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펴내며
혁명이 예고되고 있다. 트럼프, 샌더스 현상에 이어 브렉시트까지, 지금까지는 불가능해 보였던 탈주의 시도들이 연이어 우리의 예상을 뒤집고 있다. 심지어 벤처 투자로 천문학적 돈을 번 앨런 머스크Allen Musk 스페이스X 회장은 이를 대부분 우주로의 탈출에 쏟아붓고 있다. 평상시 같으면 10년에 한 번 날까 말까 한 이러한 극적인 사건들이 연이어 지면을 장식하고 있다. 지금은 어쩌면 근대 문명사의 중요한 기점이 된 미국혁명이나 프랑스혁명, 혹은 68혁명과 같은 세계사적 전환기인지도 모른다. 시야가 더 넓은 거장들은 호모 사피엔스가 지배해온 신생대 문명이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고 진단한다. 100년 후 인류는 (여전히 지구에 존재한다면) 지금 이 시대를 어떻게 기억할까? 자기의 존재 기반으로부터 도망간 어리석은 시대로 기억할까, 아니면 새로운 문명의 문을 열어젖힌 지혜의 시대로 기억할까?
과연 이 혼돈과 탈주의 시대에 정치학자와 정치의 역할은 무엇일까? 나는 정치학자란 바로 이러한 당대의 기적과 같은 사건들이 가진 진정한 의미를 지혜롭게 해설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정치는 이 사건들을 매개로 기존에 불가능해 보였던 가능성을 새로 열어가야 할 것이다. 이 시점에서 나는 한나 아렌트가 떠오른다. 그녀는 미국독립혁명의 무한한 가능성에 주목하며 20세기에 위대한 정치가 복원되기를 꿈꾸었다. 그래서 그녀는 정치란 ‘위대하고 빛나는 성취가 가능하도록 그 방법을 가르치는 기예’라고 정의했다. 아렌트가 지금 살아 있다면 이 격변의 시기에 다시 『혁명론』On Revolution을 집필할지도 모른다. 아마 부제는 “다시 미국을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가 가장 적당할 것이다. 다만 트럼프가 이미 ‘위대한 미국’이라는 시대정신을 납치해 자신의 대선 슬로건으로 삼았다는 점이 곤혹스러울 뿐이다. 영국 브렉시트 세력의 대표 구호였던 “Take back our country”도 사실상 “다시 영국을 위대하게”와 같은 맥락이다. 고립주의, 국수주의, 보호주의 등 최근 득세하는 이념의 본질은 바로 ‘위대한’ 정치에 대한 갈망이다. 전 세계를 배회하는 이 유령은 낡은 회색빛 이론으로는 포착되지 않는다.
이제 과거의 교과서를 덮고 시대를 암시하는 사건들과 시민들의 꿈을 이론화하고 새로운 현실의 가능성을 열어갈 시점이다. 마침 나는 학교 일을 잠시 내려놓고 두 달간 미국을 여행했다. 트럼프 현상 등 이번 미국 대선에서 벌어지고 있는 기이한 사건들의 의미를 탐구하기 위해 아이오와에서 포틀랜드까지 여러 현장을 돌아다녔다. 이 짧은 여행을 통해 이번 미국 대선을 기존 이념과 정당, 그리고 정책의 대결로 이해하면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오히려 문명사적 대전환과 충돌이라는 프리즘으로 새롭게 바라보아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결국 이번 대선을 힐러리 대 트럼프의 대결이 아니라 미국 건국 초기의 근대적인 문명의 틀과 주도 세력이 모두 바뀌는 대전환기로 이해하고자 하는 것이 나의 문제의식이다. 원고를 탈고한 후 전 세계인을 충격에 빠뜨린 브렉시트가 발생하고, 그 근저에 있는 반이민 감정을 확인하고 나자 이 문제의식을 더욱 확신할 수 있었다. ‘트렉시트’Trexit: Trump+Exit나 브렉시트는 촘촘한 네트워크로 진화한, 전 지구적 제국의 질서로부터 탈주하고자 하는 시도이다. 이 네트워크 제국의 씨앗은 안토니오 네그리Antonio Negri와 마이클 하트Michael Hardt가 『제국론』Empire에서 이미 간파했듯이 미국 건국 당시의 헌법 이념에 담겨 있다. 수정헌법이 그러하듯이 미국의 주 동력은 부단히 재구성해나가는 열린 네트워크의 정신이다. 이 씨앗은 뉴딜과 유엔, 유럽연합 등의 탄생을 거쳐 오바마 시대에 이르러 만개했다. 오바마 시대는 미국이 과거 백인 중심의 민족국가에서 세계시민 제국의 허브로서 다원주의 국가로 본격적으로 도약한 시기였다. 이에 이은 미국의 힐러리 후보나 영국의 캐머런 총리는 다국적 기업과의 파트너십 속에서 강화된 네트워크 기업국가를 완성하고자 시도했다. 하지만 이 시도는 다양한 이념적 스펙트럼으로부터 도전과 탈주의 저항에 직면해 있다. 캐머런은 응전에 실패했고 힐러리는 당선되더라도 험난한 도전에 직면할 것이다.
