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박정희 시대 국방의 의무 담론과 군사적 주체화
1. 주체를 지배하는 기표와 담론
박정희 시대에는 국가 차원에서 징병제와 국방의 의무라는 담론을 확립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또 그 결과에 있어서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다. 당시 남성 개개인들은 군대에서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는 과정을 통해 군사적으로 규율화되었고, 또 사회 속에서는 남성이든 여성이든 그러한 주체로 거듭나야 비로소 국민으로서의 자격 내지 정체성을 가질 수 있었다. 이 글은 당시 군사적 주체화의 핵심 내용을 개발독재 시대에 사회적 불문율처럼 통용되었던 ‘무조건 명령과 무조건 복종’으로 보고자 한다. 그렇다면 그러한 군사적 주체화의 과정은 어떻게 진행되었으며, 개별 주체의 차원에서는 어떻게 수용될 수 있었는가? 다시 말해 ‘무조건 명령과 무조건 복종’이라는 군대식 행위 규범은 주체 차원의 군대생활 경험 속에서 어떻게 형성되었으며, 일상적 사회생활 속에서는 어떻게 확대 재생산될 수 있었는가?
미셸 푸코의 논의를 빌려 근대를 특징짓는 것 중의 하나가 근대적 규율화, 다시 말해 ‘순종적이고 효율적인’ 근대 주체를 생산해내는 규율화라고 본다면, ‘보다 덜 효율적이더라도 보다 더 순종적인’ 군사적 규율화야말로 당시 한국 근대화의 중요한 특징들 가운데 하나였다. 박정희 시대는 ‘보다 덜 효율적이더라도 보다 더 순종적인’ 노동자라는 정체성을 갖는 당대 주체들을 만들어내었고, 그들을 토대로 삼는다는 전제 위에서 경제발전과 독재권력, 다시 말해 개발독재가 성립되고 유지될 수 있었다.
군사적 주체화의 과정은 권력론의 관점에서 조명될 수 있다. 다시 말해 이 문제는 주체에게 특정한 권력이 원인으로 작용하여 그 결과로 근대 주체가 생성되었다는 권력 작용의 인과관계라는 시각에서 접근될 수 있다. 또 주체 차원에 초점을 맞추어 이 문제를 해명하고자 할 때 라캉주의 정신분석은 유용한 분석 수단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라캉 정신분석에서는 권력이라는 단어가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라캉 이론에서 권력 개념 그 자체가 공백으로 남아 있는 것은 아니다. 가령 프랑스 68혁명에 대해 라캉은 “새로운 주인을 요구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혁명을 통해 새로운 주인 기표, 새로운 권력이 등장할 뿐이라는 뜻이다.
라캉 정신분석을 권력론의 시각에서 바라본다면 기표 자체가 권력의 소재지에 해당된다. 라캉에 의하면 “기표는 주체를 대표한다.” 기표가 주체를 대표한다는 것은 기표가 주체를 대리하며 지배한다는 뜻이다. 우리는 그 의미도 모르면서 자신에게 붙여진(붙여졌다고 생각하는) 기표, 예를 들어 ‘중학생’이나 ‘장손’, 혹은 ‘간첩’이나 ‘V’ 등의 지배를 받을 수 있다. 숀 호머는 이를 ‘기표에 의한 주체의 결정’이라고 정식화한 바 있다. 그리고 주체에 대한 기표의 지배는 상당한 정도 무의식의 수준에서 발생한다. 즉 무의식은 주체에 대한 기표의 효과이다. 라캉 정신분석에서 무의식이 내면적인 것이 아니라 외면적인 것, 초개인적인 것이라는 점을 이해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무의식은 말과 언어라는 상징적 질서에 의해 자신이 규정되고 또 그 질서에 편입되면서 형성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기표와 주체의 관계에 대한 라캉 정신분석의 입장을 권력론의 시각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다. 먼저 주체는 언어적 질서라는 타자에 의해 특정 기표로 규정됨으로써 타자에 대한 완전한 복종을 강요받는다. 우리는 상징적 현실 속에서 살아가기 위해서 기표를 통해 주체를 대표하는 그러한 방식으로 기표의 지배를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 이러한 ‘강제된 선택’의 상황을 라캉은 소외의 vel[라틴어로 영어의 or에 해당]이라 이름 붙인다. 강도로부터 “돈을 내놓을래, 목숨을 내놓을래”라는 양자택일을 강요당하는 상황에서, ‘주체’는 돈을 내놓는 걸 선택할 수밖에 없는 강제적 선택의 상황에 놓이게 된다. 이는 주체가 언어적 질서를 대표하는 (대)타자에 대해 복종하는 것, 기표체계 안으로 들어가는 것, 기표에 의해 자신이 대표되는 것 외에는 다른 선택이 없음을 보여준다. 그것을 거부할 때, 주체는 상징적 세계의 주체성(‘목숨’)을 부여받지 못하고 정신병의 세계로 들어가게 된다.
