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복
남자애가 여자애를 경계석에 앉히고 빠르게 사방을 둘러본다. 자정이 가까워오는 시각, 인적이 없고 한길과 완벽히 격리되어 있는 주차장 안쪽은 가로등빛의 끝자락조차 닿지 않는다. 여자애는 물먹은 헝겊처럼 자꾸만 상체를 무너뜨리는 중이다. 그러나 곧 긴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겨 정돈하며 아주 무방비는 아니라는 듯 허리를 꼿꼿이 세운다. 남자애가 여자애의 곁에 바짝 다가앉아 자기 쪽으로 기대게 한다. 여자애는 별 저항 없이 남자애의 어깨에 머리를 묻고 얼굴을 부비며 편한 자세를 찾는다. 그러자 여자애의 머리카락이 다시 앞으로 쏟아진다. 남자애가 자유로운 바깥쪽 손으로 여자애의 머리카락을 넘겨주면서 동그랗고 하얀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다가 그 위로 제 얼굴을 포갠다.
203호, 신영주, 불문과 2학년, 김과 전복이 유명한 남쪽 해안 도시에서 왔고 아버지 직업은 치과 개업의다. 나는 주차장 앞쪽 CCTV 화면에 두 사람이 나타났을 때부터 ‘전복이’를 알아봤다. 그러나 남자애의 신원은 알 수 없다. 건장한 체구나 깔끔한 스포츠형 머리는 전복이가 지난 학기 내내 자기 방에 들이던 남자애들과 많이 닮았다.
남자애의 손이 전복이의 얼굴에서 목덜미로, 어깨로, 가슴으로 더듬어 내려간다. 늘 같은 패턴이다. 남자애와 함께 주차장 뒤쪽 으슥한 곳에 앉아 스킨십을 유도하다가 자기 방으로 올라간다. 남자애의 손길이 전복이의 스커트 아래쪽을 서성이기 시작하자 전복이가 몸을 떼고 허리를 곧추세워 앉는다. 갑작스런 반응에 남자애도 머쓱하게 자세를 고쳐 잡는다. 아무래도 이건 아닌 것 같아…… 미안해, 싫어할 줄 몰랐어. 둘의 대화가 들리는 것도 같다.
봄 학기가 시작되고 전복이가 고향에서 올라온 직후 그 어머니와 통화를 할 일이 있었다. 느닷없이 생물 전복이 배달되었던 것이다. 전복이 어머니는 맛이나 보라는 얘기 끝에 딸에 대한 당부를 덧붙였다.
“덩치만 크지 아직 세상물정 모르는 어린애예요. 삼촌이 잘 지켜봐주세요.”
전복이가 남자애들을 그렇게 갈아치우는데도 집 앞에서 진을 치거나 난동 부리는 놈 하나 없는 걸로 봐서 세상물정 모르는 건 딸보다 어머니 쪽이 아닌가 싶었다. 나는 입주 학생들의 부모들이 걸핏하면 나를 삼촌이라 부르는 게 싫었다. 자취생들의 보호자 노릇을 할 생각은 없다. 집주인과 세입자일 뿐이다. 인정에 호소할 여지를 줬다간 월세를 미루거나 계약 기간을 넘기고도 버티기 십상이다.
나는 건성으로 대답을 해주고는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생 다시마 더미 속에서 아직 살아 꿈지럭거리고 있는 전복들을 들여다봤다. 아이스박스 안으로 옮겨진 바다 속에서 다섯 마리가 느릿느릿 다시마를 뜯어먹고 있었다. 생물을 눈앞에 두긴 처음이었다. 나는 다시마를 붙들고 있는 한 놈의 조가비를 잡고 뜯어 올렸다. 놀란 녀석은 허공에 노출된 조가비 아래쪽 살집을 세로로 길게 오므렸다. 미처 다 닫지 못한 검고 거친 겉살 사이로 뽀얀 살구색 속살이 비쳤다. 마치 늙고 비만한 창녀의 헐거워진 음순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전복을 내던지듯 다시마 더미에 내려놓고 아이스박스째 냉동실에 처박아버렸다. 전에도 과메기나 홍어 따위가 냉동실을 드나든 적이 있었다. 모두 꽝꽝 언 채로 서너 달쯤 지나 버려졌다. 텅 비어 있던 냉동실에 아이스박스가 놓이자 오랫동안 공복이었던 양문형 냉장고가 웅, 소리를 내며 반겼다.
