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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쪽이 조선이다.”
해가 떨어지고 있었다. 진홍빛으로 물들었던 바다가 잿빛으로 어두워진다. 섬을 둘러싸며 휘돌아간 방파제 위에 작은 점처럼 서서 두 사람은 오래오래 바다를 바라보았다. 저기 먼 어디쯤 조선이 있겠지. 조선, 명국은 입 속으로 가만히 불러보며 고개를 저었다. 저 바다 건너 어디에도 조선은 없다. 그건 우리가 잃어버린 나라다.
불어오는 바람에 어둠이 뒤섞인다. 남루한 옷자락에 그 어둠이 묻는다.
“그래서, 끝내 가겠다는 거야?”
“우덜은 진작에 맴을 먹어부렀다.”
우리라면, 혼자가 아니라는 얘기다. 태복의 말은 투박했다.
“경학이도 간다 하고 삼식이도 간다 하고, 너까지 가믄 넷이여.”
수평선을 따라 서쪽 바다에 남아 있던 희뿌연 빛마저 이제는 보이지 않는다. 꿈틀거리듯 다가와서 방파제를 때리고 가는 파도소리만이 어둠에 칼질을 하듯 이어진다. 일본인 광부 몇사람이 어깨를 웅크리고 축대 밑을 지나갔다. 별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는 하늘보다 바다는 더 어둡다.
“가면, 간다면 어디로 갈 건데? 갈 데는 있냐구?”
“뭍으로만 나가믄… 어디라도 자리를 못 잡겄냐. 여그까지 왔는디… 죽기 아니면 살기제.”
“목소리 좀 낮춰.”
“자넨, 맴이 그라고 안 내키믄 안 가도 좋아. 그랑께 말리지나 말어.”
가서, 이 섬을 빠져나가서 산다는 보장만 있다면 왜 난들 안 가겠냐. 살아서 여기를 빠져나갔다는 사람, 누가 있었냐. 바닷물에 팅팅 불어가지고 죽어 돌아온 조선사람, 선착장에 내팽개쳐놓고 이거 봐라 도망치는 놈들 다 이 꼴 된다 보여주다가, 저 건너 화장터 섬으로 끌어가 태워버리면 그뿐, 그뿐이다.
목이 아프게 치밀어오르는 그 말을 명국은 참는다. 그래서, 왜놈땅 물귀신이 돼 끼룩끼룩 갈매기 울 듯 울면서 이 바다를 날겠다는 거냐? 갈매기 한 마리 울며 날아올라도 저게 다 조선사람 넋이지 싶었다. 나라 없는 놈들 헐벗은 넋이 제 땅에도 못 가고, 무슨 끈에 매인 듯 여길 못 떠나고 저렇게 날아오르는구나 싶었다. 그런데 이제 너마저 또 죽어 돌아오면, 그땐 나도 못 산다. 태복아, 친구야, 장태복아. 갈매기 한 마리 또 늘었구나 하면서는 나도 못 산다 그 말이다.
“명국아, 내 맴을 그라고 모르겄냐. 내 야그가 그거랑께. 죽드라도 내 땅에나 돌아가서 뒤지겠다는 거여. 뒤져서 내 나라 흙에라도 파묻히겠다는 거제.”
울컥하며, 태복의 목소리가 갈라져 나왔다.
그들만이 아니었다. 모두들 그랬다. 여기서 이렇게 지내다가는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짓눌리며 하루하루를 살았다. 늘 같은 생각을 했었다. 여기 남느냐 목숨을 걸고 도망을 치느냐, 길은 둘뿐이다. 다른 길이 하나 더 있기는 있었다. 팔을 자르든 다리를 부러뜨리든 자해를 해서 목숨만 부지한 채 섬을 떠나는 길이었다.
명국이 어둠을 향해 눈을 부릅뜬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고, 말 탄 서방이다. 무슨 수로 도망치겠다는 이 사람들을 막겠는가. 태복의 등 뒤로 캄캄하게 어두운 바다가 넘실거린다. 저 바다 위를 가고 또 가면 고향이다. 그러나 이놈아, 물 위에는 길이 없다. 길이 있다면 갈까. 길이 있어도 못 가는 우리들이다.
둘은 천천히 몸을 돌렸다. 섬의 한쪽 끝에 있는 조선인 숙사로 돌아가다가 명국은 걸음을 멈추고 등 뒤의 바다를 바라보았다. 방파제를 따라 늘어선 경비등이 차갑게 빛나고, 우람하게 치솟은 망루 모양의 야구라櫓 맨 꼭대기에서 작은 불빛이 반짝이고 있었다. 무쇳덩어리 망루 안에 쇠줄을 내려뜨린 무쇳덩어리 승강통이 있어 석탄과 광부들을 바다 밑으로 실어나르는 것이 야구라였다. 그렇구나. 이제 얼마 후면, 죽어서 떠나든 살아서 떠나든 태복이 눈에는 저 바다가 없겠구나. 나 혼자 남겠구나.
