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나를 힘들게 하는 것들
01
자존감
자존감이 점점
낮아지는 것 같아요
세정 씨 이야기
저는 자존감이 낮아서 고민입니다. 이 때문에 항상 힘들고, 우울할 땐 더 힘들죠. 특히 대인 관계가 잘 안 풀리거나 시험을 못 보는 등 일상에 지칠 때면 더욱더 힘들어요. 사실 이건 꽤 오래된 고민인데 시시때때로 머리를 쳐드는 것 같습니다.
전 자신 있는 분야가 하나도 없어요. 항상 무엇이든 못하거나 애매해요. 그걸 느낄 때마다 자존감이 낮다는 생각이 들어요. 주위 사람의 칭찬을 잘 받아들이지 못할 때도 그렇고요. 제가 어떤 사람인지 자세히 알면 모두 제게 실망할 것 같아요. 전 주위 사람들이 제게 실망하는 것이 정말 싫어요. 그래서 거절을 잘 못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맞춰주려고 해요. 그러다 보니 진짜 제가 누구인지 잘 모르겠어요.
사귄 지 5개월쯤 된 남자친구가 있는데, 남자친구의 주변 사람들을 만나는 게 너무 불편해요. 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 신경 쓰이고, 다들 제가 남자친구보다 부족하다고 뒤에서 말하는 듯하고, 그래서 남자친구가 저한테 실망할까봐 무서워요. ‘내가 이 정도밖에 안 되나’ 하는 생각이 들 때면 슬픔이나 좌절감을 느껴요. 이런 감정이 결국 ‘나는 왜 살지?’ 하는 생각으로 이어지니까 아주 우울해지고요.
제게는 장점이 없는 것 같아요. 예전에는 착하고 겸손하고, 남들에게 싫은 소리를 하지 않는 제 성격이 장점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자신감이 없고 자존감이 없어서 남들에게 맞추려고 하다 보니 그런 성격이 된 것 같아 이제는 장점으로 안 느껴져요. 제가 착하지도 않은 것 같고요. 겸손한 게 아니라 자신감이 없는 것 같고…. 어릴 땐 글쓰기나 말하기에 좀 자신이 있었는데, 커가다 보니 저보다 더 특출 난 사람도 많더라고요. 그래서 제 장점을 잘 모르겠어요.
자존감 문제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건 중학교 때였습니다. 초등학교까지 항상 1등을 하다가 중학교에서 나보다 공부 잘 하는 친구들을 만났는데 충격이었어요. 외고 입시 준비로 학원에 다닐 땐 충격이 더 컸고요. 제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가 사라진 느낌이랄까요? 저는 부모님이나 선생님, 친구들이 칭찬해주는 데에서 삶의 보람을 느끼면서 살아왔거든요. 그런데 외고 입시학원에 가보니 제가 너무나 부족한 거예요. 그 뒤로 학원 선생님들과 부모님은 항상 “모자라니 열심히 해”라는 말만 했고, 학원 친구들도 모두 저보다 뛰어났기에 처음으로 ‘나는 왜 살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다른 사람들에게 별로 인정받지 못하고 기쁨을 주지 못하니 ‘해도 안 되는구나’ 하는 좌절감이 너무 컸어요.
그 뒤 외고 입시에 실패하고, 대학 입시도 제가 원하는 대로 잘 되지 않다 보니 자존감이 점점 더 낮아졌던 것 같아요. 요즘도 성적이 잘 안 나오면 ‘나는 왜 이 정도밖에 안 될까’ 하고 자책해요.
지금은 대학에 다니면서 동아리 집행부를 하고 알바도 하고 있어요. 그러다 보니 당연히 지칠 수밖에 없잖아요. 그런데 이렇게 지치거나 제 할 일을 제대로 못하면 ‘나는 왜 이럴까. 다른 사람들은 잘 살아가는데…. 다 내가 능력이 부족해서다’라는 생각이 들어요. 제가 살집이 좀 있는 편이라 마른 사람들 볼 때마다 자괴감이 들고, 다른 사람들이 날 어떻게 볼까 무서워요. 제가 처음엔 낯을 좀 가리다가 친해지면 활발한데 그런 소심한 성격이 싫고, 남에게 싫은 소리 못하는 것도 싫어요. 그럴 때마다 또 저를 깎아내리게 돼요.
