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의 귀
나는 창밖으로 똑같이 생긴 다른 아파트들밖에는 볼 게 없는 십오층 아파트의 꼭대기층의 어떤 집의 거실 소파에 앉아 어린 몰티즈를 무릎 위에 올려놓은 채로 개의 왼쪽 귀를 손으로 접었다 폈다 하고 있었고, 개는 표정 없는 얼굴로 나를 가만히 올려다보고 있었고, 나 역시 개를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개는 내 무릎에 놓여 있기 전에는 거실 바닥에 엎드려 있었는데, 개가 알아서 내 무릎 위에 올라온 것은 아니었고, 아직 어려서 누군가가 올려주지 않으면 소파에 올라오지 못했고, 소파에 앉은 나는 반은 무심히, 반은 의식적으로 개를 들어 내 무릎 위에 올려놓았고, 잠시 내려다본 후 마치 갑자기 종이접기가 생각난 것처럼 종이접기를 하듯 개의 귀를 접었다 폈다 하기 시작했다.
나는 개들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것을 좋아했고, 가끔 개들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을 너무 할 때면 머릿속에 사납거나 앙칼지거나 시끄럽거나 정신없거나 우스운, 크고 작은 여러 마리의 개들을 키우고 있는 것 같기도 했지만, 현실 속 개들은 특별히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았는데, 그것은 다른 애완동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고, 애완동물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것에 대해 마찬가지였고, 많은 사람들이 많은 관심을 기울이는 개의 용모나 풍채나 습성이나 기질, 그 밖의, 개에 관해 관심을 가질 수 있는 다른 것들에도 그다지 관심이 없었지만, 기회가 있을 때면 딴건 제쳐두고 개의 귀를 접었다 폈다 해보곤 했는데, 많은 개의 귀를 접었다 폈다 해보았지만 그것을 특별히 좋아한다고 할 수도 없었고, 그래서 개의 귀를 접었다 폈다 하는 것을 나의 일종의 취미라고 보기는 어려웠는데, 그것은 취미로 개의 귀를 접었다 폈다 하지는 않았기 때문이지만, 그럼에도 그 덕분에 나는 어떤 개의 귀가 잘 접히고, 접힌 채로 잘 있는지, 그리고 어떤 개의 귀가 잘 안 접히고, 접히자마자 펴지는지 잘 알고 있었고, 귀가 잘 접히거나 접으면 잘 접혀 있던 개들 가운데서도 성견이 되면 잘 접히지 않거나 접혀 있지 않는 개들도 있었다.
조금 후 개의 주인이자 이 집의 주인인 그녀가 부엌에서 차와 사과와, 개가 먹을 간식을 갖고, 무대에 등장하듯 걸어 나와 거실 바닥에 앉았고, 나는 강아지를 거실 바닥에 내려놓았고, 강아지는 사발에 담긴 자신의 간식을 먹기 시작했는데 간식을 그다지 좋아하는 것 같지는 않았고, 계속해서 사과를 탐하듯 바라보고 있었다. 사과 접시는 우리 셋 사이에, 이를테면 등거리를 이루고 놓여 있었는데 개도 함께 먹는 것인지 분명치 않았다. 나는 차를 마셨는데 거의 아무런 맛도 나지 않았다. 오래될수록 깊은 맛이 나지 않는 차였고, 오래될수록 본래의 향이 사라지는 차였다. 어떤 꽃차였는데 본래의 맛은 거의 다 빠져 있었고, 아주 조금 남은 본래의 맛으로는 본래 무슨 차였는지 짐작하기도 어려웠다. 나만 그렇게 느끼는 것 같지는 않았다. 나는 한 모금 들이켠 후 더 이상 마시지 않았는데, 그녀는 차를 입에 대지도 않았다. 나는 차가 아무런 맛이 없는 것에 대해 불평을 할 수도 없었는데 그것은 내가 준 차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대놓고 불평은 하지 않더라도 마음속으로 할 수는 있었고, 그래서 마음속으로 대놓고 불평을 했다. 내가 본래의 맛이 이미 사라진 차를 준 것은 아니었고, 결과적으로 그녀는 자신은 마시지도 않을 차를 내놓은 것이었다.
그녀는 개에게 사과 조각을 주었는데, 개는 그것은 아주 맛있게 받아먹었다. 내가, 아, 이 사과는 개를 위한 것이었군, 하고 생각하는 순간 그녀는 나의 그 생각을 뒤엎어버리기라도 하듯 개에게 사과를 주는 동시에 자신도 먹었다. 이상하게도 나는 손을 뻗으면 닿는 거리에 있었음에도 사과에는 손을 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접시에 담긴 사과는 사과 두 개도 아닌 한 개에서 나온 것으로, 모두 여섯 쪽이었는데 세 쪽씩 그녀와 그녀의 강아지가 나눠 먹었다. 결국 나는 사과는 먹지 못했는데, 보란 듯이 말끔히 비워진 접시를 가만히 보고있자 애초에 나를 위한 사과는 없던 것 같았고, 심지어는 내가 사과 모습을 한 헛것을 빈 접시에서 본 것만 같았고, 여섯 개로 나누어진 기하학적인 헛것들이 빈 접시의 공백 속으로 사라진 것 같았다. 그래서 손을 댈 엄두를 낼 수 없었던 사과에는 손을 대지 않은 것이 잘한 일 같았고, 약간 무안해진 나는 소파에 앉아 사과를 모두 먹은 몰티즈를 무릎 위에 올려놓고 다시 귀를 접었다 폈다 했다.
