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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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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랭 코르뱅
알랭 코르뱅Alain Corbin
파리1대학교 명예교수. 근년의 저작으로 《모르테롤 콘퍼런스, 1895~1896 겨울 : 사라진 세계에 귀 기울이며Les conférences de Morterolles, hiver 1895-1896, À l’écoute d’un monde disparu》(2011)와 《그늘의 감미로움 : 나무, 감성의 원천, 고대에서 현재까지La douceur de l'ombre: L'arbre, source d'émotions, de l'Antiquité à nos jours》(2013)가 있다.
18세기 말, 기상 현상을 느끼는 개인의 감수성이 증대되어 편지와 일기를 쓰는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기상 현상이 미치는 효과를 이야기하기 위한 수사법이 구축되고 세련되어졌다. 개인이 비를 고대하고 인지하고 음미하고 심지어 조롱하는 방식, 시대를 거듭하며 기상 감수성이 심화된 방식을 분석함으로써 비의 역사를 시작해보자. 18세기 말은, 이를 기점으로 전과 후를 구분할 수 있는 하나의 중간 휴지기를 이루고 있다.
1784년 《자연에 관한 연구Étude de la nature》에서 비에 대해 언급했던 베르나르댕 드 생피에르Jacques-Henri Bernardin de Saint-Pierre의 말에 귀를 기울여보자. 역설적이게도 이 초기의 문헌은 비와 ‘궂은 날씨’가 주는 기쁨을 강조하는데, 저자는 이런 날씨를 울적한 느낌이 가져오는 기쁨들과 연관 짓는다. 베르나르댕 드 생피에르는 우선, 비를 “기분 좋게” 음미하기 위해서는 “산책, 방문, 사냥 혹은 여행 계획”이 없어야 한다고 단언하는데, 이런 계획들은 비로 인해 ‘방해받을’ 우려가 있으므로 기분을 상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저자에 따르면, 이런 상황을 즐기기 위해서는 “이 비는 한없이 내릴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 또한 중요하다. 사시사철 비 때문에 되는 일이 없다고, 모든 것이 엉망진창이라고 투덜대는 것을 삼가야 하고, “비에 젖은 사람이 빠져들 수 있는 모든 비이성적 사유를 피해야 한다”. 간단히 말해서 비를 음미하려면 “정신은 여행을 하고 몸은 쉬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베르나르댕 드 생피에르의 눈에 비친 이 기쁨들이란 과연 무엇일까? 그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나는 예컨대 소나기가 내릴 때, 이끼가 내려앉은 오래된 담장 위로 물이 똑똑 떨어지는 것을 볼 때, 바람이, 비의 미세한 떨림과 뒤섞여 윙윙대는 소리를 들을 때 기쁨을 맛본다. 밤에 들리는 이 쓸쓸한 소리들은 나를 달콤하고 깊은 잠으로 빠져들게 한다.”
고대 문화로 내면이 형성된 인물인 베르나르댕 드 생피에르는 플리니우스Gaius Plinius Secundus의 말을 떠올린다. 그에 따르면, 로마의 어느 집정관은 “비가 올 때면 자신의 침대를 잎이 무성한 나무 아래 갖다놓고 빗방울의 아스라한 속삭임을 들으며 잠이 들곤 했다”.
《자연에 관한 연구》의 저자는 좀 더 나아가 본격적인 분석을 하기에 앞서 또 다른 세 가지 기쁨을 묘사한다. 첫 번째 기쁨은 몸과 관련된 것이다. “날씨가 궂을 때에는 비가 오는 광경을 보는 내게 비를 피할 보금자리가 있다는 것으로, 바람이 불 때에는 따뜻한 침대 속에 있다는 것으로 나 자신의 인간적 비루함이 가라앉음을 느낀다. 소극적인 행복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두 번째 기쁨은 보다 각별히 영혼과 관련된다. 바람을 동반한 비는 “광대한 무한”의 인상을 준다. 먼 곳에서부터 당도한 이 비는 ─ 작가가 그렇게 썼기에 이제야 우리가 알게 되는 것이지만 ─ 다시금, 멀리 떨어진 동방의 ‘타타르의 식물’까지도 기름지게 해줄 것이라는 기분 좋은 생각을 하게 한다. 요컨대 비는 영혼의 여행을 가능케 하며, 베르나르댕 드 생피에르가 썼듯이 몸은 비록 “휴식을 사랑하여 더욱 고요하고 더욱 안전할”지라도, “이 지성의 여행은 내 영혼을 그 본성대로 확장시킨다”.
