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민족 모욕과 감정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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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말과 식민지배기를 규정한 4가지 힘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전반까지 외부자에게 한국은 조선Chosen이었고, 조선을 소개한 서구의 여행가, 학자, 관리들의 저작들에서는 ‘은자隱者의 나라the Hermit Kingdom’라는 별칭으로 알려졌다. 이 은자의 이미지는 한국인들에게 동방예의지국이나 백의민족, 조용한 아침의 나라 같은 나라 이미지들과 결합하여 ‘속세를 떠나 산사나 오지에 은거하는 현인들의 나라’라는 의미로 수용되었다. 그러나 서구인들에게 은자는 오랫동안 세계로부터 단절된, 고립된 민족이라는 의미였다. 이들에 의하면 조선의 통치자들은 3면의 바다에 접안시설을 만들지 않거나, 중국과의 국경지대를 황무지로 버려 두는 식으로 외부의 접근을 성공적으로 차단한 수구적 지배층이다.
‘은자’는 세계로부터 스스로를 차단하여 사회진화의 발전과정에서 고립되고 도태된 원시 야만 종족을 의미하는 위선적 표현이었다. 은자는 원주민, 토인, 야만인의 다른 이름이었던 것이다. 1876년 일본의 강압에 떠밀려 이뤄진 조선의 문호개방은 서구의 시각에서 보면 오랜 고립으로 인해 발전이 지체된 ‘은자의 왕국’을 사회진화의 길로 인도하는 문명의 시혜였다. 이 기조에 따라 일본의 정한론征韓論은 문명화론으로 포장되었고 서구 열강은 이를 묵인, 동조했다. 아시아의 신흥 강국 일본과 서구 제국주의 열강의 식민주의 공모가 세기말의 조선이 맞닥뜨린 개방, 개화, 문명, 근대의 배경이고 시작이었다.
이렇게 시작된 1880년대에서, 보호통치, 식민지배를 거쳐 1945년 해방에 이르기까지 60여 년은 한국의 근대성modernity을 규정한 결정적 시간이었다. 전 지구적 제국주의, 일제 식민주의 그리고 이성중심주의에 기반한 근대주의, 그리고 이런 외부로부터 가해진 힘들에 대응하기 위해 내부에서 조성된 민족주의가 교차하면서 한국 근대성의 복잡한 층우와 결들이 생성되었다. 19세기 말에는 20세기 전반기에 이르는 한국의 근대성은 이렇게 4개의 역사적 심급들이 상호작용한 결과인 것이다. 한국에서 식민지 시기 연구를 크게 민족주의론, 식민지 근대화론, 그리고 식민지 근대성론으로 구분하는 것이 이를 방증한다. 제국주의, 식민주의, 민족주의, 근대주의 4개 심급들 간의 관계 그리고 각 심급이 다른 심급들에 대해 갖는 규정력을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 이론적 입각점이 달라지는 것이다.
민족주의론은 민족주의를 제국주의 그리고 식민주의와 경합한 이념이자 실천윤리로서 식민지민의 저항적 실천과 의식을 규정한 주된 요인으로 간주한다. 민족주의론이 일제의 수탈과 민족의 저항에 방점을 두는 데 반해 식민지 근대화론은 식민주의 수탈과정에서 도입된 근대적 제도, 기술, 인프라 구축, 자본주의 및 시장경제, 공업화의 요소들이 한국의 근대성을 형성한 기반이 되었다고 평가한다. 식민화의 착취적 속성은 인정하지만 그 과정에서 한국이 근대화되었음을 강조하는 것이다.
이 두 관점과 거리를 두는 식민지 근대성론은 문화주의의 인식론과 이론적 논점을 적극 수용하여 식민주의와 근대성이 부분적으로, 모호하게, 파편적으로 교차하고 중첩되는 과정에 주목했다. 1990년대 중반 이래 인문사회학의 패러다임 전환을 견인한 문화주의는 기본적으로 보편문화라는 관념을 부정하면서 구체적인 현실의 장소와 공간에서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이 구성한 삶의 방식이 갖는 특수성과 지방성locality을 드러내는 데 의미를 부여한다.
