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부/
전지구적 무대 뒤의 가려진 여성
10장
지구적 이 차선 도로 위에 놓인 돌봄
전세계로 뻗은 양방향 이 차선 고속 도로는 남반구의 가난한 나라들과 북반구의 부유한 나라를 잇고, 동유럽의 가난한 나라들과 서유럽의 부유한 나라들을 연결한다. 필리핀 출신 아이 돌보미는 미국인 아이를 돌보려 북쪽으로 향한다. 스리랑카인은 싱가포르에 살고 있는 노인을 보살핀다. 우크라이나 간호조무사는 스웨덴 병원에서 환자가 먹을 점심을 쟁반에 담아 나른다. 반대로 은퇴한 캐나다 노인들은 멕시코에 집을 마련해 그곳으로 떠난다. 영국의 한 불임 커플은 대리모를 고용해 아이를 낳으러 인도로 향한다. 이런 여러 사례들을 종합해 살펴보면, 마르크스를 대표하는 아이콘인 비유동적 남성 산업 노동자는 비유동적일 뿐 아니라 유동적이기도 한 여성 서비스 노동자라는 새로운 아이콘으로 대체되고 있다.
서류 가방을 들고 제트기를 타고 다니며 전세계고급 호텔에서 거래를 성사시키는 ‘제트족’ 사업가들처럼 전세계의 자유 시장을 누비고 다니는 사람들에게서 눈을 돌려 쓸쓸한 세계 무대의 뒤편으로 걸음을 옮겨보자. 그러면 우리는 위에서 살펴본 국제 이 차선 도로 중 하나를 따라간 여성 이주 노동자를 마주하게 된다. 이 여성들은 대부분 길을 포장하거나 건물을 짓거나 잔디를 깎는 육체노동자가 아니라 사람을 돌보는 감정 노동자다. 감정 노동자로서 이 여성은 한편으로는 자기가 돌보는 사람들뿐 아니라 자기를 고용한 사람들하고 맺는 관계도 잘 유지해야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고향에 두고 온 가족들을 그리워하며 가슴 아픈 생이별의 고통도 잘 견뎌내야 한다. 이런 여성 노동자의 숨겨진 이야기는 불평등이 극대화된 세상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는지를 알려준다.
여성 돌봄 노동자들의 전세계적인 이주 흐름은 크게 다섯 개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동유럽에서 서유럽으로, 둘째는 멕시코와 중남미에서 미국으로, 셋째는 북아프리카에서 남유럽으로, 넷째는 남아시아에서 석유 자원이 풍부한 페르시아 만 지역으로, 다섯째는 필리핀에서 홍콩과 미국, 유럽, 이스라엘을 포함한 세계 각지로 나아가는 이동이다. 어머니인 여성 혼자 떠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부모가 모두 떠나는 경우도 종종 있다.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는 2003년 우크라이나 서부 지역 마을들의 상황에 관해 이렇게 썼다. “산간 지역에 살고 있는 성인들은 대부분 중유럽과 서유럽에 있는 일자리를 찾아 산을 내려와 불법으로 국경을 넘는다. 그렇지만 대가는 혹독하다. 아이들은 조부모하고 함께 마을에 남아 있고, 산간 지역 노동 인구는 갈수록 줄어들었다.” 사람들을 이주하게 만드는 요인은 많다. 제2세계와 제3세계의 경제 붕괴와 경기 침체, 정치 불안, 다른 나라들에서 얻을 수 있는 경제적 기회 등이 이주를 부추긴다.
지난 100년 동안 이주에 관련된 연구들은 남성 이주 노동자라는 패러다임을 벗어나지 못했다. 이런 모습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전세계이주자 인구는 2억 1400만 명 정도로 이 중 절반(세계인구의 3.1퍼센트)이 남성이고, 유급 직장을 찾아 이주하는 사람도 대부분 남성이기 때문이다. 여성들은 대부분 가족을 재통합하려 이주한다. 그렇지만 오늘날 우리는 직업을 찾아 이동하는 여성 이민자 비율이 증가하는 현상, 곧 이주의 ‘여성화’를 목격하고 있다.
얼마 전까지 제1세계학자들은 여성의 이주 흐름을 돈과 노동의 문제로 보고 여기에만 초점을 맞췄으며, 일과 가정의 균형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제1세계가족들만 시야에 넣고 있다. 그렇지만 이주 노동자들의 삶에도 감정은 있으며, 오히려 다른 사람들보다 더 고통스런 감정에 휩싸인다. 고객들이 서비스를 이용하러 찾아가는 제3세계의 많은 여성들에게도 이런 문제는 똑같이 적용된다.
