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자기 자신과 세상에 대한 인식
내가 볼 때, 사람은 모두 마치 자신의 파워와 능력에 대해 훤히 알고 있는 것처럼 행동한다. 또 사람은 곤경에 처할 경우에 마치 처음부터 그 곤경에 대해 명확히 알고 있거나 자신의 행동이 그 상황에 옳다는 점을 알고 있는 것처럼 행동한다. 한마디로 말해, 사람의 행동은 그 사람의 생각에서 비롯된다고 나는 굳게 믿는다.
이런 확신에 놀라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우리의 감각이 실제로 사실들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단지 우리가 그 사실들에 대해 주관적으로 느끼는 이미지를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우리의 감각은 외부 세상이 우리에게 비치는 인상을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세네카Lucius Annaeus Seneca는 “모든 것은 의견에 좌우된다.”고 했다. 심리를 연구할 때엔 세네카가 남긴 이 명언을 잊지 말아야 한다.
생존의 중요한 사실들을 어떤 식으로 해석할 것인지는 각자의 삶의 양식에 좌우된다. 각자의 해석과 모순되는 사실들을 직면하는 지점에서만, 사람들은 그 경험에서 존재의 사실들을 보는 견해를 미세하게 바로잡으려 하는 한편으로 그 모순을 인과율因果律로 돌리면서 삶에 대한 인식 자체에는 변화를 주지 않으려는 경향을 보인다.
해석이 중요한 이유를 예를 통해 보도록 하자. 독사가 실제로 나의 발 쪽으로 접근하고 있든 아니면 내가 나의 발 쪽으로 접근하고 있는 것이 독사라고 믿든, 그 대상이 나에게 미치는 효과는 사실상 똑같다. 마찬가지로, 응석받이로 큰 아이는 어머니가 자기 곁을 떠나자마자 도둑을 무서워할 때나 실제로 집안에 도둑이 들었을 때나 완전히 똑같은 불안을 느낀다. 둘 중 어떤 상황에 처하든, 아이는 자신은 어머니 없이 존재하지 못한다는 의견에 집착하고 있다. 아이의 불안을 불러일으킨 짐작이 엉터리인 것으로 드러날 때조차도, 아이는 자신의 의견을 버리지 않는다.
광장공포증을 앓으며 땅이 흔들릴 수 있다는 두려움에 거리를 피하는 사람은 정신이 건강한 동안에 그의 발밑에서 땅이 실제로 흔들리고 있다면 무서워 꼼짝 못 하는 모습을 보이는 외에 달리 어떻게 행동하지 못한다. 협동할 준비를 적절히 하지 않은 탓에 차라리 도둑질이 더 쉽다고 판단하면서 유익한 일을 피하게 된 도둑은 노동이 남의 집을 침입하는 것보다 실제로 더 어려울 때에는 노동을 싫어하는 모습을 보인다. 자살자는 자신의 판단에 절망적인 것 같은 삶보다 죽음이 차라리 더 낫다고 생각한다. 만일 그의 삶이 정말로 절망적이라면, 그는 똑같은 행동을 할 것이다.
마약 중독자는 중독에서 자신의 삶의 문제들을 정정당당하게 해결하는 것보다 더 소중하게 여기는 위안을 얻는다. 마약 중독자는 이런 일이 현실에서 법적으로 가능하다면 그와 똑같이 행동할 것이다. 남자 동성애자는 여자들을 무서워하며 여자들이 매력적이지 않다는 점을 발견한다. 그런 반면에 그에게 승리감을 안겨줄 정복의 대상으로서 남자들은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것 같다.
지금까지 예로 제시한 모든 사람들은 종종 어떤 믿음에 따라 행동하고 있는데, 이 믿음만 올바르다면 당연히 그들의 행동도 객관적으로 올바르게 바뀔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36세로 변호사인 이 환자는 일에 대한 흥미를 완전히 잃어버렸다. 그는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있으며 그 원인을 자신이 상담하러 오는 고객들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지 못한다는 사실로 돌리고 있다. 그는 타인들과 어울리는 것이 엄청나게 어려운 일이라는 사실을 늘 확인했으며, 특히 소녀들과 함께 있을 때 그는 극도의 부끄러움을 느꼈다. 그가 결혼을 혐오하면서 대단히 오랫동안 망설인 끝에 시작한 결혼생활도 1년 만에 이혼으로 끝났다. 그는 부모의 집에 얹혀 세상을 등진 채 살아가고 있다.