모든 문화는 지방적이고 특수하므로 비교 불가하다는 전제에서 출발하는 문화주의는 한 지방의 문화가 다른 지방의 문화보다 보편적이라거나 우월하다는 인식이야말로 제국주의라고 비판한다. 각 사회에 고유하게 발전한 문화(종교, 지식, 이념, 도덕, 감각과 취향, 미학 등)가 물질 영역(경제)과 사회 영역의 제반 실천들을 규정하고 조정한다고 보면 식민주의와 근대주의, 제국주의는 식민지 사회의 지방적 맥락 안에서 변형, 굴절, 재구성될 수밖에 없다.
이런 식으로 식민지 시기에 구성된 주체들의 집합적 의식, 정체성, 취향, 생활방식, 소비, 근대성, 혼종성, 주체성, 일상성, 문화정치, 도시성, 시각문화, 신체, 욕망구조, 지식과 담론체계는 서구 근대성은 물론 그 어느 것과도 다른 지방적 ‘근대성’으로서 식민지 근대성을 드러내게 되었다. 또한 식민지 근대성은 문화주의의 인식론 및 이론적 전제에 따라 유동적이며 모호하고 경계적인 것으로 파악되었다.
역사를 추동하는 감정구조
식민지 근대성론은 이 책의 전체 논의를 떠받치고 있는 지지대이다. 이 지지대 위에서 이 책은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중반에 이르는 급진적이고 복잡다단했던 변화 속에서 새롭게 등장하기도 하고, 사회변동 과정에서 자신을 재구성해야 했던 개별 주체들이 집합적으로 공유하게 된 감정과 감각들에 실체를 부여하고 역사화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여기서 다루게 될 감정들은 역사적 시기에 한 민족이 집합적으로 경험하고 감각했으며 기억하고 있는, 그래서 장기적으로 구조화된 감정, 즉 문화가 된 감정들이다.
문화주의의 감정구조 개념과 부르디외P. Bourdieu의 아비투스 개념은 ‘문화가 된 감정들’의 의미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문화주의는 문화와 감정구조structure of feeling를 동일시하지는 않지만 자주 호환할 수 있는 개념으로 사용하고 있다. 문화를 한 사회의 지배적인 생활방식a way of life이라고 규정하면서 감정구조는 당대의 지배적인 생활양식을 가능하게 하는 총체적 감각으로서 인간의 제반 실천(행위)을 조직화하는 형식들로 정의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언어적 및 문화적 실천들의 총체인 생활방식에 방향성, 스타일, 미학, 도덕적 평가, 의미를 부여하고 조직하는 형식들이 감정구조인 것이다. 문화와 감정구조는 의식과 무의식, 표층과 심층, 현상과 본질의 분리 불가능한 관계로 구조화되어 있는 총체이다.
다소 모호한 감정구조 개념과 달리 부르디외의 아비투스 개념은 장기적이고 역사적인 구성과정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이 책의 감정개념을 이해하는 데 보다 유익하다. 부르디외는 아비투스가 스키마schema 개념과 호환될 수 있다면서, 인간 주체의 세계에 대한 행동 또는 실천적 관계맺음을 매개하고 구성하는 ‘구조화된 성향들의 시스템’을 아비투스라 했다. 아비투스는 오랜 역사적 과정을 통해 형성되며 개인 및 집합적 주체들의 실천들을 매개하고 생산한다. 또 아비투스는 과거 경험의 적극적 현존이며 인간의 지각, 사상, 행동의 스키마와 성향을 생성하고 장시간에 걸쳐 실천을 조정하고 나름의 항상성을 부여한다. 그런 점에서 아비투스는 모든 공식적이고 노골적인 규범보다 훨씬 지속적이고 믿음직한 스키마이다.