그녀와 나는 서로 어색하게 말없이 앉아 있었는데 우리가 어색해진 게 내가 한 어떤 이야기 때문이 맞는지는 분명치 않았다. 그녀는 차가운 반응을 보였는데, 얘기를 하고 난 다음 내가 느끼기에도 그 얘기는 차가운 반응을 보이게 할 만했고, 심지어는 나조차도 내 얘기에 차가운 반응을 보일 수 있을 것 같았다. 뭔가 할말을 찾고 싶었지만 마땅한 말이 떠오르지 않았고, 어떤 말도 마땅한 것 같지 않았고, 아무런 할 말도 없는 것 같았고, 할말이 어찌나 없는지, 그것에 대해서라면 아주 길게 얘기를 해볼 수도 있을 것 같았지만 그 이야기를 어떻게 시작해야 좋을지 알 수 없었다. 애초에 그녀가 내게 자신의 집에 오라고 하지 않았는데도 나는 왔는데 왜 왔는지는 나도 몰랐고, 오자마자 가야겠다고 생각하면서도 나는 계속해서 안 가고 있었는데, 그 이유도 알 수 없었는데, 막연하게, 갈 데가 아무데도 없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다.
더이상 어색한 상태를 견딜 수 없다는 듯 그녀는 샤워를 하겠다며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갔고, 몰티즈는 뭔가를 원하는지는 알 수 없었고, 강아지의 귀를 접었다 폈다 하는 건 그만하고, 그건 내게도 강아지에게도 귀찮을 수 있으니까, 머리를 쓰다듬어줄까, 모든 동물이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것을 좋아하니까, 하는 생각을 했지만 곧, 모든 동물이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것을 좋아한다고 볼 수는 없겠군,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것을 아주 싫어하는 동물들도 있을 테고, 머리가 너무 작아 쓰다듬어줄 머리를 포착하기도 어려운 동물들도 있고, 어쩌면 개미나 딱정벌레 같은 작은 동물들은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것을 견디지 못할 수도 있겠군, 하고 생각했다. 이상하게도 눈처럼 흰 강아지의 털을 빗겨주고 싶지는 않았는데 그 이유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개의 귀를 접었다 폈다 하는 것 외에 달리 방법이 없군, 달리 방법이 있다면 그만둘 수도 있을 텐데, 하고 생각하며 나는 이번에는 강아지의 오른쪽 귀를 접었다 폈다 했는데, 강아지는 접혔다 펴졌다 하는 자신의 귀가 아무런 예고도 설명도 없이 일방적으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갑자기 바뀐 것에 어리둥절해하는 것 같았지만 꼭 그런 것 같지도 않았다.
강아지가 자신의 귀가 접혔다 펴졌다 하는 것을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알 수 없었고, 기분좋게 느끼는지 수모를 당하고 있다고 느끼는지 알 수 없었고, 그것을 물어볼 수도 없었고, 강아지의 표정만으로는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강아지가 어떻게 느끼는지 알 수 없다는 사실이 나로 하여금 강아지의 귀를 접었다 폈다 하는 일을 멈추거나 늦추게 하는 대신 박차를 가하게 했고, 이제 강아지는 약간 혼란스러워하는 것 같았지만 꼭 그런 것 같지도 않았다. 강아지의 귀를 접었다 폈다 하는 일을 어느 정도로 빨리하자 일삼아 하고 있는 것 같았고, 일삼아 하기에는 참으로 적절치 않은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 생각이 그 일을 그만두게 하지는 못했다. 나는 속도를 조절해 점차 천천히 귀를 접었다 폈다 했고, 마침내는 멈췄지만 조금 후에는 다시금 조금씩 속도를 높였고, 잠시 더 이상 빨리할 수 없는 정도로 했다가 다시 속도를 늦춰 그 정도의 속도가 적당하다고 느낀 어느 지점에서는 일정한 속도를 유지했는데(그렇게 속도를 조절하자 어떤 액셀러레이터를 조작하는 것 같았다), 그렇다고, 이대로라면 언제까지나 이 일을 할 수도 있겠군, 하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진심으로 나는 강아지가 괴롭거나 힘들다면 그 표시로 짖거나 싫은 내색을 하거나 나를 물거나 거세게 반발해주기를 바랐지만 강아지는 그대로 있었는데, 어쩐지 강아지는 아직까지 한 번도 짖은 적이 없는 것 같았고, 어쩌면 아직 짖는 법을 모르는지도 몰랐는데, 그렇다면 벙어리 강아지로 여겨지지는 않았다. 강아지는 짖을 수 있는데도 안 짖고 있는 것 같았다. 강아지는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며 내 손을 물려고 하지도, 딴 데로 가지도 않았고, 그에 따라 나는 도리 없이 계속해서 강아지의 귀를 접었다 폈다 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제 강아지는 약간 겁을 먹은 것 같았고, 자신에게 가해지는 그 일이, 어쩌면 강아지로서도 처음 경험하는 그 일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다는 사실에 강아지가 겁을 먹은 것은 이해하고도 남음이 있었지만, 표정은 꼭 겁을 먹은 것만도 아닌 것 같았고, 어느 쪽이냐 하면 잘 모르겠다는 것에 가까웠다.
