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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조 [국호·정체·주권]①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②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제1조 ①항
대한민국은 나라 이름이고, 민주공화국은 국가의 성격과 정부의 운영 형태를 말한다. 헌법 제1조 1항은 이렇게 시작한다. 헌법 제1조라고 하여 다른 조문보다 특별한 의미를 지니거나 우선적 효력을 갖는 것은 아니다. 상징적 의미가 강할 뿐이다.
모든 나라의 헌법 제1조가 국가의 이름이나 성격을 밝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런 형식이 헌법을 시작하는 데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와 같이 정했을 것이다. 프랑스, 러시아, 그리스, 중국, 쿠바가 그렇고, 미국도 비슷하다. 일본은 천황에 대한 규정부터 시작한다. 국가의 이름이나 국가의 성격을 앞에 내세우는 현상만 보더라도 헌법은 국가를 전제로 만든 것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하지만 헌법의 시작을 반드시 그렇게 할 필요가 있을까라는 의문도 든다. 국가 이름과 성격으로 시작하면 왠지 국민보다 국가를 중시하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헌법의 주인이 국가가 아니고 국민이라면 국민 또는 인간에 관한 규정을 제1조로 삼을 수도 있다. 독일의 헌법은 보통 기본법이라고 번역하는데, 제1조는 “인간의 존엄성은 침해할 수 없다. 그것을 존중하고 보호하는 것은 국가의 의무다”라고 하고 있다. 네덜란드 헌법도 이렇게 시작한다. “네덜란드의 모든 국민은 평등한 환경에서 평등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
우리 헌법 제1조 1항에서 국호를 규정하고 있으므로,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을 바꾸는 일은 헌법 개정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지금은 당연한 듯 여겨지지만, 대한민국이라는 국호는 1948년 헌법을 제정하고 정부를 수립하면서 비로소 사용하기 시작한 이름이다. 유진오의 헌법 초안에만 하더라도 국호는 조선이었는데, 사전 심의 과정에서 한국으로 바뀌었고, 다시 국회 헌법기초위원회에서 대한민국으로 확정됐다.
우리나라를 지칭하는 이름으로는 대체로 한국, 조선, 고려 세 가지가 있었다. 조선은 단군 이래로 사용해온 가장 오래된 국호다. 한국은 마한, 진한, 변한의 세 종족의 명칭에서 유래했다. 고려시대에는 고구려, 신라, 백제 세 나라를 한꺼번에 일컬어 삼한이라 했다. 그러다가 1897년 고종이 청나라에 대하여 독립국가임을 선언하는 뜻으로 스스로 황제라 칭하면서 조선이란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변경했다. 이 명칭이 1919년 3·1운동 이후 상해 임시정부에 이어져 대한민국이 되었다. 고려는 당연히 고구려에서 비롯한 이름이다. 삼국 중 가장 먼저 수립된 고구려를 언젠가부터 고려라고 표기했고, 중국에서도 광개토왕과 장수왕 즈음 이후의 고구려는 모두 고려라고 불렀다. 지금도 외국에서는 대한민국을 고려Korea, Corea라고 하고 있다. 북한은 조선을 국호로 하고 있지만, 외국어로는 우리와 마찬가지로 고려로 표기한다.
민주공화국은 민주국가와 공화국이 합쳐진 말이다. 의사 결정을 구성원들이 직접 하거나, 구성원에 의해 선출된 대표들이 대신 행하는 행태를 일컫는다. 그리고 민주국가란 국가의 주권이 당연히 국민에게 있다는 의미다. 어느 특정한 한 사람의 권력자에 의해 의사가 결정되는 형태는 독재주의다. 사회주의나 공산주의는 생산수단의 소유나 생산물의 분배와 관련한 사상 또는 제도를 말하는 것이므로, 민주주의에 대응한 반대 개념이 아니다.
공화국이란 원래 주권이 국민에게 있는 나라 형태를 말한다. 주권이 왕에게 주어진 나라는 전제주의국가 또는 참주국, 군주국이라고 한다. 군주국은 왕이 있는 나라라는 의미이므로, 군주국 중에서도 왕이 전권을 휘두르는 나라는 전제군주국, 왕이 존재하되 헌법에 따라 민주적으로 국정을 운영하는 나라를 입헌군주국이라 한다. 분류상으로는 몇몇 특정인이나 계급에 주권을 부여한 나라를 과두국가, 귀족국가 또는 계급국가라고 하기도 한다.
