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특별한 컬렉션 (1)
글쓰기와 망각
1957년 로베르 마르틀랭은 자동차 사고로 중상을 입었다. 삼개월간 입원했다가 퇴원했을 때 그의 체력과 지력은 돌이킬 수 없도록 쇠약해진바, 보험설계사로 복귀하는 것이 더는 불가능했다. 가족은 그를 요양원에 보냈고, 그는 1979년 쉰넷의 나이로 죽을 때까지 여생을 그곳에서 보냈다.
차 사고로 입은 외상은 결코 회복되지 않았고 두뇌 기능도 손상을 입었다. 무엇보다 기억력이 일부 크게 감퇴했다. 날짜라든가 역사적 사건이라든가 그가 안내인을 대동하고 종종 산책을 나가는 요양원 주변의 구불구불한 산들이 표시된 지도 같은 것들은 매우 또렷하게 기억하는 반면, 가족의 존재는 (마치 자신이 하늘에서 뚝 떨어지기라도 했다는 듯) 전혀 기억하지 못했고, 특히나 걸핏하면 자신의 이름을 잊는 통에 아침마다 새로이 일러줘야 했다.
마르틀랭은 매주 목요일 요양원 강당에서 상영하는 영화의 열혈 관객이었으며, 도서관을 수시로 드나드는 꾸준한 열람자였다. 그의 머릿속에는 영화나 책의 줄거리가 일반적인 수준 이상으로 정확하고 완벽하게 입력되었다. 또한 몇 주 전에 읽기 시작한 책을 다시 펼쳐들어도 중간에 끊긴 적이 없다는 듯 앞부분을 다시 읽을 필요도 없이 이미 읽었던 쪽을 대번에 기억했다. 사실 그의 괴이한 기억장애는 그가 읽는 것들보다는 쓰는 것들과 관련이 있었다. 요컨대 마르틀랭은 자신이 직접 쓴 작품들에 대한 기억은 하루를 넘기지 못하고 잊었다. 밤이 모든 것을 지웠다. 월요일에 몇 쪽을 끄적거렸다가 화요일에 발견하고는 어리둥절해하며 자신이 쓴 것임을 극구 부인하는 식이었다. 기억에서 자신의 창작물을 완전히 몰아내고 직접 쓴 문장을 몰라보려면 잠을 자면 그만이었다. 심지어 오후에 깜빡 졸기만 해도 오전에 작업했던 것을 잊는 지경이었다. 글쓰기는 그가 요양원에서 가장 즐기는 소일거리이자 유일한 취미였고 나아가 그의 존재 이유라 할 법했기에, 이 기억장애는 그에겐 가히 하늘이 무너지는 비극이었다.
매일 아침 마르틀랭은 책상에서 자신이 전날 종이들이 까매지도록 끄적거린 원고를 발견했다. 필체는 분명 자기 것임을 알아보았지만 작가가 자신인지에 대해서는 의아심을 영 떨치지 못했다. 간호사가 글쓰는 모습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며 그가 창작자임을 확인해주어도 마르틀랭은 그저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었다. 그는 원고가 썩 괜찮긴 하지만 자기라면 이렇게 쓰지 않았을 것이며, ‘자기 스타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여 어김없이 원고를 구겨버리고 완전히 새로 시작하기 위해 새하얀 백지를 꺼내들었다.
요양원 사람들은 그를 ‘금붕어’라 부르며 빈정거렸다. 금세 모든 것을 잊고 어항 속을 끊임없이 맴도는, 기억력이 형편없는 금붕어에 빗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장애를 인식하지 못하는 마르틀랭은 지치지도 않고 매일 아침 똑같은 열정과 똑같은 마음가짐으로 새로이 집필에 착수했다.
