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부
문학 거품의 풍경
무라카미 하루키
게임 비평 삼매경
무라카미 하루키_1949년 효고 현 출생. 1973년 와세다 대학 문학부 졸업. 1979년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로 데뷔. 군조 신인 문학상(「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1979), 노마 문예 신인상(『양을 둘러싼 모험』, 1982), 그림책 일본상 특별상(번역서 『서풍호의 조난The Wreck of the Zephyr』, 1984), 다니자키 준이치로상(『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1985), 요미우리 문학상 (『태엽 감는 새』, 1996), 구와바라 다케오 학예상(『약속된 장소에서』, 1999) 등 수상.
1980년대 후반의 ‘문단 아이돌’을 논하고자 한다면 무라카미 하루키의 이름은 역시 빼놓을 수가 없습니다.
특히 1980년대 후반의 무라카미 하루키는 날아가는 새도 떨어뜨릴, 아니 날아가는 비행기도 떨어뜨릴 기세였지요. 1988년 연간 베스트셀러 1위 『노르웨이의 숲』, 3위 『댄스 댄스 댄스』. 두 작품 모두 밀리언셀러를 기록했습니다. 『노르웨이의 숲』 같은 경우 약 1년 동안 350만 부(!)가 팔려 나갔으니 예삿일이 아니죠.
그러나 단순히 ‘잘 팔리는 소설’로 무라카미 문학을 특징지을 수만은 없습니다. 또 다른 무라카미 문학의 특징은 무라카미가 문학 전문가들의 논평 심리를 매우 자극하는 작가라는 점입니다. 본격적인 작가론이나 작품론부터 거의 팬클럽 수준의 작품선집, 수필, 잡지 특집호까지 무라카미 하루키 이름이 들어간 책은 매우 많습니다. 인터넷에서 검색을 해보니 무라카미가 쓰지 않은 무라카미 관련 단행본의 수가 50여 권에 달한다고 합니다(단행본만 따져서 말입니다!).
때문에 ‘하루키 현상을 둘러싼 수수께끼’는 두 가지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습니다.
(A) 무라카미 하루키는 왜 잘 팔리는(팔렸던) 것일까.
(B) 무라카미 하루키는 왜 잘 논해지는(논해졌던) 것일까.
최고의 판매 부수, 그리고 아마 비평 건수도 최고일 그의 책이 ‘가볍게 읽을 수도 있고 깊이 읽을 수도 있는 소설’, ‘문학 초짜에게도 먹히고 문학 프로에게도 먹히는 소설’임은 틀림없습니다. 다만 수수께끼 (A)에 대해서는 더 이상 깊이 파고 들어갈 필요가 없습니다. ‘왜 하루키는 우리를 전율시키는가’에 관한 논문이나 수필은 발에 채일 정도로 많이 나와 있으니까요. 수수께끼 (A)보다 흥미로운 것은 수수께끼 (B) ‘어째서 그들은 하루키를 가만히 둘 수 없었을까’입니다.
1990년대 가와데쇼보신샤에서 펴낸 『80’s ─ 80년대 전(全) 검증』에서 구로카와 소는 재미있는 말을 합니다.
하위문화subculture는 더 이상 ‘하위sub’에 머무르는 문화가 아니다. 이는 명백한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명백한 사실을 진지하게 논의할 수밖에 없었던 때가 바로 1980년대였다. 왜냐하면 하위문화를 새롭게 ‘발견’한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 남성 지식계급이란 참으로 애석한 동물인지라 ‘아, 재미있었다!’만으로는 결코 성이 차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아, 재미있었다!’라는 느낌을 가지게 된 ‘이유’가 필요하다. 만화는 왜 재미있을까, 만화는 정말로 재미있는 것일까 등등. 1980년대 이후 남성 지식계급의 고행과 논쟁으로 가득 찬 여행이 시작되었다. _ 구로카와 소, 「‘비평’의 길고 긴 부재」, 『80’s ─ 80년대 전 검증』, 1990
위의 인용은 오시마 유미코 세대의 만화에 관한 비평(의 비평)의 일부분입니다만, 무라카미 하루키에게도 해당되는, 아니 무라카미 하루키 현상이야말로 이 비평에 딱 맞아떨어진다고 생각합니다.
