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보용 소설
지난 7월 16일부터 22일까지 일주일 동안 인터넷 서점 ‘유어북’에서 실시한 ‘한국의 대표 천재 작가’를 묻는 설문에서 이상李箱이 52.3%(응답자 171,263명 중 89,750명)로 1위에 꼽혔다. 이상에 이어 매월당 김시습이 42.6%로 2위를 차지했으며, 그 다음으로 백석(2.7%), 허난설헌(1.3%) 등 순으로 조사됐다. 이번 설문에서 이상과 김시습은 압도적인 표차로 1, 2위를 차지하며 ‘한국 문학사의 천재’임을 입증하였다. 이 결과를 접한 누리꾼들 사이에서는 ‘두 천재’의 평행이론이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그들은 폭력과 불의로 그늘진 시대에 태어나 기성 문단의 주류적 흐름을 거부하며 독자적인 길을 걸었다.
서로 다른 시대를 산 두 사람의 운명이 같은 패턴으로 전개되는 그들의 평행이론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누리꾼들은 이상이 필명이라는 사실에 주목하였다. 이상의 본명은 김해경金海卿. 김해경과 김시습, 두 사람 모두 본관이 강릉江陵이라는 점을 찾아낸 누리꾼들은 퍼즐의 마지막 조각을 맞춘 것처럼 환호했다. 강릉김씨의 시조 김주원金周元은 신라통일을 이룩한 태종무열왕 김춘추金春秋의 5세손, 김시습은 22세손, 이상은 36세손이다.
누리꾼들의 관심은 자신들이 전개한 평행이론을 증명해줄 또 한 명의 천재 작가를 찾는 것에 집중되었다. 그리고 단 하루 만에 그들은 생존해 있는 강릉김씨 40세손 소설가를 발견해냈다.
글 쓴 관상이 아닌데.
그녀의 얼굴에서 들고 온 가방으로 시선을 옮기며 나는 혼잣말하듯 중얼거렸다. 한 학기 대학 등록금과 맞먹는다는 고가의 명품 가방이었다. 그 가방에서 그녀는 파일 하나를 꺼내 내밀었다. 한눈에 보아도 꽤 많은 양의 종이뭉치였다. 나는 한손에 잡고 부채질하듯 쓱 넘겼다. 첫 장은 그녀에 관한 간단한 프로필이고, 그다음부터는 그녀의 단편소설이 이어졌다. 모두 열다섯 편으로 백오십 페이지가 넘었다. 자신이 쓴 소설을 모두 챙겨온 모양이었다.
대표작이 뭐지요?
내 질문에 그녀의 얼굴이 조금 굳어졌다.
안젤라가 있던 자리요. 그게 등단작이에요.
짧게 대답을 마친 그녀는 왼쪽 가운뎃손가락에 낀 반지를 다른 손으로 만지작거렸다. 데뷔작이 대표작이라. 묵주처럼 반지를 쓰다듬는 그녀의 손길에서 나는 그녀가 약속을 세 번 취소했었다는 걸 기억해냈다. 휴대폰을 들었다 놨다 망설이는 그녀의 모습이 눈에 보이는 듯했다.
문예지에 한 번 실은 적이 있긴 한데……
작품을 한 번 발표했었다는 사실이 그녀를 더욱 조바심 나게 했을 것이다. 적당한 양의 희망과 절망, 그리고 약간의 기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데 요구되는 필수 조건이다. 작품활동이 전혀 없을 때보다 이런 경우 대화는 쉽게 풀릴 확률이 높았다.
소설가 오정희 씨 아시죠?
나도 모르게 말이 거칠게 튀어나왔다. 계약을 따낼지 모른다는 섣부른 예감 때문이었다.
문청치고 그 선생 소설 필사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거예요. 그런데 강남역 한복판에 서서 오정희 아느냐고 물어보면 몇 명이나 안다고 할까요.
