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
모술은 ‘니느웨’라는 고대도시로, 성경에서 예언자 요나가 고래 배 속에서 사흘을 지내고 할 수 없이 신의 예언을 전하고 사람들을 회개시켰다는 도시다. 요나가 그곳으로 가기를 원치 않았던 것은, 니느웨는 당시 요나에게는 적지였고 한마디만 잘못해도 목이 달아날 수도 있는 곳이었다. 당연히 누구라도 거부했을 것이다. 바로 그 니느웨가 모술이다.
니느웨는 인류의 문명이 싹튼 메소포타미아 지역에 세워진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랜 도시 중 하나이다. 또한 역사적으로도 항상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로서 역할을 해온 곳이었다. 지금도 중동 세계에서 모술은 변함없는 전략적 요충지여서 누구나 이곳을 차지하기를 원하고 있다.
나에게도 모술은 선명한 기억을 남기고 있다. 2003년 7월, 이라크전이 발발한 뒤 넉 달이 지난 7월에 이라크로 가서 한 달을 지냈다. 북부 이라크에 위치한 쿠르드 게릴라들이 사는 칸딜 산으로 가는 길에도 모술을 지나야 했고, 산에서 내려와 바그다드로 갈 때도 모술을 거쳐야만 했다. 오고 가는 길에서 항상 모술을 거쳐야 했다. 모술로 처음 들어서면서 보이던 거대한 고동색의 오래된 성벽은 나의 눈을 휘둥그레 만들기에 충분했고, 웅장한 고대도시의 위엄은 나의 심장을 뛰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당시 모술 시내에는 미군들이 곳곳에서 총을 들고 경비를 서고 있었다. 이라크 아이들이 미군들에게 다가가 장난을 걸던 일이 눈에 선하다. 아이들이 계속 초콜릿을 달라고 떼를 쓰자 미군 병사 한 명이 화가 나서 욕을 해댔지만 아이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졸라댔다. 그러자 미군 병사의 얼굴은 거의 반울상으로 표정이 변했고 이 모습을 지켜보던 난 웃음을 참지 못했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모술에서 머물던 나흘 밤은 내 인생에서도 유별난 기억을 남겼다. 이틀 밤은 혼자서 잤지만 다른 이틀 밤은 쿠르드 당사에서 람보가 사용했던 것과 같은 기관총을 옆에 낀 쿠르드 병사들 틈에서 잠을 잤다. 모두들 중무장하고 있었지만 나 혼자만 비무장이었다. 그 당시에도 모술은 전쟁의 와중에 있었으며 꽤 위험했던 상황에 있었다.
예즈디인들이 사는 ‘신자르’ 지역은 모술과 가까운 거리에 있다. 신자르 지역에서 방어선을 펼쳤던 ‘페르쉬메가’부대(이라크북부의 쿠르디스탄의 군사조직)의 갑작스러운 퇴각은 ‘예즈디’인들에게는 천재지변이었다. 2014년 8월 초, 미처 피난을 가지 못한 수천 명의 예즈디인들이 IS에 의해 학살당했고, 부녀자와 어린이들은 모두 끌려가 성노예로 값이 매겨진 뒤 시장으로 팔려나가는 참변을 당했다.
유엔UN에 의하면 IS의 공세로 인해 수십만 명의 예즈디인들과 크리스천들이 집을 떠나 안전한 곳으로 갔다고 전했다. 그중에서도 산으로 피난했던 수만 명의 예즈디인들은 아무 것도 없는 산에서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신음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수만 명의 예즈디인들은 메말라버린 민둥산에서 물과 음식을 구할 수 없어 갈증과 허기에 죽어갔다. 미국을 비롯한 유럽 국가들의 구호물품을 실은 헬기가 이들이 피난한 산으로 가지 않았다면 어마어마한 인명 피해가 났을 것이다. 산에서는 이미 사흘 만에 수백 명의 예즈디인들이 허기와 갈증으로 죽어나갔다. 수만 명의 예즈디인들은 산을 따라 국경을 넘어 터키로 가기도 했고, 많은 사람들은 쿠르디스탄으로 되돌아가거나 시리아의 쿠르드 지역으로 들어가기도 했다.