다른 한편 기표의 지배, 즉 주체에 대한 특정 기표의 지배는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하는 기표 구조 다시 말해 기표들의 차이의 체계, 상징적 질서의 네트워크 속에서 작동된다. 앞서 말했듯이 기표 내지 기표체계의 지배는 무의식의 수준에서 이루어진다. 기표 네트워크 내지 상징적 질서의 그러한 지배는 실제 행위자를 통해 행사되는 권력의 모습이라기보다는, 눈에 보이지 않는 사회구조에 의해 행사되는 권력, 구조적 권력의 모습에 가깝다. 구조적 권력이란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이미 틀 지어져 있는 사회적 구조에 의해 행사되는 권력이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사회구조가 틀 지어놓은 행로 속을 걸어가게 된다.
박정희 시대에 ‘국방의 의무’라는 기표는 주체를 무의식의 차원에서 강력하게 지배했던 기표라고 할 수 있다. 당시에 통용되었던 ‘국방의 의무’라는 기표를 보다 정확하게 말한다면 ‘남성 개개인이 국방의 의무를 이행하여 군사적으로 규율화된 주체로 인간개조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기표는 의식 속에서도 작동하고 있었지만, 개별 주체들의 무의식 속에서, 그들이 잘 알지 못하는 기표들의 네트워크 속에서 보다 강하게 작동하였다.
만약 박정희 체제라는 상징적 질서가 개별 주체에게 부여되는 이 기표를 거부하게 되면, 그는 그 상징적 세계에서 추방되어 자신의 정체성, 즉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정체성을 박탈당하고 ‘비국민’의 지위로 떨어진다. 또 그 기표를 받아들이게 되면 그는 지독한 소외 상태 속에서 박정희 군사독재체제라는 상징적 세계가 가하는 의식적·무의식적 지배를 수용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런데 기표가 무의식 속에 억압되어 있다는 것은 그 기표가 기표들 간의 ‘의미화 사슬(연쇄)’signifying chain에서 탈락되어 있다는 것을 말한다. 의미화 사슬로부터 탈락한 기표, 그로부터 고립된 기표란, 다른 기표들과 연쇄될 수 없기에 기의를 갖지 못하는 기표, 기의 없는 기표가 된다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기의가 없으면 없을수록 그 기표는 더욱더 파괴 불가능해진다.” 즉 기표는 억압되면 될수록, 고립되면 될수록 주체에 대해 갖는 지배력, 권력은 더욱 강해진다. 주체는 의미화 사슬로부터 탈락된 고립된 기표에 무의식적으로 고착되는데, 그러한 고착은 증상 등의 형태로 표출된다.
이렇게 고립된 기표, 기의 없는 기표가 다른 모든 기표들에 대하여 주체를 대표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주인 기표이다. 라캉은 이후 그 어떤 단일한 유일무이한 주인 기표도 없다고 말하며, 주인 기표를 ‘담화의 나머지로부터 고립된 어떤 기표’로 정식화한다. 기의 없는 주인 기표의 파괴 불가능성이란 일종의 ‘신성성’, ‘숭고성’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박정희 시대에 국방의 의무 앞에서 늘 ‘신성한’이라는 접두어가 붙었는데, 이는 국방의 의무가 주인 기표로서 다른 기표들과 자유로운 연쇄가 허용되지 않는, 권력에 의해 규정된 연쇄만이 허용되는 범접할 수 없는 지위와 그에 따른 지배력을 갖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당시 국방의 의무가 유일한 주인 기표였던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신성한’이라는 접두어를 통해 표현된 것처럼 상대적으로 강력한 힘을 행사했던 주인 기표였다는 점은 분명하다. 여기서 국방 의무의 ‘신성성’은 국방 의무의 수행이 피할 수 없는 어떤 것, ‘다른 것으로 대체될 수 없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는 것을 말한다. 3절에서 자세히 살펴보겠지만 국방의 의무를 신성화의 단계까지 끌어올린 것은 박정희 시대 내내 강력한 정책적 의지를 가지고 추진했던 제도화의 효과였다.