마르틀랭에게 흥미를 느낀 요양원장 페르디에는 마르틀랭이 그날그날 쓴 원고를 매일 밤 가져오게 했다. 다음날이면 마르틀랭은 원고의 존재조차 모를 테니 그가 자신의 원고를 찾을 염려는 없었다. 그렇게 일 년 가까이 흐르자 페르디에의 수중에 350편 남짓한 소설의 도입부가 모였다. 개중에는 매우 고무적인 작품들도 섞여 있었지만(마르틀랭은 재능이 없지 않았다), 하나같이 어쩔 수 없는 미완성 작품이었다. 이따금 페르디에가 마르틀랭에게 원고들을 건네며 이어서 써보라고 넌지시 권유했지만 작가는 번번이 자기 스타일이 아닐뿐더러 자기가 쓴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며 차라리 다른 소설에 착수하는 쪽을 택했다.
무산될 운명을 타고난 소설들의 도입부에 마르틀랭의 천재성이 소진되는 것을 못내 안타깝게 여긴 페르디에는 기억이 허용된 기간 내에 완성할 수 있는 보다 짧은 형태의 작품을 쓰는 쪽으로 마르틀랭을 유도했다. 마르틀랭이 가치 있는 무언가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어떤 형태건 반드시 하루 안에 글을 마쳐야 했다. 페르디에는 마르틀랭에게 기 드 모파상이나 에드거 앨런 포의 단편이라든가 하이쿠를 읽히며 영감을 얻게 했고, 단편이나 단시*를 훈련할 수밖에 없도록 종이란 종이를 모두 압수한 뒤 하루에 딱 다섯 장씩만 내주었다.
*5, 7, 5의 3구 17자로 구성된 일본 고유의 단시.
마르틀랭은 페르디에의 조치에 반발하며 이따위 조건에선 글을 쓸 수 없다고 버텼지만, 결국 창작 욕구에 떠밀려 짧은 형태로 전향하는 것을 억지로 받아들였다. 그는 야망을 줄여, 착상에서부터 집필과 퇴고까지 하루 만에 거뜬히 마칠 수 있는 두세 쪽가량의 짤막한 작품들을 쓰기 시작했다. 페르디에는 날이 저물기 전에 중단된 원고들은 모조리 허사로 돌아간다는 것을 잘 아는 까닭에, 마르틀랭이 산만해지기라도 할라치면 생각을 끝까지 밀어붙이도록 간호사를 시켜서라도 강제로 의자에 붙들어 매놓았다.
그렇게 해서 마르틀랭은 방법을 터득했고 아마추어 작가 경력 최초로 원고를 매듭짓게 되었다. 몇 달 뒤 페르디에는 사십 편 남짓한 완성된 단편들을 확보했고, 자랑스러운 마음에 문학적 완성도가 수준급인 이 단편들을 동료들에게 읽게 했다. 그는 심지어 단편집 출간까지 고려했지만 마르틀랭이 내켜하지 않자 단념했다.
요양원장의 당혹감을 배가한 기이한 현상이 나타난 것은 이즈음이었다. 페르디에의 영향으로 마르틀랭은 계속해서 매일 단편을 썼고 스물네 시간 후에는 자동으로 잊기를 되풀이했다. 그런데 그가 매일 쓰는 단편들이 점차 엇비슷해지기 시작했다. 페르디에는 혹시 마르틀랭이 매일 똑같은 이야기를 쓰는 것은 아닌지 자문했다. 마르틀랭의 증세가 호전되어 전날 썼던 원고의 대략적인 내용을 기억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언뜻 스쳤다. 하지만 아니었다. 마르틀랭은 여전히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고 주장했고 정밀검사 결과도 그의 주장을 뒷받침했다. 그럼에도 현실은 그게 아니었다. 페르디에가 매일 밤 마르틀랭이 전날 쓴 원고와 그날 쓴 원고를 비교해본바, 날이 갈수록 두 원고 사이의 차이가 희미해졌다. 초기에는 똑같지 않았던 처음 몇 문장이 몇 주가 지나자 하나로 고정되는가 싶더니, 급기야 마르틀랭은 전날 썼던 것임을 기억하지 못한 채(이것은 문장을 숱하게 삭제한 흔적으로도 알 수 있었다) 똑같은 문장들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되풀이했고, 나중에는 몇 문장이 아니라 아예 문단 전체가 고정되기에 이르렀다. 