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
과학에 대한 과학을 향하여
제니의 수첩: 개구쟁이의 이상
오늘 밤 임프Ernest Imp가 책을 읽다가 물었다. “과학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가 뭔지 알아?” 임프는 수수께끼를 좋아한다. 특히 수수께끼로 책 읽기를 방해하고 싶을 때 말이다. 임프가 소년 같은 천진난만한 미소를 짓고 있기에 나는 장단을 맞춰 주었다. “글쎄, 통합된 장이론場理論을 만드는 거? 암을 치료하는 방법을 찾는 거? 우주에 생명이 있음을 발견하는 거? 잘 모르겠어.” 나는 이런 문제에 별 관심이 없다.
“아니야, 아니야! 그런 생각은 너무 편협해.” 임프는 진부한 대답을 떨쳐 버리려는 듯 머리를 흔들면서 말했다. “아니야. 다시 생각해 봐!” 임프는 이 상황을 즐기는 게 확실했다. 나는 왜 임프가 이미 답을 아는 질문을 하는지 이해되지 않았다. 한때는 자신의 지적 우월성을 과시하려 한다고 생각했으나, 오래전에 그런 오만함을 용서했다. 지적인 문제에 관해서라면 임프는 새로운 장난감을 가진 어린아이 같다. 단지 차이가 있다면 자연에 있는 모든 사물이 임프의 장난감 상자라는 것이다. 우리가 대학에서 처음 만났을 때, 나는 임프가 천치 아니면 천재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그는 늘 권위에 저항하고 우주를 설명하는 거대한 체계를 발명하려 했기 때문이다. 어떤 교수님이 냉소적으로 깔본 임프의 그런 ‘노고들’은 그의 동료들뿐만 아니라 윗사람들까지 불쾌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우리와 달리 임프는 자신에 대해 생각하고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일에 아무 거리낌이 없었다. 나아가 열의와 즐거움까지 느끼며 그렇게 행동했고, 나는 곧 그를 지켜보는 일에서 큰 기쁨을 맛보았다. 심지어 임프에게 존경을 표하는 5행시까지 지었다(물론 우리가 서로 사랑하게 된 후에 말이다).
그 언젠가 세상에서 가장 불경한 남자가 있었다
그는 우리에게 저항하는 것을 천직으로 알았고
우리 모두는 그를 개심시키려 했다
공상적인 농지거리에서
우리의 허위를 드러낼 뿐인 생각으로
임프의 불경함과 충동적이고 개구쟁이 같은 성격, 깊은 반골 기질에서 나는 그의 이름 어니스트Ernest*가 지닌 진지함, 올곧음의 뜻을 느꼈고, 오래지 않아 잘했든 못했든 내 남편이 되었다.
하지만 이런 기질 때문에 임프와 함께 사는 나날은 쉽지 않다. 확실히 임프는 까다로운 남자다. 결혼한 지 1년이나 지났는데도 나는 그의 들썩이는 마음을 진정시키지도, 이해하지도 못한다. 나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말했다. “그래서 답이 뭐야?”
임프는 밝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그야 과학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발견이 어떻게 이루어지느냐 하는 거지! 우리가 이전에 다른 사람들이 무엇을 발견했는지 써 놓은 목록을 가르치는 대신에 어떻게 하면 그런 발견을 할 수 있는지 가르친다고 생각해 봐.”
예상은 했었다. 우리는 전에도 같은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왜 교육은 미래 지향적이면 안 되는 거야?” 임프는 물었다. “왜 우리는 이미 배운 조그마한 지식에 안주하지 않고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가르치면 안 되는 거야? 젠장! 지식과 무지를 저울에 달아 보면 지식은 조금도 눈금을 움직이지 못하겠군!”
“너무 터무니없는 요구를 하는 거 아니야?” 나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어떻게 발견을 해낼 수 있는지 가르치는 건 위대한 소설 쓰는 법을 가르치는 문학 수업이나 걸작 그리는 법을 가르치는 미술 수업을 요구하는 거랑 같지 않을까?”