두 사람이 갑자기 몸을 반쯤 일으키고는 주차장 바깥쪽을 향해 주의를 기울이다. 건물 1층 전체를 차지하고 있는 주차장은 계단 통로를 중심에 놓고 ㄷ자를 그리고 있다. 그러므로 일부러 찾아 들어가지 않는 한 출입문 쪽에서 주차장 안쪽의 두 사람을 발견할 수는 없다. 나는 내 심야영화의 진행을 훼방 놓는 이가 누군지 확인하기 위해 CCTV 채널을 돌려본다.
한 여자가 출입문 앞에 서서 비밀번호를 누르려는 참이다. 나는 입주자들에게 카드키만 나눠주고 비밀번호는 알려주지 않았다. 번호 유출로 인한 잡인의 출입을 막을 방법이 달리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건물에서 주인인 나를 제외하곤 비밀번호란 각자의 방 앞에서나 필요한 거다. 이상하다 생각하는 순간 인터폰이 울리며 화면에 여자의 얼굴이 떠오른다.
106호. 임예슬이라고 했던가? 아니다. 임혜슬이라고 했던 것 같다. 경영학과 신입생이고 A 트리플 플러스 등급의 한우로 유명한 도시에서 왔으며 부모가 지역에서 한우 갈빗집을 크게 운영하고 있다. 어안렌즈의 화각이 임혜슬의 갸름한 얼굴을 실제보다 넓게 비추고 있다. 여름방학이 되기 전에 대시를 열 번 넘게 받아도 이상할 게 없을 만한 미인이다. 그러나 화장기 없는 얼굴에 대충 묶은 머리 모양과 민무늬 티셔츠 차림에서 도서관의 책 냄새가 물씬 풍긴다. 신입생이라기보다는 졸업반 취업준비생의 느낌이다.
방을 계약할 때 함께 나타났던 모친의 말처럼 정말 집과 학교밖에 모르는 걸까? 임혜슬이 잠시 화장실을 다녀오겠다며 자리를 비운 사이였다. 모친은 목소리를 낮추고 내 쪽으로 몸을 기울여 한 가지 당부를 했다. 자기 딸이 ─ 행여 그럴 리는 없겠지만, 하고 단서를 붙였다 ─ 부적절한 행동을 하면 즉시 알려달라는 것이었다. 그건 학생들에게 월세를 받는 집주인으로서의 의무라고까지 하며 다짐을 강요했다. 나는 임혜슬의 모친이 어떤 걸 두고 부적절한 행동이라 말하는지 얼른 이해하지 못했지만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그녀는 그러고도 입주자 중에 남학생은 몇이나 되는지, 집주인인 나는 왜 아직 미혼인지 등에 대해 캐묻기 시작했다. 때맞춰 임혜슬이 돌아오지 않았더라면 한우의 세계화를 위해 요리를 연구하고 있다는 어떤 여자와 선자리까지 마련될 분위기였다. 모녀 사이에 무언의 신경전이 잠시 오가는 걸로 봐서 임혜슬은 이미 제 엄마가 나를 붙들고 어떤 얘기를 했는지 짐작하는 것 같았다.
신입생이 돼서는 입학한 지 한 달이 넘었는데도 금요일 자정에 학교 도서관에서 돌아오는 건 적절한 행동일까 부적절한 행동일까. 생각하는 동안 초인종이 다시 울린다. 입주자가 출입문에 붙어 서서 집주인에게 초인종을 누르는 이유는 뻔하다.
“네, 무슨 일이에요?”
“저…… 죄송한데요, 카드키를 방에 두고 나왔나 봐요.”
“잘 챙겨 다니세요.”
문을 열어주는 순간 이번이 벌써 두 번째라는 사실이 기억난다. 출입문 열림 버튼을 누르기 전에 그 사실을 지적해주지 못 한 게 아쉽다. 인터폰 화면에서 임혜슬의 얼굴이 사라진 것을 확인하고 소파에 가 CCTV 화면을 다시 주차장 안쪽으로 돌린다. 그사이 중요한 장면을 놓쳤을 것만 같다.
