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Ⅰ
우리가 먹는 건 음식인가 약인가
몸에 들어가는 건 무엇이든지 약물로 보아야 한다
먼 옛날 우리 조상들은 일부 식물이나 특정 동물의 신체 부위를 먹으면 상당히 불편하거나 심지어 치명적인 결과가 생긴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러한 먹거리 중에는 죽어가는 사람을 위로하기 위해 읊었던 기도문에 언급되어 있는 것도 있는데, 당시 파르마콘pharmakon이라고 불린 물질도 그중 하나였다. 파르마콘은 주로 죽음이 임박했을 때 고통을 줄이기 위해 사용한 일종의 영적 약물로서, 간단히 말해 독약이었다. 원래 파르마코스pharmakos라는 용어는 보통 지역 사회에서 대단한 위치를 차지하는 인물의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말 그대로 독약을 마시고 희생물로 바쳐진 인간 속죄양을 뜻했다. 그러다 기원전 600년경에 병자를 치료하기 위해 사용하는 물질을 의미하게 되었다. 오늘날 쓰이고 있는 약리학pharmacology과 정신약리학psychopharmacology이라는 용어 또한 이 단어에서 유래한 것이다. 약리학은 약물이 신체에 작용하는 원리를 체계적으로 조사하는 학문이고, 정신약리학은 약물이 뇌에 끼치는 영향을 연구하는 학문으로 그 영향은 ‘향정신성’向精神性으로 정의된다.
이 책에서는 여러 가지 약물뿐만 아니라 약물의 효과를 지닌 다양한 음식에 대해 탐구할 것이다. 사실상 이들을 하나로 묶는 속성은 ‘향정신성’이다. 이는 물질들이 우리 뇌를 비롯해 행동까지도 좌우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독자들이 이 책을 다 읽을 때쯤, 우리가 약물이라고 여기는 것(즉, 우리 뇌가 최상의 기능을 하기 위해 원하거나 필요로 하는 것)과 음식(즉, 우리 몸이 최상의 기능을 하기 위해 원하거나 필요로 하는 것) 사이의 경계가 점점 더 모호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기를 바란다. 실제로 흥분이나 진정 효과가 있는 물질은 우리가 일상에서 굉장히 보편적으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약물보다는 음식에 가깝다고 여긴다.
커피, 차, 담배, 알코올, 코코아, 마리화나는 영양소일까 약물일까? 우리에게 이 경계는 꽤 흐릿해졌다. 하지만 몸에 들어가는 물질은 영양소가 있든 없든 모두 약물로 보아야 한다.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초콜릿이나 (오늘날 건강식품점에서 쉽게 구입할 수 있는) 리신lysine과 트립토판tryptophan 같은 필수 아미노산처럼 영양소를 함유한 식품조차도 약물의 속성을 띠고 있다.
공통의 진화 역사
우리가 섭취하는 음식과 즐겨 찾는 향정신성 약물 대다수는 식물에서 얻는다. 이 사실을 토대로 과학자들은 식물에 함유된 성분이 우리 뇌와 몸의 정상적 기능을 돕는 신경전달물질과 매우 유사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식탁에 오르는 음식이 뇌 기능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아주 중요한 사실을 하나 알 수 있다. 즉, 섭취하는 음식이나 약물이 뇌에 영향을 미치려면 어떤 식으로든 그 물질이 실제 신경전달물질과 비슷하거나, 신경전달물질의 생성․분비․비활성화에 관여하는 뇌의 생화학적 메커니즘에 영향을 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섭취하는 식물이나 식물추출물에 함유된 유효 성분은 대개 약간만 변형된 아미노산 또는 지방이며, 우리 뇌가 정신 작용을 일으킬 때 사용하는 화학물질과 매우 비슷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식물과 인간은 서로 유사한 화학물질을 사용할 수 있는 걸까? 식물이 생성하는 화학물질이 우리 뇌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은 식물과 인간이 지구상에서 동일한 진화 역사를 거쳐 왔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가 브로콜리 한 다발을 먹든 아메바 한 무더기를 섭취하든, 거기에 함유된 화학물질은 우리의 신경세포 기능은 물론 우리의 감정과 생각까지도 바꾸어 놓을 수 있다.
인간과 공통의 진화 역사를 거쳐 온 식물을 섭취할 때 어떤 결과가 생기는지 우리는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예를 들어, 설익은 바나나에는 신경전달물질인 세로토닌serotonin이 다량으로 함유돼 있기 때문에, 설익은 바나나를 먹으면 바나나 속 세로토닌이 장 속의 세로토닌성 신경세포serotonin neuron(세로토닌을 신경전달물질로 갖고 있는 신경세포-옮긴이)에 작용해 장 내벽의 근육을 자극하고 결국에는 설사를 일으킨다.
우리 뇌에 영향을 끼치는 화학물질의 원천은 식물만이 아니다. 곤충류와 파충류 역시 인간과 동일한 진화 역사를 거쳐 왔으며 독을 통해 우리에게 영향을 미친다. 일반적으로 독은 세로토닌을 함유하고 있어서 벌에 쏘이거나 뱀에 물릴 때처럼 불쾌한 반응을 일으킨다.
