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한낮의 연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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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동을 통보받았을 때 필용이 가장 먼저 떠올린 건 십육 년 전 종로의 맥도날드였다. 미국 유학을 준비한다며 어학원에 다니던 시절이었다. 필용은 언제부터 맥도날드에 가지 않았더라, 하는 생각에 맥락 없이 빠져들어갔다. 문책을 받아 영업팀장에서 시설관리팀 직원으로 밀려나는 순간에 왜 맥도날드 생각이 났는가. 그 공장제 프랜차이즈 정크푸드가.
필용은 사무실을 나와 주차장에 쪼그려앉아 담배를 피웠다. 한 삼 년 조용히 지내다보면 어떻게 되겠지.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려 해도 마음은 진정되지 않았다. 명함! 그래, 명함 생각부터 났다. 새 학기가 되면 아들 학교의 학부모회에 가서 명함을 돌리며 알은척도 좀 하고 아들 기도 살려주는 게 필용의 연례행사였는데 아무리 대기업이라도 시설관리 담당이라는 애매한 표현의 명함을 돌릴 수는 없었다. 우선 여분의 명함부터 찍어놓아야 할까. 하지만 인사이동이 다 알려진 판국에 갑자기 회사에 명함을 찍어달라고 하면 문제가 될 텐데, 명함집에 갖다주면 똑같이 만들어주려나? 그런데 그렇게 하면 문서위조 아닌가. 가짜 명함 아닌가. 가야 했다, 어디론가.
그래서 필용은 종로로 나갔다. 종로에 나가려고 나간 것이 아니라 걷다보니 종로까지 간 것이었다. 필용은 걸으며 울었다. 퀸의 노래를 들으며 울었다. 〈내 평생의 사랑〉을 들으며 울었고 〈보헤미안 랩소디〉를 들으며 울었고 〈구해줘〉를 들으면서는 따라 부르다 사레가 들려 크허헉거릴 정도로 울었다. 세이브, 세이브, 세이브 미, 구해줘, 구해줘, 필용은 지나가는 누구라도 붙들며 하소연하고 싶을 만큼 간절해졌다. 노래를 들으며 걷다보니 어느덧 종로였고 맥도날드였다. 필용은 들어가지 않고 건물을 한 바퀴 돌았다. 맥도날드는 변한 것이 없었다. 벌써 십육 년인데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 의자와 테이블마저 똑같았다. 필용은 매장으로 들어가 피시버거를 주문했다.
“피시버거는 없는데요.”
“없어요?”
“메뉴에 없습니다.”
“아니, 왜 없는데?”
“네?”
아르바이트생은 이 사람 장난하나 하는 떨떠름한 얼굴로 되물었다.
“대표 메뉴였는데 왜 없냐고?”
“몰라요. 전 들은 적도 없는데.”
“아예 없어졌어?”
“없어요. 그런 메뉴는 없다니까요.”
“뭐 다른 걸로 바뀐 게 아니라 없어? 아주?”
돌아가는 길에 필용은 맥도날드에 더 이상 피시버거가 없다는 사실에 대해 생각했다. 다른 것으로 대체되지 않고 아예 사라져버린 그 메뉴란 것에 대해. 만약 피시버거가 사라지지 않고 뭔가 비슷한 것으로 바뀌었다면 불쾌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아주 결연하게 사라졌단 말이지. 이제 맛볼 수조차 없게 아주 그냥 끝. 다신 맛 못 봐, 끝, 끝이야, 아주 없어, 이렇게. A가 유사한 A′나 B가 된 것이 아니라 A가 A인 채로 사라져버렸다는 건 햄버거 같은 정크푸드의 역사에서도 아주 비장한 신이었다. 그리고 그런 비장한 신은 이상한 카타르시스를 불러일으켰다. 여전히 필용은 퀸의 〈구해줘〉를 불렀지만 울지는 않았다. 직장에 남으리라 생각했다. 어떤 시련을 이겨내고서라도 여기 있으리라. 풍파가 지나가기를 기다리리라. 좌천은 사실상 권고사직이었지만 필용은 버티기로 했다. 못 나간다. 필용은 다짐했다. 하지만 어쩐지 마음이 춥고 쓰린 건 어쩔 수 없었다. 필용도 사람이니까.
그날부터 필용은 맥도날드에서 종종 점심을 먹었다. 사무실에서 한 이십 분은 가야 하는 거리니까 가깝지 않은데도 그래야 할 일들이 생겼다. 가슴을 부여잡고 퀸의 노래를 들으면서 시내로 걸어나가야 할 사건들이 일어났다. 필용이 영업팀장으로 있을 때 어쩔 수 없이 발휘해야 했던 융통성들 ─ 주로 돈과 관련한 것 ─ 이 징계 사유로 적혀 감봉 처분과 함께 통보된 것. 시설관리팀 직원으로 정말 발령이 난 것. 거기에는 슬프게도 해가 들지 않는 것.