해저탄광. 지하 700미터 바다 밑을 뚫고 나가는 지하갱도. 낮조가 되어 새벽어둠을 밟으며 막장으로 내려갔다가 하루 일을 마치고 올라올 때면 방파제 너머로 해가 지곤 했다. 거대한 불덩이처럼 진홍빛으로 바다를 물들이며 해는 그렇게 바닷속으로 잠겨갔다. 걸레처럼 늘어져서 갱을 나와 숙사로 돌아가면서 명국은 버릇처럼 바다를 바라보며 혼자 중얼거리곤 했다. 저쪽이 조선인데. 저쪽에 조선이 있을 것인데.
숙사로 돌아온 명국은 늦도록 잠을 이루지 못했다. 가는 자는 남는 자를, 남기로 한 자는 가는 자를 걱정해야 하는 밤이 지나고 있었다.
명국이 들어 있는 숙사에서 창문을 열면 방파제가 담을 둘러치듯 앞을 가렸다. 숙사와 방파제 사이에는 잡초가 우거져 비바람이 치는 날이면 고단한 마음을 더욱 처연하게 했다. 지친 몸을 이끌고 돌아와 파도소리만 가득한 다다미방에 누울 때면, 외롭게 미쳐가다가 몸 상하면 죽는 거로구나 하는 절망감에 뼈가 시렸다.
명국이 몸을 뒤척였다. 파도소리가 베갯머리에 와 부서진다. 미치겠구나. 저놈의 물소리라도 안 들렸으면… 마음바닥을 그냥 긁어대는구나.
꿈을 꾸는지, 옆에서 자고 있던 성식이 잠꼬대를 했다.
“하야꾸, 하야꾸야레(빨리, 빨리 해).”
얼씨구. 꿈속에서도 왜놈 말 하냐. 이 녀석이 온 지 이제 한 서너달 되는가. 귀는 뚫려서 어느새 일본말로 잠꼬대를 다 하는구나. 열다섯살, 징용공들 가운데 제일 나이가 어린 축이었다.
풀냄새가 나는 다다미 바닥에 코를 박고 엎드리며 명국은 눈을 감았다. 건너편 육지까지 헤엄쳐 나가, 거기서 나가사끼 쪽으로 달아날 길을 찾아보겠다는 게 태복의 계획이었다. 달이 읎는 것이 좋은께 그믐날 해야 쓰것지만, 하루 이틀이야 사정 봐감서 달라질 수 있겄지. 그렇게 말하며 태복은 덧붙였었다. 삼식이 얘기로는 비 오는 날이 차라리 좋을 것 같다는디. 그랄라믄 그믐 전에 날이 잡힐랑가도 몰라.
삼식이한테는 이미 나는 남겠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정말로 여기 혼자 떨어져서 언제까지 살아낼 수 있을지, 그걸 나도 모른다. 어차피 죽기는 마찬가지라면, 더 늦기 전에 나도 저 녀석들이랑 바다로 뛰어들어보는 게 낫지 않을까.
일본의 항구도시 나가사끼는 거대 군수기업 미쯔비시三菱의 자본 아래 놓여 있는 항구도시였다. 이 나가사끼로부터 18.5킬로미터 떨어진 섬 타까시마高島에서는 일본 최대의 해저탄광으로 그 이름이 널리 알려진 미쯔비시 타까시마탄광이 성업 중이었다. 다시 이 섬에서 5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작은 섬이 하시마軍艦였다. 이 무인도에서 석탄이 채굴되면서, 물도 풀도 나무도 없이 오직 채탄시설과 광부 숙소만으로 뒤덮인 곳이 미쯔비시광업 하시마탄광이었다. 맨 위에 서 있는 신사를 중심으로 섬 전체를 둘러싼 드높은 방파제 때문에 하시마는 그 모습이 바다에 떠 있는 군함 같아서 사람들은 하시마라는 이름 대신 군함도라고 불렀다.
일찍이 일본인들은 모자라는 광부들을 싼 임금에 고용할 수 있는 인력시장으로 조선을 눈여겨보았고, 처음에는 광업회사에서 파견된 사람들이 조선을 돌며 ‘모집’이라는 이름으로 광부들을 모아갔다. 일제에 농토를 빼앗긴 조선의 농민들로서는 좋은 돈벌이였다. 총독부가 개입한 건 그후였다. 각 지방관청에서 주민 가운데 노동력이 있는 사람을 선별, 지목하여 강제로 끌어가는 행위를 합법화한 ‘관 알선官斡旋’이 그것이었다. 태평양전쟁의 도발과 함께 궁핍과 자원 부족에 시달리기 시작한 일본은 조선의 나이 어린 소년까지 닥치는 대로 훑어가 탄광에 처넣는 단말마의 횡포로 치닫는다. 무차별 강제징용이었다.