한데 그토록 귀를 접었다 폈다 하고 있는데도 이 강아지에 대해서 더 알고 싶어지거나 하지는 않았다. 처음 보는 개였고, 지중해의 몰타가 원산지로, 십자군전쟁 때 몰타에 간 십자군이 전쟁터에 데려갔다가 고향으로 돌아가면서 전리품처럼 데려가─그 전리품은 자신이나 가족, 혹은 사랑하는 누군가에게 훌륭하거나 귀찮은 선물이 되었는지도 몰랐다─, 키우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진 몰티즈라는 것 외에는 이름도 몰랐고, 암컷인지 수컷인지도 알지 못했다. 이 강아지가 대부분의 개들과 마찬가지로 사과를 좋아한다는 것, 자신의 귀가 접혔다 펴졌다 하는 것에 혼란스러워하고 약간 겁을 먹은 것 같기도 하다는 것, 하지만 꼭 그런 것 같지도 않다는 것, 그 이상으로 이 개에 대해 알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게 개의 귀를 접었다 폈다 하며 그것에 대한 생각을 잠시 접자 전날 저녁의 어떤 기억이 떠올랐다.
초저녁에 잠시 잠이 들었고, 빗으로 머리를 정성스럽게 빗고, 낡은 앞치마를 두르고 어떤 전쟁에 참전하는 꿈을 꾼 기억이었다. 무엇을 두고 싸우는지 알 수 없는, 약간 체육대회 같은 그 전쟁에 참전한 모두가 앞치마를 두르고 있었는데, 앞치마가 어떤 역할을 하는 것 같았고, 서로의 앞치마를 뺏기도 했지만 서로의 앞치마를 뺏기 위한 전쟁은 아니었고, 많은 전쟁들이 그렇듯 그것은 명분은 있지만 의미는 없는 또 하나의 전쟁 같았다. 적군은 세로줄 무늬가 선명한, 새것으로 보이는 앞치마를 통일해 두르고 있었지만 아군은 모두 집에서 입던 것인 듯 낡고 볼품없는 앞치마를 두르고 있었는데, 앞치마를 통해, 누가 어느 편인지 알 수 없는 사람들을 아군과 적군으로 구별할 수 있었다. 그런데 우리의 앞치마에는 화려한 꽃무늬가 그려져 있었지만 앞치마가 너무도 낡아 앞치마의 그 꽃들은 이미 시든 것 같았고, 시들어 져버린 것 같았고, 져버려 죽은 것 같았고, 앞치마에 버려진 것 같았고, 그래서 앞치마에서 썩어가고 있는 것 같았고, 심지어는 썩어가고 있는 냄새가 나는 것 같았고, 우리의 꽃무늬 앞치마가 적들의 줄무늬 앞치마의 상대가 될 수 없을 것 같았고, 그들의 줄무늬가 우리의 꽃무늬를 무색하게 하며 압도하는 것 같았고, 그것만으로도 우리가 질 게 뻔한 것 같았다. 우리는 어이없게 패했는데 이긴 적들도 어이없긴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그들은 우리에게서 뺏은 낡은 앞치마를 전리품으로 가져가지 않고 우리가 전투를 벌이던 숲속의 나뭇가지에 걸어놓곤 처음 들어보는 어떤 애절한 노래를 부르며 떠났는데, 이곳저곳의 나뭇가지에는 앞치마 말고도 많은 것들이 걸려 있었다. 죽은 사람들인지 자고 있는 사람들인지 알 수 없는 납작해진 사람들이 나뭇가지에 옷처럼 걸려 있었는데, 어이없게도 옷처럼 바람에 펄럭이고 있는 사람들도 있었다. 나무 아래에는 빨래처럼 떨어져 있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그들 또한 어이없기는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그 모두가 이것이 어이없는 전쟁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볼품없고 낡았지만 내가 아껴마지않았던, 그만 버려도 좋을 것이라고 생각한 앞치마를 적에게 빼앗겼고, 거의 날아갈 것같이 기분좋은 치욕감을 맛본 후 탈주병이 되어 어느 빈집에 몰래 들어가 그곳에 있는 칠면조 한 마리를 훔쳐 팔에 안고 집에 돌아왔는데, 이튿날 또다른 전쟁에 나가 전사하는 것으로 꿈은 끝이 났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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