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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의 기원을 찾아서
철도鐵道란 무엇일까? 철鐵로 이어진 길? 이것만으로는 설명이 많이 부족하다. 철도는 길과 그 위를 달리는 기차를 최소한의 한 묶음으로 한다. ‘선로(레일)’라고 불리는 것을 좀 더 엄밀히 표현하자면 ‘궤도’라고 할 수 있다. 철도의 본래적 의미를 따진다면 궤도라는 말이 더 적확하다. 궤도의 특징은 무엇인가? 무엇이든 그 궤도를 이탈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인공위성은 궤도를 이탈하는 순간 우주 쓰레기로 전락해 버린다. 기차도 마찬가지이다. 궤도를 벗어난 기차는 더 이상 기차가 아니다. 철도의 가치는 열차가 오직 궤도 위에 존재할 때만 실현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동 수단으로서 궤도 위를 달리는 시스템이 등장하게 된 것은 언제부터일까? 산업혁명을 통해 동력을 가진 기관차가 본격적으로 운행되기 이전에도, 말이 끄는 궤도형 마차가 이미 있었다. 하지만 그 기원을 마치 생물의 계통을 종, 속, 과, 목 등의 단계로 거슬러 올라가듯 추적해 보면, 결국 우리는 지구 곳곳에서 삶의 터전을 찾아 이동해야했던 인류가 남긴 발자국들을 발견하게 된다. 그 발자국들을 따라 여러 개의 길들이, 다양한 모습의 궤도가 만들어졌다.
피라미드의 거석은 어떻게 운반됐을까
중학생 시절 매주 일요일에는 〈장학퀴즈〉라는 프로그램이 방영되었다. 꽤나 인기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고등학생들이 텔레비전에 나와 문제를 맞혀 우승자를 가리는 프로그램이었는데, 지금도 교육방송을 통해 이어지고 있다. 이 프로그램의 영향으로 수업 시간에도 가끔씩 퀴즈 대회가 열리곤 했다. 몸풀기식 기본 상식으로 “세계에서 제일 높은 빌딩은?”과 같은 문제는 단골 출제 문제 가운데 하나였다. 아이들은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이라고 대답해서 곧잘 틀리곤 했다. 정답은, 과거에는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이었지만 이제는 세계무역센터 빌딩이라며, 둘 다 미국의 뉴욕에 있다는 해설이 덧붙여졌다. 세계무역센터 빌딩은 9·11 사태로 사라져 버리고 없지만, 세계에서 제일 높은 빌딩은 그 전에도 이미 주인이 수시로 바뀌었다. 언젠가는 밀려나겠지만, 현재 세계에서 제일 높은 빌딩은 2010년 완공된 아랍에미리트의 두바이에 있는 ‘부르즈 할리파’Burj Khalifa로 828미터의 높이를 자랑하고 있다.
그렇다면 인간이 세운 건축물 가운데 가장 오랫동안 세계최고의 높이라는 타이틀을 보유했던 건축물은 무엇일까? 정답은 이집트의 기자 지역에 있는 피라미드이다. 최소 3천8백 년 이상, 학자들에 따라서는 4천5백 년 이상 챔피언 타이틀을 보유했다고 한다. 기자의 피라미드 가운데 가장 높은 것은 이집트의 네 번째 왕조인 파라오 쿠푸의 무덤으로, 약 146미터에 달한다고 한다.
이 피라미드의 원형은 이집트 사카라에 있는 계단식 피라미드인데, 고대 이집트 제3왕조의 두 번째 왕 조세르Djoser의 오른 팔이자 재상이었던 임호테프Imhotep는 자신이 모시던 조세르 왕을 위해 이 계단식 피라미드를 건설했다. 임호테프는 멀리 수도 멤피스가 내려다보이는, 높이 솟은 목재 전망대에서 돌덩이들이 저 멀리서부터 옮겨지는 모습을 지켜보며 매우 흡족한 표정을 지었을지도 모른다. 그는 선대의 노동과정으로부터 얻은 지혜를 집대성해 돌을 효과적으로 운반하는 방법을 더욱 개선했으며, 이를 통해 조세르 왕가의 피라미드 단지를 만들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웅장한 석조 건물인 피라미드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는 몇 가지 가설과 추측만 있을 뿐 현대의 과학기술로도 정확히 알아내지 못하고 있다. 일반적으로는 피라미드 건설에는 지역 주변에 널리 퍼져있는 석회암을 사용했다고 하지만, 사용된 돌들 가운데에는 수백 킬로미터나 떨어져 있는 곳에서 채취한 화강암도 있다고 한다. 도대체 그것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고대 이집트의 상형문자를 해석한 바에 따르면, 돌들은 나일강을 따라 배로 이동하다 건설 현장에 가까운 나루터에서 육지로 내려진 후 다시 옮겨졌다고 한다. 석재 채취 현장에서 일정한 크기로 잘린 돌들은 나무로 만든 썰매 위에 올려져 배에 실렸다. 나루터에서 육지로 썰매째 내려진 거대한 돌들은, 다시 사람이나 동물의 힘에만 의지해 건설 현장까지 상당한 거리를 이동해야 했다. 이런 어려움 때문에 상당수 피라미드들은 아예 석재가 많은 곳 주변에 건설되었다.