당시 예즈디인들이 IS에 당했다는 소식을 접한 필자는 분노와 슬픔을 감당할 수 없었다. 2003년 이라크 북부 지역을 방문했을 당시 예즈디인들의 가족들을 방문하기도 했고 이들의 성지인 ‘랄리쉬’를 방문하기도 했다. 10년도 더 지났지만 이들에 대한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게 남아 있다. 한마디로 이들은 평화롭게 사는 가난한 사람들이었다. 이들에게서는 단 한 번도 어떠한 적의도 느낀 적 없었고, 항상 미소를 머금고서 이방인을 친절하게 맞아주었다. 먼 곳에서 온 이방인에게 단지 경이로움과 호기심에 가득한 시선만 보냈을 뿐이지 부유한 아랍인들에게서 느끼는 경멸적이거나 조소적인 표현은 전혀 느낄 수 없었다.
당시 예즈디 문화에 대해 친절하게 설명해줬던 예즈디 문화연구소 소장 ‘살람 바쉬르’로부터 “예즈디인들이나 고대 바빌로니아인들, 고대 아시리아인들은 언제나 산으로 피난할 준비를 해놓고 산다”라는 말도 들었던 기억이 난다. 이들은 다른 민족을 해하거나 침략한 적이 결코 없는, 단지 자신들의 종교에만 의지해서 살아가는 순박하고 평화로운 사람들이었다. 이런 사람들을 공격해서 학살하고 노예로 값을 매겨 부녀자들과 어린이들을 팔아버렸다는 사실을 접하고 도무지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꼈다. 당시 건강 상태가 좋지 않던 필자를 전쟁이 한창이던 ‘코바니’로 끌어들인 가장 큰 요인도 IS의 예즈디인들에 대한 공격이었다.
대부분의 쿠르드인들은 이슬람으로 개종했지만 예즈디인들은 쿠르드 민족의 전통 종교인 예즈디교를 고수하면서 지금까지 살아왔다. 이들은 언제나 약자에 속했고 항상 강자에게 수탈당하고 학살당하면서 그곳에서 살아왔다. 무슬림이 대부분인 중동, 그것도 거친 수니파 이라크인들이 사는 곳에서 다른 종교인 예즈디교를 고수하며 지금까지 살아왔다는 것만 해도 기적이랄 수 있다.
이들을 지키고 돌보는 건 인류의 사명이랄 수 있다. 사라져가는 동물류나 어류, 조류를 지키는 것만 중요한 게 아니라 사라져가는 인류의 살아 있는 문화유산인 특별한 종교문화를 가진 소수민족을 지키고 보호하는 것도 인류의 사명이다.
지금까지 예즈디 민족은 72번의 학살을 당해왔다. 대부분은 이슬람교도들에 의한 학살이었다. 이들을 조상들이 살았던 땅에서 몰아내든지 아니면 무슬림으로 개종시키려는 게 가장 큰 목적이었다. 무슬림들은 학살의 목적을 어느 정도 달성했지만 그렇다고 예즈디인들이 모두 이슬람으로 개종하진 않았다. 여전히 이들은 살아남아서 예즈디교를 계승해왔고 여전히 그곳에서 살아가고 있다. 이들의 끈질긴 생명력에 경의를 표한다.
예즈디인들을 학살하고 핍박한 이슬람주의자들, 지하드주의자들은 오직 이슬람만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고 이슬람 외에는 모두 사라져야 할 것, 죽어 없어져야 할 것으로 여긴다. 여기에 이슬람 근본주의의 위험이 있다. 이슬람주의자들은 다른 누구보다도 이슬람에서 지켜야 할 다섯 가지 황금률은 꼭 지킨다고 자랑스럽게 내세운다. 신앙고백과 기도, 자선, 금식, 하지(메카순례)의 다섯 가지를 말한다. 특히 이들은 매일 빼먹지 않고 다섯 번이나 알라신을 향해 기도한다.