한때 일본 학자들의 영향을 받아 정체와 국체를 나누어 설명하던 시절도 있었다. 정체는 정부 형태를 국체는 국가의 성명을 의미한다면서, 민주는 정체를 공화국은 국체를 말한다고 도식화하여 규정했다. 하지만 주권이 국민에게 있음을 전제로 한 근대입헌국가의 헌법에서 여전히 그런 식으로 나누는 일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민주국가나 공화국이나 같은 뜻으로 이해해도 무방하다.
제1조 ②항
헌법 제1조 2항에 대한 우리 헌법재판소의 해석부터 살펴보자. 헌법재판소는 이 문장을 부르기 좋게 한 낱말로 대폭 줄여 부른다. 그것이 ‘국민주권주의’다. 그러면서 그것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풀어 쓴다. 즉 국민주권주의란 “일반적으로 어떤 실천적인 의미보다는 국가권력의 정당성이 국민에게 있고 모든 통치권력의 행사를 최후적으로 국민의 의사에 귀착시킬 수 있어야 한다는 등 국가권력 내지 통치권을 정당화하는 원리로 이해되고, 선거운동의 자유의 근거인 선거제도나 죄형법정주의 등 헌법상의 제도나 원칙의 근거로 작용하고 있다”고 한다.
이제 국민주권주의의 의미를 ‘국가권력의 민주적 정당성’으로 요약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와 더불어 헌법 제1조 2항의 전제에도 잠시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이 조항은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와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는 명제로 쉽게 쪼개어볼 수 있다. 두 문장은 비슷하게 읽히지만, 단순한 동어반복은 아니다. ‘주권의 소재’와 ‘통치권력의 담당자’가 언제나 같을 수 없음을 전제한 결합인 것이다. 그래서 헌법재판소는 다음과 같이 썼다. “이러한 국민주권주의는 국가권력의 민주적 정당성을 의미하는 것이기는 하나, 그렇다고 하여 국민 전체가 직접 국가기관으로서 통치권을 행사하여야 한다는 것은 아니므로 주권의 소재와 통치권의 담당자가 언제나 같을 것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고, 예외적으로 국민이 주권을 직접 행사하는 경우 이외에는 국민의 의사에 따라 통치권의 담당자가 정해짐으로써 국가권력의 행사도 궁극적으로 국민의 의사에 의하여 정당화될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우리 헌법은 제1조 2항은 물론 헌법 전체를 통하여 ‘국민’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지만, 원래 유진오 초안에는 모두 ‘인민’이라고 되어 있었다. 초안 작성자가 국민 대신 인민이란 어휘를 택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 국민은 국가의 구성원이라는 의미가 강하여 국가 우월적 느낌을 준다. 반면에 인민은 국가라도 함부로 침범할 수 없는 자유와 권리의 주체로서의 인간을 표현한다. 그러니 국가를 구성하는 자유인으로서의 개인을 표시하는 데 인민이 적절하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초안의 ‘인민’은 국회 헌법기초분과위원회 심의 과정에서 ‘국민’으로 바뀌고 말았다. 국회가 ‘조선’에서 ‘대한민국’으로 변경된 것과 함께 일어난 일이다. 그 주된 이유는 북한 때문이었다. 당시 국회의원 윤치영은 “인민이란 말은 공산당의 용어인데 그러한 말을 쓰려고 하느냐, 그런 말을 쓰고 싶어 하는 사람의 사상이 의심스럽고”고 흥분했다. 하지만 인민이란 용어는 구 대한제국의 절대군주 시절에도 사용하던 용어였다.
1948년 7월 1일부터 시작한 국회 본회의 헌법 초안 제2회독 때 국회의원 진헌식이 다시 문제를 제기했다. 그는 몇 개 조문을 제외하고 일반적으로 국가와 개인의 관계를 규정하는 조문에서는 모두 인민으로 하자는 수정안을 제출했다. 하지만 역시 윤치영 의원의 격렬한 반대로 무산되고 말았다. 인민이란 표현이 더 적절하다고 생각한 사람들은 그 좋은 말을 공산주의에 빼앗긴 셈치고 포기했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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