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맛의 탄생
지구에서 맛이 출현할 기미가 최초로 나타난 시기는 초기의 생명체가 주변 세계를 감지하기 시작하고, 바닷물에 떠다니던 영양 물질의 냄새가 원시적인 신경계를 자극하던 무렵이었다. 그후 생명은 수억 년 동안 진화하면서 수많은 음식물을 섭취했다. 러시아의 전통 인형 마트료시카처럼 오늘날 우리가 느끼는 맛에는 바로 이 모든 경험들이 축적돼 있다. 어떤 사람의 미각이 아무리 세련되고, 요리 재료가 아무리 미묘하다 하더라도, 맛은 아득한 과거의 원초적 충동을 불러일으키는데, 이 충동에는 진화 과정에서 일어난 온갖 사건들과 먼 옛날에 먹이를 놓고 벌어졌던 목숨을 건 투쟁이 반영돼 있었다. 그 역사가 아주 오래되었으면서 각자 진화사에서 중요한 전환 국면에 나타난 다섯 가지 음식물은 미각과 호모 사피엔스의 요리법 발명 재능이 어디서 왔는지 설명하는 데 도움을 준다.
최초의 식사
그 동물의 모습은 풍뎅이와 비슷했다. 부드럽고 골이 진 껍데기로 전신이 둘러싸인 몸길이 약 2.5센티미터의 이 동물은 얕은 연안 해저에서 모래 위를 기어다녔다. 그러다가 냄새와 진동과 빛의 세기 변화를 미미하게나마 감지하게 되었다. 지렁이 비슷하게 생긴 먹이는 안전을 위해 길을 구불구불하게 만들면서 모래 속으로 굴을 파고 들어갔다. 포식자는 집게발처럼 생긴 턱으로 구멍을 파헤쳐 먹이를 입속으로 쭉 빨아들인 뒤에 꿀꺽 삼켜 목구멍 뒤로 넘기고는, 이제 먹이를 소화시키기에 안전한 은신처를 찾으러 나섰다.
4억 8000만 년 전에 일어난 이 식사의 증거는 1982년에 발견되었다. 탐사에 나선 마크 맥미너민Mark McMenamin은 회녹색 셰일에서 아주 작은 인상화석印象化石을 발견했다. 맥미너민은 별생각 없이 암석에서 그 인상화석을 쪼아내 수십 점의 다른 표본과 함께 자루에 집어넣었다. 그 당시 대학원생이었던 맥미너민은 멕시코 정부의 요청으로 소노라 사막의 지질 조사를 하고 있었는데, 소노라 주에 있던 세로라혼산 측면 지역을 중점적으로 조사했다. 이곳은 옛날에 바다 밑바닥이 솟아올라 산꼭대기가 된 곳이었다.
훈련받지 않은 사람의 눈에는 그 화석은 길이 0.6센티미터가량의 긁힌 자국들이 희미하게 줄지어 늘어서 있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연구실로 돌아와 화석을 자세히 조사한 맥미너민은 그것이 삼엽층이 진흙 위를 지나가면서 남긴 흔적이라는 사실을 알아챘다. 그 진흙이 나중에 굳어서 돌이 되면서 그 자국이 화석으로 남은 것이다. 삼엽충은 물고기, 파리, 새, 사람을 비롯해 동물계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동물들의 조상이다. 삼엽충은 해저에 수많은 화석을 남겼고, 그래서 어떤 자연사 박물관에서나 단골손님처럼 전시돼 있다. 많은 삼엽충은 몸 전체가 많은 체절로 이루어진 껍데기로 덮여 있고, 투구게와 지네를 합친 것처럼 생겼다. 이 삼엽충 흔적 화석의 무늬 패턴은 잘 알려져 있고, 심지어 루소피쿠스 물티리네아투스Rusophycus multilineatus라는 학명까지 붙어 있다. 맥미너민은 그 화석을 보관했다가 그것에 관해 연구한 내용을 박사 학위 논문으로 썼다. 그러고 나서는 마운트 홀리요크 칼리지에서 지질학 교수가 되어 생명의 초기 진화를 연구할 때까지 20년이 넘도록 그것에 대해서는 더 이상 생각하지 않았다.
그랬는데, 나중에 그 화석을 다시 살펴본 맥미너민은 이전에 보지 못했던 것을 발견했다. 그는 “그 화석에는 그냥 삼엽충만 있었던 게 아니었어요. 바로 그 옆에 구불구불한 모습으로 또 하나의 흔적 화석이 있었어요. 이런 화석은 아주 드물지요”라고 말했다. 맥미너민은 그 화석에는 두 동물이 만난 증거가 담겨 있다고 결론 내렸다. 추가 흔적은 삼엽충보다 더 작고 지렁이처럼 생긴 동물이 진흙 속으로 구멍을 파고 들어가려고 시도했음을 시사했다. 무늬의 배열로 보아 삼엽충은 그 동물 바로 위에 있었던 것으로 보였다. 맥미너민은 오컴의 면도날을 적용했다. 가장 단순한 설명은 삼엽충이 먹이를 찾기 위해 진흙을 파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그는 이것은 “최초의 식사”를 알려주는 증거라고 썼다. 즉, 그것은 포식자가 먹이를 잡아먹는 장면을 담고 있는 화석 중 가장 오래된 것이었다.
그 음식의 맛은 어땠을까? 그것을 상상이라도 하는 게 가능할까?
