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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이 고고학을 만나다
작은 시작
인류 조상과 침팬지들이 유일한 종(작고, 평범한 아프리카 마이오세의 유인원)이던 시간과 현재 사이엔 대략 700만 년이란 세월이 있다. 열대 우림부터 북극툰드라에 이르기까지, 높은 고원부터 머나먼 대양의 작은 섬들에 이르기까지 지난 5천 년간 지구 구석구석에 둥지를 틀고 정착해온 유일한 동물로서 우리는 생존해왔다. 저 기나긴 역사 동안 우리 뇌의 크기는 세 배나 커졌고, 단순한 석기부터 실로 경이로운 디지털 기기까지 기술 발전을 이룩하였다. 우리는 직립보행을 하고, 언어를 사용하며, 예술품을 풍부하게 생산하고, 종교, 정치, 사회라는 명목 하에 놀라운 상상력을 동원하여 복잡하고 정교한, 거대한 세계를 만들어냈다. 진실로, 우리는 이제 더 이상 유인원이 아닌 것이다.
이 700만 년의 세월 동안 대부분 우리는 혼자가 아니었다. 우리의 먼 조상들은 가까운 관계에 있는 다른 종들과 삶의 터전을 자주 공유했다. 이런 고대 생활양식은 6만 년 전에 변화를 맞기 시작했는데, 이때 우리와 닮은 사람들, 즉 현생 인류가 아프리카에서 벗어나, 구세계(유럽, 아시아, 아프리카를 가리킴-옮긴이)를 횡단하여 이동했다. 유럽과 서남아시아의 네안데르탈인과 같이 더 오래된 종들이 삶의 터전을 옮겼고, 멸종했다. 이 같은 현생 인류도 또한 구세계의 경계를 초월하여, 최초로 오스트레일리아와 아메리카 대륙(신세계-옮긴이)에 거주했다. 11,000년 전, 마지막 빙하기가 끝나갈 무렵, 우리는 마을에서 살아남은 유일한 종이었다. 현재 호모 사피엔스는 진화론적 의미에서 생존에 성공한 단일 종이라 하겠다.
머지않아 우리는 또한 세계적인 종이 되었다. 농경생활로의 이행은 도시, 문명, 급격한 인구 증가를 이끌었다. 다른 한편으로, 5000년 전부터 시작된 작물 재배는 머나먼 태평양으로의 여정을, 동물을 이용한 동력은 툰드라와 사막 횡단을 각각 가능하게 했다. 그래서 신세계를 발견하고자 한 유럽인이 항해 도중에, 세계 도처에서 사람들과 맞닥뜨린 것은 그리 놀랄만한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유럽 탐험가들은 (항상 합의하에 이루어진 것만은 아니지만) 상호교배를 통해 성공적으로 유일한 생물 종으로 남은 호모 사피엔스의 역사를 반복 실험했다.
우리는 이 700만 년의 역사를 우리의 몸과 뇌 속에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우리 자신과 유인원을 해부하고 비교함으로써 얻은 과학적 통찰력이 진화의 과정을 이해하는 데에서 기초가 된다면, 유전학의 비약적 발전은 근대와 고대 DNA, 두 가지를 이용하여 조상들의 계보를 추적해 나가는 데 필요한 새로운 증거를 마련해주었다. 또한, 화석 뼈대, 두개골, 치아는 진화 정보를 내포하고 있어 법의학적으로 주목받았다. 동시에, 고고학자들은 기술의 발달과정을 기록했으며, 안정적인 식량 공급을 보장하는 행위와 식습관에 관한 주요 문제를 다루었다. 그 결과 우리는 한결 다채롭고 이해하기 쉽게 우리 초기 역사 기록을 접할 수 있다.