이주 여성 노동자들은 열심히 돈을 벌어 고국으로 송금한다. 이 돈은 여러 가지 일에 쓰인다. 미셀 갬버드와 그레테 브로흐만이 연구한 스리랑카 출신의 한 가정부는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집을 구하고 음식을 마련하라며 고국에 있는 가족들에게 돈을 보내고 있었다. 라셀 빠레니야스가 연구한 필리핀 아이 돌보미들은 고국에 있는 자녀의 수업료, 주거 환경 개선 비용, 집에 머무는 현지 아이 돌보미를 고용하느라 돈을 많이 썼다. 고국에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 곧 자녀, 남편, 부모, 친척뿐 아니라 교회와 지역 사회도 모두 이주 아이 돌보미가 보내주는 수입에서 이익을 얻는다. 제3세계정부들도 이렇게 들어오는 경화 덕분에 많은 이익을 얻는다. 실제로 여성 이주 노동자들이 벌어들이는 수입이 국내 총생산의 중요한 부분이 된다는 사실을 잘 아는 필리핀 정부는 오랫동안 여성 이주 노동자들을 모집하고, 훈련하고, 지원하고 있다. 받는 쪽이 되는 제1세계의 고용주는 도움이 절실하게 필요한 이주 노동자가 제공하는 서비스를 기꺼이 받아들인다. 여성 이주 노동자에 관련된 모든 사람들은 자기가 받고 있는 혜택을 인정한다. 그리고 그 사람들은 이주 여성들의 이런 선택이 심사숙고한 가족 전략, 현명한 정부 정책, 지난 30년 동안 이어진 개발도상국의 문화적 규범 등을 잘 드러내는 현상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렇지만 돈과 일에만 초점을 맞춘 대화 속에는 여성 이주 노동자들이 겪는 감정적 희생이 빠져 있다. 세계화는 ‘자유 시장’ 안에서 일어나는 ‘자유 선택’에 집중할 뿐 아니라 세계화라는 무대 앞에 서 있는 사람들의 삶을 주로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 무대 뒤에서 자기들의 ‘자유 선택’ 때문에 더 많은 감정적 희생을 치르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은 잘 이야기하지 않는다. 세계화 담론이 향하는 방향을 더 확실하게 보여주고 싶은 나는 그 무대 뒤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겪는 감정적 희생에 초점을 맞추기로 했다.
남성 이주를 연구한 조사들도 대부분 경제적 부양자라는 측면에 초점을 맞출 뿐 일을 하면서 어쩔 수 없이 희생해야 하는 감정은 중요하게 다루지 않는다. 우리는 암스테르담의 거리를 청소하는 터키 남성 이주민이나, 캘리포니아 교외의 가정집 정원에서 울타리를 손질하는 남성 이주 노동자, 플로리다 오렌지를 수확하거나 시카고의 어느 도살장에서 닭을 잡는 멕시코 남성 이주 노동자를 상상할 수 있다. 그렇지만 그 노동자들이 느끼는 감정은 종종 간과되고 있다. 이를테면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많은 아프리카 남성들은 인종 차별 탓에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광산으로 가 석탄, 금, 다이아몬드를 캔다. 이 남성들은 일 년 중 11개월은 가족하고 떨어져 광산에서 일하고 오직 한 달만 고향에 머물 수 있었다. 한 광부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 경제학자인 프랜시스 윌슨에게 날마다 아이들을 지켜보면서 키우던 때가 그립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그 광부는 더 강한 어조로 이야기했다. “아이들을 보고 기운을 얻던 때가 그립습니다.”
여성 이주 노동자의 비율은 지난 40년 동안 계속 늘어나고 있다. 남성 이주 노동자들에 견줘 여성 이주 노동자들은 고국에 두고 떠나온 자녀를 키우는 일이나 늙고 아픈 부모를 모시는 일 등을 제 할 일로 여기는 경우가 훨씬 더 많았다. 이 여성들은 대부분 20대 후반이나 30대나 40대에 이주를 하는데, 이런 나이에는 자기 자녀들도 키워야 한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이주 여성들은 이주 아빠들에 견줘 자기에게 더 강한 애착을 갖는 자녀를 남겨두고 떠나기 때문에 엄마와 아이 모두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게 된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모든 여성 이주 노동자가 돌봄 노동을 하지는 않으며, 모든 돌봄 노동자가 외국에서 오지도 않는다. 지난날에도 미국에서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인 노예 어머니들과 여러 인종에 속하는 가난한 미국 여성들이 다른 사람이 낳은 아이들을 오랜 시간 돌보느라 정작 자기 아이들은 집에 남겨두고 오는 일이 종종 있었다. 우리는 그런 여성들의 이야기가 이제 지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고 믿고 싶어 한다. 그렇지만 사실 이런 여성들의 삶은 지금도 계속 이어지고 있으며, 오히려 전세계로 확산되는 중이다. 미국의 많은 흑인 여성들이 더 나은 월급을 주는 직장을 구하느라 가정에서 개인이 수행하던 돌봄 노동을 그만두고 있는 반면, 다른 많은 이주 여성들은 흑인 여성들이 떠난 그 자리에 대신 들어가 일하고 있다. 20세기 초만 해도 이주 여성들은 고국에 아이들을 남겨두고 떠나오지 않았다. 로블스와 왓킨스는 1919년 미국으로 이주한 여성 중 오직 7퍼센트만이 고국에 자녀를 남겨두고 왔다고 추정한다. 오늘날 이 수치는 아주 높아졌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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