하루키를 둘러싼 ‘고행과 논쟁으로 가득 찬 여행’은 당시 어린이들(어른들도 포함)을 매료시킨 하위문화의 최전선, 즉 컴퓨터 게임을 연상시키는 부분이 있습니다. 주인공의 지력, 체력, 무력을 레벨업시키면서 주인공을 기다리는 새로운 몬스터와 끊임없이 싸움을 벌여나가는 롤플레잉 게임RPG을 떠올리게 합니다. 게임 마니아들은 주어진 놀이 방식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하고 게임 속에 숨겨진 기술을 발견해나가는 ‘새로운 게임’에 열광합니다. 어린이 게임 마니아가 ‘드래곤 퀘스트’의 숨겨진 기술 찾기에 열중했던 것처럼, 어른 문학 마니아가 얼마나 ‘하루키 퀘스트’에 열중해 있었는지 그 발자취를 잠시 따라가보도록 하겠습니다.
레벨1: 우선 분위기 비평부터
무라카미 하루키론(혹은 하루키 퀘스트) 중에서 가장 심플하고 소박한 종류의 글은 ‘나는 이 문체가 좋아, 이 세계관이 좋아’라며 어린아이처럼 신이 나서 써 내려간 것입니다.
‘나’가 화자인 이 이야기에는 독자에게 ‘이런 이야기는 어때’라며, 익살스러우면서도 조금은 감상적인 ‘허풍’을 즐기도록 서비스 정신이 발휘되어 있다. ‘나’와 독자는 마치 즉흥연주 연주자와 청자의 관계와도 같은 가벼운 마음으로 ‘허풍’을 즐길 수 있다. _ 가와모토 사부로, 「1980년의 노 제너레이션」, 『도시의 감수성』, 1984
청결하고 바람이 잘 통하는, 지금껏 일본어 문장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종류의 문장이다. 만약 내가 이 단편의 저자를 알지 못했다면 ‘나’라는 인물이 필립 말로였다고 해도 믿었을 것이다. _ 무카이 사토시, 『문장독본』, 1988
이런 수준의 감상문을 다 큰 어른이, 그것도 직업 문필가가 활자 미디어에 발표해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신선하게 다가옵니다. 조소하는 것이 아닙니다. 글쟁이 세계에서 ‘감상문’은 차별적인 용어이긴 합니다만 어른의 솔직한 ‘감상’을 ‘문장화’하면 안 된다는 규칙은 어디에도 없으니까요. 가와모토 사부로의 수필은 1980년(『스바루すばる』, 1980년 6월호)에 처음 발표된 것으로 무라카미 하루키 붐에 불을 붙인 도화선 역할을 했습니다.
이분들의 소름을 돋게 한 문장이란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문장일 터입니다.
1973년 9월, 이 소설은 거기에서부터 시작한다. 그것이 입구다. 출구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만약 없다면 글을 쓸 의미는 어디에도 없다. _ 『1973년의 핀볼』, 1980
이런 문장에 감동을 받은 이들 중에는 ‘빙의 수필’을 펴낸 사람도 있었습니다. 마치 작가의 영혼이 자신의 몸에 빙의한 듯한 문장으로 세계를 표현하는, 세련되고 지적인 방법입니다.