나는 현 시점을 문명의 대전환기로 바라보는 문제의식에 바탕을 두고 이 책을 집필했다. 제1부에서는 트럼프와 샌더스라는 극단적 현상의 역사적 뿌리와 전개 양상의 독특함을 분석하였다. 한편 이 극단의 시대에 중도주의자에 불과한 오바마 대통령이 어떻게 레임덕에 빠지지 않을 수 있었는지 그 수수께끼에 답을 제시하고자 한다. 제2부에서는 본격적으로 문명사적 전환의 흐름을 다룬다. 포틀랜드로 상징되는 새로운 문명의 경향이 오늘날 가족 관계, 도시, 환경, 건강 등 다양한 이슈에서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풀어낸다. 한편 이에 대한 반동으로 헌팅턴이 지적한 문명의 충돌이 이민 이슈 등을 중심으로 일어나는 양상을 추적한다. 이어 힐러리나 트럼프 혹은 머스크 등의 리더들이 오늘날 미국인의 마음속에 자리 잡은 영웅 모델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지를 문화론적으로 분석한다. 그리고 미국 리더십에서 미래 세대에 대한 철학과 우주 속 지구 행성의 소명이야말로 중요한 화두가 될 것이라고 진단한다. 마지막으로 결론에서는 문명의 전환 관점에서 대선 후 미국의 정치 지형과 미래 경로를 전망한다. 본론에서는 이 대전환기의 미국이 롤러코스터 같은 대선을 앞둔 우리에게 어떠한 시사점을 주는지 분석한다.
(중략)
서장
미국 문명의 대전환기
: 상승하는 문명 대 퇴조하는 문명
백인 중년 남성 사망률의 증가와 정신적 운동의 고양, 이 두 가지 징후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 걸까? 2016년 5월 17일, 나는 아시안리더십컨퍼런스 회의장 뒤쪽에 앉아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연단에는 2015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앵거스 디턴Angus Deaton 교수가 경제학자다운 건조한 톤으로 수많은 연구 데이터를 쏟아내고 있었다. 자세한 설명 없이 데이터만 보여주었을 뿐인데도 누구나 그 함의가 심상치 않음을 단박에 느낄 정도였다. 그만큼 그가 제시한 표는 충격적인 추세를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그에 따르면, 의료 기술의 혁신에도 불구하고 최근 15년간 미국에서 45~54세에 이르는 백인 중년층(특히 저학력층)의 사망률이 가파르게 상승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으며, 이러한 현상은 OECD 선진국 중에서 유일하다고 한다. 지난 15년간 같은 나이대의 히스패닉과 흑인의 경우 각각 10만 명당 60명과 200명 정도씩 사망률이 감소했다. 반면 백인 중년층은 10만 명당 34명 정도가 증가한 것이다.
