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卷 1
제1편
군도君道 : 군주의 도
【해제】
〈군도〉 편은 한 나라의 최고 통치자인 군주가 마땅히 갖추어야 할 도리에 관해 태종과 신하들이 나눈 담소로 구성되어 있다. 과거 군주는 하늘에 비유되었으며, 군주가 바르면 아래 백성이 안락한 생활을 할 수 있지만, 군주가 사악하면 백성은 고통의 나날을 보내야 했다.
고대 역사책을 들추어보면, 군주가 처음 나라를 세웠을 때는 대부분 덕행이 빛나고 큰 공적을 쌓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위세가 곤두박질치는 경우가 많았다. 그 까닭은 초심을 잃고 점차 교만하고 나태해지기 때문이었다. 다시 말해서 천하를 다스리는 군주가 인품을 닦으며 정사를 열심히 돌보지 않고, 사리사욕을 채우며 향락을 추구해 망국의 위험을 초래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자신과 생각을 달리하는 의견을 널리 받아들여 잘못을 고치고 몸과 마음을 수양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렇게 하면 굳이 나라를 억지로 다스리지 않아도 저절로 다스려지는 정치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군주가 바르면 나라가 안정된다
정관貞觀 초년에 태종太宗은 곁에서 모시는 신하들에게 이런 말을 했다.
“군주 된 자의 도리는 반드시 먼저 백성을 생각하는 것이오. 만일 백성의 이익을 손상해가면서 욕심을 채운다면, 마치 자기 넓적다리를 베어 배를 채우는 것과 같아서 배는 부를지언정 곧 죽게 될 것이오. 만일 천하를 안정되게 다스리려고 한다면 먼저 군주 자신의 행동을 바르게 해야 하오. 몸이 곧은데도 그림자가 기울고, 윗사람이 훌륭히 다스리려고 노력하는데도 아랫사람들이 혼란스러운 경우는 없소. 나는 늘 자신을 상하게 하는 요소는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모두 자신의 탐욕스러움이 재앙을 부른다고 생각해왔소. 만일 산해진미만을 추구하고 노래와 춤 그리고 미녀들에게 빠져 허우적거린다면, 이러한 욕망은 한없이 커질 것이고, 이것은 결국 정사에 막대한 지장을 주며, 백성이 근심을 끌어안고 살아가게 될 것이오. 또 만일 군주가 이치에 맞지 않는 말을 한마디라도 한다면, 백성은 그 때문에 사분오열할 것이고, 마음을 바꾸어 원한을 품고 모반하는 이가 생겨날 것이오. 나는 항상 이러한 이치를 생각하고 감히 나 자신의 욕망에 따르는 행동을 하지 않았소.”
간의대부諫議大夫 위징魏徵이 이렇게 대답했다.
옛날 성스럽고 현명한 군주들은 모두 가깝게는 자기 자신에게서 원인을 찾아 행동했습니다. 그런 까닭에 멀리로는 온갖 사물을 살필 수 있었습니다. 과거 초장왕楚莊王은 섬하詹何를 초빙하여 그에게 나라를 다스리는 요령에 관해 질문했습니다. 섬하는 자신의 몸과 마음을 수양하는 방법으로 나라를 다스리면 된다고 대답했습니다. 초장왕이 또 이와 같은 방법으로 나라를 다스리면 어떠한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가를 묻자, 섬하는 ‘군주 자신의 품행이 단정한데 나라가 안정되지 못했다는 말은 듣지 못했습니다.’라고 답했습니다. 폐하께서 밝힌 도리는 사실상 고대 성현들께서 말씀하신 뜻과 같습니다.“
현명한 군주와 어리석은 군주
정관 2년, 태종이 위징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
“무엇을 기준으로 현명한 군주라 하고 어리석은 군주라 하오?”
위징이 말했다.
