은 1952년부터 1960년까지 ‘비상사태’를 선포해 봉기를 무력으로 제압하고 가혹행위를 자행했다.
간혹 젊은이들은 상점 주인들의 심부름을 해 누군가가 지나가는 말로 ‘간에 기별도 안 가지만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낫다’고 한 푼돈을 벌었다. 사람들은 그 말에 웃으면서도 때가 되면 푼돈이 다른 사람들(그들의 친척들!)을 불러올 것이라고 말했다.
기토고는 식당이나 푸줏간에서 무거운 짐들을 들어 올리거나 나르는 일을 했다. 그는 근육을 과시하길 좋아했다. 한때 룽에이와 타바이에서는 숱한 처녀들이 그의 멋진 근육에 녹아버렸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저녁이 되면 기토고는 설탕 1파운드나 고기 1파운드를 사서 어머니에게 가져왔다. 그러면 어머니의 주름살 많은 얼굴이 활짝 펴지곤 했다.
‘세상에 그런 아들이 있을까.’
사람들은 기토고가 어머니에게 쏟는 정성에 감탄할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처칠이 히틀러와 전쟁을 벌일 때 도로에서 마지막으로 보았던 탱크와 총으로 무장한 흑백의 군인들이 타바이와 룽에이 사람들을 느닷없이 에워쌌다. 하늘에는 총성이 진동했다. 사람들은 숨을 죽였다. 남자들은 화장실로, 가게의 설탕 자루와 콩 자루 사이로 몸을 숨겼다. 어떤 남자들은 마을에서 빠져나가 숲으로 달아나려 했지만 모든 길이 봉쇄된 상태였다. 사람들은 광장이나 시장으로 소집되어 검문을 받았다. 기토고는 어느 가게로 달려가 계산대를 뛰어넘었다. 가게 주인은 빈 자루들 사이에서 오금을 못 펴고 있었다.
기토고는 손짓 발짓과 함께 괴성을 지르며 군인들을 가리켰다. 가게 주인은 공포에 질려 기토고를 멍청하게 바라볼 뿐이었다. 기토고는 별안간 집에 혼자 있을 어머니가 생각났다. 동시에 끔찍한 행위와 피가 낭자한 광경이 눈앞에 생생히 떠올랐다.
갑자기 그는 다급해졌다. 그는 뒷문으로 나가 담을 뛰어넘고 들로 달렸다. 어머니가 위험한 상황에 놓였으리라는 생각에 불안했다. 긴급 사태. 집과 어머니의 모습이 머릿속을 스쳤다. 그는 자신의 근육만으로도 어머니를 지켜낼 수 있으리라고 믿었다. 그러나 부시 재킷을 입은 백인이 숲속에 매복해 있다는 사실을 그는 몰랐다.
“정지!”
백인이 소리쳤지만, 기토고는 계속 달렸다. 무엇인가 그의 등을 쳤다. 그는 팔을 공중으로 들어 올렸다. 그리고 앞으로 넘어졌다. 총알이 심장을 관통한 것이 틀림없었다. 군인은 그 자리를 떠났다. 군인에게는 또 한 명의 마우마우 테러리스트가 사살되었을 뿐이었다.
그의 어머니가 그 소식을 듣고 한 말은 ‘하느님’이란 말뿐이었다. 사람들 말로는 울지도 않고, 아들이 어떻게 죽었는지 물어보지도 않았다고 했다.
수용소를 나온 이후 무고는 집 앞에 서 있는 노파를 여러 번 보았다. 그런데 그녀를 볼 때마다 자신을 알아보는 것만 같아 불안했다. 작은 얼굴엔 주름이 고랑을 이루고 있었다. 눈은 작았지만 가끔씩 삶의 반짝임이 엿보였다. 그러나 보통 때는 죽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녀는 팔목에 염주를 끼고 목에는 여러 개의 구리 목걸이를 걸었으며, 발목에는 조개껍질처럼 생긴 주석을 차고 있었다. 그래서 움직이면 방울을 단 염소처럼 딸그랑딸그랑 소리가 났다. 무고를 가장 혼란스럽게 만든 것은 그녀의 눈이었다. 그는 그녀의 눈앞에서 항상 벌거벗겨지고 속이 다 드러나는 것 같았다.
어느 날 무고는 그녀에게 말을 건넸다. 그러나 그녀는 그를 한번 쳐다보더니 얼굴을 돌려버렸다. 무고는 거부당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그녀의 외로움은 그에게 연민의 정을 불러일으켰다. 그녀를 돕고 싶다는 감정에 그는 훈훈해졌다.
무고는 카부이의 가게들 중 한 곳에서 약간의 설탕과 옥수수 가루, 장작 한 묶음을 샀다. 그리고 저녁에 그녀의 집으로 갔다. 오두막 안은 어두웠다. 방에는 아무것도 없었고 벽에 크게 난 구멍으로 찬바람이 들어왔다. 그녀는 난로 옆 바닥에 잠들어 있었다.
무고는 어린 시절 숙모의 집에서 염소와 양과 함께 난로를 쬐며 바닥에서 잠을 잤던 사실을 떠올렸다. 때로는 너무 추워서 엉금엉금 기어가 염소들 곁에서 웅크리고 잤었다. 아침이 되면 얼굴이며 옷이 재로 뒤덮이고, 손발은 염소 똥으로 범벅돼 있었다. 결국 그는 염소 냄새에 무감각해져갔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노파가 그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그를 알아보는 것 같은 눈빛이었다. 무고는 그녀가 자신의 몸에 손을 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속으로 움찔했다. 그는 밖으로 달려 나갔다. 메스꺼웠다. 노파와의 만남에 운명적인 것이 있는 것 같았다.
무고는 오늘 이 생각이 머릿속에 떠오르자 다시 오두막 안으로 들어가 그녀에게 말을 건네고 싶었다. 그녀와 그 사이에는 유대감이 있었다. 어쩌면 그녀가 그처럼 혼자 살고 있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그는 문 앞에서 주춤거렸다. 마음먹었던 것이 갈팡질팡 흔들리다가 깨져버렸다. 그는 서둘러 그곳을 벗어났다. 그녀가 미친 듯 웃어젖히며 행여 그를 불러 세울까 두려웠다.
밭에 도착한 무고는 속이 텅 빈 느낌이었다. 땅에는 아무런 곡식도 없었다. 꼭두서니, 도깨비바늘, 닭의장풀, 만수국아재비 등 마른 잡초만 그득했다. 태양도, 나라도 병들고 우중충해 보였다. 괭이가 보통 때보다 훨씬 더 무겁게 느껴졌다. 일할 의욕을 잃어버린 그는 아직 일구지 않은 땅이 너무 넓어 보였다. 그는 땅을 조금 파다가 소변을 보고 싶어 길 가까이 있는 울타리로 갔다.
‘왜 와루이와 기투아, 그 여자들이 나에게 그런 식으로 행동했을까?’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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