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로코
세계의 끝
“앞으로 내민 그녀의 손끝은 이별을 말했고,
내리깐 그녀의 눈은 언제 돌아오는지 물었다.
나는 대답했다. ‘길 떠나는 여행자 앞에
신이 어떤 운명을 준비해두셨는지 누가 알겠소?’”
─ 작자 미상, 알-압시히의 《알-무스타트라프》(1446년경)에서.
정말 뜻밖의 사실이었다. 나는 기사를 다시 읽었다. 이번에는 옆에 적힌 이탤릭체 글자까지. ‘로열 에어 모로코’ 기내 잡지에 실린 짧은 기사에 따르면 이바는 “인도 술탄의 임명을 받아 중국 주재 대사와 포클랜드 제도의 법관, 무슬림 율법 담당관을 차례로 역임했다.”
정신이 다 아찔했던 몇 분 동안 온갖 생각이 타타르 기마병처럼 머리를 뒤흔들며 지나갔다. 이바가 대서양을 건넜었구나. 감자에 자기 이름을 붙였을지도 몰라. 세계사를 새로 써야겠지. 이거 교정자가 미쳤구만. 내가 미쳤지.
다행스럽게 세 가지 언어를 쓰는 잡지라 아랍어 기사와 프랑스어 기사를 일별하는 것으로 상황은 정리됐다. 이바는 포클랜드 제도 구스그린에서 이슬람 율법인 샤리아 법을 집행한 적이 없다. 프랑스어 기사의 ‘일 말디브Iles Maldives’로 확신하건대 포클랜드 제도는 사실 ‘주주르 알-말디프’였다. 몰디브 제도가 어쩌다 번역자 머릿속에서 말비나스 제도(포클랜드 제도의 에스파냐어 이름)로 둔갑했으리라 짐작은 들었다. 어처구니없이 지명을 착각하는 실수는 길고도 뚜렷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셰익스피어가 ‘보헤미아의 해변’을 언급했던 것처럼 바그다드의 역사학자 이븐 하우깔은 ‘티베트의 해안’에 대한 글을 썼다. 그래도 그건 천 년 전 일이라지만, 문서편집기와 위성항법장치GPS 시대인 요즘에도 인도 아대륙이 엉뚱하게 신세계로 오인되는 경우가 있는 것이다. 비행기가 활주로로 이동하는 사이 나는 아랍어로 ‘시샨’이라 부르는 체첸에 관한 기사를 요약하여 옮긴 어느 영어 기사를 떠올렸다. 번역자는 ‘구두닦이(슈사인) 전쟁을 보는 이슬람 세계의 시각’이라고 제목을 붙여놓고 얼마나 뿌듯했을까?
혹시 기장이 난독증을 일으켜 인도 탄자부르나 인도네시아 탄중셀로르로 가면 어쩌나 잠깐 걱정했지만, 2시간 30분 후에 비행기는 철자도 정확한 탕헤르의 이븐바투타국제공항에 우리를 내려놓았다. 이바는 이렇게 썼다.
내게 마법을 걸어준 곳이며,
내 살이 처음 닿은 흙이 있는 곳.
꿈꾸었던 대로 나는 이바의 무덤을 방문하고 앞으로 이어질 내 여행에 축복을 받기 위해 탕헤르에 왔다.
그러나 첫 목적지는 그의 이름을 딴 이븐바투타호텔이었다. 위엄 있는 택시가 항구 위쪽의 가파르고 좁은 길을 요리조리 빠져나가는 동안, 나는 이바라면 대체 이 주소를 어떻게 생각할까 고민했다. 쿡 길에서 들어간 마젤란 길 8번지라니. 언덕 쪽으로 테라스를 낸 호텔은 번쩍거리는 색색의 전구들을 늘어뜨리고 있었다. 호텔에는 피자와 스테이크를 파는 가게와 미용실도 있었다. 숙박명부에 서명을 하면서 나는 접수원에게 방문 목적을 언급했다. 접수원이 말했다. “아, 손님, 이바라면 벌써 찾으셨어요!” 그는 머리 위에 걸린 투박한 유화 한 점을 가리켰다. 워즈워스에나 어울릴 법한 자연주의적 배경 앞에 수염을 기른 한 남자가 보였다. 남자 옆에는 두루마리가 불룩하게 든 학생용 가방 같은 게 보였고, 뒤에는 닻을 내린 평온한 배 한 척이 보였다. 접수원이 나를 불렀다. “절 따라오세요. 다른 이바 그림을 보여드릴게요.” 텔레비전이 있는 휴게실에서 그는 벽에 걸린 오래된 사진 액자를 가리켰다.