그러나 저자에 따르면, 비 오는 날씨가 불러오는 또 다른 희열이 있다. “자연은 다정한 친구처럼 나의 상황에 맞춰주는 것 같다.” 이처럼 울적한 마음은 베르나르댕으로 하여금 이미 지겹게 되풀이되었던 비유를 떠올리게 한다. 비와 눈물을 연결시키는 것이다. 그가 보기에 이 비유는 에로스로 귀착한다. “비가 올 땐 아름다운 여인이 우는 모습을 보는 것 같다. 그녀는 애절해 보일수록 더욱 아름다워 보인다.”
18세기 당시, 비가 감각에 미치는 기분 좋은 효과에 대해 상세히 기술한 사람은 베르나르댕 드 생피에르뿐만이 아니었다. 작가인 주베르Joseph Joubert는 1779~1783년에 기록한 그의 《수첩Carnet》에서, 화가인 발랑시엔Pierre-Henri de Valenciennes은 학생들을 위한 교재에서 제각기 시선의 즐거움에 천착하고 있다. 비는 자연의 여러 구성 요소들을 채색한다. 비는 그 요소들에 예기치 않은 아름다움을 부여하고 사람은 그 아름다움을 만끽한다.
소리와 색채의 미묘한 차이와, 사물에서 받는 인상에 대해, 비가 우리 몸을 어떤 방식으로, 더욱 신중하고 사색적이며 섬세하게 만드는지 주베르의 글만큼 잘 느끼게 해주는 것은 없다.
비가 오는 동안에는 모든 사물이 과장되어 보이게 하는 어떤 어둠이 있다. 게다가 이 비는, 우리 몸을 얼마간 명상으로 인도하여 그 영혼을 보다 한없이 섬세하게 만드는 과정을 통해 친숙하게 말을 건넨다. 비는 이런 소리로도 말한다. (…) 끊임없이 귀를 사로잡으며 주의를 끌고 숨 돌릴 겨를을 주지 않는다. 벽, 나무, 바위에 밴 습기가 자아내는 이런 갈색조는 모든 사물의 인상에 덧입혀진다. 그리고 그것이 나그네의 주변에 펼쳐내는 고독과 침묵은, 사람과 동물이 모두 조용히 각자의 안식처로 돌아가도록 만들기 때문에, 더욱 분명한 인상을 주게 된다. 외투를 입고 모자를 눌러쓴 채 인적 없는 오솔길을 천천히 걸어가는 나그네는 주변의 모든 것에서 강한 인상을 받게 되는데, 그 모든 것은 그의 시야와 상상력 속에서 확대된다. 시냇물은 붙어 있고 풀은 더 무성하며 바위의 윤곽은 더 뚜렷해진다. 하늘은 지상에 더 가깝게 낮아지고 모든 사물은 더 좁아진 지평 안에 갇혀 더 많은 자리를 차지하고 더 커지는 것이다.
발랑시엔의 글에 따르면 비는 자연의 사물에 광채를 부여한다. 그러나 이 광채가 즉각적인 것은 아니다. 그것을 포착하고 한껏 누리기 위해서는 조금 기다려야 한다. 나무들이 스스로 껍질과 가지를 말리고, 습기로 인해 거무스름하게 진해진 색을 떨쳐낼 시간을 줘야한다. 한 시간 후가 “바로 그 순간”이다. 이것이 발랑시엔의 견해에서 중요한 개념이다.
그리하여, 늦추어진 비의 효과 덕분에 “조금 전엔 고개를 숙이고 시들어 있던 나뭇잎들이 줄기 위에서 다시 몸을 일으켜 생생하게 빛나는 초록으로 치장을 한다. (…) 이끼와 잔디는 에메랄드빛으로 뒤덮인다. 비가 그친 후 다시금 힘차게 지저귀는 새소리를 듣는 것은 중세부터 익히 강조되어온 기쁨이다.
비가 가져오는 긍정적인 효과에 대한 분석은, 같은 시대에 살았던 목사 윌리엄 길핀William Gilpin의 글에서는 또 다르게 펼쳐진다. 여기서 우리는 분명히 ‘픽처레스크한 아름다움’이라는 코드를 구상해낸 인물들 중 한 사람을 보게 된다. 와이Wye 강 유람 당시에 겪은 주된 체험 중 하나인, 목사의 ‘픽처레스크한 시선’은, 긍정적인 동시에 부정적이기도 한 비의 역할을 내몰아버린다. 그는 이렇게 쓴다.
