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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성찰의 시간
: 시대의 거울, 아이들을 보며
나임윤경
나임윤경은 시도한 대부분의 일이 실패로 끝난, 참담했던 20대 중반에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강남의 영어 학원 강사가 되었다. 자기 또래의 ‘강남 사모님’ 수강생들을 만나며 화려할 줄 알았던 그들의 삶이 크게 다르지 않음을 알게 됐다. 그때 ‘억압’, ‘해방’, ‘성 평등’ 같은 개념들을 떠올렸고, 그런 것들을 공부하러 30대 초반에 유학생이 되었다. 제도나 법도 중요하지만 ‘일상’에서의 여성해방이 중요하다고 믿으며 매일매일 실천하려 투쟁 중이다.
요즘 대학생들
나는 첫 수업에서 늘 학생들의 자율성을 존중하겠다고 말한다. 배경과 맥락을 잘 설명해 준다면 아무리 ‘이상한’ 생각이라도 다양성이라는 이름으로 기꺼이 존중할 것이다, 출결을 확인하지 않으니 수업에서보다 더 많이 배울 수 있는 곳이 있다면 그곳에 가서 몰입하는 것도 좋다, 그러니 강사 몰래 스마트폰이나 인터넷을 들여다보는 행동 등은 자제하길 바란다, 나는 여러분이 비겁함을 몸에 익히느니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일을, 원하는 그 일을 당당하게 하길 바란다 등등 내 수업이 전제하고 있는 철학을 약 두 시간에 걸쳐 친절하게 설명한다. 그러고 나서 으레 질문을 받는데 질문들은 주로 이런 식이다. “출석을 안 부르면 전자 출결로 하시나요?”, “쪽 글을 한 주 밀려서 제출하면 불이익이 있나요?”, “좌석은 지정석인가요?”, “시험을 안 보신다고 했는데 정말인가요?” 등의 ‘고딩’ 같은 질문들. 수업을 통해 ‘자기 안에 있는 약자성, 혹은 소수자성과 만나기’를 바라는 내 뜻에 대해서는 무엇도 묻지 않는다. 좀 궁금하라고 추상적인 말을 잔뜩 늘어놓는데, 아무 관심도 없어 보인다. 아니, 사실 관심조차 없다고 해야 할 것이다. 처음에는 놀랐지만 이제는 놀라지 않는다. 다만 점수와 학점에만 목메는 이 아이들은 어디서 온 이들일까…… 궁금할 뿐이다.
대학생들은 한국 사회 대부분의 성인들처럼 자유, 정의, 진리 ‘따위’의 진실을 믿지 않는다. 그건 세상에 적응할 필요가 없는, 혹은 사회에서 경쟁이란 걸 할 필요가 없는, 이를테면 요즘 텔레비전 속 ‘자연인’ 같은 사람들이나 좇는 특별하거나 유별난 가치라고 믿는다. 그러니 대학에 왔다고 해서 새삼스레 그런 것들을 추구할 리 없다. 그러므로 내가 하는 추상적인 질문들, 정답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생각, 경험, 다른 배경을 이해하기 위한 질문들을 귀찮아한다. “당신에게 자유는 어떤 의미인가요?”, “대학에는 왜 왔지요?”, “인간은 왜 평등해야 하나요?”, “정의롭게 산다는 건 도대체 어떤 걸까요?” 등의 질문에 대해 그들의 얼굴에 나타나는 단 하나의 표정은 ‘그런 걸 왜 알아야 하는데?’이다. 그렇지만 아마 대기업 신입 사원 선발 시험에 위와 같은 문제가 출제된다면 대학생들은 학원 가서라도 정답을 구해 올 것이다. 아무튼, 진리와 진실은 우리의 사유 방식과 실천으로 만들어질 수 있음을, 그렇게 사는 삶의 의미를 요즘의 대학생들과 함께 나누기란 아주 어렵다. 진리와 진실을 믿지 않으니까 그렇다. 이들은 대신 ‘스펙’을 믿는다. 진리와 진실이 아니라 스펙이 자신의 인생을 성공적으로 만들어 줄 것임을 확신한다. 그러므로 학점은 물론이고 교환학생 기회나 선후배 관계, 심지어 연애까지, 자신이 가진 모든 자원을 스펙으로 만드는 데 동원한다. 그래서인지 요즘 대학생들은 겨우 며칠 늦게 제출하는 보고서에 대해서, 그리고 겨우 몇 번 빠졌을 뿐인 수업에 대해서도 “점수를 깎나요?”라는 질문을 한다. 조금 민망해하기라도 하면 좋으련만 이익을 챙기는 일이라면 그 어떤 것에도 민망해하는 법이 없는 사람들이 요즘 대학생들이다.
