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과 강연
삶의 도량에서
세상에 태어난다는 사실은 대단한 사건 중에서도 대단한 경사입니다. 태어난 존재들이 살아간다는 것은 거룩하고도 거룩합니다. 이 사실만은 꼭 명심해야 할 우리의 진정한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가끔 한밤에 풀섶에서 들려오는 벌레 소리에 크게 놀라는 적이 있습니다. 만상萬祥이 고요한 밤에 그 작은 미물이 자기의 거짓 없는 소리를 들려주는 것을 들을 때 평상시의 생활을 즉각 생각하게 됩니다. 정말 부끄럽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럴 때면 내 일상의 생활은 생활이 아니고 경쟁과 투쟁을 도구로 하는 삶의 허영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삶이 삶이 아니었다는 것을 하나의 작은 벌레가 엄숙하게 가르쳐줄 때에 그 벌레는 나의 거룩한 스승이요, 참생명을 지닌 자의 모습은 저래야 하는구나, 라는 것을 가슴 깊이 새기게 됩니다.
나는 귀천이나 남녀노소를 가릴 것 없이 많은 사람들과 일상생활을 즐기고 생활을 나누며 삽니다. 저녁으로는 대체로 박주일배薄酒一杯를 나누는 형편인데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혼자 걷는 방축 길은 나의 도량度量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저녁밥과 술자리에서 나누었던 좋은 이야기와 못마땅했던 이야기를 반추합니다. 이런 것 저런 것을 생각하다가 문득 걸어가는 발밑의 풀들을 접하게 되는 순간 나는 큰 희열을 맛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짓밟아서 풀잎에 구멍이 나고 흙이 묻어 있건만 그 풀은 의연하게 대지에 뿌리를 내리고 있습니다. 상처와 먼지에 찌들린 풀잎이 하늘의 달과 대화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볼 때, 형편없는 나의 그날의 생활이 떠오릅니다.
그 밥 자리에서 술 한잔에 거나해가지고, 제대로 생활화하지 못하고 다만 머리에 기억만 남아 있는 좋은 글귀를 동학同學 또는 후배들에게 어른처럼 말했던 몇 시간 전의 나의 모습을 생각할 때 창피하기 이를 데 없음을 누가 짐작하겠습니까. 정말 부끄럽기 한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 길가의 짓밟힌 풀들이 말 없는 나의 위대한 스승님들이라는 사실을 취중에 알게 되었을 때 그 기쁨은 말로는 표현이 되지 않습니다. 그것을 맛본 후로는 길가의 모든 잡초들이 나의 스승이요, 벗이요, 이 미약한 사람의 도인道人이라는 것을 알게 되어서 길 걷는 동안 참 행복한 세상에 살고 있구나 하고 즐겁게 길을 걷습니다.
나는 아침에 일찌감치 손님을 전송하기 위해서 역이나 고속버스터미널에 가는 때가 있습니다. 오신 손님을 전송하고 나서는 가끔 근처에 있는 젊은 친구들을 만납니다. 젊은 친구들은 오래간만이라고 차 한잔이나 대포 한잔을 권하는 일이 많습니다. 대개는 아침이라 사양하지만 같은 이에게 번번이 사양하면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여러 번의 권고가 되는 경우에는 부득이 사양을 하지 못하고 응합니다.
아침부터 대폿집에 들어가서 두 홉들이 소주를 각기 한 병씩 나누면 오전 중에 이미 거나해서 노상에 나옵니다. 나는 술을 마시면 주로 걷습니다. 술도 깨고 운동도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보면 70대가 넘는 노선배님들을 노상에서 만나 뵈옵게 됩니다.
“청강淸江, 무위당의 아호께서 백주에 이렇게 대취하면 어떻게 되는 거야”라고 노선배는 걱정 반 애정 반으로 물으십니다. 나는 그렇게 걱정하시는 선배님께,
“치악산 밑에서 이 청강이 백주에 취하지 않으면 누가 취하겠습니까?” 하고 대답하곤 합니다.
“그건 그래! 그러나 청강이 건강해야 되지 않아?”
노선배께서는 웃으시며 애정 어린 말씀을 주십니다. 역 앞에서 대포를 한잔하자고 권하는 젊은 친구의 대접도 애정이고, 노선배님의 말씀도 애정입니다.
언젠가 원주에 있는 지하상가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지하상가를 거쳐 필방筆房 앞을 지나자니까 필방 주인 박 형이 “선생님 잠깐만 저 좀 보고 가세요” 하기에 필방에 들렀습니다. 그는 옛날 편지 하나를 내놓고 초서草書로 써서 도무지 알 수 없는데 편지 내용이 무엇이냐고 물어왔습니다.
들여다보니 친구가 병환 중에 있는 벗에게 약재와 그 처방을 자세히 일러주고 복용법까지 어떻게 하라는 사연의 편지였습니다. 그런데 원체 나도 단문短文하고 무식한 사람이라 그 편지에서 다섯 글자를 알 길이 없었습니다. 모르는 다섯 글자를 초서에서 해서楷書로 고쳐 써주면서 옥편을 보라고 하였습니다.