이러한 추세는 백인 중년층이 자가 진단한 질병 상태 보고에서도 그대로 확인된다. 일상적 활동을 영위할 능력의 감소, 만성 고통 등 육체적 건강과 정신적 건강 상태의 악화는 이들이 무언가 심각한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는 걸 시사한다. 또한 헤로인 같은 약물 중독이나 자살 등이 사망률의 주된 증가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사실도 놀라웠다. 지금까지 심각한 약물 중독은 흔히 미국의 주류 백인들이나 할리우드 영화가 못사는 우범 지역의 흑인들을 묘사할 때 고정관념처럼 사용해온 현상이다. 하지만 2006년 이후 술과 약물 남용으로 인한 백인 중년층 사망률이 흑인 중년층의 사망률을 넘어섰으며, 심지어 2013년에는 10만 명당 19명 이상 차이가 나고 있다. 이제 백인 저소득층 중년 남성의 사망률 통계 자료는 미국을 대표하는 병리 현상의 원인으로 등장한 셈이다.
디턴 교수와 함께 토론자로 나온 글로벌 스타 경제학자 제프리 삭스Jeffrey Sachs 컬럼비아대학 교수는 이 놀라운 사망률 증가 추세가 소비에트 연방 붕괴 직전의 정신적 공황과 사망률 추세를 연상시킬 정도라고까지 표현했다. 과거 소비에트의 시민들은 자신들이 유토피아라고 믿어온 사회주의가 무너지면서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잃어버리고 보드카에 몸을 내맡긴 바 있다. 물론 사회주의 붕괴 당시의 극심한 카오스처럼 미국인 전체에 정신적 공황과 사망률 증가 추세가 드러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적지 않은 백인들이 더 이상 아메리칸 드림을 믿지 않는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렇다고 해도 미국의 걸출한 주류 경제학자들마저 자신들의 입을 통해 현재 미국의 상태를 과거 몰락한 소비에트에 비유할 줄은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특히나 컨퍼런스장에서 이런 이야기가 공공연하게 나오는 것을 보고 나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디턴 교수의 마지막 말은 더욱 의미심장했다. 그는 사망률이 높게 나타난 백인 남성들이 주로 도널드 트럼프 대선 후보의 지지자들과 겹친다고 강조했다. 어쩌면 트럼프를 통해 이들은 단지 분노를 넘어 뭔가 필사적인 SOS 신호를 보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정신적 운동의 고양은 도대체 또 무엇을 가리키는 걸까? 컨퍼런스장에 앉은 나는 잠시 몇 달 전 미국 방문길에 본 선거 캠페인이 언뜻 머릿속에 떠올랐다. 뉴햄프셔 주 경선장의 타운홀 미팅은 미국 선거전의 꽃이다. 특히 용호상박의 게임이 될 줄 전혀 예상하지 못한 힐러리 클린턴과 버니 샌더스의 불꽃 튀는 경쟁으로 2016년 2월 3일에 열린 뉴햄프셔 주 타운홀 미팅은 그 어느 때보다 세간의 관심이 집중되었다. 바깥에서는 폭설로 온 세상이 하얗게 뒤덮였지만 생방송으로 진행된 타운홀 현장 분위기는 어느 때보다 후끈 달아올랐다. 이날 날카로운 정치적 질문들이 몇 차례 이어진 후, 유대인 랍비 하나가 손을 들고 한 후보에게 물었다.
당신은 자유세계의 지도자가 되기 위해 이 자리에 나섰습니다. 그러면 한 가지 묻지요. 자유세계의 지도자로서 어떻게 자신감을 고양시킬 건가요? 동시에 미국 대통령은 엄청나게 중요한 많은 일을 처리하고 책임져야 합니다. 이때 인간이 항상 지혜로울 수만은 없다는 사실, 곧 실수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다시 묻지요. 당신은 겸손함을 어떻게 키워나가실 겁니까?
자신감과 겸손함이라는 두 가지 모순된 재능을 어떻게 동시에 가질 수 있겠느냐는 이 질문은 탈무드 경전 강독 시간이나 하버드대학의 철학 수업에서나 나올 법한 매우 심오한 물음이었다.
