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쇠한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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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로운 인간 이후에 찾아오는 삶의 시기에 대해 흔히 두 번째 유년기라고들 합니다. 하지만 이는 사람들이 삶의 적나라한 사실을 외면하기 위해 지어내는 흔한 감상적 거짓말에 지나지 않습니다. 실제로 아주 늙은 사람과 유아 사이의 공통점은 전적으로 외적인 특징들에 국한됩니다. 어른이라면 응당 할 수 있는 일을 하지 못하고 제 몸을 추스르지 못해서 다른 사람의 도움에 의지해야 한다는 점 등이죠…… 그렇지만 이것은 순전히 양적인 규정에 지나지 않으며, 다른 경우들, 가령 중병에 걸렸거나 심각한 부상을 입은 사람에 대해서도 얼마든지 비슷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시기의 참된 의미는 다른 데 있습니다.
확실히 아이는 어른보다 약합니다. 스스로를 보호하고 주장할 수 있는 능력도 떨어집니다. 앞에서 이야기했던 유년기의 일부 특수 영역을 제외하면, 아이는 어른에 비해 부족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아이는 어른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죠. 그렇지만 그 정도는 점점 덜해집니다. 아이는 생의 시작에 서 있습니다. 아이의 가치형상을 규정하는 지배 요인은 성장입니다. 그래서 아이의 삶의 과정은 “상승”으로 표현될 수 있습니다. 아이는 “높이” 올라갑니다. 아이에게는 올라갈 수 있는 시간이 있습니다. 눈앞에 “미래”가 펼쳐져 있으니까요. 그래서 아이의 삶의 분위기는 ─ 물론 어느 정도 일반적인 조건들이 갖추어져 있을 때 얘기지만 ─ 기대감으로 차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기대는 계속 충족되어갑니다. 적어도 아이가 계속 자라가고 발전하며 자신감을 키워간다는 의미에서는 분명 그러합니다.
고령의 시기는 이와 같은 유년기와 그저 다른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정반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시기의 “분위기”를 만드는 것은 현실적인 충족, 삶 자체 안에서 이룰 수 있는 충족을 더 이상 기대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아직” 남아 있는 것 외에 더 바랄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이제 삶을 위해 할 수 있는 노력은 아직 남아 있는 것을 지키는 것, 그리고 축소와 소멸의 과정을 늦추는 것뿐입니다. 그러다가 자칫하면 현실에 눈을 감게 만드는 자기기만에 빠질 위험도 없지 않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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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의 시기의 특징은 모든 경험의 형태와 행동 동기, 활동 방식이 원천적인 독자성과 강도를 잃어간다는 데 있습니다. 충동의 강도와 깊이도 저하됩니다. 몸과 영혼이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삶의 모습 전체에서 열정의 요소가 사라져갑니다. 감각적인 수용 능력도 줄어듭니다. 신체 기관들이 삐걱대기 시작합니다. 지각의 섬세함과 정확성도 떨어져만 갑니다. 새로운 상황에 적응하기가 힘들어집니다. 삶은 굳어져버립니다. 삶의 흐름이 경직됩니다. 투쟁 의지가 사라집니다. 노쇠한 인간은 새로운 것에 대한 흥미를 거의 갖지 못합니다. 더 오래 느낄수록 뭔가를 바꾸려는 충동은 잦아들게 마련입니다. 대신 쉬고 싶어지지요. 삶의 반경이 점점 줄어들고, 그 너머에 있는 일반적인 사건들에 대해서는 아무 흥미를 느끼지 못합니다. 요컨대, 무심해지는 겁니다.
삶은 경직된 과정을 밟아갈 뿐입니다. 뭔가를 싸워 얻어 내고자 하는 의욕이 사라집니다. 노쇠한 인간은 새로운 것에 대한 관심도 점점 줄어듭니다. 그는 시간이 갈수록 뭔가를 바꾸고자 하는 욕망을 점점 덜 느끼고 그저 평온히 쉬고 싶을 뿐입니다. 삶의 반경이 점점 좁아지는 가운데, 그 범위를 넘어서는 공공의 삶과 일에 대해서는 아무 관심도 없는 상태가 됩니다. 노쇠한 인간은 무심해집니다.
