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탄핵의 전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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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절 논란
헌법 제1조 1항, 2항,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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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이 비정상이다.”
박근혜 정권이 남긴 최대 유행어이다. 국정교과서 논란이 정점이던 2015년 11월에 국무회의에서 나온 대통령의 발언이었다. 전체 문장은 이렇다. “자기 나라 역사를 모르면 혼이 없는 인간이 되는 것이고, 바르게 역사를 배우지 못하면 혼이 비정상이 될 수밖에 없다”
9개월 뒤인 2016년 광복절, 우리는 TV앞에 모여 대통령의 기념사에 귀를 기울였다. “건국 68주년을 맞이하는 역사적인 날…….” 팀원 한 명이 놀라며 말했다.
“혼이 비정상이라는 말이 결국 건국절 논란으로 이어졌네요.”
그렇다. 대통령이 역사와 이념대결에 뛰어든 순간이었다. ‘1948년 8월 15일=건국절’이라는 뉴라이트의 오랜 주장을 광복절 기념사에서 꺼내다니. 대통령은 보수, 그 안에서도 일부 진영만의 대통령인가. 한 팀원이 물었다.
“그렇다면 건국을 정확히 언제로 봐야 해요? 고조선? 단군?”
순간 말문이 막혔다. 정적을 깬 건 팀장의 한마디였다.
“그거 오늘 아이템으로 해보면 되겠네!”
팩트체크팀은 이날 헌법 책을 꺼내들었다. 우리 헌법은 이렇게 시작된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
헌법 전문의 첫 문장에 바로 답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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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과 정부수립의 개념 정리
2016년 광복절을 사흘 앞두고 박 전 대통령은 독립유공자들을 청와대에 초청했다. 이 자리에서 광복군 출신의 한 유공자가 마이크를 잡았다. “건국절 주장은 헌법에 위배되고 실증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 왜곡이다.” 대통령 면전에서 건국절 주장을 비판한 것이다. 대통령은 이에 대해 일절 답하지 않았다.
답이 나온 것은 광복절 당일이었다. “제71주년 광복절이자 건국 68주년을 맞이하는 역사적인 날…….” 대통령은 이날 기념사에서 ‘정부수립일’과 ‘건국일’을 등치시켰다. 독립유공자의 발언을 전면 반박한 것이었다. 박 전 대통령은 1년 전인 2015년 광복절에도 “광복 70주년이자 건국 67주년을 맞이하는 역사적인 날”이라며 숫자만 빼고 정확히 같은 기념사를 읽었다.
8월15일은 우리가 일제 치하에서 벗어난 날(1945년)이다. 동시에 정부가 수립된 날(1948년)이다. 이 날을 우리나라의 건국일로 볼 수 있을까? 아니라면 과연 언제를 건국 시점으로 봐야할까? 그 답을 찾기 위해 팩트체크는 1948년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1948년 5월 31일. 이승만 의장, 대한민국 국회 개회사
“이 국회에서 건설되는 정부는, 즉 기미년에 서울에서 수립된 민국의 임시정부의 계승에서 이날이 29년 만에 민국의 부활일임을 우리는 이에 공표하며 민국 연호는 기미년에서 기산할 것이요.”
1948년 8월 15일 이승만 대통령, 광복절 기념사
“공화주의가 30년 동안에 뿌리를 깊이 박고 지금 결실이 되는 것이므로 굳게 서 있을 것을 믿습니다.”(국사편찬위원회, 『자료대한민국사 제7권』)
초대 이승만 전 대통령의 1948년 5월 31일 연설에 “29년 만에 민국의 부활일”이라는 표현이 있다. 특히 ‘민국 연호는 기미년에서 기산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얘기는 기미독립선언이 있었던 1919년을 대한민국의 시작으로 봤다는 것이다. 그해 8월 15일 기념사에서도 “공화주의 30년”이라는 표현으로 같은 인식을 보여줬다. 팩트체크는 이런 사료를 통해 초대 정부가 건국 시점을 1919년으로 규정했음을 확인했다.
제헌 헌법의 전문도 마찬가지였다. ‘기미삼일운동=대한민국건립’을 명확하게 밝히고 있다. ‘재건’이라는 표현도 눈여겨볼 부분이다.
제헌 헌법 전문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들 대한국민은 기미삼일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 세계에 선포한 위대한 독립정신을 계승하여 이제 민주독립국가를 재건함에 있어서…….”(법제처 국가정보법령 센터)
현행 헌법도 일맥상통한다.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하고”라고 돼 있다. 대한민국 최고의 규범인 헌법은 대한민국이 1919년에 건국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현행 헌법 전문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 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 이념을 계승하고…….”
건국절 논란의 의도
과거 대통령 중에서도 건국과 정부수립을 혼용한 사례는 있었다.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이 한두 차례 그런 표현을 썼다. 그러나 이념 논쟁을 의도한 발언은 아니었다. 역사 논쟁과 진영 다툼으로 번지기 시작한 것은 이명박 정부 때부터이다. 뉴라이트라는 학술단체르 가장한 정치 집단이 1948년을 건국으로 보자는 주장을 내놨고 당시 한나라당은 ‘국경일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발의하며 본격적인 법제화에 나섰다.
그러나 모두 실패했다. 반대 여론이 거셌고 반박 논리 역시 뚜렷했기 때문이다. 1948년이 건국 시점이 되면 일제 치하의 우리 역사는 사라진다. 친일 행위자에게 면죄부를 주는 셈이 된다. 그래서 대한민국 광복에 앞장선 이들의 후손, 그 정신을 이어받은 국민들일 강하게 반대했다.
그런데 박근혜 전 대통령이 나서서 이 논란에 다시 기름을 부은 것이다. 제헌 헌법과 현행 헌법이 모두 1919년을 가리키고 있는데, 반대 방향의 주장을 한 것이다. 이때부터 대통령의 반헌법적 태도가 목격되었던 것이다.
‘8·15 건국절’은 반헌법적 주장
박근혜 전 대통령의 발언대로 1948년 8월 15일이 ‘건국절’이 되려면 헌법을 바꾸어야 한다. 개헌을 통해 새로운 건국 시점을 정해야 한다. 개헌을 하려면 국회 3분의 2의 찬성이 있어야 하고 국민투표도 거쳐야 한다. 민주적 합의가 요구된다는 뜻이다.
그러나 국민은 이런 합의를 단 한 번도 해준 적이 없다. 해준 적이 없기 때문에 지금의 헌법이 우리의 규범이다. 대통령의 건국절 주장은 결과적으로 헌법에 의해 반박되었다. 물론 헌법과 무관하게 역사학계에서는 건국절 논란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대통령은 역사학자가 아니다. 헌정 질서의 수호자이다. 자신이 존재할 수 있는 근거가 곧 헌법이다.
2016년 겨울 「헌법 제1조」라는 노래가 광장에서 다시 울려퍼졌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박근혜 정권은 끝내 국민에 의해 탄핵되었다. 집권 4년차에 벌어졌던, 하지만 끝내 거부되었던 ‘건국절 논란’은 탄핵의 분명한 전조였다. 지금 이 순간 그날의 논란은 새삼스러운 깨달음을 준다. 헌법 1조 2항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 다음 정부에서도 재연될 수 있는 건국절 논란에 대한 명쾌한 답은 바로 헌법이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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