제 어머니는 칭찬에 매우 인색하십니다. 뭔가를 잘했을 땐 “그래, 잘했다” 정도의 말만 해주셨지만 잘못했을 땐 크게 혼내셨거든요. 어릴 때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초등학교 6학년 때 수학 시험에서 하나 틀렸을 때예요. 그날 친구랑 집에 같이 갔거든요. 친구가 문 밖에서 잠시 저를 기다리고, 저는 시험지를 어머니께 보여드리면서 사인을 해달라고 했는데 엄청 혼내셨어요. 100점이 아니면 다 똑같다고, 왜 틀렸냐고요. 초등학교 6학년 땐 전교회장으로 뽑혀서 어머니께 말씀드렸는데 별 감흥이 없으셨던 일도 기억나요. 그러니까 저희 어머니는 잘하는 게 기본이고, 그 기준에 조금만 못 미쳐도 많이 혼내셨어요.
어머니가 칭찬해주지 않았을 때 저는 우울하고 슬펐어요.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어렸을 때부터 어떤 행동을 하면 어른들에게 칭찬받으려고 애썼던 것 같아요. 기대했던 칭찬을 못 받으면 내가 한 일의 의미들이 다 사라지는 느낌이 들었어요.
제 고민을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전혀 안 한 건 아니에요. 수능 끝나고 살도 10킬로그램 넘게 빼보고, ‘난 괜찮은 사람’이라고 되뇌어보기도 하고…. 그럼에도 자신감과 자존감이 회복되지 않는 것 같아요. 사실 제가 대입 원서를 넣은 학교 가운데 낮은 두 곳만 붙어서 대학에 대한 만족감이 매우 낮아요. 다른 사람들은 그 정도면 괜찮다고 하는데, 대학 얘기가 나올 때마다 저 혼자 상처받는 게 너무 싫어요. 그리고 저는 저와 달리 직설적이고 활발한 친구들과 지내는 게 불편해요. 그 친구들 보면 자신감도 더 떨어지고, 더 소심해지는 것 같아요.
자존감과 자신감을 높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도 남들 신경 안 쓰고 상처 좀 그만 받고 제가 원하는 대로 살고 싶어요.
자존감 상실의 시대
사람의 가치는 무엇으로 평가받는가
자존감이란 자신의 사회적 가치에 기초해 스스로를 존중하는 감정을 의미한다. 자존감이 자기애를 포함한다는 사실에서 보듯 자존감은 자기애보다 한 차원 높은 감정이라고 할 수 있다. 자기를 긍정하고 수용하며 사랑하는 감정인 자기애는 자존감의 필수조건이다. 즉, 자기애가 없으면 자존감도 없다는 말이다. 자기 존중은 스스로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에 기초해 자신을 사랑하는 자기애 없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자기애는 자존감의 충분조건이 아니다. 즉, 일반적으로 건강한 자기애는 자존감과 뗄 수 없는 관계지만 자기애가 있다고 해서 자존감도 높은 건 아니라는 말이다.
사람이 스스로를 존경하고 존중하려면 무엇일 필요할까? 사람은 자기 내면에 무엇인가 존중받을 만한 거리가 있어야만, 즉 자신이 존중받을 만한 가치가 있어야만 스스로를 존중한다. 한마디로 사람은 스스로를 가치 있는 사람이라고 여길 때에만 비로소 자기를 존중한다. 그렇다면 사람의 가치란 도대체 무엇일까? 상품의 가치란 유용성, 쓸모를 의미한다. 예를 들면 방한복의 쓸모는 추위를 얼마나 잘 막아주는가에 있다. 디자인이 제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추위를 막아주지 못한다면 그 방한복의 가치는 낮을 수밖에 없다. 이렇게 상품들은 사람의 입장에서 볼 때 나름대로 유용성, 쓸모가 있어야 일정한 가치가 생긴다.