“군주가 영명한 까닭은 널리 듣기 때문이고, 군주가 어리석은 까닭은 편협하게 어떤 한 부분만을 믿기 때문입니다. 《시경詩經》〈대아大雅 · 판板〉 편을 보면 ‘선현들이 말씀하시길 풀을 베고 나무를 하는 사람에게도 물어보라 하셨네.’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옛날 요堯 임금과 순舜 임금이 다스릴 때에는 사방의 문을 활짝 열어 천하의 현명하고 덕망 있는 선비를 초빙하고, 시야를 넓혀 민간의 소리를 들었으며, 백성의 정서를 살펴 정치를 맑게 했습니다. 이와 같이 했기 때문에 성스럽고 현명한 군주는 무슨 일이든 분명하지 낳은 것이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사악한 공공共工이나 곤鮌 같은 사람들도 그 영명함을 가릴 수 없었고, 간사한 자의 교묘한 말과 간계로도 그들을 어둡게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진이세秦二世는 그 자신을 깊숙한 궁궐에 숨기고 조정의 신하들과 백성을 물리치고 조고趙高의 말만 들었습니다. 그래서 천하가 붕괴되고 민심이 돌아섰는데도 실태를 알지 못했습니다. 양무제梁武帝는 주이朱異의 말만 듣고 중용해 후경後景이 반란군을 이끌고 수도로 쳐들어올 때까지 끝내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수양제隋煬帝는 우세기虞世基의 말만 믿고 각지에서 의병이 일어나 성을 공격하고 군현을 뒤흔드는 것도 몰랐습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의 군주 된 자는 여러 의견을 듣고 아랫사람들의 합리적인 건의를 받아들여야만 합니다. 그렇게 하면 제아무리 권세가 큰 대신이라도 아랫사람들의 소리를 가리거나 군주를 어리석게 할 수 없으며, 백성의 실정이 조정에 그대로 반영될 수 있습니다.”
태종은 위징의 말을 극찬했다.
창업과 수성의 비중은 상황에 따라 다르다
정관 10년, 태종은 주위에 있는 신하들에게 말했다.
“제왕의 대업에 있어서 처음 창업創業하는 것과 그 일을 지키는 것〔守成〕가운데 어느 것이 어렵소?”
상서좌복야尙書左僕射 방현령房玄齡이 대답했다.
“천하가 혼란스러워지면 영웅들은 다투어 일어나지만, 쳐부수어야 적이 투항하고, 싸워 이겨야 적을 제압할 수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말하면, 창업이 어렵습니다.”
위징이 대답했다.
“제왕이 병사를 일으키는 것은 반드시 세상이 혼란스러워진 뒤의 일입니다. 그러한 혼란을 제거하고 흉악한 폭도들을 진압하면 백성은 제왕을 기꺼이 추대하고, 천하의 인심이 제왕에게로 돌아오게 됩니다. 창업은 하늘이 주고 백성이 받드는 것이기 때문에 어려운 것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일단 천하를 얻은 뒤에는 마음이 교만하고 음란한 데로 달려가게 됩니다. 백성은 편안한 휴식을 원하지만 각종 부역은 끝이 없고, 백성은 잠시도 쉴 틈이 없지만 사치스러운 일은 오히려 멈추지 않습니다. 나라가 쇠락하고 피폐해지는 것은 언제나 이로부터 발생합니다. 이러한 점에서 말하면, 이미 세운 업적을 지키는 일이 어렵습니다.”
태종이 말했다.
“현령은 과거 나를 따라 천하를 평정하면서 갖은 고생을 다하며 만사일생萬事一生으로 요행히 생명을 부지했기 때문에 창업의 어려움을 아는 것이오. 위징은 나와 함께 천하를 안정시키며 교만하고 음란한 병폐가 발생할 조짐을 걱정하며, 이것이 위태롭고 멸망의 길로 가는 것이기 때문에 이룩한 업적을 지키기 어렵다고 생각한 것이오. 현재 창업의 어려움은 이미 과거가 되었고, 세워진 제왕의 사업을 유지하는 어려움은 마땅히 공들과 신중히 상의해야 할 것이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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