본서 저자들인 우리는 1960년대 말에 본격적으로 고고학 분야에 뛰어들었는데, 그때만 해도 인간진화를 바라보는 지평이 매우 달랐다. 화석 수는 얼마 되지 않았고, 과학기반 연대측정법(방사선탄소를 이용)은 아직 걸음마 단계에 불과했다. 유적지와 유물을 접할 기회가 매우 드물었을 뿐만 아니라, 그 기회라도 잡으려면 비용이 많이 들었는데, 1970년에 점보제트기가 등장하여 국제여행이 자유로워지면서 사정이 나아졌다. 그 시절, 컴퓨터는 지하실 전체를 다 차지할 만큼 컸고, 거기에 펀치카드를 삽입해야 프로그램이 작동했다. 터치스크린이나 검색엔진은 구경도 못할 시절이었고, 대학원생 신분으로 우리가 누릴 수 있던 최고의 사치는 복사기가 전부였는데, 광택 나는 종이에 이미지들을 연거푸 찍어 내는 데 비용이 꽤 많이 들었다.
기술 변화의 속도에 발맞춰 우리의 기원에 관한 새로운 정보들이 구축되어 나가는 속도를 보면 감탄이 절로 나온다. 무엇이든 시작단계는 현재와 비교하면 보잘것없어 보인다. 하지만 사소한 것이 중요하지 않다는 의미는 아니다. 이 책에서 우리는 중대한 변화의 정교함은 물론이고, 정교한 변화가 여전히 ‘인류 진화’의 오래된 문제들을 풀어나가는 방향으로 이끈다는 것을 보여 줄 것이다. 이런 변화는 우리의 기원에 관한 연구에서 대체로 등한시되던 사회생활과 관련된다.
이 책에서 주요 명제는 우리의 삶이 뇌와 항상 연관되어 있다는 것, 더 정확하게 말해서 뇌 크기와 기본적 사회 단위의 크기 사이에 연관이 항상 존재해 왔다는 것이다. 일상을 영위하려고 엄청난 양의 정보에 매일 의존하면서, 리우데자네이루 크기만 한 도시에 살 수 있는 유일종으로서의 우리의 진화를 이해하기 위해 이런 연관성을 들여다보는 건 필수라고 본다. 그런데, 안을 들여다보면 오늘날 세계 시민은 5000년 또는 50,000년 전의 사회생활과 기본적으로 유사한 사회생활을 해나가는 사회적 존재다. 이러한 사회생활의 밑바탕에, 사회적 관계망의 크기와 관련해서 약 150명이라는 수적 한계가 있음이 관찰된다. 이것은 던바의 법칙Dunbar’s Number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본서의 저자들 중 한 명인 로빈 던바Robin Dunbar가 그 수를 규명하는 연구를 진행했기 때문이다. 이 수적 한계는 침팬지가 구성하는 사회생활의 수적 한계보다 거의 세 배가 많은데, 이 사실은 어떻게 이런 수적 증가가 발생했는가에 관한 진화적인 질문으로 바로 이어진다. 또 다른 의문도 든다. 만약 수적 한계가 150명이라면, 왜 굳이 우리는 이렇게 큰 도시에서 살고 있고, 중국이나 미국같이 엄청난 인구가 사는 나라에 우리 자신을 맞춰 살아가는 것일까?
이 책을 쓰는 목표는 작은 시작에서 출발하여 현재의 위치에 이르기까지의 진화 여정을 추적하는 것이다. 많은 여타 학문이 연관되어 있는 것은 사실이나, 우리와 동행하는 주요 안내원은 심리학자와 고고학자다. 인간 진화의 사회적인 측면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이 중심이 되는 쟁점을 연구했다.
■우리가 기대어 살 수 있는 사회적 무리의 크기를 제한하는 우리의 뇌, 즉 인지능력에 한계는 존재하는가?■만약 그렇다면, 수렵민의 작은 사회에서 오늘날 같은 메가시티로 사회가 발전하면서, 더 많은 수의 사람들을 상대하기 위해 우리의 인지능력은 어떻게 진화해 왔는가?■우리 조상들이 우리보다 훨씬 더 작은 뇌를 소유하였다는 사실을 감안하면서, 머나먼 과거의 사회생활을 이야기할 때 어떤 의미를 찾아야 하는가?■호미닌(사람아족)의 뇌가 인간 정신human mind으로 바뀐 시기를 말하는 것은 가능이나 한 것일까?