이처럼 우리가 지구상의 동식물과 동일한 역사를 거쳤다는 사실은 몇 가지 흥미로운 예측을 낳는다. 가령, 다음과 같은 공상과학소설 시나리오를 가정해보자. 한 우주비행사가 지구와 비슷한 행성을 돌아다니다가 갑자기 회색 곰처럼 생긴 괴물에게 물린다. 우주비행사는 상처를 입게 되고 그 상처를 통해 괴물이 분비한 액체 물질이 피부 속으로 들어간다. 그렇다면 이 우주비행사는 죽게 될까? 아니다, 죽지 않는다. 왜냐하면 우주비행사의 종種과 외계 행성에 사는 괴물의 종은 공통의 진화적 과거를 거치거나 진화적 조상이 같지 않기 때문이다.
설사 우주비행사와 괴물을 구성하고 있는 아미노산이 우주에서 처음 진화를 시작했을지라도, 그 아득한 시간 이후로 두 생명체는 각각 독립적인 진화 경로를 따랐기 때문에 지금 둘의 뇌와 몸속에서 활동하는 신경전달물질 분자는 비슷할 리가 없다. 따라서 영화 〈제국의 종말〉의 플래시 고든부터 〈스타트렉〉의 커크 함장, 〈스타워즈〉의 루크 스카이워커까지 모든 우주인은 (자신의 행성을 제외하고) 어느 행성을 가든 동물이나 식물의 독소에 해를 입을 걱정 없이 안심하고 돌아다녀도 된다.
마찬가지로, 공상과학영화 속 외계 행성에 늘 등장하는 알코올 음료와 강력한 약물 역시 지구에서 온 용감한 우주비행사의 뇌에는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한다.
마음의 기관과 약물
고대 문명을 일군 사람들은 특정 식물의 독특한 속성과 이를 섭취했을 때 몸과 뇌가 어떻게 반응할지 분명히 알고 있었다. 실제로 고대 사람들은 이런 식물들을 채취해 다양한 신체 질병의 치료제로 사용했다. 이렇게 식물추출물을 약으로 활용한 고대 이후, 마음의 기관으로서 뇌를 바라보던 우리의 관점은 오랜 격변을 겪어왔다.
수천 년 동안 사람들은 정신질환을 뇌 질환이나 기능 장애의 결과로 보기보다는 악령에 씐 상태이거나 분노한 신이 내리는 벌이라고 믿었다. 그러다 20세기 중반에 이르러서야 정신질환 치료에 효과적인 약물이 등장하게 되었다. 신체 질병을 치료하듯(즉, 의학적인 방법으로) 정신질환을 치료할 수 있다는 자각은 인간 마음의 본성에 대해 다양하고 자칫 위험한 해석을 낳을 수 있었기 때문에 대중의 지지를 얻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만약 모든 정신 활동이 사실상 생화학적 결과라면 어떨까? 하느님의 존재나 가슴 뛰는 사랑 같은 마음 속 깊은 감정들이 단순히 신체기관에서 어떤 생화학적 반응이 일어난 결과라면 어떨까? 그렇다면 영혼이나 연애의 감정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언젠가는 영혼의 상처나 실연의 아픔도 지금의 중증 정신질환처럼 약처럼 치료할 수 있을까? 결론적으로 말하면, 그렇다. 이는 절대 지나친 과장이 아니다. 미래에는 우리가 선택한 신과 대화하도록 도와주고 사랑에 대한 욕구를 치솟게 할 약이 (비아그라는 차치하고) 개발될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 손자손녀 세대에는 다양한 정신 기능을 향상시켜줄 수많은 약이 등장할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이미 합법적이든 아니든 우리 뇌에 영향을 끼치는 방대한 약이 시중에 나와 있고, 그 약의 가치와 효용에 대해 격렬한 논쟁이 진행중이다.
나는 지금까지 밝혀진 사실을 토대로 우리 뇌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물질이면 무엇에나 적용되는 몇 가지 기본 원리를 찾아냈다.
첫째, 이 물질들은 ‘좋고 나쁘고’의 관점으로 봐서는 안 된다. 우리 식단에 오르는 음식이나 약물은 단순히 화학물질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이 물질들은 몸 안에서 우리가 원하거나 피하고 싶은 작용을 일으킨다.
둘째, 모든 약물은 효과가 복합적이다. 우리 몸과 뇌는 매우 복잡한데다 입속으로 들어가는 화학물질은 몸과 뇌의 여러 부위에서 동시적으로 작용을 하기 때문에 직간접적으로 뇌 기능과 행동에 다양한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셋째, 약물이나 음식이 뇌에 끼치는 영향은 언제나 섭취량에 달려 있다. 어떤 약물이든 복용량을 달리하면 효과의 크기와 특징도 달라진다. 이 원리를 용량-반응 효과dose-response effect라고 하는데, 일반적으로 복용량이 늘어날수록 뇌에 끼치는 효과도 커진다. 하지만 복용량이 많으면 복용량이 적을 때와 완전히 상반된 효과가 나타나는 경우도 간혹 있다. 예를 들어, 아스피린은 정상 용량을 복용하면 체온이 내려가지만 다량 복용하면 체온이 올라간다.
마지막으로, 약물이 뇌에 끼치는 효과는 유전자, 약물 복용 경험의 성격, 약물에 대해 갖는 기대 등에 크게 좌우된다. 일례로, 어떤 약물에 강한 반응을 보이는 사람은 다른 여러 약물에도 강한 반응을 보일 가능성이 크며, 이런 특성은 부모 중 최소 한 명에게도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본문 중 일부)
★ 저작권법에 의해 한국 내에서 보호를 받는 저작물이므로 무단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