해저탄광 하시마로 끌려온 조선인 징용공들은 섬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강제수용과 다름없는 절대고립에 갇히게 되었다. 섬을 감싸고 흐르는 동중국해의 급류가 배를 전복시킬만큼 거세서 이 섬으로의 접근뿐만 아니라 섬으로부터의 탈출 또한 어렵게 만들기 때문이다.
섬을 드나드는 오직 하나의 배편인 증기철선이 파도에 요동치는 부교에 배를 대며 모든 생필품을 공급했고, 섬에서 나오는 인분까지 비료로 쓰기 위해 실어날랐다. 채소를 기를 땅조차 없는 무인도를 채운 것은 채탄시설과 시커멓게 치솟은 광부들의 철근콘크리트 아파트와 몇몇 목조건물뿐이었다. 하시마섬 전체를 뒤덮고 있는 건물들은 크게 네가지로 나눠진다. 승강시설 야구라와 컨베이어벨트를 비롯한 탄광으로서의 채탄시설들이 있고, 공동목욕탕 같은 공공 부속시설이 있다. 그리고 광부와 그 가족의 주거시설인 아파트와 상점들이 자리 잡았다. 그 나머지가 사람이 있는 곳이면 있어야 하는 학교, 사찰, 술집을 비롯한 위락시설,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유곽과 일본의 신사였다.
5층, 10층 아파트가 골목길을 사이하고 숲처럼 우거진 하시마는 파도가 거칠어지면 방파제의 암벽을 때리며 부서진 물보라가 뒤덮여 앞을 가렸다. 태풍이 오면 아파트 4층 높이까지 바닷물이 솟아올랐다.
중앙에 서 있는 아파트의 높은 층은 전망이 좋고 햇빛이 잘 든다지만, 닥지닥지 지어올린 아파트의 아래층은 햇빛도 들지 않고 습기가 차서 주거환경으로서 문제가 하나둘이 아니었다. 자연히 높은 층은 회사 직원들의 숙소로, 중간층은 회사 직영의 광부 숙소로 쓰였고, 밑으로 내려가면서 하청업자가 고용한 광부들이 살았다. 일찍이 일자리를 찾아 일본으로 건너와 하청업자에게 소속된 조선인 광부들은 가족을 끌고 좁고 습기 찬 아래층에서 살 수밖에 없었다. 광업소 소장과 간부들은 높고 한적한 자리에 목조주택을 짓고 살았다.
이들 아파트와는 떨어져서 북쪽 방파제와 학교를 잇는 삼각지대의 후미진 곳에 건물 두 동이 있었다. 일본인 광부들과는 철저하게 격리되어 섬의 가장 후미지고 막다른 곳에 자리한 이것이 조선인 강제징용공들의 숙소와 식당이었다. 건물 한 동은 4층으로 숙소와 식당으로 사용되었고, 다른 한 동은 2층으로 숙소로만 사용되었다. 감금이나 다름없는 수용소였다. 그리고 또 한곳, 길 건너편 아파트 지하에 점차 늘어나는 징용공들을 수용한 드넓은 방이 있었다.
중일전쟁의 중국인 포로 200여명도 하시마탄광으로 끌려와 강제노역을 당하고 있었다. 이들은 조선인들과의 충돌을 피하기 위해 섬의 대각선 방향, 남서쪽 아파트 맨 끝 동의 습기 찬 지하층에 수용되어 있었다.
일자리를 찾아 일본으로 건너온 후, 이곳저곳을 흐르고 흘러서 명국과 태복이 하시마탄광으로 찾아들어온 것이 지난해였다. 하청업자의 속임에 빠져 선금을 받은 것이 잘못이었다. 그나마 오랜 노동에 익숙한 몸이라 명국과 태복은 회사의 노무관리 방침에 따라 조선에서 갓 들어온 징용공들에게 일을 가르치도록 뽑힌 숙련공 사끼야마(先山)가 되어 징용공들과 함께 생활했다. 말이 좋아서 뽑혔다지만 모든 처우가 다를 게 없었다. 임금이 조금 더 주어졌을 뿐 징용공들과 똑같이 채탄작업을 하며 숙식도 그들과 함께해야 했다.
진폐증으로 쿨럭쿨럭 기침을 해대는 징용공들이 누에처럼 꿈틀거리며 잠들어 있는 지옥섬 하시마의 밤은 그날도 사나운 파도 속에 묻혀가고 있었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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