나는, 우리의 잡지 (…)를 소설적인 것으로 만들고 싶다, 고 그때 생각했다. / 우리 사무소에 핀볼대를 설치하면 어떨까, 하고 나는 제안했다. / 1983년, 나는 서른둘이 되었고 무라카미 하루키는 소설을 많이 썼다. 우리 사무소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고, 핀볼대는 설치되지 않았다. _ 미네 마사즈미, 「핀볼의 후회」, 『HAPPY JACK 쥐의 마음』, 2000
“내일부터 나는 뉴욕.” 나는 말했다. “또 여행이야?” “그래, 또 여행이야.” “고양이 이야기 같아.” 토끼가 말했다. 토끼의 농담은 이런 수준이다. ‘뉴욕으로 가기 전에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 속 주민들의 라이프 스타일에 관한 수필을 써야 해’ 하고 말하려다 말았다. _ 아사이 신페이, 「1983년의 럭비풋볼」, 『HAPPY JACK 쥐의 마음』, 2000
이러한 감상문과 ‘빙의 수필’이 체현하고 있는 것은, 무라카미 문학=하루키 랜드의 릴랙스 효과라 해도 좋을 터입니다. 어려운 이야기를 어려운 말로 표현하지 않으면 문예비평의 체면이 서지 않는다, 복잡할수록 훌륭하다, 같은 강박관념이 당시에는 존재했습니다. 하지만 그 대상이 하루키라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마치 ‘우리도 솔직해질 수 있잖아……’라는 느낌입니다.
그런 그들이 예외 없이 ‘보쿠僕’라는 남성 일인칭 대명사를 즐겨 사용한다는 점은 상징적입니다. 약간의 자의식, 약간의 어리광, 젊음의 뉘앙스를 풍기는 일인칭 대명사 ‘보쿠’는, 원래 쇼지 가오루(더 거슬러 올라가면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의 일본어 번역본?)가 널리 퍼뜨린 말로 여겨지지만, 무라카미 하루키의 등장으로 인해 순식간에 시민권을 얻은 듯한 느낌이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이런 무라카미 하루키의 글을 수준이 낮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네지메 쇼이치는 초기 무라카미 작품을 가리켜 ‘다방 주인 문체’라고 명명하기도 했습니다.
내가 보기에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는 그야말로 ‘다방 주인 문체’다. 물론 구성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세계관이 다방 주인적이기 때문에 문체도 그렇게 되었다는 것이다. 말할 필요도 없겠지만, 문체의 길이와 그 문체를 통해 표현할 수 있는 세계는 서로 대응을 이룬다. _ 네지메 쇼이치, 「숨은 서정이 젖어올 때」, 『유리아카ユリイカ』, 1983년 4월호
네지메 쇼이치는 비판적 맥락에서 이런 말을 했는데, 확실히 무라카미 하루키의 초기 작품=하루키 랜드에는 다방 분위기가 흐르고 있습니다. 주택가 한적한 곳에 위치한, 누구나 마음 편하게 들를 수 있는 작은 다방. 거기에는 다방 주인과 손님이 ‘기분 좋다’고 느낄 만한 인테리어 소품이 놓여 있습니다. 해외 문학(데릭 하트필드), 색 바랜 사진(“그것은 내가 코닥 포켓 인스터매틱으로 찍은 사진 중 유일하게 마음이 따뜻해지는 사진이었다. 쥐는 마치 제2차 세계대전의 격추왕처럼 보였다.”), 핀볼 게임기(스리 플리퍼 스페이스십) 같은 것들. 물론 그곳은 다방이기에 마실 것(차가운 맥주)과 먹을 것(샌드위치, 스파게티)이 있고 실내에는 기분 좋은 음악(스탠 게츠)이 흐르고 있습니다.
컴퓨터 통신도 인터넷도 없던 시절이었습니다. 지금은 찾아보기 어렵지만 예전에는 이런 종류의 가게에 ‘낙서장’ 같은 것이 놓여 있곤 했습니다. 낙서장은 다방이라는 장소를 매개로 한 커뮤니케이션 도구(그런 의도)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거기에는 이름 그대로 시시한 낙서만이 가득했지요. 그러나 어찌되었든 그곳에는 낙서장이 비치되어 있고, 누가 무엇을 쓰든 아무도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나만 아는 골목길 단골 다방. 문학가 선생님이 아니더라도 가벼운 마음으로 들러 무언가 논할 수 있는 평화로운 살롱. 그것이 초기 무라카미 작품=하루키 랜드의 이미지였고, 그렇기 때문에 낙서장에 펠트펜으로 후갈겨 쓴 듯한 느낌의 비평이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후에 하루키 랜드의 모습이 완전히 변모한 다음에도 그 풍습이 계속 이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본문 중 일부)
★ 저작권법에 의해 한국 내에서 보호를 받는 저작물이므로 무단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