비는 이 풍경들에 음울한 기품을 부여한다. 강에서 멀리 떨어진 제 방 위에 어둠의 베일을 드리우며 비는 이따금 즐거운 거리 두기 같은 뭔가를 만들어냈다. 그렇지만 비는 가장 중요한 아름다움을 숨기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다만, 이 모든 광경을 그토록 빛나게 해주었던 생생한 빛과 깊은 그늘이 없어져버린 것을 안타까워할 수밖에 없었다.
탐험가들이나 일반 여행자들을 통해 알려진, 적도 지방이나 열대지방의 비가 감각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려면 이야기가 너무 길어지게 될 것이다. 이들은 역사학자인 바버라 스태포드Barbara Stafford가 “본질을 찾아 떠나는 진정한 여행”이라 규정한 것을 실행에 옮긴 놀라운 사람들이다. 여기서 비는, 여태껏 느껴보지 못했던 하나의 형태, 어떤 강렬함을 띠게 된다. 이것은 식물에 미치는 비의 영향에서 비롯되는 건 아닐까. 코르코바도Corcobado를 둘러싼 숲에서 폭풍우를 목격한 다윈은, 그 상황에서 들었던 놀라운 빗소리에 대해 얘기한다. 나뭇잎을 때리는 물방울은 “엄청나게 크고도 독특한 소리를 내어 수백 미터 떨어진 곳에서도 들을 수 있었고 그 소리는 흡사 엄청난 급류가 만들어내는 소리와도 같았다”.
그로부터 조금 후에 헨리 데이비드 소로Henry David Thoreau가 비를 찬양할 차례다. 미국의 초월주의 애호가들은 그가 느끼는 기쁨의 범위가 확장된 것에 또 한 번 감동했다. 피에르 아도Pierre Hadot는 그의 글에서, 소로가 빗방울 속에서 “무한한 만큼 인간의 이해력을 넘어서는 자비심을 인지했다”고 썼다. 소로는 “그것이 식물에 좋다면 나에게도 좋은 것이다”라며 《월든Walden》에 적고 있다. 비는 그에게 세상 전체에 깊이 침잠하는 느낌을, 스토아 철학자들의 것이었던, 자연을 수용하는 기쁨을 되찾는 느낌을 주었다. 그가 1848년 3월에 쓴 일기를 읽어보자. 이 대목에서 그는 비와 구름이 가져다주는 기쁨을 매우 치밀하게 분석하고 있다.
그러면 지금 내게 흥미로운 것은 무엇인가? 초가지붕을 따라 흐르는 비가 끈질기게 스며드는 동안 나는 벌거벗은 언덕이 가까이 보이는, 작년에 수확한 야생귀리로 만든 침대 위에 누워 명상에 잠긴다. 그것이 바로 나의 관심사다. 하늘에서 내려온 이 수정 구슬을 바라보는 것은 나 자신과 만나기 위해서다. 구름과, 이슬비가 내리는 우울한 날씨가 모든 것을 감싸는 동안 그와 나는 서로 가까워져 인사를 나눈다. 바람이 내뱉는 마지막 숨결 아래 구름이 모여들고, 물방울을 똑똑 떨구는 가지와 나뭇잎, 친밀한 위로의 느낌, 사람들이 지나갈 때면 진주알을 떨어뜨리는 젖은 나무와 초가지붕, 그것들을 감싸 안으며 따뜻한 마음의 표시로 몸을 살짝 숙이는 것 같은 비, 그 사이로 보이는 이 모든 것의 희미한 모습, 이것이야말로 두말할 나위 없는 나의 세계다. 이것이 영국식 자연의 쾌적함이다. 새들은 우거진 나뭇가지 아래에서 더욱 가까워지고 정겨워지며, 횃대 위에서, 햇빛이여 다시 돌아오라고 새로운 화음을 지어낸다.
이 글에서는 특정한 비의 형태가 감정을 일으킨다는 사실을 눈여겨보자. 끈질기게 흘러내리며 스며들고, 그 무엇보다도 모든 사물을 희미하게 둘러싸는 비. 그래서 이 비는 친밀한 위로의 느낌을 준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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