이들의 부모인 우리 세대는 많은 정보를 대학생 자녀들에게 물어다 준다. 그것도 모자라 사회에서 낙오하지 않도록, 한눈팔지 말고 안정적인 삶이라는 목표를 향해 경주마처럼 뛰어 주기를 바라고 또 주문한다. 1학년생이 입학하자마자 로스쿨과 행정고시를 준비하고, 교환학생을 계획한다. 대학 생활의 정점이라는 동아리도 ‘학회’라는 이름으로 취업 준비를 지향하게 된지 오래다. 학생들은 연애 또한 계산적으로 하느라 썸만 타다 끝내는 경우가 많다. 기성세대의 눈에는 분명히 연애인데도 ‘썸’이라고 말한다. 심지어 성관계를 하는 사이인데도 ‘썸 타는 중’이라고 말한다. 서로의 감정 상태를 살피고, 배려하고, 신경 써야 하는 연애로 돌입하지 못하는 이유는 연애가 시간과 돈, 그리고 에너지를 쏟아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대학생 자녀들에게 고등학생 때 그랬던 것처럼 “연애는 취직해서 하지?”라고 말하는 부모도 있다. 대학에 오기 전까지 ‘현재적 욕망’을 유예하고 대학에 가서 그 모든 억압된 것들을 한꺼번에 풀라 주문했던 부모들이, 이번에는 취직해서 하라고 말한다. 놀라운 것은 적지 않은 학생들이 그 말에 일정 부분 동의한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대학 1학년생들은 점수 기계인 고등학교 3학년처럼 엄청나게 피곤해 보인다. 생생한 대학 1년생이라는 의미의 ‘freshman’이라는 영문자가 무색하게도 이들은 고등학교 4학년인 듯 교실에 앉으면 엎드려 자거나 잠시 깨어 있을 땐 스마트폰에 열중한다. 시험 문제가 출제될 것 같지 않은 참고 도서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어느새 시험 문제 ‘족보’를 찾아 헤매기도 한다. 그러니 대학 강의실에서 토론은 불가능하다. 토론이 점수에 반영된다는 교수의 선언이 있기 전에 이들은 절대로 입을 열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그날도 학생들은 고등학교 4학년인 채로, 내가 어떤 걸 물어도, 어떤 말을 건네도 그저 멍했다. 그날따라 화가 나서 참을 수가 없었다. 어깃장이라도 놓아야 할 것 같았다.
“토론과 대화를 통해 자신의 생각을 객관화시키세요. 침묵하는 동안 생각했던 것들, 그걸 다른 사람들이 들을 수 있는 말로 표현하세요. 그래야 비로소 자신의 생각이 어떤 것인지를 알 수 있고, 그것을 알 때 다른 사람과의 차이, 또 그 차이에서 새로 피어날 새로운 생각들을 경험하고 그래야 성장이란 걸 할 수 있지 않겠어요. 성장하기 싫어? 성장하면 큰일나요?”
그러자 어떤 학생도 마치 그동안 참고 있었다는 듯이 항변해왔다.
“선생님, 저희는 선생님의 그 ‘생각해 보라’는 말씀이 제일 어려워요. 생각하는 방법을 잊었거든요. 생각이라는 것이 뭔가요? 거의 20년 동안 생각 않고 그렇게 살았는데 대학에 와서 만난 선생님들이 갑자기 저희에게 계속 생각하라 하시니 저희도 참 답답합니다!”
그 학생의 대답은 지금 대학생들에게 사유하는 능력이 없음을 말하는 것이었다. 이들은 시험 잘 보고, 자격증 많고, 외국어도 잘하지만 정작 생각하는 능력이 없다. 그렇다면 경쟁에서 살아남느라 다만 안정적인 삶만 원하게 되어 버린 우리 세대가 이 조용한 ‘기계’들을 만들어 낸 것일까.
하긴 그렇다. 선생님의 질문에 손을 들며 서로 “저요! 저요!” 했던 초등학교 시절을 지나 중학교에 들어오면 선생님들은 강하고 거친 목소리로 늘 “조용히 해!” “떠들 시간에 한 글자라도 더 봐!” 말한다. 진도 나가기에 바쁜 선생님들은 질문이 많은 학생들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조금 엉뚱하거나 선생님을 골탕 먹이려는 아이로 취급하기도 한다. 입시 전쟁의 마지막 단계인 고등학교 선생님들은 아예 말없이 문제만 풀거나 시험에 나올 만한 내용만 정리하여 인쇄물로 나눠 준다. 학생들은 그것만 외우면 된다. 도무지 교사와 학생 간에 말이 오고 가지 않는다. 30년 전이나 지금의 학교는 똑같다. 그동안 한국 사회가 급격히 변했음에도 학교는 놀랍게도 그대로다.
사실 학교 교육만 아이들의 말과 생각을 막는 것은 아니다. 한국의 부모들은 아이에게 누군가 질문을 하면, 아이 대신 대답한다. 그건 대학생 자녀를 둔 부모도 다르지 않다. 미국 대학교로 교환학생을 계획한다는 친구의 딸에게 물었다.
“교환학생 가서 특별히 하고자 하는 것이 있어? 영어만 배우러 가기엔 좀 아깝다, 그치?”
그러자 영락없이 곁에 있던 내 친구가 대답한다.
“여행도 하고, 어렸을 때 만났던 친구들도 보고……. 이 다음에 유학하고 싶은 곳에도 가보고 싶대.”
친구 딸은 처음부터 엄마가 대답할 줄 알았다는 듯, 내 질문이 끝나자 엄마를 바라봤다. 초등학교 이후 말할 기회를 빼앗긴 이들에게 침묵이란 그러므로 말과 생각을 다듬는 시간이 아니다. 말할 필요가 없었으니 침묵의 시간에 사유를 할 필요가 없고, 그러다 보니 “그 ‘생각해 보라’는 말씀이 제일 어려워요. 생각하는 방법을 잊었거든요.”라고 제 스스로도 답답해서 소리치게 되는 것이다. 생각하는 대신 그들은 그 시간에 자거나 스마트폰 위에서 손가락을 움직인다. 그러다가도 “이거 시험에 나옵니다.”라는 한마디면 눈을 반짝이고 귀를 쫑긋 세운다. 이게 요즘 대학생들의 모습이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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