그렇다면 상품이 아닌 사람의 유용성, 쓸모란 무엇일까? 대체로 하나의 상품은 한 개인이 소유하고 사용하는 물건이므로 그에게 쓸모가 얼마나 있느냐가 중요하다. 하지만 사람은 한 개인이 소유할 수도 없고, 한 개인이나 소수가 사용하거나 이용해서도 안 되는 존엄한 존재이다. 따라서 사람은 한 개인이 아니라 사회 혹은 공동체에 쓸모가 있어야 한다.
조선시대를 예로 들면, 이순신 장군은 왕인 선조나 지배층에게 쓸모가 있는 사람이 아니라 국가와 민족에 쓸모가 있는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이순신 장군은 자신의 사회적 가치를 높이 평가할 수 있었고, 스스로를 존경하고 존중하는 자존감도 높았던 것이다. 숱한 고난과 시련, 특히 타인들의 모함이나 비난을 이겨내면서 꿋꿋이 애국의 길을 걸어갔던 이순신 장군의 인생은 그가 자존감이 높은 인물이었음을 보여준다.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마치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처럼 의지가 약한 삶을 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사회적 존재인 사람은 사회 속에서 타인들과 사회적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존재이므로 사회의 유지와 발전을 중대한 문제로 여긴다. 나아가 사회의 유지 발전에 어떻게든 기여하려는 욕구를 갖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의 유용성, 쓸모는 사회의 유지·발전을 위한 쓸모일 수밖에 없고, 사람의 사회적 가치는 곧 그 사람의 가치가 된다. 한 개인에게만 쓸모가 있는 사람은 그의 노예이거나 머슴일 뿐이지만 사회에 쓸모가 있는 사람은 자유인이자 사회의 당당한 주인이다. 옛날부터 한국인들은 사회에 별달리 기여하지 않거나 오히려 해를 끼치는 사람을 ‘쓸모없는 놈’이라고 욕했다. 여기에서 쓸모없다는 말은 당연히 사회에 쓸모가 없다는 의미이다. 즉 사회적 가치가 없음을 의미한다.
사회를 위한 쓸모, 사회적 기여도로 사람의 가치를 평가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해서 현실에서도 사람들은 대체로 사회적 기여도에 따라 자신의 가치를 평가한다. 도둑질로 돈을 많이 벌어들인 사람이나 불량 식품을 만들어 돈을 많이 번 사람은 사회에 기여한 바가 없기에 스스로를 가치 있는 사람으로 평가하지 못한다. 남들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주지는 않았더라도 이웃의 고통을 외면한 채 한평생 자기 밥그릇만 챙기며 개인주의적으로 살아온 사람들이나 마음껏 개인적인 쾌락을 추구하면서 살아온 사람들도 사회에는 거의 기여한 바가 없으므로 스스로를 가치 있는 사람으로 평가하지 못한다. 따라서 이런 사람들은 자존감이 낮을 수밖에 없다. 카사노바 류의 남성들이나 유흥업소에서 일하는 여성들이 자존감이 낮은 것 역시 같은 맥락이다.
자존감을 떨어뜨리는 사회
자존감은 억지로 용을 쓰거나 자기를 속인다고 해서 높아지지 않는다. 사회적 기여도가 낮은데도 ‘나는 자존감이 높아’라고 말해봤자 소용이 없다. 사람은 자신이 사회에 쓸모가 있는지, 없는지를 적어도 무의식적으로는 잘 알기에 스스로를 속일 수 없다. 사회적 기여도가 낮은데도 마치 자존감이 높은 것처럼 꾸미거나 자기를 속이면서 살아가는 사람의 자존감은 모래 위에 서 있는 거목처럼 불안정하며, 사소한 충격에도 금방 허물어지기 마련이다. 약간의 편차는 있지만 자존감은 실제적인 사회적 기여도에 거의 정확하게 비례하는 편이다.
물론 정신건강이 나빠지면서 자존감이 비정상적으로 낮아지는 사람도 있다. 사회적인 가치가 있는데도 자존감이 낮은 상당수 한국인이 이에 속한다. 다행히도 이런 사람들의 자존감은 단지 윗동이 잘려 나갔을 뿐 여전히 대지에 뿌리를 내리고 있기 때문에 기회만 주어지면 자존감이 비교적 쉽게 회복된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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