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가 떠나려면 두 시간이나 남았지만 랑글루아는 굴드와 만나기로 한, 역 근처 카페에 벌써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굴드가 되도록 짐을 적게 가져오라고 했기에 그는 여행 가방 하나와 어깨에 멜 작은 배낭 하나, 사진기와 수첩만 챙겼다. (잠시 후 그는 다른 일행들이 자기처럼 짐을 줄이지도 않고, 굴드 또한 트렁크처럼 커다란 여행 가방을 두 개나 끌고 온 걸 보고 짜증이 나게 된다.) 그는 들뜬 마음으로 생각했다. ‘벨기에로 가는 거야. 벨기에로!’ 곧 출발할 예정이었지만 그는 아직도 믿기지 않았다. 한 달 전, 피에르장 굴드가 그를 집으로 초대했다. 굴드는 카퓌신 로트, 레오노르 알베르, 뤼시앵 보르도, 장미셸 골란스키 등 그가 잘 알지 못하는 네 명의 유명 인사도 같이 초대했는데, 모임의 이유에 대해서는 말해주지 않았다. 굴드는 잔뜩 들떠 있었다. 그가 응접실 탁자에 유럽 지도를 천천히 펼쳤다. 그러고는 사인펜 끝으로 도시 두 곳의 이름에 동그라미를 쳤다. 파리와 브뤼셀. 손님들이 영문을 모른 채 그를 쳐다보자, 그는 설명이랍시고 이렇게 말했다. “출발지와 도착지야. 나와 함께 벨기에로 가자는 거지. 여행할 생각들 있어?” 그러고 나서 소파에 털썩 주저앉아 자신이 던진 말의 효과를 음미했다. 몇 초 동안 침묵이 흘렀다. 그 자리에 모인 달변가들에게 그건 엄청난 일이었다. 보르도가 억지로 웃으며 침묵을 깼다.
“농담이지! 농담이야!”
그는 숨이 넘어갈 듯 껄떡이다가 기침을 하고는 다시 말했다.
“농담 맞지?”
그러나 굴드는 입가에 미소를 띤 채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보르도는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지도를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네가 우리를 저기로 데려갈 수 있다고?”
“그래.”
이렇게 해서 랑글루아는, 도무지 예측 불가능한 굴드가 이 년 전부터 계획해온 이 파격적인 모험에, 바로 벨기에 여행에 끼게 된 것이다.
굴드는 왜 그를 선택했을까? 그는 다섯 명의 원정대원 가운데 굴드를 가장 잘 알지 못했다. 두 사람은 강연회, 그리고 라디오방송에서인지 텔레비전 방송에서인지 몇 번 마주친 적이 있었을 뿐 자주 만나는 사이가 아니었다. 랑글루아는 굴드에 대해 복잡한 감정을 품고 있었다. 그를 언변 좋은 과대망상증 환자요, 피곤한 인간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모두들 그러듯 조금은 그에게 감탄했고, 그의 개성을, 그리고 때로는 그의 위풍당당함을 인정했다. 그와 마음이 통하기도 했다(어찌나 변덕스러운지 굴드가 대부분의 사람들과 번갈아가며 마음이 통한다는 사실은 짚고 넘어가야겠다). 누가 굴드를 비방하면 랑글루아는 그저 웃어넘겼다. 그를 비판하는 것이 우습기도 했지만, 그렇게 가시 돋친 말을 한 사람도 저녁 모임에서 굴드가 건네는 인사를 받기 위해서라면, 카페에서 그와 함께 있는 모습을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해서라면 남몰래 값비싼 대가라도 치르리라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4월부터 9월까지 바이외에 있는 굴드의 집에서 열리는 주말 사교 모임에 초대받는 것은 대단한 특권이었다. 굴드에 대해 빈정거리는 사람들을 변호하자면, 그의 험담을 하는 것보다 쉬운 일은 없고 그러지 않기가 오히려 어렵다는 걸 인정해야 할 것이다. 그에 대해 수군거리자면 할 얘기가 너무도 많았다. 무엇보다 지성인이라기보다는 영화배우처럼 보이는 차림새가 그랬다. 괴상망측한 색(노란 밀짚색과 자홍색이 그가 좋아하는 색이었다)의 재킷, 그가 수집하는 특이한 안경들, 정치 구호가 적힌 셔츠들, 불빛 아래 서면 반지르르 광이 나는 민머리. 