주목할 것은 부르디외가 아비투스를 제반 감각들의 그릇인 신체에 각인되고 쓰인, 다시 말해 신체화된 역사embodied-history이며 역사적 과정을 거쳐 장기적으로 구조화된 성향, 즉 역사적 구조물로 간주한 점이다. 아비투스가 신체에 쓰인 과거이자 구조물이라는 말은 과거 전체가 아비투스에 적극적으로 현현顯現해 있다는 것이고 이는 아비투스가 사회구성원들에게 제2의 성징性徵으로 내면화되어 있음을 뜻한다. 따라서 역사적으로 구조화된 아비투스는 경제, 정치와 같은 외부 요인들에 규정되지도 않고 계급, 인종, 젠더, 민족성 요인에도 구속되지 않는 자율성을 지닌다. 다시 말해 아비투스의 자율성은 지나온 과거가 신체에 축적된 것이므로 온전히 주체의 것이며, 내면화된 자본이므로 이를 기반으로 주체가 현재의 경제체제, 계급, 정치, 국가로부터 자율적인 상태에서 다른 역사를 상상하고 생산하는 것이 가능하다. 아비투스는 제2의 성징과도 같아서 거의 무의식적인 즉흥성과 추동력을 발휘하여 변화시키는 개별 주체를 구성한다는 것이다.
조직화하는 힘이자 구조화된 성향으로서 감정구조와 아비투스 개념의 강점은 인간이 일상의 미시적인 실천과 축적된 감정의 기반 위에서 역사를 만들어 가는 주체로 전환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이론화했다는 것이다. 보통의 인간들이 살아가는 공간은 정부, 학계, 문화 생산 같은 사회의 중심 영역이 아닌 의식주의 공간, 노동, 여가, 소비가 이뤄지는 사적인 일상 영역이다. 르페브르H. Lefebre는 이 일상을 세계와 구조의 변화를 이끌어 내는 생산적이고 창조적인 영역으로 규정했다. 일상은 구조를 재생산하는 영역이 아니라 다면적이고 복잡한 충동이 일어나는 영역이며 이 충동들이 사물과 존재에 영향을 미쳐 역사를 만드는 실천praxis과 생산poiesis으로 이어진다고 했다. 사회는 정치, 경제, 문화, 지식을 지배적으로 점유한 (파워)엘리트에 의해 재생산되지만 이것에 변화를 가하는 힘은 인민, 대중, 주체의 일상, 그리고 일상을 조직화하는 정서구조, 아비투스, 감정, 충동들이다. 역사는 이성적으로 구조화되고 조직화된 질서에 의해서가 아니라 감정, 충동, 욕망에서 변화의 동력을 얻는가 하면 또 같은 메커니즘으로 반동과 퇴행으로 역행하기도 한다. 감정은 역사에 개입하고 흐름을 바꾸는 힘이고 세력이며 자원인 것이다.
감정이 주체에게 사회변화의 욕망과 충동을 일으키는 힘이 될 수 있는 것은 감정은 사회적 관계에서 발생하는, 원래적으로 사회적인 효과이자 결과이기 때문이다. 모든 사회는 권력, 지위, 역할에 따라 차별적이고 위계적인 관계들로 조직화되어 있으며 이를 유지, 관리하는 과정에서 한 시대를 특징짓는 집합적 감정이 형성된다. 그리고 이렇게 형성된 감정은 특정한 상황이나 요인에 의해 촉발되고 생리적이거나 육체적인 반응을 일으키며 일정한 몸짓과 동작을 통해 표출된다. 또한 감정은 단일하지도 않고 고정적이지도 않다. 감정은 다양한 감정들의 복합체로 존재한다. 특정 시기에 특정한 힘과 요인들에 의해 특정한 감정들이 우세하거나 강화되는 식으로 움직인다. 그런 점에서 감정복합체는 시간과 장소에 따라 달라지는 성좌constellation처럼 역사의 궤도를 운행한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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