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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군에서 대통령으로
(중략)
취임 연설에 담긴 의미
우루과이 전통대로, 호세 무히카는 2010년 3월 1일 의회에서 대통령 취임 연설을 했다. 많은 의미가 담긴 메시지였다. 그가 말한 것과 말하지 않은 것 모두에 정치적인 의미가 가득했다. 나는 이 연설이 두 가지 맥락에서 매우 중요하다고 본다. 첫째는 자신의 직무에 관한 확고함이 담겨 있고, 둘째는 몇 줄 되지 않지만 과거 게릴라 전사 시절을 용납하지 않고 자신의 민주주의적 자질을 의심하는 우루과이 국민들과 화해의 길을 모색하려는 메시지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나의 짧은 법률 지식으로는 어느 순간에 대통령 당선자에서 대통령으로 바뀌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 순간이 지금인지, 아니면 전임자에게서 통치권을 넘겨받은 직후인지 모르겠습니다. 나는 그저 당선자 타이틀이 내 인생에서 잊히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당선자라는 타이틀은 내가 유권자들의 지지로 뽑힌 대통령이라는 것을 기억하게 해 줍니다. ‘당선자’라는 말은 내가 방심하지 않게 해 주며, 나는 임무를 위탁받았을 뿐이라는 것을 상기시켜 줍니다. 대통령의 또 다른 이름은 통치자입니다. 국가원수란 자기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의 명령을 받는 사람입니다.”
이렇게 무히카는 다른 라틴아메리카 국가에서처럼 대통령이 전지전능하고 숭배의 대상이 되는 것이 아니라 강력한 국회와 힘의 균형을 이루고, 대통령에게 압박을 가하는 힘 있는 정당들에 맞서 자주 싸워야만 하는 우루과이의 정치 전통에서 중요한 여러 부분을 분명히 밝혔다.
무히카는 우선 자신의 연설에서 주권은 유권자들에게 돌아가야 하고, 자신의 직무는 유권자들의 뜻에 따라서 이루어지는 것이며, 이는 우루과이 같은 민주적인 시스템에서 선출된 공화국 대통령에게 당연한 것임을 인정했다. 동시에 바로 이 점이 그가 개혁을 하게 될 때 우루과이 국민들을 설득하며 대통령으로서 성공할 수 있었던 핵심 요소이다. 무히카는 자신을 다른 대다수와 동등한 위치에서 통치하는 사람으로 자리매김했다. 그는 자신의 법률 지식이 제한적이라는 것을 인정하면서 전임자들과 깊고도 분명하게 선을 그었다. 이제는 다수의 우루과이 국민과 다를 바 없는 사람이 국가를 운영한다는 것이 무히카의 메시지였다. 재임 기간 내내 그는 이 자세를 유지하고 보여 주었으며, 지속적인 형태로 더욱 공고히 할 방법을 찾았다.
취임식에 입기 위해 양복을 맞춘 옛 게릴라 전사는 한 걸음 더 나아 갔다. 그의 과거를 용서할 수 없어서 표를 주지 않았던 사람들과, 젊은 시절 자신의 사상을 지키기 위해(누군가는 강요하기 위해서라고도 하겠지만) 국가를 전복할 목적으로 무기를 들고 싸웠던 자신의 의도를 의심하는 사람들에게도 대화를 시도했다.
“오늘날 우리는 엄중하고 세세하게 법을 적용하고 있으므로, 더 이상 그것을 기억할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는 헌법이 규정한 바를 최선을 다해 수행할 것입니다. 국가의 정치 조직 형태를 존중하는 것은 물론 국가가 이루고자 하는 사회적 윤리를 정의한 헌법 구절들을 이행할 것입니다.”
이 구절에서 무히카는 우루과이 국민들에게 두 가지 기본적인 생각을 전달했다. 먼저 ‘국가의 정치 조직 형태’, 즉 민주 공화정을 존중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혼란은 없을 것이다. 완전히 반대쪽에 있는 과거와의 화해는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동시에 이행하겠다고 약속한 ‘헌법의 명령’에 대한 해석의 여지는 열어 두었는데, 이는 ‘사회적 윤리’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권리의 문제로서 평등의 전통이 뿌리 깊은 나라에서 헌법이 성립된 역사적 배경에 정통한 무히카 대통령은, 자신이 언급한 ‘윤리’에 따라 개인의 자유 확장과 균등한 기회 제공에 초점을 맞추어 업무를 시작했다. 이 중 첫 번째 목표는 확실히 달성을 했다. 마지막 목표는, 앞으로 보겠지만 성공했다고 단언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탁월한 소통 능력
나는 민중해방운동-투파마로스 게릴라 시절의 무히카의 동료들에게 무히카가 조직의 일원으로서 무엇을 집중적으로 볼 것 같으냐고 물어 보았다. 몇몇 정당 동료들과 최측근들에게도 그가 새로운 시기, 대통령의 시대에 적응할 수 있겠느냐고 물어보았다. 또 무히카의 행보를 따르거나 연구한 정치학자, 역사학자, 정책 분석가 및 기자 들에게도 같은 질문을 던졌다.
그 결과, 두드러지는 한 가지 특징은 바로 무히카가 직관이 강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정치와 인간관계에서 직관이 강한 사람. 이것이 게릴라였을 때나 정부 정책을 놓고 더 순수한 다른 노선과 언쟁할 때, 그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성격적 특징이다. 이런 특징 때문에 그는 여러 경우에 좌파 진영에서 정당하다고 인정받으면서 동시에 우파 진영과도 부합하는 생각(예를 들어 경제적인 측면)을 가지게 되었다. 또 획기적인 실용주의 덕분에 다른 노선을 수용하기도 하고, 관습적으로 좌파적인 것으로 인식되던 사안에서 우파 지지자를 설득할 수도 있었다.
어떻게 그럴까? 답은 아주 간단하다. 무히카는 의사소통에 매우 뛰어난 사람이다. 내 생각에는 의사소통 능력이 그의 성공의 가장 큰 단서이다. 그의 개인사, 다른 사람 앞에서 자신을 보여 주는 방법, 친근하게 다가가는 사소한 행동을 통해 지속적으로 호소하는 등 무히카의 모든 것이 대중 매체를 끌어들이는 자석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그는 항상 자신의 메시지에 양념을 곁들이고 반론하고 확장하는데, 만약 그가 콘텐츠와 논리를 정확하게 소통할 능력이 없었다면 청중의 마음을 얻지 못했을 것이다.
심리학자이자 마케팅 및 정치 커뮤니케이션 전문가인 다니엘 에스키벨은 청중과 소통하는 무히카의 능력이 뛰어나다면서, 그것이 2009년 대선에서 무히카가 승리한 근본적인 이유 중 하나라고 분명히 말했다. 특히 ‘공적인 성격에서의 매력’ 때문에 게릴라 전사 시절에는 언론 보도를 통해 ‘무히카 코르다노’에서 ‘무히카’로 불리게 되었고, 입법자로서 의회에 들어갔을 때는 곧바로 ‘페페’가 되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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