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
그해 인천
그해, 너의 앞에 서면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내 입속에 내가 넘어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해 경주
어느 커다란 무덤 앞에서
당신이 내 손바닥을 피더니
손끝을 세워 몇 개의 글자를 적어 보였다.
그러더니 다시 손바닥을 접어주었다.
나는 무엇이 적힌 줄도 모르면서
고개를 한참 끄덕였다.
두 얼굴
우리는 섬으로 떠났다. 그녀는 나와 함께 일출을 보고 싶다고 했고 나는 일몰의 풍경이 아름다울 것이라 말했다. 늦은 밤 도착한 첫날과 고단했던 이튿날 그리고 시내에서 머문 세 번째 날을 보내고 나자 우리에게 일출이나 일몰을 볼 수 있는 기회는 단 하루밖에 남지 않게 되었다.
마지막 날에는 진종일 짙은 안개와 강한 비가 이어졌다. 일출을 볼 수 있는 섬의 동쪽이나 일몰을 볼 수 있는 섬의 서쪽으로 가는 길이 그리 멀지도 않았는데 그것을 미뤄두었던 지난 여정이 후회스러웠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아침저녁으로 일출과 일몰의 명소라는 곳에 가보았으나 뿌옇게 날이 밝았다가 낙조 없이 어둠이 왔다. 그리고 그날 밤 우리는 서울로 올라왔다.
서로가 원한 풍경을 보지 못한 채 섬을 떠난 것이, 돌아오는 길 내내 마음에 쓰였다. 어쩌면 이것이 우리의 관계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녀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으리라. 예감처럼 얼마 가지 않아 우리의 연은 끝을 보았다.
한참 지난 후에 다시 그 섬을 찾았다. 이번에는 나 혼자였다. 늦은 반성이라도 하듯 그곳에 머무르는 동안 매일 일출과 일몰을 보러 다녔다. 다행히 맑은 날이 이어졌다.
일출과 일몰의 두 장면은 보면 볼수록 닮은 구석이 많았다. 일부러 지어 보이지 않아도 더없이 말갛던 그해 너의 얼굴과 굳이 숨기지 않고 마음껏 발개지던 그해 나의 얼굴이 서로 닮아 있었던 것처럼, 혹은 첫인사의 안녕과 끝인사의 안녕이 그러한 것처럼.
어떤 말은 죽지 않는다
나는 누군가와 대화를 나눌 때 한 문장 정도의 말을 기억하려 애쓰는 버릇이 있다. “뜨거운 물 좀 떠와라”는 외할아버지가 내게 남긴 마지막 말이었고 “그때 만났던 청요릿집에서 곧 보세”는 평소 좋아하던 원로 소설가 선생님의 마지막 말이었다. 나는 죄송스럽게도 두 분의 임종을 보지 못했으므로 이 말들은 두 분이 내게 남긴 유언이 되었다.
먼저 죽은 이들의 말일 아니더라도 나는 기억해두고 있는 말이 많다. “다음 만날 때에는 네가 좋아하는 종로에서 보자”라는 말은 분당의 어느 거리에서 헤어진 오래전 애인의 말이었고 “요즘 충무로에는 영화가 없어”는 이제는 연이 다해 자연스레 멀어진 전 직장 동료의 마지막 말이었다.
이제 나는 그들을 만나지 않을 것이고 혹 거리에서 스친다고 하더라도 아마 짧은 눈빛으로 인사 정도를 하며 멀어질 것이다. 그러니 이 말들 역시 그들의 유언이 된 셈이다.
역으로 나는 타인에게 별 생각 없이 건넨 말이 내가 그들에게 남긴 유언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같은 말이라도 조금 따뜻하고 예쁘게 하려 노력하는 편이다.
하지만 쉬운 일은 아니다. 오늘만 하더라도 아침 업무회의 시간에 ‘전략’ ‘전멸’같이 알고 보면 끔찍한 뜻의 전쟁용어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썼고 점심에는 식당에서 우연히 만난 지인에게 “언제 밥 먹자”라는 진부한 말을 했으며 저녁부터는 혼자 있느라 누군가에게 말을 할 기회가 없었다.
말은 사람의 입에서 태어났다가 사람의 귀에서 죽는다. 하지만 어떤 말들은 죽지 않고 사람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살아남는다.
꼭 나처럼 습관적으로 타인의 말을 기억해두는 버릇이 없다 하더라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저마다의 마음에 꽤나 많은 말을 쌓아두고 지낸다. 어떤 말은 두렵고 어떤 말은 반갑고 어떤 말은 여전히 아플 것이며 또 어떤 말은 설렘으로 남아있을 것이다.
검은 글자가 빼곡하게 적힌 유서처럼 그 수많은 유언들을 가득 담고 있을 당신의 마음을 생각하는 밤이다.
(본문 중 일부)
★ 저작권법에 의해 한국 내에서 보호를 받는 저작물이므로 무단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