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상황
1강
현대 사회+에너지
가라앉는 석유 문명에서 어떻게 탈출할까
저에너지-생태 기술 시대에서 고에너지-화석 기술의 시대로
인류가 처음 쓴 에너지는 불이다. 불을 쓰면서 인류는 동물 같은 생활 방식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먹을거리를 삶거나 구울 수 있게 됐고, 난방을 하게 되면서 혹독한 날씨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나뭇가지 등을 태워 불을 이용하는 이런 에너지 활용 방식은 인류 역사에 획을 긋는 변화지만, 그 뒤 인류가 개발하는 에너지 이용 방식과 양에 견주면 아주 초보 단계일 뿐이었다. 인류가 또 한 번 도약한 계기는 가축이다. 단순 수렵 상태에서 순한 짐승을 곁들여 가축의 힘을 이용하기 시작하면서 농경 문화가 발달했다. 농경 발달은 먹을거리를 풍요롭게 해 인류의 수명을 늘리고 정착 생활을 하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그 뒤 인류는 농경을 중심으로 문명을 발달시키면서 바람과 물 에너지 등을 활용하게 됐다. 이런 생활 방식은 수천 년 동안 계속됐다.
오랜 기간 이어진 인류의 생활 방식은 19세기에 들어서면서 석탄, 석유, 천연가스 같은 화석 연료 덕에 완전히 뒤바뀌었다. 화석 연료를 발견하고 사용한 역사는 좀더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이를테면 영국, 특히 런던 같은 대도시 사람들은 땔감이 귀해지자 1세기 중반부터 석탄을 난방 에너지로 쓰기 시작했지만, 석탄 사용량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때는 산업용 에너지로 쓰이기 시작한 산업혁명이 시작된 뒤다. 인류는 석탄을 활용하기 시작하면서 가축 에너지나 자연 에너지를 훨씬 뛰어넘는 동력원을 갖게 됐다. 특히 석탄을 태워 동력을 얻는 증기기관이 발명되고 획기적으로 개량되면서 기술 문명이 짧은 시간에 빠르게 발전했다. 증기 기관을 이용한 기관차와 배로 많은 물자를 짧은 시간에 운반할 수 있게 되면서 지역적 삶이 무역을 중심으로 하는 전지구적 삶으로 확장되는 계기를 마련했으며, 석탄에서 나온 가스로 도시의 밤을 밝힐 수 있게 됐다. 또한 석탄에서 나온 염료 등은 산업용 원료로 사용됐다. 1800년에 1500만 톤이던 연간 석탄 생산량은 1900년 무렵에는 7억 톤으로 늘었다.
19세기가 석탄의 세기라면, 20세기는 석유의 세기다. 1895년 미국에서 상업용 유전이 처음 시추된 이래 현대 사회의 모든 요소들은 석유 에너지에 아주 가깝게 연결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조명용 연료나 윤활유 정도로 활용된 석유는, 곧 등장한 내연 기관의 연료로 이용되면서 사용량이 크게 늘기 시작했다. 자동차가 등장한 뒤 석유 소비량은 1890년 1000만 톤에서 1970년대 2억 5000만 톤으로 늘었다. 자동차와 석유와 도로는 서로 이어진 복합체를 형성하며 20세기 현대 사회를 대표하는 기술 문명이 됐다. 자동차, 배, 비행기 등 석유를 쓰는 운송 수단의 수송 능력을 크게 높이는 결정적 계기가 됐고, 지구적 차원에서 노동력과 상품의 이동이 폭발적으로 늘었다. 또한 농업 생산도 석유에 긴밀히 연계됐다. 화학 비료, 농약, 농기계를 이용하게 되면서 생산량이 늘었고, 전세계를 무대로 농산물 무역을 할 수 있게 됐다. 한편 나일론이나 아스팔트 같은 석유 화학제품이 등장하면서 석유는 단순히 에너지의 지위를 넘어섰다. 이제 현대문명에서 석유 없는 삶을 상상하기 힘든 수준까지 왔다. 심지어 인류사의 비극인 전쟁마저도 석유 자원을 확보하고 있느냐에 따라 승패가 결정되며, 거꾸로 석유 자원을 확보하려고 전쟁까지 벌어지고 다. 현대 문명의 알파와 오메가, 바로 석유다.
20세기 이후 현대 사회를 특징짓는 에너지 이용 방식은 전기와 핵에너지를 꼽지 않을 수 없다. 전기는 19세기 말까지는 과학 탐구의 대상일 뿐이다가 차츰 공학 연구의 대상으로 바뀌었다. 석탄 같은 화석 연료를 태워 만든 증기를 이용해 발전하는 기술부터 송전, 배전, 변전 기술에 전등 같은 제품까지 개발되고 서로 연계되면서 20세기 초반부터 상업 이용되기 시작했다. 안전하고 편리한 에너지로 폭넓게 받아들여진 전기는 오랫동안 쓰이던 여러 에너지 이용 기술을 대체하거나 새로운 이용 영역을 개척했다. 등유를 쓰는 등불 대신 전등을 켜게 됐고, 물을 끓이고 음식을 조리하는 가스레인지가 전열 기구로 대체됐다. 컴퓨터, 인터넷, 스마트폰처럼 전혀 상상하지 못한 새로운 정보통신 기술도 전기에 의존하고 있다.
20세기 중반에는 전기를 생산하는 데 핵에너지 기술이 이용되기 시작했다. 미국의 맨해튼 프로젝트를 거쳐 개발된 핵에너지는 1945년 일본의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진 핵폭탄으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 뒤 미국이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을 내세우면서 1950년대 후반부터 발전기 터빈을 돌리는 동력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핵에너지를 이용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핵에너지는 1986년 체르노빌 핵 사고와 2011년 후쿠시마 핵 사고를 거치면서 인류 역사상 가장 논란이 많은 에너지 기술이 됐다.
사회가 이용하는 에너지 기술을 중심으로 역사 시대를 구분하는 루이스 멈포드Lewis Mumford는 땔감이나 물 같은 에너지를 이용하던 생태 에너지 기술 시대와 석탄, 석유, 천연가스 같은 연료를 이용하는 화석 에너지 기술 시대로 인류의 역사를 나눈다. 이런 기준으로 보면 인류는 18세기까지 기나긴 생태 에너지 기술 시대를 살아왔다. 19세기부터 시작된 화석 에너지 기술 시대, 그리고 20세기 중반에 들어서 덧붙은 핵에너지 기술 시대는 200년을 조금 넘는다. 이용하는 에너지 기술을 기준으로 한 시대 구분은 그 사회가 사용한 에너지량을 기준으로 한 시대 구분하고 겹친다. 생태 에너지 기술 시대는 한 사회가 이용한 에너지량이 낮은 저에너지 시대라면, 화석 에너지 기술과 핵에너지 기술 시대는 고에너지 시대다. 화석 에너지 기술과 핵에너지 기술이 에너지를 풍족하게 소비할 수 있게 해준 셈이다. 산업화된 현대 사회에서 평범한 개인이 누리는 삶은 수천 년 전 수백 명에 이르는 노예 노동의 에너지로 얻을 수 있는 귀족의 삶에 비교된다. 이런 비교는 ‘사회 진보’를 보여주는 대표 증거로 여겨졌다. 어떤 에너지를 얼마나 풍족하게 쓰는지를 파악함으로써 ‘문명 사회’와 ‘미개 사회’ 또는 ‘선진국’과 ‘후진국’을 나눌 수 있다는 생각까지 퍼져 있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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