“늙은 브로노우스키Jacob Bronowski**가 한 말이로군! 그리스 문학과가 소포클레스Sophocles***를 배출하고 영문학과가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를 배출한다면 나는 내 연구실에 뉴턴Isaac Newton이 있는지 찾아봐야겠네. 하지만 아니야. 나는 뉴턴을 찾는 게 아니라고. 나는 그저 남의 생각을 복사하는 대신에 창조하는 사람을 찾는 거야. 문학 수업이 위대한 소설을 어떻게 쓸 수 있는지 가르쳐야 하냐고? 물론이지!” 임프는 내 말을 몰아붙여 당황스럽게 했다. “적어도 노력이라도 해야지! 최고를 향해 가는 게 중간에서 만족하는 것보다 나으니까. 어쨌든 대학이나 고등학교에서는 창의적인 글쓰기나 조각, 작곡을 가르치지 않아. 그래, 대부분의 학생은 걸작을 만들지 못해. 걸작을 만드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는 배우겠지. 그런데 말이야, 나한테 발견이라는 주제를 다루는 교과서가 하나라도 있는지 보여 줘 볼래? 교과서에 ‘과학적 방법’이라는 제목 아래 달린 단 두 문단짜리 허튼소리를 말하는 게 아니야. 문제를 만들고 이를 어떻게 해결할지 고안하는 법, 자료를 해석하는 법에 대해 말하는 거야. 자료가 일반적인 이론에 맞지 않으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완전히 새로운 이론을 발명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 우주가 어떻게 존재해야 하는지, 자기가 가진 알량한 선개념preconception, 先槪念과 불일치하는 결과에 화내는 회의주의자의 마음을 어떻게 돌릴 수 있는지를 말이야!” 임프는 점점 심각해졌다.
“내 동료 조지 케스터George Kester가 쓸 만하고 창의적인 화학공학자를 찾지 못했다는 사실, 나 역시 창의적인 생물학자를 찾을 수 없다는 사실이 이상하지 않아? 우리는 과학을 미술 감상 수업처럼 가르쳐.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각각 다른 색을 칠하도록 칸을 나눠 놓은 색칠 세트처럼 가르치지! ‘여기 온갖 색이 있고 각각의 칸이 있다. 빈칸을 칠하라’라고 말이야. 실험실에서 하는 훈련은 그저 원하는 결과를 얻는 데 실패한 무능력자를 위해서만 존재한다니까. 이런 걸 가리켜 요리책 과학이라고 부르지! 우리는 언제쯤 자기만의 도구 상자를 사용해, 자기만의 방식으로 답을 찾을 수 있게 학생들을 가르칠까? 이거야말로 실제로 과학을 하려면 꼭 필요한 자질인데! 미지의 지식에는 안내서가 없어. 우리는 우리만의 방식을 생각해야 해!”
“그래 맞아. 하지만 당신 생각은 새롭지 않아. 스노의 책 『탐구The Search』에 나오는 등장인물도 똑같은 말을 했어. 만일 학생이 어떻게 발견을 이루어 내는지 배우기를 원한다면, 그들을 발견자의 입장에 세워라. 그러자 다른 인물이 말하지. 웃기지 마! 과학자는 예측하지 못한 실수나 번뜩이는 통찰로 어쩌다 우연히 발견을 하는 거야라고. 그런 걸 어떻게 가르칠 수 있겠어?”
“그렇지도 않아.” 임프가 반박했다. “우연이나 실수에서 조금도 암시를 받지 못하는 학생들은 절대로 새로운 과학을 고안하지 못해. 학생들에게는 조리법이 필요한 게 아냐. 애매모호함이나 모순에 대처하는 전략과 술수가 필요하지. 학생들은 순전한 우연이 주는 효과를 최소화해서 발견의 확률을 높일 수 있는 법을 알아야 해. 그리고 그런 전략과 술수를 탐구하는 게 과학자인 우리의 의무지.”
