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장
세계사 속의 어린이
유아를 포대기로 감싸는 행위, 즉 아이의 몸과 팔다리를 끈이나 천으로 단단히 감싸는 풍습은 4천여 년 전 중앙아시아에서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행위는 유목 생활을 하면서 이동하는 사람들에게 효율적이고 아이들을 쉽게 데리고 다니는 데 필요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중앙아시아 유목민들이 유라시아의 다른 사회와 무역을 하기 위해 접촉하는 일이 많아지면서 이런 행위는 더 확산되었다. 그런가 하면 아메리카에서도 이런 행위가 독자적으로 이루어졌다. 포대기를 사용하는 것이 자세를 바르게 만드는 등 아이들에게 유익할 뿐 아니라 일하면서 아이를 근처에 두고 지킬 수 있는 커다란 장점이 있다고 믿는 부모들이 많았다.
반면에 또 어떤 사회에서는 아이를 너무 덥게 만들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포대기를 사용할 수 없었다. 특히 열대지방에서는 그랬다. 아프리카 대륙의 여러 지역에서는 어머니들이 일하는 동안 몸에 느슨한 띠를 매어 아이들을 데리고 다녔으며,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다. 이 방법이 어린아이에게 특히 편하다고 믿는 이들도 많다. 서유럽에서는 17세기 이후 포대기에 대한 공격이 시작되었는데, 포대기가 지나치게 아이들을 제약하고 창의성이나 인성 발달을 가로막는다는 얘기였다(포대기를 쓰는 여러 사회와 비교하면서 우리는 서유럽 사람들의 해석이 지나치게 가혹한 것임을 알게 될 것이다). 포대기를 사용하는 일은 점차 사라졌으며, 서양 사람들은 다른 사회나 자기 사회의 하층계급 사람들이 포대기를 사용하는 것을 두고 아이들에 대해 근대적 배려가 결여되었다고 공격하기 시작했다.
오늘날 포대기는 중국, 터키, 중동의 여러 곳, 러시아 같은 지역에서 여전히 널리 사용되고 있다. 90퍼센트가 넘는 부모들이 적어도 몇 달 동안은 포대기를 사용하는 사례가 많다. 그럼에도 포대기 사용은 아직도 공격을 받는다. 몇몇 의사들은 포대기가 아이들의 행동을 부자연스럽게 하기 때문에 호흡기 질환으로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포대기를 쓰는 것은 의존적이면서도 극히 민감한 성격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다. 때로는 이런 논리를 바탕으로 모든 사람의 결점이 여기에서 비롯되는 것처럼 일반화하기도 한다. 그러나 현대사회에서도 포대기 사용을 옹호하는 사람들이 있다. 네덜란드 같은 나라에서는 포대기 사용이 받아들여졌다. 일부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안락함을 주어 우는 일이 줄어들었으며, 그 결과 아이들의 울음소리에 짜증을 내는 어른들도 줄어든다는 이유로 포대기를 다시 도입했다.
포대기는 어린이 연구에서 세계사의 중요성을 인식시킬 수 있는 여러 소재 가운데 하나이다. 그것은 전 지구에 걸친 역사 비교의 중요하면서도 복합적인 성격을 보여 준다. 과거 여러 사회는 포대기를 저마다 아주 다르게 취급했다. 포대기를 능동적으로 받아들인 사회가 있었다면, 또 어떤 사회는 거부했다. 그리고 이러한 차이는 어린아이들의 경험을 매우 다르게 하였다. 포대기는 명백히 현재를 과거와 연결시킨다. 이제는 오랜 기간 이어 온 하나의 능동적 행위이다. 그것은 또 여러 지역들 사이의 연계성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유목민들은 포대기가 아시아와 유럽의 여러 지역으로 확대도리 수 있게 했다. 그러나 근대적인 관계가 확대되면서 특정 사회의 행위에 대한 다른 사회의 비판이 커져 갔다. 어린이에게 무엇이 필요한지에 관해 더 많은 지식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일을 해야 하는 어른들에게 어린아이를 돌보는 매우 기초적인 방법이던 포대기는 분명히 어린이를 전 세계적인 변화와 다양성, 상호 관련성 속에서 파악하게끔 한다. 어린아이를 기르고 한 사람의 아동으로 키우는 것은 본질적으로 개인적 경험이다. 하지만 이 경험은 우리가 종종 깨닫는 것보다 더 넓은 지리적·역사적 맥락 속에서 이루어진다.
인류 역사 내내 모든 사회와 대부분의 가정은 어린이와 그들의 지위를 광범위하게 다루었다. 때와 장소를 막론하고 통용되는 수많은 기준과 특징들이 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어린이는 어느 정도 청소년기를 대비하여 훈련을 받아야 한다. 어린이들은 분노나 공포 같은 어떤 감정을 사회적으로 허용될 수 있는 방식으로 조절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무릇 인간이라는 종human species은 유아기에 오랫동안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 그래서 어린아이에게는 음식을 먹이고 신체적으로 돌보는 보살핌이 필요하다. 일어날 수 있는 사고뿐 아니라 아동기의 질병과 그 예방은 옛날부터 오늘날까지 부모들의 뇌리를 사로잡고 있는 문제이다. 성별에 따른 역할을 하도록 모종의 사회화를 하는 것은 가장 평등하다는 현대의 환경에서도 어린이를 다룰 때 피할 수 없다. 이러한 공통된 기본 특징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생물학자들은, 인간은 아동기에 특별한 양육이 필요하다는 점을 환기시킨다. 어린 침팬지나 다른 유인원들은 젖을 뗄 세 살 무렵이 되면 곧바로 성인과 같은 치아를 갖춘다. 음식을 모으거나 어떤 목적을 이루어 나간다는 점에서 보면 이들은 어른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우리 아이들은 젖을 떼고 한참 지난 일곱 살이나 그 이후까지도 성인의 치아를 갖지 못한다. 아이들은 그 뒤로도 상당 기간 동안 먹을 것을 얻으려면 어른의 보살핌이 필요하다. 이 점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공통적인 인간 아동기의 중요한 특징이다.