내 말에 외까풀 진 그녀의 작은 눈이 더욱 가늘어졌다. 나는 미리 준비해둔 말을 속사포처럼 뱉어냈다. 오정희의 경쟁자는 박완서나 황석영, 요즘 잘 나간다는 박민규나 김애란이 아니에요. 아프니까 청춘이다,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언니의 독설 이런 책들이죠. 요즘 대세는 힐링과 자기계발인 건 아시죠? 오정희 소설 속 여자 주인공들은 작가처럼 점점 나이가 들잖아요. 그걸 포인트 삼아 이십 대 삼십 대 사십 대 여성이 읽는 자기계발서 시리즈로 팔면 어떨까요. 읽기 쉽고 가벼운 교양서적으로 이미지 메이킹하는 거죠. 판매량이 두세 배는 늘어날 걸요. 다 어떻게 이미지 세팅을 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거죠. 그 작업을 지금 진행 중에 있다는 말까지 한 다음 나는 그녀의 반응을 살폈다. 유명한 작가의 이름을 거론하는 것은 나에 대한 신뢰도를 높이는 동시에 의뢰인을 안심시키는 역할을 하기 마련이다. 물론 나는 오정희에게 일을 의뢰받은 적이 없었다. 오정희란 작가를 만난 적조차 없었다. 하지만 진행 중이란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이미 내 마음속에는 수백 명 작가의 이미지맵이 그려져 있는 상태였다.
반지는 여전히 그녀의 손에서 빙빙 돌고 있었다. 그녀는 지금 갈등 중이리라. 아이돌 가수나 영화배우처럼 이미지 관리라니. 문학의 순수성을 상업적 마케팅으로 오염시키는 것은 아닌지 마음 한구석이 찜찜할 것이다. 자본주의니 신자유주의니 하는 말들로 비난받을까 불안하고 두렵기도 할 것이다. 자칫 잘못하면 상업주의 작가라는 주홍글씨가 새겨질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렇다고 이대로 무명작가로 살아가고 싶진 않았다. 데뷔하고 청탁은 단 한 번뿐이었다. 놀고 싶고 쉬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고 소설을 써놓은들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하드디스크에 소설이 하나둘 쌓여갈수록 그녀는 점점 조급해져 갔을 것이다. 그녀의 비대칭적인 입술이 눈에 들어왔다. 얇은 윗입술은 외톨이 소녀의 새침한 표정을 두툼한 아랫입술은 장인의 오래된 굳은살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녀는 입을 꽉 다물고 있었지만 나는 그녀의 마음을 읽어낼 수 있었다. 말없이 나는 파일을 덮었다. 그리고 테이블 위로 세게 던졌다. 탁, 하고 날카로운 마찰음이 났다. 나를 주시하는 그녀의 시선이 느껴졌다.
평생 소설 쓰는 김은정으로 남고 싶으세요?
내게 보낸 메일에서 그녀는 자신을 ‘소설 쓰는’ 김은정이라고 소개했다. 의문으로 남았던 그녀의 자기소개는 오늘 그녀를 직접 만나고 나서야 비로소 해결되었다. 등단한 다음 해 봄에 발표한 작품을 제외하곤 그녀의 활동은 전무했다. 소설가라고 하기엔 스스로 멋쩍었을 이력이었다. 그렇다고 그냥 김은정이라고 하기에는 동명이인의 시인이 마음에 걸렸을 것이다. 두 권의 시집을 출간한 화려한 외모의 그 시인은 이미 문단에서 유명 인사였다. ‘소설 쓰는’이란 딱지는 소설가 김은정으로선 피할 수 없는 선택인 셈이었다. 필명을 사용하지 않는 이유를 따로 묻진 않았지만 그것도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새로운 이름을 지어 쓴다 한들 그녀의 가족들과 친구들은 그녀를 은정아, 라고 부를 것이고, 은행이나 동사무소에서 그녀는 김은정이라고 적힌 신분증을 내밀어야 했을 것이다. 달라질 것은 없었다. 이름 석 자 중 한 글자만 바꾸는 것은 어떨까 고민도 해보았을 것이다. 강은정, 김은서…… 여러 이름을 떠올리다 그녀는 결국 김은정인 게 낫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너훈아나 조용팔처럼 이미테이션 가수가 되는 기분이 들었을 테니까. 자기 자신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낯선 사람이 살고 있는 듯한 불쾌함과 자괴감. 평생 ‘소설 쓰는’ 김은정으로 남고 싶으냐는 나의 질문은 그러니까 그녀를 소설가이기 이전에 ‘사람’ 김은정으로서의 존재 증명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카드 되죠?
그녀의 물음에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모든 사건사고를 사람의 문제로 환원시키는 것. 그것은 소설 창작의 기본이다. 작가의 이미지 관리를 창작의 일환으로 여기게 하는 것 또한 이미지 마케터인 내가 의뢰인을 위해 하는 일 중의 하나였다. 그건 이 프로젝트를 성공시키기 위한 가장 중요한 작업이기도 했다. 그녀가 사무실 문턱을 넘어선 순간부터 소설가 김은정의 이미지 매니지먼트는 이미 시작된 것이었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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