관리동이 있는 지하로 책상을 옮긴 날에도 필용은 맥도날드에서 점심을 먹었다. 이사를 하느라 엉망이 된 손을 닦고 옷매무새를 가다듬느라 평소보다 시간이 더 지나 있었으므로 햄버거를 먹을 시간은 단 십 분밖에 없었다. 팀장 시절에는 언제 점심을 먹고 언제 들어가든 별 상관이 없었지만 지금은 달랐다. 물론 아직까지 직원들은 팀장님, 팀장님, 하고 부르기도 했지만 그래도 그에게 맡겨진 일들은 엘리베이터 점검 날짜를 확인하고 용역회사에 전화를 걸어 무단결근한 경비원의 계약을 해지하고 회사 건물에 있는 백칠십팔 개의 수도관과 사천 개의 전기회로의 안녕을 챙기는 것이었다. 이제 그런 일들을 하며 근무시간을 보내야 하는 필용의 얼굴은 해쓱했다. 살이 내려 얼굴에 깊숙한 골이 파였고 면도를 안 한 탓에 병약하고 음울한 기운까지 깃들어 있었다. 핍박받는 사람의 얼굴이었고 정말 누군가 구해줄 사람이 필요한 얼굴이었다.
맥도날드에서는 신제품을 내놓고 대대적으로 광고하고 있었다. 1955버거였다. 1955년은 필용의 어머니가 태어난 해였다. 그 1950년대는 엘비스 프레슬리와 메릴린 먼로와 청바지의 시대였다. 스푸트니크 1호와 반핵과 누벨바그의 시대였다. 그런데 필용의 어머니는 그 시대를 장티푸스의 시절로 기억했다. 시골에서 성장한 어머니는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해 머리카락이 다 빠지고 얼굴이 노랗게 된 채로 일 년을 문밖에 나가지 못했다고 했다. 기운 없이 헤실헤실 죽어가는 필용의 어머니를 보다 못한 외조부가 둘러업곤 십 리는 걸어가야 있는 나병환자촌을 찾아가 도움을 청했다. 나병환자촌에는 외국에서 온 수녀들이 환자를 돌보고 있었는데 거기서 얻은 약들, 별다른 것도 아니고 아마 페니실린에 불과했을 그 알약들이 다 죽어가던 필용의 어머니를 살렸다. 파란 눈의 천사, 백의의 천사들이 깡마르고 머리카락 한 올 없이, 마른 고목처럼 죽어가고 있는 어린 어머니에게 백색의 알약들을 내려주는 장면은 필용에게 어떤 부끄러움을 주곤 했다. 그 부끄러움은 필용을 아주 작게 만들곤 했고 그렇게 작아지는 상황은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필용이 겪지 않은, 필용이 태어나기도 전의 일들이지만 그 이야기는 실제이고 사실이므로 다른 어떤 것, 엘비스 프레슬리의 나팔바지나 메릴린 먼로의 금발 같은 것으로 대체되지가 않았다.
필용은 창가 자리에 앉아, 회사와 떨어져 혼자 종로에 앉아 있는 시간에 대해 생각했다. 이미 넘겨버린 점심시간에 대해. 십 년 넘게 늘 회사에 있었던 평일 한시 이십오분에 대해. 이 나이대 남자가 한낮에 여기 와 있다는 건 뭔가 비정상이라는 얘기였다. 백수이거나 명예퇴직자이거나 취업 준비생이거나 하는, 무슨 말을 붙여도 비극적인 뉘앙스가 사라지지 않는 상황이라는 얘기였다. 물론 필용은 백수도 명퇴자도 취준생도 아니었다. 시설관리팀 직원일 뿐이었다. 일주일 전에는 아니었는데 지금은 그렇다는 것뿐이었다.
그때 필용은 맞은편 건물에 걸린 현수막을 보게 되었다. 세로로 쓴 글씨로 “나무는 ‘ㅋㅋㅋ’하고 웃지 않는다”라고 적혀 있었다. 관객참여형의 부조리 연극, 상트페테르부르크 유스 시어터 페스티벌 참여작. 필용은 놀랐다. 얼마나 놀랐냐면 입안으로 집어넣은 감자튀김들을 씹지도 않고 삼켜버릴 정도였다. 그렇게 삼킨 감자들을 더 깊숙이 밀어넣기 위해 콜라를 마시려다가 그걸 또 까먹고 바보처럼 입을 벌리고 있을 정도였다. 필용은 자기가 인생 최대의 위기를 맞았을 때 왜 종로의 맥도날드가 떠올랐는지 깨달았다. 자신이 뭣 때문에 여기 와서 점심을 먹고 있는지 완전히 이해했다. 너무 완전해서 마치 하나의 구球 같은 이해였다. 요리조리 뜯어봐봤자 절대 다른 모양이 되지 않는, 너무 완전해서 그걸 몰랐던 좀 전이 먼 과거처럼 아득하게 느껴지는 이해였다. 필용이 하필이면 지금 이 시간에 여기 있는 것은 바로 양희와 재회하기 위해서였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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