포대기의 사례가 보여 주듯이, 어린이에 대한 생각은 시대와 사회에 따라 놀랍도록 다를 수 있다. 어떤 사회에서는 어린아이가 일하는 것을 정상이라고 생각한다. 그 일이 상당히 고된 경우에도 그렇다. 또 어떤 사회는 순진하고 나약한 어린이라는 속성에 반하는 이런 관행에 충격을 받는다. 어떤 사회에서는 어린이가 행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떤 사회에서는 어린이가 불행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생각이 무척 낯설 수도 있다. 또 어떤 사회에서는 어린아이들 가운데 많은 비율이 죽을 거라고 전제한다. 그래서 어린이에 대한 정책 가운데 많은 부분을 이런 전제를 바탕으로 세운다.
어린이의 죽음을 둘러싼 논의도 마찬가지다. 어떤 사회에서는 어린이의 죽음을 막기 위해 무척 애를 쓴다. 어떤 사회는 어린이가 귀엽다는 점에 주목한다. 어떤 사회에서는 어린이가 동물과 얼마나 같은지를 강조한다. 어떤 사회는 어린이에게 으레 신체적 훈련을 시키지만 또 어떤 사회에서는 이런 방식에 충격을 받는다. 아메리카 인디언들은 17세기에 유럽에서 건너온 이주민들이 자식의 볼기를 때리는 모습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어떤 사회에서는 아동기가 사춘기 즈음에 끝난다고 가정한다. 그런가 하면 알렉산더 대왕처럼 10대 중반에 중요한 일을 시작하는 위대한 왕과 정복자들의 사례도 많다. 하지만 또 어떤 사회에서는 성인기를 훨씬 늦은 시기로 규정한다. 그래서 청소년기처럼 별도의 범주를 특별히 설정하여, 사춘기 이후에도 아직은 일종의 어린이라고 주장한다. 아동기의 기본 특징이 무엇인지 판단하는 주된 변수나 변화는 그야말로 다양하다.
사춘기는 어린이가 갖고 있는 공통점과 차이점 사이의 갈등 관계에 전 세계가 어떤 방식으로 초점을 맞추는지 보여 준다. 10대를 살아가는 모든 아이들은 사실상 사춘기를 겪으면서 자식을 낳을 수 있는 능력을 얻게 된다. 같은 이유로 모든 사회나 가정에서는 아이들의 사춘기를 인식해야 하며, 사춘기 이후의 행동에 대해 어떤 안내나 통제를 해야 한다. 이러한 안내는 사춘기 이전부터 할 수 있지만, 사춘기 이후의 아동을 사춘기 이전의 아동과 구분 짓게 한다. 거의 대부분의 사회에는 대개 사춘기를 겪는 연령대를 구별하는 몇 가지 방식이 있다. 미국에서는 중학생이라는 독립된 지위가 사춘기를 그전의 아동기나 완숙된 청소년기와 구별해 주는 하나의 방식이다. 중학교 교육은 여러 가지들 요인들 중 아동이 사춘기를 겪어 나감에 따라 어떤 특징적인 경험과 관심거리를 갖게 된다는 것을 의식해서 설계되어 있다. 그러므로 사춘기의 공통된 경험과 관련하여 많은 것들이 공유되고 있다.
그렇다면 차이점들에 대해서도 한번 생각해 보자. 우선 사춘기의 평균 연령은 사회마다 크게 다르다. 더운 지역에서는 사춘기의 연령이 낮다. 식량이 풍부한 지역에서도 그렇다. 마찬가지로 시대에 따라서도 달라질 수 있다. 오늘날 미국이나 서유럽에서 사춘기는 과거 200년 전보다 네 살 이상 빨리 온다. 어떤 사회에서는 아이들이 사춘기를 거치고 나면 성인으로 대한다. 많은 사회에서는 사춘기 나이에 결혼하는 것이 매우 일반적인데, 여성의 경우는 특히 그렇다. 오늘날의 서양 사회가 그렇듯이 대부분의 사회에서는 여전히 아동기를 광범위한 기간으로 설정한다. 어떤 사회에서는 사춘기 무렵에 정성 들여 의식을 치른다. 서양 사회와 마찬가지로 여러 사회에서는 견진성사 堅振聖事, confirmation를 받았다는 종교적 표시를 제외하면 의식의 측면을 경시하는 경향이 있다. 아직까지 아이로 취급되는 이들에게 나타날 사춘기의 결과를 우려하기 때문인 것이다. 이런 변수나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일어날 수 있는 차이는 너무도 크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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