더구나 영화계에는 그를 동료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았다. 걸핏하면 이 시대의 양심 같은 표정을 짓고 복잡한 문장을 구사하며 젠체하다가, 대개 끝맺지 못하고 얼버무리는 태도에 대해서도 할말이 많았다. 모든 영역에서 자신이 천재인 양 으스대며 온갖 주제를 건드리고 싶어하는 강박증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글을 쓰는 것으로 만족하지 못했다. 만능 예술가가 되어야만 했다. 그래서 에세이뿐 아니라 소설, 시, 극작품까지 출간했다. 대형 추상화도 왕성하게 그렸는데, 완성된 그림들은 친구들이 그의 평판을 높여주려고 눈을 질끈 감고 샀다. 심지어 조각까지 시도했지만 끝내 손을 다친 뒤로 포기했다. 몇 안 되는 그의 조각 작품 가운데 하나는 어느 변두리 지방 도시의 중심 광장을 장식하고 있다. 그 시절 한 친구가 시장으로 있던 도시의 시청에서 구매한 것이었다. 또한 그는 자신이 작곡한 교향곡을 연주하는 오케스트라를 지휘하기도 했다. 그 연주를 음반으로 만들었다가 평론가들로부터 혹평을 받았다. 그리고 라디오 좌담도 진행했는데, 십 년 동안 이어진 이 좌담에 프랑스의 주요 인사들이 모두 거쳐갔다. 텔레비전 출연도 시도했지만 방송이 두세 번 나가다가 중단되었다. 세계 곳곳을 여행하며 장황한 탐방기사를 쓰고, 사진을 곁들인 책들을 펴낸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돌출 행동, 잦은 파티, 상대를 가리지 않는 논쟁, 세 번의 결혼. 그에 대한 말이 나오지 않고 보름을 넘기는 일이 드물었다.
굴드에 관한 책이 두 권 출간되어 있었는데, 랑글루아는 그에게 호감을 가져보려고 그 책들을 읽었다. 첫 번째 책은 출세를 염두에 둔 여기자가 쓴 약간 밋밋한 전기였다. 그녀는 ‘인물의 어두운 부분’이라고 일컬은 측면에 대해서는 일부러 침묵했다. 다른 책은 두 명의 노련한 논쟁꾼이 쓴 작품으로, 바로 그 어두운 부분을 겨냥했다. 형성된 경로가 수상쩍은 굴드의 엄청난 재산, 마피아와의 관계, 그 관계에서 얻어낸 이득, 변절, 숱한 거짓말들. 그가 대놓고 학력을 위조하고, 유명 인사들과 친구 사이라고 속이고, 내세울 만한 행동들을 지어낸 걸 보면 장난인지 아니면 병인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그에 대한 책을 읽다가 랑글루아는 생각에 잠겼다. 이렇게 변화무쌍하고 의심스럽고 못 미더운 사람을 따라 원정을 떠나는 것이 분별 있는 행동일까? 그렇지만 내심 자신이 거부하지 않으리라는 걸 알고 있었다. 벨기에는 유럽 한가운데 자리한 신비스러운 나라였고, 모든 기자들이 가기를 꿈꾸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벨기에 당국에 방문 요청이 물밀 듯이 쇄도했으나 이십여 년 전부터 아무도 그곳에 들어가지 못했다. 1990년대에 마지막으로 여성들이 그곳에 정착한 뒤로 그들의 소식을 전혀 알 수 없었다. 지금 벨기에는 미지의 나라로 온갖 추측의 대상이었다. 그러니 굴드에게 신뢰가 가지 않는다는 이유로, 랑글루아가 그 나라에 갈 한 번뿐인 기회를 마다하겠는가? 그럴 리가! 게다가 굴드는 결단코 모험을 즐기는 사람이 아니다. 어떤 일에 뛰어들 때에는 가능한 수단을 총동원해 확실하게 실현시키고 만다. 이 여행을 위해 이 년 동안 준비 작업을 했다고 그가 말하지 않았는가. 벨기에 당국과 끝없이 뒷거래를 하고 제국의 밀사들을 비밀리에 만났다지 않는가. 모든 것이 제대로 준비되었을 것이다. 그들은 환영받을 것이고, 무엇 하나 우연에 기대는 일 없이 계획대로 진행될 것이다. 랑글루아의 들뜬 머릿속에서 그 나라를 보고 싶다는 호기심과 그 땅을 밟고 싶다는 부푼 마음이, 굴드와 네 명의 패거리 사이에 자신이 낄 만한 이유가 없다는 생각을 눌러버렸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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