아이디어가 구체화되다
2002년, 영국의 인문·사회과학에 관한 국가기구인 영국학술원이 창립 100주년을 기념하여 연구프로젝트대회를 개최했다. 영국학술원은 인문·사회과학 분야에서 제일 뛰어난 프로젝트를 하나만 뽑아 최고 액수의 연구보조금을 지원해준다고 제안했다. 우리 셋은 개인적으로 사물을 바라보는 관점과 흥미가 꽤 달랐지만, 많은 시간 동안 인간 진화 이야기에 흠뻑 빠져 산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우리 중 한 명은 아프리카에 주된 관심을 보이는 구석기 고고학자이고, 다른 한 명은 유럽의 후기 구석기 사회에 특별한 애정을 보이는 사회 고고학자이며, 마지막 한 명은 인간과 영장류의 행동에 주된 관심을 보이는 진화 심리학자다.
우리는 영국학술원이 제안한 도전에 응할 자신이 있었고, 기회가 왔음을 직감했다. 우리는 누구라도 의문을 가질 만한 거대한, 유일무이한 질문(우리는 어떻게 인간으로 진화해 왔는가?)을 마음에 품었고,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신지식을 총동원했다. 과거에는 인간 진화를 연구할 때 물리적 증거(석기와 뼈)를 이용하는 데 제약이 있었지만, 우리는 운 좋게도 석기와 뼈들이 지닌 의미와 의의를 통해 밝힌, 사회적 행위와 뇌 진화에 관한 최신 연구결과를 활용할 수 있었다. 게다가 고고학은 학술원의 절반에 해당하는 인문학에 속했고, 심리학은 나머지 절반인 사회과학에 속한 만큼, 우리는 학제적인 연구 방법이라는 상징적인 본보기가 됨으로써 학술원과의 간극을 좁힐 수 있었다. 우리는 열정을 갖고 신을 내며, 머리를 맞대고 대회 참가서를 작성하여 보냈다.
우리의 노력이 가져올 가능성은 그야말로 무궁무진해 보였다. 학계는 막 심리학과 고고학을 통합하려 애쓰는 참이었다. 지난 십 년간, 영국인 고고학자 콜린 랜프루Collin Renfro와 미국인 고고학자 토마스 윈Thomas Wynn을 중심으로 인지고고학이 창시되었다. 이 접근의 주요 관심사는 도구를 제작하고 예술작품을 생산하는 데 들어가는 인지 수준을 이해하는 것이다. 허나 우리는 우리의 가장 가까운 사촌인 원숭이와 유인원의 행동을 이해하면서, 또 뇌 진화처럼 주요한 영역에 근거가 되는 과정을 밟아오면서 이룩한 최근의 동향을 통해, 호미닌의 사회생활을 한층 더 잘 알 수 있었고, 대다수의 인지 고고학자 역시 이전에는 범접할 수 없었던 과거를 더 깊이 연구할 수 있었다. 특히, 사회적 뇌 가설이라고 알려진 이론(원숭이와 유인원들과 같은 동물들이 대단히 복잡한 사회 세계를 다룰 수 있을 정도로 뇌가 진화해 왔었다는 견해)은 호미닌의 사회 진화를 탐구할 수 있는 새로운 통찰과 풍부한 정보의 보고였다.
우리 프로젝트는 〈루시에서 언어까지: 사회적 뇌의 고고학〉Lucy to Language The Archaeology of the Social Brain이라고 거창하게 이름 붙였다. 루시는 초기 오스트랄로피테쿠스속의 상징적인 화석인데, 1974년, 에티오피아 북동부의 사막에서 고인류학자 돈 요한슨과 그의 팀이 발굴했다. (루시는 비틀즈의 노래인 루시 인 더 스카이 위드 다이아몬드Lucy in the Sky with Diamonds에서 이름을 붙인 것인데, 이 화석이 발굴될 당시 테이프 레코더에서 이 곡이 흘러나왔다고 한다.) 루시와 그녀의 가족은 약 350만 년 전에 살던 최초 호미닌으로, 관련 증거가 많았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속의 원인들이 적어도 뇌 용량에 관련해서는 여전히 우리의 공통 유인원 선조들과 많은 유사점을 보이기 때문에 확실히 루시 는 우리의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는 지점으로 보였다. 언어는 우리 자신과 같은 종류인 현생 인류의 출현을 특징 짓는 동시에, 인류의 자연스러운 종착점처럼 보였다. 그런 이유로 프로젝트의 이름이 정해졌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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