전복이와 남자애가 보이지 않는다. 이리저리 채널을 돌려본다. 야간모드 화면 속 푸르스름한 주차장의 어디에서도 둘의 흔적을 찾을 수 없다. 녹화된 화면을 되감아본다. 그러자 내가 자리를 비운 사이 전복이가 남자애의 손을 끌고 발걸음을 조심스럽게 옮겨 건물들 사이의 좁은 통로로 사라지는 모습이 보인다. 화면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통로 저편은 다른 한길로 이어져 있다. 덩그러니 주차장 한쪽을 차지하고 있는 내 차 보닛 위로 작은 불빛 두 개가 잠시 머물다 지나간다. 길고양이의 안광(眼光)마저 사라진 주차장은 갓 도굴된 유적지처럼 괴괴한 분위기만 고여 감돌고 있다.
정 실장에게서 방을 구하는 학생이 나타났다는 전화가 왔다. 인터넷으로 부동산 정보를 본 학생이 지금 방을 보러 오겠다는 것이다. 토요일치곤 이른 시간이다. 이번 학기에도 방을 몇 개 놀리나 보다 하고 체념하고 있었다. 다른 원룸 건물들도 모두 마찬가지일 텐데 운이 좋은 날이다.
“제가 뭐랬어요. 우리 사장님은 저만 딱 믿고 있으면 된다니까. 호호호.”
중년 여자의 억지스런 교태와 생색에 금방 피곤해졌다. 건물의 마스터키를 맡겨뒀으므로 정 실장이 잘 알아서 방을 보여줄 것이다.
내려가서 분리수거함을 정리하고 건물 외곽 곳곳을 둘러보고 밤새 별일 없었는지 확인했다. 그리고 다시 집으로 올라와 오랫동안 집 안을 청소했다. 바닥을 닦은 걸레에 송홧가루가 묻어 나왔다. 봄이면 집 앞쪽에 엎드려 있는 야산에서 푸르스름한 안개 같은 것이 피어오르는 것을 보곤 한다. 음식에도 사용한다지만 창틀이며 차며 곳곳을 곰팡이 핀 것처럼 만들어버리는 송홧가루를 나는 좋아하지 않는다. 창문을 모두 잘 닫았다고 생각했는데 대체 어디로 들어왔는지 모르겠다.
청소를 마친 뒤 차를 내려 마시고 있는데 정 실장으로부터 다시 연락이 왔다. 계약을 하자는 것이다.
“사장님네가 이 동네에서 제일 좋다는 걸 다 알아보는 것 같아요. 학생이 아주 마음에 들어 하네. 얼른 도장 챙겨서 나오세요.”
이 집 저 집 옮겨 다녀봤다는 어느 학생의 얘기에 의하면 내 건물은 조용한 데다 냉난방비가 훨씬 적게 나온다고 했다. 고가도로와 아파트 단지를 접한 동쪽 블록이 아니라 야산과 숲이 가까운 서쪽 블록 끝자락이라 여름에 덜 덥고, 공사 때 자재를 아끼지 않아 단열이 잘 된다. 급히 올린 건물들은 재활용 벽돌을 쓰거나 건물주가 공사비를 무리하게 깎아버려 겉모양만 그럴싸하지 내장재는 엉터리인 경우가 많다. 수익만을 생각했다면 나 역시 그렇게 지었을 것이다. 어차피 시세를 끌어올린 뒤 팔고 떠버릴 건데 잘 지을 필요가 없었다. 차차 드러날 부실이나 피해야 늘 그렇듯 세입자와 새 주인이 감당할 몫이다. 이 동네에 나와 같은 원 건물주는 몇 남지 않았다. 모두 시세 차익을 남겨먹고 떠난 것이다.
나는 이곳에서 새 삶의 기반을 마련하고 싶었다. 방 두 개짜리 아파트 하나를 굴리고 굴려 여기까지 오는 데 딱 15년, 활화산 같던 부동산 경기가 내리막길에 들어선 걸 감지했든 못 했든 간에 이미 집을 사고파는 데 신물이 나 있었다. 1년마다 한 번씩, 어떤 해는 두 번씩 이사를 했다. 올랐다 싶으면 팔았고 오르지 않겠다 싶어도 팔았다. 집 한 채를 고를 때마다 평균 예닐곱 번씩 현장을 답사했다. 아침에 출근과 등교하는 사람들의 동선을 파악해야 했고 밤에는 주변 상권의 분위기를 살폈다. 비 오는 날과 맑은 날이 다 달랐고 평일과 휴일이 또 달랐다. 찻잔 바닥에 식은 채 남은 찻물에 얼굴을 비춰본다. 고생했어. 찻물이 동그랗게 흔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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