그렇다면 이슬람주의자들은 도대체 무슨 기도를 하는지 묻고 싶다. 일반적으로 인간은 기도하면서 계속 자신의 잘못된 과거를 헤아리고 고치고 앞날에는 더 나은 언행을 실천할 것을 다짐하고, 또 남을 위해서 용서를 구하는 기도를 하면서 영혼의 평화를 구하게 된다. 그러나 이슬람주의자들은 다른 사람들을 죽이고 해하고 약한 부녀자들을 강간하고 착취하는 악행을 행할 것을 다짐하고 또 다짐하는 의식을 매일 다섯 번씩 행한다고 볼 수밖에 없다. 이슬람주의자들에게 묻고 싶은 게 있다면 기도라는 의식을 왜 행하는지에 대해서다. 하루에 다섯 번을 그렇게 다짐한다면 당연히 이슬람주의자들에게 남는 것은 악한 영혼과 악한 마음만 남을 것이 뻔하다. 천사나 성인에 도달하기 위해 갈고닦는 의식이 기도라면 악마의 화신이 되는 의식을 행하는 게 이슬람주의자들의 기도일 것이다.
인류의 대부분은 기도는 물론이고 아예 신도 믿지 않고 살아간다. 그럼에도 다른 인간을 잔인하게 해하고 죽일 마음은 품지 않는다. 그러나 기도를 하루에 다섯 번이나 하는 사람들이 같은 인간을 그렇게 잔인하고 처참하게 학대하고, 그것도 모자라 목을 베어 죽일 수 있는지, 또 그것도 모자라 그 장면을 자랑스럽게 공개적으로 퍼뜨릴 수 있는지 묻고 싶다.
IS라는 괴물을 제대로 접하기 시작한 것은 2014년 10월 쿠르드 민족이 IS에 맞서 싸우던 코바니ㆍ수루츠에 머물면서였다. 그곳에서 쿠르드 사람들은 IS를 ‘다쉬’라고 불렀고 다쉬에 맞서 싸우던 코바니의 쿠르드 용사들을 아주 자랑스러워했다. 사실 IS의 전진에 제동을 건 가장 큰 장애물은 쿠르드 민족이었다.
예즈디 사람들을 학살하고 그 땅을 점령한 것도 모자라 본격적으로 시리아의 쿠르드인들이 사는 곳을 공격하기 시작한 것이다. 아사드 진영이 통제력을 잃어버린 시리아의 쿠르드 지역은 자치 정부를 수립해 나름대로 민주주의적 운영을 해나가고 있었고 중동의 무슬림 세계에서는 그나마 가장 모범적인 민주주의의 모델을 창출하는 중이었다. 사실 IS가 이곳을 전면적으로 공격할 이유는 없었다. 코바니의 쿠르드 민족은 IS를 공격할 만한 여력도 없었고 그럴 의향도 전혀 없었으며 무엇보다도 가난한 지역으로 땅이 비옥한 것도 아니고 게다가 석유 한 방울도 나지 않는 곳이다. 더욱이 코바니의 쿠르드족은 수니 무슬림으로 IS와 같은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다. 결과적으로 IS는 코바니를 점령했다가 쿠르드 민족의 완강한 저항으로 인해 4개월 만에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IS의 탄탄대로에 최초의 제동이 걸린 것이다. IS가 믿던 알라신이 쿠르드 민족이 믿던 알라신에 패배한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고, 아니면 그동안 알라신은 IS의 손을 들어주다가 IS의 잔인한 행동에 질려 IS를 떠난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2010년경 이라크에서 미국이 철수하기 전만 해도 대부분의 지하드 집단들은 거의 섬멸된 상태였고 반신불수가 돼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던 상황이었다. 그러나 미국과 유럽은 시리아에서 거대한 실책을 저질렀다. 시리아에서 봉기가 일어났을 때 시리아의 대통령인 아사드만 물러나면 모든 게 해결될 것으로 예상했다. 모든 전술을 아사드를 밀어내는 데만 집중했지 아사드의 반대편에서 봉기를 주도한 집단들에 대해서는 아예 눈을 감아버렸다.