캄브리아기로 알려진 이 시기 이전까지는 유의미한 맛이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 지구상의 생명은 대부분 물속에서 떠다니면서 입자를 걸러 섭취하고 광합성을 하며 살아갔다. 세균과 효모를 비롯해 그밖의 단세포 생물은 화강암의 골이나 모래 알갱이 사이에 자리를 잡고 살아갔다. 일부는 서로 합쳐 끈적끈적한 세포 덩어리를 이루었다. 관이나 원판 모양의 생물들이 해류에 실려 이리저리 떠다녔다. ‘먹는 것’은 바다에서 영양 물질을 흡수하는 것을 뜻했다. 때로는 한 생물이 다른 생물을 완전히 감싸기도 했다.
그러다가 불과 수천만 년 동안에 ─ 지질학적 시간으로는 아주 짧은 시간 ─ 바다가 삼엽충을 비롯해 새로운 생물들로 들끓었다. 삼엽충은 생명의 역사에서 가장 큰 성공을 거둔 동물 강(綱)이었다. 삼엽충이 지구를 지배한 시기는 2억 5000만 년이 넘는다. 삼엽충이 처음 나타난 시기인 약 5억 년 전은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자연이 실제로 시작된 때였는데, 지구 역사상 처음으로 생물이 다른 생물을 체계적으로 잡아먹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 새로운 동물들은 이전 동물들과 달리 입과 소화관이 있었다. 초보적인 뇌와 감각도 있어 빛과 어둠, 움직임, 뚜렷한 화학적 신호를 감지할 수 있었다. 이 동물들은 이러한 최신 장비들을 사용해 먹이를 사냥하고 죽이고 먹었다. 영화 〈사랑과 죽음Love and Death〉에서 우디 앨런이 연기한 작중 인물 보리스가 “내게 자연은…… 잘 모르지만, 거미와 벌레, 작은 물고기를 잡아먹는 큰 물고기, 그리고 식물을 먹는 식물과 동물을 먹는 동물이라오. 그것은 거대한 식당과 같아요”라고 표현한 상황과 비슷했다.
오늘날 살아남아 있는 삼엽충은 없으며, 화석은 삼엽충의 신경계에 대해 알려주는 게 거의 없으므로, 삼엽충의 감각 능력을 평가하는 일은 추측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다크초콜릿이나 와인의 복잡한 향미 같은 것은 전혀 지각하지 못했을 게 거의 확실하다. 인간의 미각은, 설사 아무리 혐오스러운 미각이라 하더라도, 미묘한 요소가 많고, 다른 향미나 과거의 사건과 느낌을 비롯해 우리가 학습한 모든 경험과 연관되는 요소도 많다. 삼엽충은 아마도 즐거움 같은 것은 전혀 느끼지 못했을 테고, 겨우 약간의 흔적 기억만 갖고 있었을 것이다. 모든 식사는 거의 똑같은 맛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오로지 배고픔을 달래려는 욕구와 공격 충동이 그 주요 특징이었을 것이다.
어쨌든 맛을 이루는 이 원시적인 요소들은 진화가 낳은 괄목할 만한 업적이었는데, 인간의 미각도 그 생리학적 구조는 기본적으로 이것과 동일하다. 물론 이것은 흙집을 샤르트르 대성당과 비교하는 것과 비슷하지만, 어쨌든 기본 뼈대는 바로 이 시기에 만들어졌다.
캄브리아기 폭발이라 부르는 이 포식자-먹이 관계의 혁명에 방아쇠를 당긴 사건은 지상의 생활 조건에 일어난 큰 변화였다. 과학자들은 그 원인이 무엇이었는지를 놓고 의견이 분분하다. 어떤 사람들은 선사 시대에 몰아닥친 지구 온난화를 그 원인으로 지목하는데, 이 때문에 오랫동안 꽁꽁 얼어붙어 있던 극지방의 얼음이 녹기 시작했다. 해수면이 수십 미터나 높아졌고, 그 때문에 멀리 내륙 안쪽까지 물이 밀려 들어와 지의류와 균류(나무와 풀, 꽃식물은 아직 나타나기 전이었다)로 덮여 있던 낮은 언덕과 암석이 물에 잠겼으며, 석호와 모래톱, 여울이 생기고, 생명이 번성하기에 아주 이상적인 따뜻하고 얕은 가마솥이 만들어졌다. 지구 자기 역전을 그 원인으로 꼽는 사람들도 있고, 또 어떤 사람들은 활동 전위의 창발이나 신경세포들이 먼 거리까지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는 능력 또는 DNA 암호에 생긴 그밖의 우연한 변화 등을 낳은 돌연변이를 지목한다.
정확한 사건의 순서야 어떠했건, 어쨌든 예민한 감각과 진화적 성공 사이에 강한 연관 관계가 나타나게 되었다. 급증하는 위협과 기회에 몸과 신경계가 적응하면서 이에 따라 생물학적 군비 경쟁이 일어났다. 한때 단순한 감지 및 반응 메커니즘에 불과했던 감각은 복잡한 행동을 인도하기 위해 더 강력하게 성장해야 했다. 삼엽충 시대부터 시작해 현재에 이르기까지 채집과 사냥과 음식 섭취는 생명의 끝없는 자동 갱신을 촉진하여 결국은 인간의 큰 뇌와 문화적 업적을 낳았다. 우리를 정의하는 핵심 요소로서는 미각이 시각이나 청각 혹은 심지어 섹스보다도 더 중요하다. 미각은 우리 자신을 만들어냈다. 맥미너민은 막대한 고통을 동반하면서 죽고 죽이는 행위가 세상에 널리 퍼진 것이 지능과 인식을 크게 팽창시키는 결과를 낳고, 결국에는 인간의 의식을 탄생시키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이 궁극적인 아이러니라고 말한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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