그는 외동아이로 컸으며, 어머니에 의해 응석받이로 버릇없이 자랐다. 그의 어머니는 늘 아들과 함께 있었다. 그녀는 아이와 남편에게 이 아이가 언젠가 대단히 훌륭한 존재가 될 것이라는 확신을 심어주는 데 성공했다. 소년은 그런 기대 속에서 성장했으며, 그가 학교에서 거둔 눈부신 성공은 이 기대를 뒷받침하는 것처럼 보였다.
스스로의 힘으로는 아무것도 거부하지 못하는 응석받이들 대부분에게 흔히 일어나는 일이지만, 이 아이는 유아 자위행위에 매달렸고 이 같은 행동이 곧 그를 학교에서 소녀들의 웃음거리로 만들어 버렸다. 그래서 소년은 소녀들과 완전히 담을 쌓은 채 지냈다. 그는 외톨이가 된 상태에서 사랑과 결혼 관계에서 더없이 영광스런 승리를 성취하는 상상에 빠져 지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마음대로 지배하고 있던 어머니에게만 끌림을 느끼면서 꽤 오랫동안 성적 공상을 어머니와 연결시켰다.
이 환자의 예를 근거로 볼 때, 소위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하나의 ‘근본적인 사실’이 아니고 단순히 어머니가 응석을 지나치게 많이 받아줌에 따라 생긴, 나쁘고 부자연스런 결과라는 점이 확인된다. 과도한 허영에 빠진 소년이나 젊은이가 자신이 소녀들로부터 배신당했다고 느끼면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는 데 필요한 사회적 관심을 충분히 발달시키지 못하게 되었을 때, 그 점이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나의 환자는 공부를 끝내기 직전에 독립적인 생활을 꾸리는 문제에 직면한 상태에서 우울증에 빠졌다. 그래서 그는 한 번 더 뒤로 물러났다. 응석받이로 자란 모든 아이들처럼, 그도 어릴 적에 소심했으며 낯선 사람들을 피하려 들었다. 훗날 남자들이나 여자들과 동료의 관계를 맺어야 하는 상황에서도 그와 똑같은 일이 일어났다. 이때도 그는 직업을 갖지 않으려 들었으며, 이런 태도는 약간만 달라졌을 뿐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나는 이 정도의 진술로도 만족한다. 그래서 이 진술과 일치하는 사실들이나 변명, 그리고 그의 후퇴를 ‘보장한’ 다른 병적 징후들을 제외시켰다. 한 가지만은 분명하다. 이 남자는 자신의 삶 내내 전혀 변화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는 언제나 최고가 되기를 원했고, 그러기에 성공을 확신하지 못할 때면 반드시 뒤로 물러났다. 삶에 대한 그의 생각은 이런 식으로 표현할 수 있다. ‘세상이 나의 승리를 내놓지 않고 숨기고 있는 한, 나도 뒤로 물러나지 않을 수 없어.’
이런 생각은 당연히 그의 내면에 꼭꼭 숨겨져 있지만, 이런 생각은 당연히 그의 내면에 꼭꼭 숨겨져 있지만, 개인 심리학은 그걸 찾아낼 수 있다. 다른 사람들을 누르는 승리에서 자신이 추구하는 완성을 보는 남자로서, 그는 이런 식으로 오직 약삭빠르고 정확하게만 행동했다는 점을 부정할 수 없다. 그가 자신에게 적용한 움직임의 법칙에는 ‘이성’도 전혀 없고 ‘상식’도 전혀 없으며 내가 ‘개인적 지성’이라고 부르는 것만 있다. 이런 종류의 삶이 어떤 사람에게도 가치를 지니지 않는 삶으로 부정된다 하더라도, 그의 행동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다음 예도 앞의 환자와 비슷하다. 표현 형식이 다르고, 타인을 멀리하려는 경향이 조금 덜하다는 점만 다를 뿐이다. 26세인 이 남자는 둘째 아이로 자랐으며, 그의 어머니는 나의 환자보다 가족의 다른 구성원 2명을 더 좋아했다. 질투심이 대단했던 거는 형의 탁월한 성취에 도전하려고 노력했다.
