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수원
삼성의 도시에서 노동자의 권리를 묻다
전노협 출범의 성지, 수원을 아시나요?
“우리는 오늘 전국 노동조합의 깃발을 높이 들어 이 땅에 자주적이고 민주적인 노동운동의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었음을 엄숙히 선언한다. 우리는 또한 정권과 소수 재벌의 억압과 수탈을 제거하여 4000만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실현하기 위해 제 민주세력과 힘차게 연대해나갈 수 있는 전국 노동자의 조직적 대오가 출범하였음을 만천하에 선언한다.”
역사적인 전국노동조합협의회(전노협) 창립대회가 열린 곳은 서울이 아닌 수원이었다. 1990년 1월 22일, 서울에는 ‘갑호비상령’이 내려졌다. 전노협 창립대회 장소로 알려진 서울대학교는 2만 5000면의 경찰병력으로 원천봉쇄됐고, 서울 모든 대학과 주요 전철역에 경찰이 깔렸다. 여소야대로 불안했던 노태우 정권과 민정당이 민주당, 공화당과 3당 통합을 발표한 날, 1,500명의 전노협 대의원과 노조 간부들은 경찰의 미행과 추적을 따돌리고 성균관대학교 수원캠퍼스로 모여들었다. 미군정이 만든 대한노총에서 시작한 한국노총 45년을 뒤로 하고 한국 노동운동의 역사를 새로 쓰는 순간이었다.
뒤늦게 경찰은 5개 중대 750명의 전경과 백골단을 캠퍼스에 투입했다. 300명의 노동자·학생이 화염병과 돌멩이를 던지며 쇠파이프로 맞섰다. 창립대회를 마친 단병호 전노협 초대 위원장과 지도부들이 무사히 대회장을 빠져나갔다. 1995년 11월 11일 민주노총 창립까지 전노협의 시대가 시작된 날이었다.
1987년 6월 민주항쟁 이후, 7월부터 전국 곳곳에서 민주노조가 건설되며 ‘노동자대투쟁’이 시작됐다. 1987년 12월 마산·창원지역노동조합총연합(마창노련)을 시작으로 지역별로 노조협의회가 만들어졌다. 진주, 서울, 인천, 전북에 이어 1988년 12월 28일 수원과 안산을 거점으로 한 경기남부지역노동조합연합(경기남부노련)이 건설됐다. 수원과 화성의 한일전장, 아주파이프, 란토로코리아, 건설중장비노조 등이 중심이었다.
수원은 삼성전자를 비롯해 삼성전기, 삼성전자서비스, 삼성SDI, 삼성LED 등 삼성그룹 계열사가 즐비한 ‘삼성의 도시’다. 1938년 설립된 삼성물산은 식품과 의류업을 주력으로 하다 1969년 삼성전자를 창립했다. 1974년 한국반도체, 1980년 한국전자통신을 인수해 가전과 반도체가 주력산업이 됐다. 세계 최대의 휴대전화 제조사이며, 인텔에 이어 시장 점유율 2위의 반도체 회사다.
삼성그룹에는 삼성일반노조를 비롯해 삼성전자서비스, 에버랜드, 삼성SDI에서 노동조합이 만들어졌고, 최근 한화로 매각이 발표된 뒤 삼성 테크윈, 삼성토탈에서 잇따라 노조가 설립됐다. 수원 1~3산업단지 466개 업체에서 8,030명이 일하고 있지만 노동조합이 있는 곳은 거의 없다.
수원에서는 다산인권센터, 한국노동보건안전연구원, 수원여성회, 수원이주민센터 등이 노동자의 권익과 인권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 수원에서 만들어져 삼성의 백혈병을 밝혀냈고, 최근 서울 사당으로 거처를 옮긴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전화 02-3496-5067, 이메일 sharps@hanmail.net)은 반도체 노동자의 가장 가까운 벗이다.
딸의 영정을 들고
공장 앞에 선 아버지
신분증을 확인하는 경비들의 차가운 눈빛에 황급히 호주머니를 뒤진다. 앳된 얼굴의 여성들이 두리번거리며 공장으로 향한다. 통근버스와 택시가 쉴 새 없이 드나들며 사람을 실어 나른다. 한국 경제의 심장부라는 삼성전자 기흥공장의 3월 첫 출근날 풍경이다.
9년 전 강원도 속초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세계 제일의 기업 삼성전자에 입사해 처음 출근하던 날의 유미가 떠오르는 듯, 공장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눈이 젖어든다. 입사 1년 8개월 만에 백혈병에 걸려 시름시름 앓다가 하늘나라로 떠난 유미…. 딸이 입고 일했던 방진복을 입은 황상기 씨는 영정사진을 든 채 말없이 하늘만 바라본다. 2007년 3월, 딸을 가슴에 묻고 이 자리에서 삼성과 싸움을 시작하던 날은 어땠을까?
7년의 세월을 견뎌낸 아버지는 50만 관객의 눈물이 담긴 영화 〈또 하나의 약속〉과 함께 딸의 공장을 찾았다. 7년 전에는 혼자였지만 오늘은 삼성전자 서비스 노동자들을 비롯해 많은 이가 그의 손을 맞잡고 있다.