“하지만 이건 사진인데요?” 내가 말했다.
“예, 아주 오래된 사진이지요.”
“게다가 물담배를 피우고 있잖아요.”
“아, 이바도 물담배가 일반 담배보다 건강에 좋다는 걸 알았거든요.”
“그렇지만 담배는 아메리카 대륙에서 왔고, 사진은 고작 150년 전에 발명됐을 텐데요.”
접수원이 더 이상의 질문은 용납하지 않겠다는 듯 단정적으로 말했다. “이바는 아주 위대한 여행가였습니다.”
나는 방 열쇠를 받아서 짐을 풀러 갔다. 14세기에 관한 연구 대부분이 왜 칙칙한 도서관에서 이루어지는지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이바와 같은 시대에 살았던 시리아인 아불 피다는 탕헤르가 세 가지로 유명하다고 썼다. 탕헤르 포도와 탕헤르 배와 탕헤르 사람들의 멍청함. 거의 비슷한 시기에 인근 사브타 토박이인 어느 지리박물학자는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탕헤르 외곽에 바르깔이라는 샘이 있는데, 그 물을 마시면 멍청해진다고 한다. 사람들은 탕헤르인들이 멍청한 이유를 다음과 같이 진단한다. ‘바르깔 물을 마셔서 그런 거지, 그 사람들 탓은 아니야.’” 탕헤르에 있는 동안 주의하느라 수돗물에 면세 스카치 위스키를 타 마셨는데, 그 덕분인지 내가 아는 한 어떤 해도 입지 않았다.
이런 짤막한 언급들을 제외하면 내가 읽은 책에서 이바가 살았던 당시의 탕헤르를 알려주는 정보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탕헤르가 등장하는 빈도는 이바가 죽고 한 세기가 흐른 후인 1471년, 포르투갈이 점령한 때부터 잦아졌다. 그때를 시작으로 여러 유럽 국가들의 손을 거치면서도 이 도시는 용케 아랍의 특성을 지켜냈다. 알리 베이라는 가명으로 여행하면서 책을 펴낸, 나폴레옹의 첩보원일 가능성이 높은 에스파냐의 모험가 도밍고 바디아 이 레블리치는 19세기 초에 지브롤터 해협을 건너는 간단한 여행만으로 ‘다른 행성이나 다름없는 낯선 세계’를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때 이후로 세상은 변했다. 그날 밤 나와 함께 파스퇴르 대로에 나가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했더라면 이바도 그곳이 자신의 고향이라는 사실을 알아채기 힘들었을 것이다. 남자들 중에 두건 달린 긴 겉옷을 입은 사람은 한 명도 없었고, 몇몇은 심지어 깡똥한 반바지를 입었다. 여자들은 두 부류로 나뉘었다. 긴 겉옷에 머릿수건을 두른 부류와 맨팔을 드러내고 몸에 딱 달라붙는 바지를 입은 부류. 길거리 카페에서 박하차를 마셔가며 머릿수를 세본 결과, 그 수는 거의 엇비슷했다. 이바라면 종교적 신심에서 우러나는 공포와 인류학적 호기심에 따른 매혹이 뒤섞인 표정으로 두 번째 부류를 바라보지 않았을까? 멀리서 희미하게 예배를 알리는 소리가 들려 캘빈클라인 청바지를 입은 사람은 어떻게 기도를 할까 궁금해졌다. 모르긴 몰라도 스판이 도움이 될 것이다.