이라크에서 미국의 감시와 탄압에 못 이겨 힘든 시절을 보내던 수니파 지하드 분자들은 시리아에서 민주화 시위가 시작되면서 국경 통제력이 상실되자 시리아로 넘어가기 시작했다. 이들은 시리아의 수니파 지역에 머물면서 아사드 정권에 대항한 무장봉기를 준비했다. 마침내 아사드 정권이 무력으로 시위를 진압하자마자 미국이나 유럽은 반대 진영의 무장봉기를 지원하기 시작했다. 지원을 받은 대상은 이라크와 시리아의 지하드 분자들이었다. 미국과 유럽은 지하드 분자들의 정체를 숨기기 위해 이들은 “합리적인 저항 그룹”이니 “온건한 반대 세력”으로 불렀으나 곧 사실이 아니라는 게 드러났다. 지하드 세력은 이렇게 시리아에서 세력을 키웠다.
미국이 이라크에서 체포하고 사살하기 원했던 대부분의 지하드 분자들이 시리아로 옮겨가면서 미국의 친구로 변신했을 뿐만 아니라 미국으로부터 돈과 무기를 지원받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아사드에 대항해 무장투쟁을 시작한 집단이 지하드 그룹이란 사실을 알면서도 미국과 유럽은 계속적으로 지원했다. 사실상 미국과 유럽의 엄청난 지원이 간접적으로 IS로 흘러들어갔고 이것을 통해 시리아 영토를 점령하고 장악할 수 있게 만들었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이슬람 지하드 그룹들을 지원하면서 이 같은 문제가 드러날까 두려워 언제나 “온건한 무장 그룹을 지원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 지원할 것”이라는 주장만 되풀이해왔다. 서방세계의 주장에 대해 시리아의 아사드 대통령은 서방세계의 TV와의 인터뷰에서 “시리아에서 온건한 무장 그룹은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극단주의자들만 존재할 뿐이다. 온건한 무슬림들은 벌써 시리아의 정부군 편으로 넘어온 상태”라고 서방의 주장을 반박해왔다.
그리고 시리아의 두 번째 도시인 알레포에 거주하는 침례교회의 ‘아지’ 목사는 “서구에서 말하는 소위 “온건한 무장 세력”이나 극단적인 무장 세력이나 모두 이슬람국가를 건설하려는 게 목표”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아무리 나빠도 아사드 정부가 테러 조직보다는 낫다.”라고 공개적으로 서구의 정책을 비판했다. 사실 지하드 그룹들은 미국의 정책인 “온건한 저항 그룹”에 대한 지원을 받기 위해 너도나도 온건한 저항 그룹이라고 나서지만 사실은 모두 지하드 그룹들이라는 게 사실이다. 대부분의 지하드 그룹들은 IS에 충성을 맹세했거나 알누스라전선(시리아의 알카이다)에 충성을 맹세한 그룹들이다. 아사드 정권에 저항하는 시리아의 수니파 무장 그룹들은 모두 하나의 목표를 가지고 있다. 수니파의 이슬람국가 내지 이슬람제국의 건설이다! 당연히 이름만 다를 뿐이지 모든 그룹들은 IS나 알카이다에 소속된 알누스라전선과 협력하는 그룹들이라는 사실은 누구나 다 알고 있다.
