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마동수馬東守는 1979년 12월 20일 서울 서대문구 산외동 산18번지에서 죽었다. 마동수는 1910년 경술생庚戌生 개띠로, 서울에서 태어나 소년기를 보내고, 만주의 길림吉林, 장춘長春, 상해上海를 떠돌았고 해방 후에 서울로 돌아와서 6·25전쟁과 이승만, 박정희 대통령의 시대를 살고, 69세로 죽었다. 마동수가 죽던 해에, 중앙정보부장 김재규가 대통령 박정희를 권총으로 쏘아 죽였다. 박정희는 5, 6, 7, 8, 9대 대통령을 지냈다. 박정희는 심장에 총알을 맞고 쓰러져서, ‘괜찮다, 나는 괜찮아……’라고 중얼거렸다. 마동수의 죽음과 박정희의 죽음은 ‘죽었다’는 사실 이외에 아무 관련이 없다. 마동수의 생애에 특기할 만한 것은 없다.
마동수는 암 판정을 받은 지 3년 만에 죽었다. 간에서 시작된 암은 위와 창자로 퍼졌고 등뼈 속까지 스몄다. 뼈가 삭아서 재채기를 하다가 관절이 어긋났다. 마동수의 암은 느리고 길었다. 몸이 무너져갈수록 암의 세력은 번성했고, 마동수의 숨이 끊어진 후에도 암은 사체 속에서 사흘 동안 살아 있다가 사체가 매장될 때 소멸했다. 마동수의 암은 인체에 기생하지만 인체와는 별도로 독립되어 있었다.
산외동 산18번지는 북한산 서북쪽 언저리의 바람받이였다. 2평짜리 새마을형의 블록 가옥들이 좁은 골목을 따라 길게 늘어서 있었다. 지대가 높아서 수돗물이 자주 끊겼고 겨울에 길바닥이 얼어붙으면 청소차가 올라오지 못했다. 지게로 분뇨를 끌어냈고 연탄과 먹을 물을 들였다. 마동수가 죽던 날은 최저기온이 영하 10도였다. 그날, 날이 흐려서 마을에 연탄가스 냄새가 자욱했다.
마동수는 혼자서 죽었다. 마동수가 죽을 무렵에 배우자 이도순李道順은 65세였다. 이도순은 연탄 두 장을 새끼줄에 매달아 들고 얼어붙은 비탈길을 올라오다가 넘어져서 고관절에 금이 갔다. 이도순은 시립 병원에 입원해 있었고, 기동을 하지 못하자 기억이 흐려지고, 혼잣말을 했다. 치매의 초기 증세였다.
마동수가 죽어갈 때 마동수의 차남 마차세馬次世는 상병 계급장을 달고 동부전선 GOP 부대에 복무하고 있었다. 휴가 나온 마차세 상병이 자리를 지키면서 아버지의 밑을 살폈고 대소변을 받아냈다. 마차세는 환자의 배에 관을 꽂고 복수腹水를 빼내는 법을 간병인한테 배웠다. 암세포가 녹아 나와서 복수는 걸쭉했다. 마차세는 식염수로 관을 닦았다. 12월 20일 저녁 마차세가 외출한 사이에 마동수는 빈 방에서 죽었다.
마지막 날숨이 빠져나갈 때 마동수의 다리가 오그라졌다. 마동수는 모로 누워서 꼬부리고 죽었다. 외출에서 돌아와서 안방 문을 열었을 때, 마차세는 아버지의 꼬부라진 육신을 보고 죽음을 직감했다. 아버지의 사체는 태아처럼 보였다. 죽은 육신의 적막은 완강했다. 돌이킬 수 없고, 말을 걸 수 없었다.
아, 끝났구나, 끝났어……. 마차세 상병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 사람의 생애는 그 사람과 관련이 없이, 생애 자체의 모든 과정이 스스로 탈진되어야만 끝나는 것 같았다. 그러므로, 사람이 죽어도 그의 한 생애가 끌고 온 사슬이 여전히 길게 이어지면서 살아 있는 사람들을 옥죄이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마차세는 예감했다. 끝이 아닐 수도 있다는 예감은 끝났다는 사실보다 더 절박했다.
귀대 날짜가 이틀 남아 있었다. 마차세는 아버지의 주검 위에 홑이불을 덮고 큰길로 내려왔다. 마차세는 공중전화로 부대에 아버지의 죽음을 보고했다. 대대 당직사관이 전화를 받았다. 복무 규칙에 따라서 닷새간 휴가를 연장해 주겠다, 전우들의 조의를 대신 전한다, 초상 잘 치르고 귀대 시간을 엄수하라, 귀대하면 사망신고서 사본, 사망진단서 사본을 제출하고 대대장의 후결을 받으라고 당직사관은 말했다.
마동수는 죽기 전 6개월 동안 혼수상태에서 숨을 헐떡이면서 섬망譫妄의 헛소리를 지껄였다. 가끔씩 정신이 돌아올 때 마동수는 실눈을 뜨고 벽시계를 보았다. 시간은 흐린 날의 저녁 무렵과 같았다. 시간은 마동수의 생명과는 무관하게, 먼 변방으로 몰려가고 있었는데, 마동수의 육신은 그 시간의 썰물에 실려서 수평선 너머로 끌려가고 있었다.