노쇠한 인간에게는 다른 사람들의 인정과 공감을 받고자 하는 소망도 없어집니다. 자신의 행동이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인상을 주든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무관심한 태도도 여기서 비롯되지요. 그러한 무관심은 자칫하면 정반대 형태로 돌변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노쇠한 인간은 약자가 강자에게 품게 되는 무조건적 불신의 감정에 사로잡히거나, 어떤 혜택이라도 얻어내기 위해 비굴한 태도로 강자에게 다가가기도 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존재와 태도가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인상을 주든 괘념치 않는 무관심한 태도는 그렇지 않아도 이미 노쇠한 인간의 몸에서 풍겨 나오는 전체적 느낌을 더욱 강화합니다. 그것은 쇠락의 느낌입니다. 생의 활력이 있는 사람들은 바로 이러한 느낌 앞에서 소스라치게 놀라 뒷걸음질 칩니다. 젊을수록 그런 경향은 더 심하지요.
노쇠한 인간의 영혼의 모습을 방금 그려보았습니다만, 이 역시 유사한 쇠락의 느낌을 불러일으킵니다. 특히 이 시기에 특징적인 것은 앞에서 제가 언급한 바 있는 노인의 물욕입니다. 정신적 능력이 저하되고, 영혼의 감수성, 깊이, 분별력도 떨어져갑니다. 그 대신 가장 끈질기게 살아남는 것은 원초적인 물질적 욕구, 먹고 마시고 안락함을 누리고자 하는 욕망입니다. 순전히 육체적인 것으로 국한된 성욕이 여전히 왕성하게 남아 있는 경우도 드물지 않습니다.
이상 말씀드린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기력이 없는 노쇠한 인간은 세상이 자신을 위협하고 있다고 느낍니다. 그래서 자기 존재와 소유를 주장하는 것으로 이러한 위협에 맞서려고 합니다. 자신의 재산과 권리, 습관, 견해, 판단에 강한 집착을 보이는 것이죠. 고령의 노인 특유의 옹고집이 나타납니다. 정말 치사하고 터무니없다 싶을 정도로 온갖 일에 고집을 부리며 남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습니다. 그는 지성과 감정이 더 이상 예전처럼 유연하지 않기 때문에 아무리 이유를 설명하고 필요성을 역설해도 납득시키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 모든 문제로 인해 노쇠한 인간의 전반적인 상태는 점점 더 부정적인 방향으로만 변화해갑니다. 설상가상으로 병에 걸리거나 몸이 갑자기 쇠약해지면서 상태는 더욱 악화될 수 있습니다. 통증과 신체적인 기능 장애, 이에 따른 결락 증상 등등이 나타나고, 여기에 스스로를 방치하는 태도까지 더해지면, 당사자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도 상황은 더욱 견디기 어려워집니다.
저는 지금까지 노쇠한 인간의 특징으로 우선 부정적인 계기들을 주로 살펴보았는데, 그 이유는 바로 그런 계기들이 이 시기의 삶 전체에서 특히 도드라지게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누구나 기본적으로 알고 있는 것처럼, 살아 있는 인간 속에 오직 부정적인 성향, 부정적인 과정, 부정적인 상태만 있을 수는 없겠지요. 삶의 모든 요소들 속에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게 마련이고 또 긍정적인 가능성도 열려 있습니다. 고령의 시기라고 해서 여기서 예외가 될 수 없습니다.
실제로 우리는 주변에서 호감을 주는 고령의 노인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런 노인들에게서는 친근한 평온함이 느껴집니다. 그들은 주위 세계와 아주 자연스럽게 어울려 존재합니다. 많은 어려운 문제가 그들의 풍부한 삶의 경험을 통해 큰 소란 없이 해결됩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만날 수 있는 이런 노인들은 문학이나 미술에서 볼 수 있는 위대한 인물들과 일맥상통하는 데가 있습니다. 그들은 고령에 이른 인간이 자기를 올바르게 이해하고 올바르게 행동할 때 과연 무엇이 가능한지를 몸소 보여줍니다.
그런데 이를 가능하게 해주는 것은 바로 앞에서 언급한대로 삶이 가라앉고 있다는 사실 자체입니다. 이러한 사정으로 인해 노쇠한 인간은 때로 생존 투쟁으로까지 치닫는 삶의 수고에서 해방되어 있습니다. 그의 내면은 서늘하게 식어 있는 까닭에 주어진 것에 쉽게 만족할 수 있습니다. 그는 또한 많은 경험을 하고 이제는 삶에서 한 발짝 물러서 있기에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북돋아줄 줄 압니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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