시리아에서 온건한 무장 그룹을 꼽으라면 오직 쿠르드족밖에 없다. 쿠르드 민족은 수니파 무슬림이지만 대부분은 온건하면서도 합리적인 무슬림으로 분류된다. 물론 쿠르드 사람들 중에서 극소수는 극단주의에 경도돼 IS에 가입한 경우도 있다. 필자는 몇 백 명의 극단주의적인 쿠르드 무슬림들도 IS에 가입해서 같은 민족인 쿠르드 사람들에게 총을 겨누고 있다는 말을 직접 들은 적 있다. 일반적인 쿠르드 민족의 지상과제는 이슬람국가가 아니라 쿠르드 민족국가의 건설이다. 당연히 세계적 이슬람제국을 꿈꾸는 IS에게 쿠르드 민족은 단지 제거돼야 할 대상이다. IS에게는 오로지 극단적 이슬람주의가 실현되는 이슬람제국의 건설이라는 목표밖에는 없다.
지금까지 코바니에서 IS에 희생당하면서도 끝까지 맞서 싸워온 쿠르드의 무장 그룹YPG(코바니의 쿠르드민병대)이 서구세계가 지원할 수 있는 유일한 온건한 무장 그룹이다. 그럼에도 쿠르드 민족에 대한 지원을 강력하게 반대하는 세력이 있다. 바로 터키 정부다. 터키는 IS를 실질적으로 지원하면서 겉으로는 IS와 싸우는 체하는 이중성을 보여 왔다. 터키의 목적은 오로지 쿠르드 민족의 부상을 막고 과거의 오토만제국의 영화를 회복하는 일이다. 미국도 터키를 잃을까 두려워 노심초사하면서 계속 터키의 눈치만 보면서 일관된 정책을 수행하지 못하는 형편이다. 쿠르드 민족을 지원해 중동에서 터키의 역할을 대체할 세력으로 키워야 하지만 여전히 불확실하다. 현재의 상황에서 터키를 놓치게 되면 중동은 미국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도 있다는 우려로 인해 쉽게 쿠르드에 힘을 실어주지 못하고 있다.
어쨌든 미국은 나라가 부자여서 그런지 무엇을 하든지 스케일이 크다. 우리나라 말로 “손이 크다”는 말이 적당한 표현일 것이다. 미국이 누구를 지원하겠다고 나서면 엄청난 지원을 한다. 1980년대의 아프간전쟁 때도 미국이 지원한 돈과 무기는 십 년 동안 파키스탄이나 아프간 사람들을 모두 먹여 살리고도 남았다. 무엇보다도 수만 명의 무자히딘들을 무장시키고도 남는 엄청난 돈과 무기를 지원했다. 무자히딘들은 사용하다 남은 무기들은 앞날을 위해 숨기거나 다른 나라에 팔아 엄청난 수입을 올리기도 했다. 미국이란 나라의 기준에서 지원이란 풍족한 지원을 의미하지 적당한 양의 지원이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지원하는 양이 너무 많으니까 지원받는 쪽에서는 분배하고도 많이 남는다. 당연히 지원받은 사람들은 남는 것들은 다른 나라에 팔아 수입을 올린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6.25 이후에 경험했듯이 미국이 지원했던 온갖 것들이 시장에 나뒹구는 것을 많이 봐왔다.
“미국이 가는 곳은 모두 부패해버린다”는 말이 틀린 말이 아니다. 너무 많이 지원하니까 감당을 못해서 부패하는 것이다. 미국은 아프간전쟁 당시 파키스탄을 부패시켰다. 파키스탄은 지금도 부패한 상태이며 앞으로도 부패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할 것이다. 미국이 들어갔던 이라크도 부패해버렸고 지금도 부패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미국은 이라크 정부나 군, 경찰을 살찐 돼지로 만들어버렸다. 더 이상 싸울 의지가 결여된 상태로까지 부패시켰다. 물론 미국이 의도적으로 이들을 부패시킨 건 아니다. 그럼에도 모든 책임은 미국에 돌아갈 수밖에 없다.