마동수의 마지막 의식은 죽음이 이끄는 썰물에 실려서 먼 수평선 너머로 흘러갔다가 다시 밀물에 얹혀서 이승의 해안으로 떠밀려 오기를 세 번 거듭했다. 숨이 끊어지기 전에 혼백이 먼저 육신을 떠나서 멀어졌고 다시 몸속으로 돌아왔다.
마동수의 마지막 의식은 시간의 파도에 실려서, 삶과 죽음 사이를 왔다 갔다 하다가 세 번째 썰물에 실려 저편으로 아주 건너갔고, 다리가 오그라졌다.
저기로구나……. 여기서 물이랑 몇 개를 더 넘으면 저기가 바로 거기로구나…….
라고 속으로 중얼거릴 때 물때가 바뀌어 마동수의 혼백은 다시 이승으로 실려 왔다. 이승의 방 안에는 벽시계가 걸려 있었고, 초침이 9에서 10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초침이 12를 지날 때, 마동수의 혼백은 다시 썰물에 끌려 나갔다. 물이랑 너머에는 방향이 없어서 어느 쪽도 동서남북이 아니었다. 여기로구나. 여기가 바로 거기로구나. 다 왔구나……. 그 물이랑 너머에서 죽음의 세상은 펼쳐져 있었다. 생명의 맨 끝자락에서 모든 감각이 바스러졌고, 그 자리에서 죽음의 세계에서만 작동되는 낯선 감각이 돋아났다. 그것은 청각도 시각도 아니었지만 그 감각으로 마동수는 물이랑 너머의 세상을 감지할 수 있었다. 거기에서 시간은 발생 이전의 습기로 엉겨 있었고 진행의 방향이 정립되지 않은 채 안개로 풀어져서 허공에 밀려다녔다. 그 뿌연 시간의 안개가 갈라지는 틈새로 물이랑 저편의 세상이 언뜻 보이는 듯했다.
거기는 눈 덮인 만주의 길림, 장춘이거나 일본군의 공습을 받는 상해나 대련大連이었다. 거기는 식민지의 서울 남산경찰서 뒷골목이거나 인공人共 치하의 서울이거나 피난지 부산釜山이었다. 만주의 눈 덮인 황무지에서는 변발에 중복中服 차림의 망명가들이 눈구덩이 속에서 소총을 끌어안고 아편을 피웠다. 폭격기 상대가 상해 도심 상공에 출격하면 도로와 건물 위에 비행 물체의 그림자가 흘러갔다.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몰려가고 쓰러졌다. 빌딩이 깨지면서 벽돌과 유리가 쏟아져 내렸고, 퇴로가 막힌 부자들이 고층에서 지폐를 뿌렸다. 번화가 쇼윈도 앞에 나와 앉은 남루한 사내들은 폭격기를 쳐다보며 마작을 두었다.
식민지의 서울 남산경찰서에서는 불령不逞한 조선인들이 고문당하는 신음 소리가 경찰서 담장 밖 해장국 골목에까지 들렸다. 경찰관들이 야근하는 날이면 신음 소리는 초저녁부터 새벽까지 들렸다. 피난지 부산의 해운대 바닷가에서 피난민들은 바다 쪽으로 엉덩이를 까고 앉아서 똥을 누었다. 해운대는 모래밭 경사가 완만하고 파도가 순해서 똥 누기에 좋았다. 똥 누는 대열은 모래밭 저쪽까지 이어졌다. 피난민들은 바닷물로 똥구멍을 닦았다. 똥 덩이들이 파도에 떠서 해안으로 밀려왔다. 갈매기들이 똥 덩이를 파헤치며 끼룩거렸다.
물이랑 저편의 풍경들은 서로 뒤섞였고 언제 어디인지 식별할 수 없는 기억들이 포개져 있었다.
여기가 아니다. 이건 이승이다. 지나온 세상이라고……. 죽어서 여기에 다시 올 리가 없어. 이건 아니야. 거기가 아니야…….
마동수는 파도에 실려 가면서도 고개를 저었다. 그것은 마동수가 살아온 이승의 모습이기는 했으나, 거기에는 사람의 소리, 짐승의 소리, 비바람의 소리도 생겨나지 않아서 풍경은 오직 적막했다. 거기에서 죽은 자들은 끝없는 벌판을 제가끔 건너가게 되어 있어서, 서로 만날 일이 없었다. 바람이 불어서 안개의 틈새가 메워지고, 마동수는 다시 이부자리 위로 떠밀려 왔다. 그때 마동수는 얼핏 혼수에서 벗어났다. 천장의 도배지 무늬가 마동수의 의식을 잠깐 붙들어주었다. 그 도배지는 저승의 무늬로 보였다. 세 번째 썰물에 실려서 마동수의 의식은 수평선 너머로 끌려갔고, 다리가 꼬부라졌다. 마동수는 죽기 직전에 본 죽음의 세상의 날씨를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무슨 말을 하려 했는지, 사체는 입을 벌렸고 턱에 침이 말라 있었다. 마동수는 모로 누워서 혼자서 죽었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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