임프는 계속해서 말했다. “물론 나도 과학 교육에는 우리가 이미 아는 지식을 가르치는 방식이 가장 효율적이라는 점에 동의해. 내가 반대하는 건 과학에서 발견이 무엇인지를 전혀 배우지 못한 사람에게 학위를 주는 거야. 그런 사람들은 그저 자랑스러운 기술자일 뿐이야!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이미 아는 내용을 반복하는 거지. 아니면 아주 조금 정밀성을 높이는 수준이든가. 그런 사람들이 그림을 그리거나 음악을 만든다면 우리는 그 작품이 모조품이나 표절작과 다를 게 없다고 평가할 거야. 소설을 쓴다면 고딕 로맨스나 살인 미스터리를 쓰는 삼류 작가, 아류 작가, 형편없는 모방자겠지. 그런 사람들이 바로 우리가 훈련시킨 학생이라고 생각해 봐! 그런데 정말로 과학에서는 단지 학위를 받을 때까지 끈기 있게 버텼다는 이유로(이들에게 머리를 조아려야 할걸!) 곧장 과학자, 발견자, 이학사가 된다니까. 이 자칭 과학자들의 99%는 독창적인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을걸.”
“그게 그들 탓이야, 아니면 제도 탓이야?” 나는 내가 쓴 책이 얼마나 진부할까 생각하면서 물었다.
“둘 다 어느 정도 책임이 있겠지.” 약간 기분이 누그러진 임프가 대답했다. “우리는 과학에서 누가 창의적인지 알 수 없고, 이미 준비된 답이 있는 손쉬운 질문을 해결하는 것만으로 보상을 주는 데도 없어. 빌어먹을! 만약 무언가를 발견하고자 한다면 발견하는 방법을 훈련해야 해. 수백만 명의 세금을 낭비하는 것보다 나으니까!
그리고 바로 여기에 또 다른 문제가 있어. 이건 단지 교육 문제가 아니라 과학의 모든 단계에 영향을 주는 문제야. 생각해 봐. 우리는 어떻게 발견이 이루어지는지, 누가 발견을 하는지, 어떤 교육, 경제, 제도적 조건에서 이루어지는지도 모르는 채 과학자를 훈련시키고, 자원을 배분하고, 과학 정책을 만들어. 이건 마치 하나의 익살극 같아!”
그렇다면 남은 말은 이것이다. “그래서 이제 뭘 하려고 하는데?”
“발견에 관한 안내서나 그 비슷한 책을 써 볼까 해.” 임프가 대답했다.
“잘됐으면 좋겠네.” 나는 미소 짓고서 다시 미셸 푸코Michel Foucault와 자크 데리다Jacques Derrida가 쓴, 무엇을 뜻하는지 이해하기 힘든 글(어떻게 감히 이들의 글을 허튼소리라 할 수 있을까?)을 해독하는 일로 돌아갔다. 프랑스 철학이 낳은 사상은 얼마나 놀라운지! 임프는 노트에다 무언가를 쓰면서 남은 밤 시간을 조용히 보냈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궁금하다.
*어니스트 임프Ernest Imp라는 이름은 저자가 의도한 언어유희다. ‘Imp’라는 성은 불경함impious, 충동성impulsive, 개구쟁이impish의 어간이며, ‘Ernest’라는 이름은 진지함, 진심 어린, 성실함, 올곧음을 뜻하는 독일어 ‘ernst’에서 유래했다. 따라서 임프는 감히 과학적 발견의 과정을 파헤치려는, 권위에 저항하는 개구쟁이면서 아주 진지한 인물이기도 하다.
**제이콥 브로노우스키, 1908~1974. 폴란드 출신의 영국 수학자, 과학사학자. 책으로도 출판된 BBC 다큐멘터리 『인간 등정의 발자취』로 과학 대중화에 공헌했다.
***소포클레스, BC. 496?~405?. 아이스퀼로스, 에우리피데스와 함께 고대 그리스의 3대 비극 작가. 대표작으로 『오이디푸스 왕』, 『안티고네』 등이 있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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