아메넴헤트 3세Amenemhat Ⅲ의 신전이 있는 다흐슈르Dahshur의 붉은 피라미드 건설 현장으로부터, 남동쪽으로 대략 1킬로미터 남짓 떨어진 곳에서 채석장의 유적이 발견되었다. 그곳으로부터 피라미드 건설 현장까지 돌들을 나르는 3개의 이동로가 있었는데, 이 도로들의 폭은 대략 12~15미터에 이르렀다. 나중에 소개되겠지만 고대 로마의 가도나 케이티엑스 고속 열차의 복선 폭도 이와 비슷하다. 어쨌든, 짧은 거리라 해도 무거운 돌을 움직이기 위해서는 만만치 않은 노력이 필요했다. 게다가 이 접근로들로 매일 3백~6백 개의 돌이 운송되었다고 한다. 피라미드 단지로 가장 유명한 기자 지구의 멘카우라Menkaura 피라미드를 만들기 위해 인근에서 옮겨진 돌 하나의 부피가 8.5 × 5.3 × 3미터에 달하고 무게가 220톤이나 됐다고 하니 쉬운 일이 아니었다. 돌을 옮기기 위해서는 길을 닦아야 했는데 그 길은 보통의 인간이 다니는 길이 아니라 무거운 석재를 옮기기 위한, 잘 닦인 평평한 길이어야 했다.
인간이 다니는 자연 상태의 길을 자세히 보면 짧은 구간이라 해도 진흙을 압축했을 때 나타나는 주름처럼 많은 높낮이가 있다. 사람이 걸을 때에는 크게 문제 되지 않지만, 엄청나게 무거운 재료를 옮길 때 길이 너울처럼 파도치면 곧바로 난관에 부딪히게 된다. 따라서 길을 평탄하게 하는 작업이 필요한데 철도 또한 이 평탄한 기초가 반드시 필요하다. 철도 용어로 ‘노반’이라고 부르는, 레일을 받치는 평탄한 길이 없으면 기차는 달릴 수 없다. 사람들은 레일 위로 기차가 달린다고 생각하지만 철도를 아는 사람들은 노반이라는 평탄한 길 위에 레일이 놓여 있고 그 위를 기차가 달린다고 생각한다.
이를 측면에서 보면, 잘 다져진 단단한 노반과 그 위에 얹힌 레일, 이 레일을 일정 간격으로 지지하며 고정시키는 침목과 쇠못, 다시 노반과 침목에 얹힌 레일을 단단히 결합시키고 거대한 기차로부터 가해지는 충격을 분산시키는 자갈이 있다. 자갈밭에 놓인 레일 위에 기차가 있고, 만약 전기로 달리는 기차라면 그 위에 전력을 공급하는 전차선까지 그려 놓아야 완결되는 구조이다.
이런 구조를 가장 밑에서 지지하는 노반의 중요성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봄철 해빙기 혹은 여름의 홍수나 태풍 등으로 선로가 영향을 받았을 경우 선로 시설 관리자가 챙겨야 할 중요한 점검 부위가 바로 레일을 지지하고 있는 노반이다. 노반의 지력이 약하거나 부실하면 겉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선로가 공중에 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노반의 유실에 따른 열차 사고는 곧바로 대형 참사로 이어진다. 철도 사고 관련 자료 사진을 볼 때, 노반이 유실되어 긴 선로와 침목이, 계곡에 놓인 흔들다리처럼 공중에 매달린 모습을 보면 기초가 약한 노반이 얼마나 위험한가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철길은 고대에서 시작됐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나루터에서 피라미드 공사 현장까지 철도의 노반처럼 평탄한 길을 닦았다. 그런데 초기에는 돌을 실은 썰매의 무게 때문에 썰매의 날이 땅속에 박혀 제대로 앞으로 나가지 못했다. 이집트인들은 강도가 높은 나일 강의 진흙을 퍼다가 썰매가 다니는 길에 발랐다. 나일 강의 진흙이 굳은 덕분에 단단해진 노반은 썰매의 날이 땅속으로 박히지 않도록 막아 주었다. 또한 땅바닥과 썰매 날의 마찰을 줄여 주기 위해 윤활제를 발랐는데, 자연에서 채취한 기름을 붓기도 했지만 다량의 우유를 뿌려 마찰을 줄이기도 했다고 기록은 전한다. 그러고 나서 비로소 수월하게 돌을 운반할 수 있었다. 그러나 마른 진흙이 아무리 단단하다 한들 수백 톤이 나가는 돌의 무게를 완벽하게 받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썰매의 날은 땅에 박히지는 않았지만 길게 두 줄로 패인 길을 만들었고 이것은 음각 궤도가 되었다. 썰매는 이 궤도 위를 지나 공사 현장으로 이동했다.
썰매를 끄는 데는 주로 황소가 이용되었다. 고대 이집트인들이 남긴 기록에 따르면 썰매에 실린 거대한 육면체의 석재를 황소 세 마리가 운반하는 과정이 묘사되어 있다. 그러나 사람이 돌을 운반하기도 했다. 인부 수십 명이 여러 가닥의 줄을 연결해 운반했다. 이집트 벽화에 남겨진 기록에 따르면 거대한 석상 하나를 172명의 일꾼이 끄는 모습도 보인다. 60톤에 이르는 돌을 45명의 인부가 윤활 블록을 이용해 운반했다는 기록도 있다. 빵 10덩어리와 맥주 한 잔을 일당으로 받은 고대의 인부들은 바퀴도, 철로 된 도구도 없이 오직 인간의 힘으로 거대한 건축물을 만들어 냈다.
고대인들은 운반을 쉽게 하기 위해 썰매나 돌 밑에 둥근 통나무를 여러 개 대어 바퀴처럼 이용하기도 했는데, 무거운 자재를 훨씬 효율적으로 운반할 수 있었다. 어쩌면 이 통나무 바퀴가 노반 위에 얹힌 레일처럼 철도에 더 가까운 형태일 수 있겠다. 철길의 원시적 형태는 고대에서부터 시작되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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