2014년 2월 6일 〈또 하나의 약속〉이 개봉한 구로CGV. 새벽 6시에 속초를 출발해 태백산맥을 넘어온 황상기 씨의 손에 유미의 공책 두 권이 들려 있다. 딸과 영화를 같이 보고 싶은 마음이다. 유미와 한 약속을 지킨 아버지 곁에 영화의 주인공 이종란 노무사와 삼성에 맞서 싸우는 사람들이 앉았다. 백기완 선생, 삼성의 ‘떡값 검사’를 폭로해 의원직을 잃은 노회찬 전 의원, 삼성전자서비스 최종범 씨의 아내 이미희 씨와 삼성노동자들, 그리고 황상기 씨를 응원하는 기자들이 극장을 가득 메웠다.
개봉영화 예매율 1위인 〈또 하나의 약속〉이 확보한 상영관 수는 고작 55곳이었다. 극장이 돈을 벌기 싫어하는 게 아니라면 ‘보이지 않는 손’이 있다고 볼 수밖에 없는 일이지만, 아버지는 그마저도 행복했다. 백혈병에 걸린 유미가 골수를 빼는 장면과 아빠의 택시 안에서 숨을 거두는 장면이 나올 때, 극장 여기저기에서 숨죽인 울음이 새어나온다. 감동과 눈물, 분노와 부끄러움이 뒤섞인 116분이 끝나자 관객 모두가 기립박수를 친다.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이 웃는다. 공포와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삼성, 그리고 홀로 싸워 마침내 딸과의 약속을 지켜낸 아버지. 이제 삼성의 노동자들 차례다. 유미를 보내고 7년 만에 열리기 시작한 진실의 문. 하지만 삼성의 철옹성은 여전히 견고하다. 그 앞에 선 아버지는 두 주먹을 불끈 쥔다.
직업병으로 죽어도
말 못하는 사람들
발걸음을 삼성전자 수원사업장으로 옮긴다. 점심시간이 가까워오자 젊은 노동자들이 쏟아져 나온다. 주요 생산시설을 이전해서 연구원과 사무직들이 대다수다. 삼성 노동자들의 직업병과 삼성전자서비스 기사들의 아픔이 담긴 홍보물을 건네지만 매정하게 뿌리친다.
〈또 하나의 약속〉 영화 전단지마저 외면한다. 하기야 삼성의 홍보담당 부장이 삼성 공식블로그에 “진실을 왜곡하고 영화가 아닌 투쟁 수단으로 변질됐다”라고 떠드는 마당에 어느 간 큰 노동자가 흔쾌히 손을 내밀 수 있을까?
푸른 삼성 깃발이 가장 많이 걸려 있는 도시 수원, 축구팀 이름도 수원삼성이다. 삼성디지털시티, 기흥·화성공장, 삼성전자서비스 본사까지, 삼성은 수원의 자랑이다. 그런데 삼성에 다니는 노동자들에게도 회사가 자랑스럽고 행복할까? 황유미 씨가 일하던 기흥공장에서는 억울한 죽음이 사라졌을까?
3월 3일까지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에 제보된 삼성전자 직업병 피해자는 146명이었고, 이 가운데 57명이 목숨을 잃었다. 500여 종 이상의 화학물질을 사용하는 기흥공장의 사망자가 31명으로 가장 많았다. 2010년 이후에 사망한 노동자도 26명이나 됐다. 직업병이라는 사실조차 모르거나 삼성과 합의해서 언론에 알리지 않기로 한 이들까지 포함하면 실제 피해자는 훨씬 많을 것이다.
삼성전자 매출액은 2010년 154조 원에서 2013년 228조 원으로, 당기순이익은 16조에서 30조 원으로 급증했다. 하지만 직원은 3년간 362명이 줄었다. 삼성이 일자리를 늘리지 않고 떼돈을 벌어들일 수 있었던 요술방망이는 비정규직 사내하청노동자였다. 2014년 정부의 고용형태공시자료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비정규직 노동자 비율이 23.07퍼센트로 직원 4명 중 1명은 비정규직이었다. 전자업계 경쟁업체인 LG전자(9.62퍼센트)와 비교할 때 2배 이상 비정규직 비율이 높았다.
고용노동부의 ‘2010년도 300인 이상 사내하도급 현황’ 자료에 따르면 삼성전자 기흥공장의 정규직은 2,600명밖에 되지 않았고, 사내하청 노동자가 3,018명이었다. 생산직의 55퍼센트가 비정규직인 셈이다. 그런데 반올림에서 제보받은 57명의 사망 노동자 가운데 비정규직은 단 2명이다. 정규직도 삼성이 두려워 피해 사실을 세상에 알리기 꺼린다는 것을 감안하면, 비정규직을 포함한 직업병 피해자의 규모는 예측을 훨씬 넘을 것이다. 2013년 1월 삼성반도체 화성사업장의 불산 누출 사고 때 5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는데 모두 하청업체 소속이었다. 삼성은 위험까지 외주화, 하청화하고 있다.
(본문 중 일부)
★ 저작권법에 의해 한국 내에서 보호를 받는 저작물이므로 무단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