날이 갈수록 마르틀랭이 쓰는 이야기는 분량이며 전개며 결말이 일정한 한 가지 형태로 굳어졌다. 그는 그나마 변주된 부분들도 갈수록 줄어드는 엇비슷한 이야기를 매일 써댔다. 하루하루 점점 흡사해지는 마르틀랭의 글은 페르디에가 ‘최종 텍스트’라고 이름 붙인 일종의 이상, 지난 수년 동안 작가 본인도 의식하지 못한 채 지향했던 이상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이 현상이 뚜렷해짐에 따라 페르디에는 마르틀랭에게 탄복을 금치 못했다. 여태껏 환자로만 여겼던 마르틀랭이 이제는 작가로 보였다. 그것도 그냥 작가가 아니라 머릿속을 맴도는 텍스트에 어쩔 수 없이 이끌려 마침내 완전무결한 형태의 작품을 써낸 후에야 비로소 평온을 느끼는 절대적인 작가였다. 만일 ‘최종 텍스트’를 찾아낸다면 그다음은? 페르디에는 자문했다. 마르틀랭은 글쓰기를 멈출 것인가? 아니면 죽을 때까지 매일 똑같은 원고들을 복제할 것인가? 만일 이 이상적인 텍스트가 접근 불가능한 것이라면, 마르틀랭은 완벽한 접점에 결코 이르지 못한 채 하루하루 접점에 가까워지는 점근선만을 끝없이 그릴 운명이리라……
페르디에는 마르틀랭이 전날 쓴 것과 정확히 일치하는 이야기를 쓰게 될 날을 기다리며 경건한 마음으로 마르틀랭의 글을 완독했다. 마침내 그날이 왔다고 믿은 적도 부지기수였다. 하지만 두 원고를 주의깊게 비교해보면 숨은그림찾기처럼 달라진 단어 한 개 또는 문장부호 한 개가 늘 발견되었다. 그럴수록 페르디에는 이제 거의 목표점이 보이니 노력을 늦추지 말아야 한다며 바르틀랭을 다독였고, 요양원장의 말뜻을 통 이해하지 못하는 마르틀랭은 멀거니 그를 바라보다가 이내 등을 돌려 연필을 깎고는 다시 집필에 들어갔다.
마르틀랭이 차이가 미세한 그만그만한 원고들을 매일 생산해내던 시기인 1975년, 페르디에가 갑작스러운 사고로 사망했다.
그로부터 채 일 년이 지나지 않은 어느 날, 환자는 마침내 요양원장이 바라던 목표에 도달했다. 1976년 3월 15일, 마르틀랭은 전날 것과 토씨 하나까지 똑같은 원고를 제출했다. 16일, 17일에도 마찬가지였고 한 달이 다 되도록 원고는 한결같았다. 같은 도입부, 같은 결말, 같은 단어, 쉼표의 위치까지. 진정한 데칼코마니요 복사본이었다. 페르디에의 후임인 오뱅은 전임자의 놀라운 통찰력을 확인한바, 그와의 약속대로 『신경학 저널』*에 기고할 마르틀랭 사례 연구 논문의 집필에 착수했다. 페르디에가 준비해둔 무수한 초고들을 참조하고 마르틀랭의 소설을 참고자료로 첨부했다.
잡지가 발행되던 날, 마르틀랭은 평소대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1976년 3월 15일 이후 동일한 이야기를 이미 608번이나 쓴 터였고, 수년 이래로 그럭저럭 수천여 개의 소설 도입부를 구상해온 셈이었다. 간호사들이 마르틀랭에게 『신경학 저널』을 보여주며 축하해주었다. 그는 그날의 영웅이었다! 마르틀랭은 반신반의하며 오뱅의 논문과 활자화된 자신의 소설을 건성으로 훑고는 잡지를 탁 덮더니 다음과 같은 경악스러운 평가를 내렸다. “제법이긴 한데 이건 내 스타일이 아니오. 나라면 다르게 썼을 거요.” 그러고는 일일 할당량인 다섯 장의 종이에 다시 한번 동일한 원고를 쓰기 시작했다. 이 똑같은 작업은 1979년 그가 사망할 때까지 끊임없이 되풀이되었다.
*Journal of Neurology. 유럽 신경학협회에서 발간하는 국제 신경학 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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