그러나 변증화를 통해 주체에 대해 행사되는 주인 기표의 권력은 약화될 수 있다. 변증화는 하나의 기표와 다른 기표들이 새로운 연쇄관계를 형성하는 과정, 기표들이 등가화되고 그에 따라 서로 대체 관계를 갖게 되는 과정, 그리고 그를 통해 새로운 의미가 발생하는 의미작용의 과정을 말한다. 변증화를 통해 주인 기표는 숭고함, 신성함, 신비함을 잃고 세속화된다. 따라서 주인 기표의 지위, 주인 기표로서의 권력이 유지되려면, 그 기표가 다른 기표들과 자유롭게 연결되고 교환되는 등가화 내지 변증화의 과정이 억압되어야 한다. 국방의 의무가 신성함과 주인 기표의 지위를 유지했던 것은 바로 박정희 체제의 국가장치들이 권력이 규정한 특정한 기표 연쇄 이외에 자유로운 변증화를 철저히 억압하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변증화의 억압은 당시 박정희를 코미디나 풍자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 엄격히 금지되었던 것과 같은 맥락에 서 있다. 권력이 자의적으로 갖다 붙인 엄격히 제한된 기표 연쇄와 그로부터 발생하는 제한된 기의, 그것만을 고집하고 강요하는 것이야말로 독재권력의 특징이다. 우리나라에서 모든 남성들에 대해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도록 강제 징집한다는 의미를 갖는 용어, conscription은 원래 “운 나쁘게 군복무를 해야 할 사람을 가리기 위한 투표를 준비하는 대상자 명부 작성”이었다. 언어적 질서, 상징적 질서를 지배함으로써 개개인의 사고와 행동을 통제하고자 하는 것은 전체주의 체제의 기본 속성이기도 했다. 박정희 체제는 특정 기표들에 대해 엄격히 제한된 기표 연쇄와 기의를 고집하였고, 그것을 벗어나 다른 기표들과 연결되어 다양한 의미를 발생시키는 것, 그 기표의 신성함이 탈색되고 세속화되는 것을 저지하고자 하였다. 1987년 민주화 이후 군대 내무반 생활을 코미디물로 만든 「동작 그만」1988년, KBS2 TV 방영)이라는 프로그램은 폐쇄된 기표 연쇄와 기의만을 고집하던 금지된 ‘성역’을 개방하여 국민들에게 커다란 인기를 얻었다. 그 프로그램은 고립된 기표, 의미작용이 금지된 기표를 변증화하여 막혔던 기표 연쇄의 통로를 뚫어주는 역할을 했다. 라캉은 두 기표들이 새롭게 연결되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 두 기표 사이에서 “은유의 창조적 불꽃이 번쩍인다”는 문학적 표현을 사용한다. 「동작 그만」은 폐쇄된 병영생활을 일상생활의 여러 측면들과 연결시켜 병영생활의 어두운 곳곳에 은유의 불꽃을 들이댐으로써 그 의미들을 다양하게 풀어내는 ‘기표 연쇄의 해방’, ‘의미 해방’의 역할을 했다. 그리고 그것은 그 자체로 민주화의 한 과정이기도 했으며, 또 독재체제 아래에서는 건드릴 수 없었던 곳을 속 시원히 긁어주는 치유의 과정이기도 했다.
‘은유의 불꽃’이 번쩍이는 순간은 바로 주체가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이기도 하다. 그때 나타나는 주체는 종속되고 소외된 주체가 아니라 저항과 해방으로서의 주체, 무의식의 주체이다. 그 은유의 불꽃이란, 상징적 현실의 권력을 대행하는 대타자가 특정 기표를 부과하여 그에 의해 지배되고 종속당하는 그런 소외된 주체가 아니라, 그 대타자의 권력에 저항하는 무의식의 주체이다. 달리 표현하면 은유의 불꽃으로 나타나는 무의식의 주체는, 이미 응결되어 대타자의 몫으로 돌아간 고정된 의미가 아니라 새로운 기표 연쇄를 통해 새로운 의미를 창출함으로써 타자로부터 해방을 꿈꾸는 저항의 주체이다. 그 무의식의 주체는 상징 질서가 가하는 지배를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이는 주체 즉 상징계의 자동인형이나 꼭두각시가 아니라, 그 질서에 구멍을 내고자 하는 주체이다.
기표 특히 주인 기표가 갖는 권력의 모습, 그리고 그것에 의해 지배받는 주체의 모습은 박정희 시대 ‘국방의 의무’가 가졌던 지위를 통해 잘 살펴볼 수 있다. 물론 그럼으로써 기표의 권력 개념을 통해 국방의 의무가 갖는 성격, 박정희 시대의 성격 역시 더욱 뚜렷하게 부각될 수 있다.
(본문 중 일부)
★ 저작권법에 의해 한국 내에서 보호를 받는 저작물이므로 무단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