바그다드와 가까운 ‘라마디’시가 IS의 손에 떨어지자(2015년 5월) 미국 정부는 이라크 정부를 강력하게 비판했다. 미국의 입장에서 보면 당연히 그런 불만이 나올 수밖에 없다. 그렇게 엄청난 돈을 퍼부었고 엄청난 양의 최신식 무기를 양도하면서 기술과 훈련을 전수해줬는데도 나라를 지킬 수 없다는 건 말이 안 된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미국 정부는 스스로 이라크를 어떻게 부패시켰는지 잘 모르기 때문에 계속 부패한 이라크만 탓하는 것이다. 미국은 과거 장개석 정부도 부패시켰고 베트남 정부도 부패시켰다. 중국을 공산화시키는 데 한 몫한 것도 미국이었고 베트남도 마찬가지였다.
IS에 맞서 싸우던 당시 쿠르드 측에서도 서방세계에 중무기를 간절하게 요청했지만 별다른 응답이 없었다. 그럼에도 쿠르드는 미군의 공습 지원과 함께 소총과 기관총만으로도 IS를 물리쳤다. 사실상 이라크군은 병력에서나 무기에서나 모두 월등했지만 제대로 싸워보지도 않고 도망해버렸다. 보유했던 무기만 사용했어도 충분히 IS를 제압할 수 있었다. 당연히 이라크군이 IS에 무기를 팔아넘기고 도망했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이다. 두 번이나 그런 일이 있었으면서도 이라크 정부는 계속 미국 정부에 무기와 돈타령만 늘어놓고 있다.
중동의 상황은 매우 복잡하게 보이지만 이슬람교의 수니와 시아라는 종파 간의 경쟁이라는 틀에서 보면 매우 간단하고 쉽게 이해될 수 있다. 사우디와 이란, 수니와 시아 간의 경쟁과 충돌이 가장 큰 구도이다. 현재 아사드 정권의 생사를 걸고 진행되고 있는 시리아전쟁의 문제도 서구 언론에서 반복적으로 언급하고 있는 민주나 인권보다는 수니파와 시아파의 충돌이라는 관점에서 볼 필요가 있다. 물론 인권이나 민주주의의 시각을 완전히 포기하라는 말은 아니다. 중동에서 이 문제는 지엽적인 문제일 뿐이다. 서구의 시각인 민주주의와 인권의 문제로서 중동을 바라보면 도저히 중동문제가 이해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중동문제의 본질을 놓치게 된다.
현재 예멘에서 진행되는 전쟁 또한 지금 진행되고 있는 시리아에서의 전쟁을 염두에 두고 볼 필요가 있다. 모두가 하나로 연관된 전쟁이다. 예멘의 전쟁은 사우디와 이란의 지원을 받는 후티 정권의 전쟁이다. 사우디가 직접 개입한 예멘전쟁은 시리아의 아사드 정권에 대한 이란의 지원을 차단시키거나 약화시키기 위한 전술로 볼 수 있다. 예멘전으로 인해 이란은 이라크나 시리아에서 아사드 정권이나 시아파 세력들을 제대로 지원할 군사력이나 경제력이 고갈될 수도 있다. 게다가 이란은 서구세계의 금수조치로 인해 경제적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이다. 다른 말로 얘기하면 사우디가 IS를 돕기 위해 예멘에서 전선을 확대시키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도 있다. 이란이 예멘에 지원을 하는 만큼 시리아에 대한 지원이 줄어들기 때문이라고 볼 수도 있다.
지금도 여전히 중동에서는 IS와의 전투가 진행 중에 있기 때문에 중동의 미래에 관한 전망은 불확실하다. 시리아와 이라크의 국경이 무너지면서 IS가 시리아와 이라크의 중간지역을 차지했지만 여전히 미국과 이라크 정부는 IS를 격퇴시키지 못하고 있다. 사실 격퇴시킬 수 있는데 격퇴시키지 않고 있는지, 아니면 정말로 격퇴시킬 수 없는지가 많은 중동 전문가들이 던지는 의혹 중 하나이다.