필방 주인은 고맙다고 하였는데 느닷없이 옆에 있던 고등학생이 그 편지를 필방 주인인 박 형한테서 받아들었습니다. 그 학생은 옆에 있는 소파에 나를 앉으라 하더니 그 편지를 다시 풀이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박 형에게 일러준 대로 다시 풀어서 일러주고는 다섯 글자를 모르니 옥편을 찾아보라고 말했습니다.
그 순간 학생은 “그것도 모르면서 서예가예요, 에잇” 하고는 휭하니 필방을 나가는 것이었습니다. 필방 주인은 무안해서 미안하다고 두 번 세 번 인사를 하는데 나는 멍한 순간이 지나자 통쾌함을 느꼈습니다. 저런 젊은 학생이 아니면 누가 이 바닥에서 시원하게 나를 혼낼 것인가 하고 생각하였습니다. 지하상가를 나와 대로를 걸으면서 나는 생각했습니다. 살아가면서 배운다는 것이 노소老少가 없을진대 아까 그 학생이 선생님이고, 이 못난 사람이 학생 중에서도 덜떨어진 학생이로구나 하는 것을 선연히 느끼게 되는 기쁨을 맛보았습니다.
나는 어려서 ‘상하소반上下所反’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는 말로, 우리집에서 어른들이 말씀하신 것으로 압니다. 특히 그것은 나에게 잘 들려주신 말씀이기에 지금까지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어릴 적 일인데 아버님께서 싸리나무를 여러 단, 지게꾼을 시켜서 장에서 사 가지고 오셨습니다. 아버님께서는 나와 동생에게 뒤뜰 안 채마밭에 병아리들이 들어가 어린 배추와 무를 뜯어 먹으면 김장은 낭패니 너희 형제들이 싸리바자를 엮어서 울타리를 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내 나이가 열두 살이었고 동생은 아홉 살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린 동생이 엮은 바자는 꼿꼿하게 서 있고 내가 엮어 세운 것은 서 있지를 못하고 학춤을 추고 있었습니다. 밖에서 돌아오신 아버님께서 보시고 걱정의 말씀을 하십니다.
“이놈아 네가 해놓은 것은 그게 무엇이냐, 병아리들이 다 드나들게 만들었으니 동생만도 못하고 참 답답하구나. 무엇에나 상하소반이니 이다음에 무엇을 제대로 하겠느냐.”
아버님의 말씀이 지금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지금 생각하니 참 고마운 말씀이었다는 것을 잊을 길이 없습니다.
어려서 나는 학교에 다닐 때 1등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한껏 해야 3등 그렇지 않으면 5~8등 정도에서 맴돌았습니다. 그런데 옛날에 돌아가신 형님과 누님은 매번 1등만 하셨습니다. 우리 집안에서의 별명은, 특히 아버님으로부터 얻은 내 별명은 ‘먹통’이었습니다. 그러나 조부님께 성적표를 보이면 “잘했다, 앞으로 더 잘해라” 하시면서 격려해주셨습니다.
형님이 15세에 이 세상을 떠난 후 조부님께서는 둘째 손자인 나에게 한문과 붓글씨 쓰는 것을 가르쳐주셨습니다. 아마도 내가 다섯 살 때인 것 같습니다. 조부님 앞에서 《천자문》의 한 구절을 외우는데, 수십 번을 가르쳐주셔도 단 석 자를 외우지 못하니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옛날에 아주 머리가 둔한 아이가 있었는데, 천지현황天地玄黃을 3년 동안 꾸준히 익혔었단다. 그래서 나중에 문장을 지었는데, ‘천지현황天地玄黃을 삼년독三年讀하니 언재호야焉哉乎也는 하시독何時讀일고’라고 했단다. 너도 그러면 된다. 책 덮고 나가 놀아라.”
지금도 잊을 수 없는 말씀입니다. 아이들이 밖에서 놀자고 부르는 소리를 조부님도 알고 계셨기에 사정을 보아서 해방을 시켜주신 것이라고 지금에서야 생각합니다.
이렇게 미련한 나에게도 낮에는 하늘의 태양이 밝게 비추어주시고 밤에는 달이 자정慈情의 빛을 주시며 땅은 필요한 만물을 제공해주십니다. 이 못난 남편을 아내는 주야로 걱정하면서 건강하게 좋은 일 하기를 바랍니다. 내 자식 3형제는 훌륭한 아비 되기를 항상 마음에 간직하고, 내 아우들은 이 무능한 형을 공경하며, 세상의 많은 선배 후배 친지들은 건강하고 도통하여 세상만민에게 많은 복을 베풀기를 바라니, 나의 인생이 이 이상 더 행복하고 기쁠 수 있겠습니까?
(1988년)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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