그간 뜨겁게 달구어진 정치 캠페인 현장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은 이 심오한 질문에 그 자리에 모인 시민들의 얼굴에는 순간 당혹감이 스쳤다. 당황하기는 미디어 종사자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뜻밖의 난해한 질문을 받은 후보의 반응이 궁금해 얼른 카메라를 후보에게 돌렸다. 호기심에 찬 시민들 또한 후보의 입에서 어떤 답변이 나올까 궁금해하며, 숨죽인 채 그의 입을 지켜보았다. 장내는 물을 끼얹은 듯 고요했다. 후보는 잠시 몇 초간 생각에 잠기는 듯 하늘을 올려다본 후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정치에서 겸손함은 자신의 역량과 한계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중략) 저는 아무리 고달픈 나날이 되더라도, 아무리 어려운 결정에 직면하더라도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려 합니다. 늘 인간이라는 사실에 감사하고, 또한 우주의 일부로서 살아가는 걸 감사하게 생각하려 합니다.
질문도 그렇지만 답변도 정치 유세 현장과 어울리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가슴에서 우러나온 후보의 무게감 있는 답변에 진심으로 따뜻한 박수가 터져 나왔다. 이 현장을 지켜보면서 나는 묘한 기분을 느꼈다. 그 후보는 나이 든 현자 스타일의 샌더스 의원이 아니라 전형적인 정치공학자 이미지로 알려진 힐러리 의원이었다. 어쩌면 힐러리 의원은 이번 대선에서 우리에게 정치적인 아젠다를 넘어 무언가 정신적인 메시지를 던지려 하는 건지도 모른다.
백인 중년 남성의 사망률 증가와 힐러리답지 않은 영혼의 메시지는 이번 2016년 대선이 심상치 않은 추세나 고민을 담고 있다는 걸 암시한다. 우리는 겉으로 드러나는 현상만을 다투어 보도하는 경마게임식 보도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지층 밑에서 벌어지는 추세를 깊이 응시해야 한다.
앞으로 본문에서 좀 더 자세히 살펴보겠지만, 거침없이 배설하는 듯 보이는 트럼프 막말과 그 돌풍의 이면에는 기존 백인 중심 문명의 황혼기에 대한 백인 남성들의 강한 절망감이 녹아 있다. 그리고 힐러리가 내비친 뜻밖의 사색적 화두에는 권력 추구를 넘어 영혼의 정치를 향한 리버럴 진영(미국 내 민주당 지지층의 진보적 성향을 가리킴)의 갈망과 고뇌가 슬쩍 드러난 것에 불과하다.
이제 우리는 미국 대선을 바라보며 좀 더 큰 질문을 던질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힐러리나 트럼프의 대선 아젠다나 정치 전략이 무엇인가와 같은 정치 현상에 초점을 맞춘 질문을 넘어서야 할 때가 되었다는 뜻이다. 도대체 어쩌다가 미국 백인 사망률이 급증하게 되었을까? 그리고 마치 파시스트에게서나 나올 법한 발언을 쏟아내는 트럼프라는 기이한 괴물을 어떻게 대선 후보로까지 만들게 되었을까? 지금까지 우리가 잘 안다고 생각한 전형적인 정치인 힐러리는 어떤 배경에서 뉴에이지 신비주의자 같은 발언을 하게 된 걸까? 게다가 자신이 당선되면 외계 문명에 대한 미국 비밀자료를 해체하겠다는 황당한 공약은 왜 내건 걸까? 무엇 때문에 지독하게도 천박한 트럼프 현상과 동시에 매우 정신적인 힐러리의 화두가 나란히 등장하는 걸까? 미국의 이례적인 백인 사망률 증가나 극단적인 트럼프 현상은 미국이 붕괴의 길로 가는 징후일까? 이 붕괴란 경제적 삶의 격차와 아메리칸 드림의 종말에서 오는 걸까? 소비에트의 몰락 시기처럼 단지 경제적 절망감만이 아닌 정신세계 전반의 붕괴 신호일까? 반대로 힐러리의 영성적 화두는 다시금 미국이 새로운 차원의 정신세계로 진화하는 여정을 의미하는 걸까? 도대체 미국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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