현재 미국과 IS의 관계에 관한 의혹 중의 하나가 어떻게 이라크의 라마디시가 IS에 떨어질 수 있었는지에 대한 의혹이다. 공중의 주도권을 쥔 미국이 IS가 수도인 ‘라카’에서 라마디까지 사막을 가로질러 5백 킬로미터 이상을 최소한 수백 명의 병사들이 자동차로 움직였는데 어떻게 공습이 없었느냐는 의혹의 목소리다. 미국 측에서 나온 구차한 변명은 갑자기 모래바람이 거세져 공중에서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라마디의 함락으로 바그다드까지 함락될 위기에 놓여 있다. 만약에 바그다드가 함락된다면 이라크는 IS의 손에 들어간 것이나 다름없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미국은 지금도 계산기를 두드리면서 미국의 이익만 계산하고 있을 것이다. 미국의 이익에 별문제가 없다면 바그다드도 IS에 넘겨줄 준비가 돼 있을 것이다.
현재 미국 정부의 이라크 정부에 대한 시니컬한 태도를 봤을 때는 이라크 정부를 지원하지 않고 손을 놔버릴 수도 있다. 곧 이라크 땅에 사는 시아파 무슬림들은 엄청난 학살을 경험할 것이며 대거 이란으로 피난할 것이다. 이 상황은 중동에서는 최악의 상황이라 할 수 있다. 이란이 본격적으로 IS와 맞붙게 되면 중동 전체가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릴 가능성이 높아질 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전쟁에 휘말릴 가능성도 높아진다. 이미 예멘을 통해 사우디와 이란의 싸움이 시작됐고 이라크에서 IS를 통해 사우디와 이란의 싸움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면 통제 불능의 상태로 갈 것이란 사실은 누구나 예측할 수 있다.
중동의 열강인 사우디나 터키가 미국이나 유럽을 견제하고 시아파의 종주국인 이란을 무너뜨리거나 약화시키기 위해 IS를 지원하는 상황에서는 IS가 격퇴되고 소멸되리라 기대하는 건 어려울 것이다. 현재의 전황을 봐서는 IS의 전진으로 수세에 몰린 이라크 정부나 이라크 북부의 쿠르디스탄을 방어하는 것만도 앞으로의 과제가 될 것이다.
시리아의 아사드 정권의 미래도 미국과 유럽의 적대적 정책으로 인해 암울하게 펼쳐지고 있다. 그동안 아사드 정권은 러시아와 헤즈볼라를 통해 이란으로부터 계속적인 지원을 받아왔다. 현재 아사드 정권이 필사적으로 방어하고 있는 수도인 다마스쿠스가 IS의 손에 떨어지는 날이면 아사드 정권도 쉽게 무너질 것이다. 현재 IS는 다마스쿠스에 근접한 거리까지 진주해온 상황이다. 계속적으로 IS를 비판하면서도 IS와 전투 중인 아사드 정권을 밀어내려는 서구의 정책은 좀처럼 이해가 되지 않는다. 더구나 아사드 정권이 무너진 후의 중동의 구도에 대해서 분명하게 언급하는 서구의 지도자는 한 명도 없는 게 지금의 현실이다. 2015년의 G7정상회담에서 오바마대통령도 IS의 격퇴를 위해 만들어진 완전한 전략은 없다고 시인한 바 있다.
그럼에도 지난 9월 말부터 시작된 러시아의 시리아전에 대한 본격적인 개입은 시리아전의 양상을 새롭게 변화시켰다. 그동안 미국과 유럽은 IS의 격퇴에 소극적이면서 말로만 떠벌린다는 비판을 받아왔지만 전혀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지난 여름부터 시작된 시리아난민들의 유럽으로의 이동은 시리아전을 다시 전면에 부각시키면서 IS격퇴에 소극적으로 대응해왔던 미국과 유럽을 궁지로 몰아넣었다. 이 틈을 타서 평화협정을 통해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에서 어느 정도 여유가 생긴 러시아가 시리아전에 본격적으로 개입하면서 IS를 폭격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러시아의 공습으로 IS의 많은 근거지가 실질적으로 파괴되는 가시적 성과가 나타났다. 러시아의 1주일간의 공습이 미국이 1년 동안 해왔던 공습의 성과를 능가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러시아의 IS에 대한 공습은 미국과 중동에서의 주도권다툼으로 변질되면서 세계3차대전의 가능성까지 대두되고 있다.