나는 호텔로 들어와 피자&스테이크 가게로 통하는 계단을 올라갔다. 혹시 이바 피자 같은 거라도 만드나 싶어서였다. 이란 로레스 탄산産 도토리 가루로 만든 반죽에 모차렐라 대신 다미에타산 들소 치즈를 얹고, 위에는 사우디아라비아산 말린 상어포와 거칠게 간 말라바르산 후추를 뿌린 다음 오만산 바나나잎 접시에 얹어 내는 것이다. 그러나 주방장은 그런 메뉴는 시도해본 적도 없었고, 나는 육상용 원반만큼 딱딱한 콰트로 스타지오니 피자를 에스파냐 댄스음악에 맞춰 먹었다. 서로를 응시하며 피자를 먹여주는 쌍쌍의 커플들까지 완비된, 완벽하게 지중해다운 풍경이었다. 여자들은 하나같이 맨팔을 드러낸 부류였다.
댄스음악이 음식점 계단 바로 아래에 있는 내 방 침대까지 따라왔다. 나는 누워서 머리 위에서 쿵쾅거리는 베이스 소리와 달각거리는 발자국 소리를 들었다. 저 아래 항구에서는 다른 소리들이 울려 퍼졌다. 올빼미 같은 기차의 기적 소리와 부두에서 나는 낭랑한 뱃고동 소리, 탕헤르에는 도착하고 출발하는 소리가 내내 메아리쳤다. 나는 남이 먹여주면 피자가 더 맛있게 느껴지는 법일까, 생각하다가 잠이 들었다.
오전 4시 45분, 포르티시모로 연주하는 관악대 소리에 잠이 깼다. 날카롭게 울려대는 트럼펫과 으스대는 트롬본, 허세에 찌든 수자폰이 한 떼의 작은북과 환호하는 군중의 부추김을 받으며 모든 걸 날려버리겠다는 기세로 어떤 희가극의 행진곡을 불어댔다. 나는 베개에 머리를 묻고 신음했다. 이 극악무도한 불협화음은 청각적 강도행위였다. 그러나 악대는 움직였다. 악대는 계속 음악을 연주하면서 밤의 틈새 속으로 멀어졌다. 거리가 멀어지니까 그 음악이 이상한 비애감을 자아냈다. 나는 꿈이라도 꾼 건가 의심하면서 다시 잠에 빠져들었다.
아침에 접수원이 꿈이 아니었음을 확인해주었다. “결혼식이에요. 그 사람들은 신부를 데리러 가는 길이었어요.”
나는 밖으로 나가 지나가는 탕헤르 사람들을 관찰하기에 최적의 장소 중 하나인 카페 드 프랑스에 커피와 팽 오 쇼콜라를 놓고 앉았다. 몇몇 괴상한 사람들이 있었다. 유명한 페데리코 다 몬테펠트로의 초상화와 코가 꼭 닮은 소년이 지나갔다. 훌륭하게 차려입은 어느 40대 여성은 약속이 있는지 서두르다가 갑자기 어떤 나무 앞에 멈춰 서서 장황한 훈계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러다 문득 손목시계를 보고는 뭔가를 중얼거리며 ‘흰토끼’처럼 자리를 떴다. 이바의 환생이라도 찾는 건가 자문했지만, 이바의 환생이 지나가더라도 모로코 젊은이의 필수품인 선글라스와 라틴식 머리 모양으로 변장했을 게 틀림없었다. 젊은 여자들의 경우 저녁 산책용 옷차림보다는 신체부위를 덜 내놓긴 했지만 기본적으로는 지중해 맞은편의 상황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러나 이 프랑스풍 장소에서도 모로코가 완전히 제거된 것은 아니라서 아침에는 나이 든 세대가 모습을 드러냈다. 두건 달린 긴 겉옷을 입은 남자 몇몇과 리프 산맥 지역 특유의 붉은 줄무늬가 들어간 하얀 천을 두르고 털실 방울이 잔뜩 달린 밀짚모자를 쓰고 시장에 가는 여자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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