그는 어머니에게 비판적인 태도를 취했으며, 아이의 삶에서 언제나 두 번째 단계에 해당하는 아버지에게 의지했다. 어머니에 대한 증오는 그의 할머니와 보모의 견디기 힘든 버릇 때문에 곧 전체 여자에게로 확대되었다. 여자들의 지배에서 벗어남과 동시에 남자들을 지배하려는 그의 욕망은 엄청나게 커졌다. 그는 자기 형의 탁월한 지위를 훼손시키려고 온갖 방법을 다 동원했다.
그의 형이 체력이나 체육, 사냥에서 그를 압도한다는 사실이 그로 하여금 모든 형식의 육체적 운동을 혐오하도록 만들었다. 그는 육체적 운동을 자신의 활동 범위에서 완전히 배제시켰다. 그가 여자들을 배제시킬 준비가 되어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는 자신에게 승리감을 안겨줄 수 있는 성취에만 관심을 두었다. 그는 상당히 오랫동안 어떤 소녀에게 빠진 상태에서도 멀찍이 서서 그녀를 흠모하기만 했다. 틀림없이 그의 초연함이 소녀를 즐겁게 해주지 못했을 것이며, 그녀는 다른 남자를 선택하고 그를 버렸다.
그의 형은 행복한 결혼을 했으며, 이 사실이 그로 하여금 자신은 행운을 덜 타고 나지 않았나 하는 두려움을 품게 만들었다. 또 어린 시절에 자기 어머니와의 상에서도 그랬듯이, 세상의 평가에서도 자신이 부차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 하고 걱정하게 만들었다.
형의 우월을 깎아내리려는 그의 많은 충동 중 한 가지를 보도록 하자. 어느 날 그의 형이 사냥을 끝내고 매끈한 여우 가죽을 하나 들고 돌아오면서 의기양양해 했다. 그때 그는 형의 승리를 훼손시키기 위해 몰래 여우의 하얀 꼬리를 잘라 버렸다. 좁은 범위에 비해 활동이 왕성했던 그의 성적 본능은 여자를 배제한 뒤에 남는 유일한 방향을 택했다. 동성애의 길이었다.
그가 삶의 의미를 어떤 식으로 해석하는지를 파악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에게 삶은 이런 의미였다. ‘내가 맡는 모든 것에서 우월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는 승리를 거둘 수 없을 것 같은 예감이 드는 행위를 모두 배제하는 방법으로 우월을 성취하려고 애를 썼다. 그가 나와 대화하는 과정에 인정해야 했던 첫 번째 고통스런 사실은 그와 동성애 성교를 하는 파트너가 마법적인 매력으로 그와의 관계에서 승리를 거두고 있다는 점이다.
이 환자의 경우에도, 우리는 그의 ‘개인적 지성’은 잘못되지 않았으며 소녀들의 퇴짜가 자신의 운명처럼 보일 때 다른 사람들도 대부분 그와 똑같은 길을 따를 것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실제로 보면, 일반화 경향은 삶의 양식을 구축할 때 근본적인 실수로 매우 자주 일어난다.
‘삶의 계획’과 ‘삶의 의미’는 서로를 보완하다. 삶의 계획과 삶의 의미는 똑같이 아이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추론하지 못하거나 추론을 한다 하더라도 말이나 개념으로 표현하지 못하는 시기에 생겨난다. 그러나 아이는 단어로 표현되지 않은 추론을 바탕으로, 또 종종 무의미한 사건들을 바탕으로, 혹은 강한 감정이 실린 단어로 표현되지 않은 경험들을 바탕으로 자신의 행동을 위해서 보다 일반적인 형태들을 이미 발달시키기 시작했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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