올해(2015년) 초부터 코바니에서 IS를 물리친 뒤 주가가 올라간 쿠르드 민족은 현재 민족국가 수립을 지상과제로 설정하고 있다. 특히 이라크 북부의 ‘바르자니’가 이끄는 쿠르디스탄 정부는 국제적인 승인만 받지 않았을 뿐이지 정부로서 기능을 온전히 하고 있다. 현재 IS와의 충돌로 인해 국가로서 갖춰야 할 영토가 확정되지 않았을 뿐이다. 쿠르드 민족의 국가 수립 가능성은 오래전부터 논의돼왔던 게 사실이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논의됐지만 무산됐고, 2003년 이라크전이 시작되면서 다시 논의가 재개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시리아와 이라크의 국경이 무너지고 시리아와 이라크, 터키에 사는 쿠르드 민족의 이동이 상대적으로 자유로워진 지금의 상황에서 쿠르드 민족의 국가 수립에 대한 전망은 어느 때보다도 밝은 편이다.
그럼에도 쿠르드 민족의 국가 건설을 결사적으로 방해하고 반대하는 세력이 있는데 바로 터키다. 코바니에서 IS와의 전쟁이 벌어졌을 때 터키가 보여준 태도는 그야말로 쿠르드 민족에 대한 적대성 그 자체였다. 쿠르드 민족이 IS에 패배당해 모두 학살당하기를 바라는 의미의 말도 서슴없이 터키 대통령인 에르도안 입에서 나오기도 했다. 당연히 쿠르드 민족의 국가 수립은 터키의 생존과 직결된 문제일 수도 있다. 현재 쿠르드 민족이 집중적으로 모여 사는 곳인 터키의 동부 지역이 쿠르드 민족의 국가 수립으로 인해 분할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국경을 접하고 있는 이라크 북부 지역에 쿠르드 민족의 국가가 수립되면 분리 독립을 원하는 터키 동부 지역에 사는 쿠르드 민족의 끊임없는 저항에 시달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 때문에 터키는 이라크 북부의 쿠르디스탄이 국가를 수립하면 곧 전쟁에 돌입할 것이란 위협을 계속적으로 가해왔다.
그럼에도 쿠르드 민족국가의 건설은 계속적으로 연기될 수만은 없다. 2015년 6월 7일 실시된 터키의 총선거에서 쿠르드 지역의 투표 현황을 보더라도 쿠르드인들의 민족의식을 뚜렷하게 볼 수 있다. 더 이상 에르도안 주도하는 집권당이 쿠르드 지역에서 지지표를 얻는다는 건 불가능하다는 현실을 잘 드러내고 있다.
터키로서는 두 가지 방법밖에 없다. 하나는 터키 동부 지역에 사는 쿠르드 민족에게 자치권을 주고 중앙정부의 영향력을 최소화하면서 서로 사이좋게 사는 방법이다. 또 다른 방법은 이전처럼 쿠르드 민족에 대한 억압정책을 계속적으로 실행하는 것이다. 물론 이 방법은 결과적으로 터키의 위상이 국제적으로 계속 실추되게 만들면서 터키라는 국가가 붕괴하는 지름길이다. 필자의 견해로는 터키가 후자의 방법을 선택할 것이라고 믿는다. 군부가 실세인 터키에서 전자의 정치적이며 타협적인 방법으로 쿠르드 민족의 분리 내지 독립을 막는 건 오토만제국의 전통을 이어온 터키 군인의 길이 아니기 때문이다. 쿠르드 민족에 대한 억압정책은 곧 내전으로 이어질 것이며 머지않은 미래에 전 세계는 터키의 완전한 붕괴를 목도할 수도 있을 것이다.
지하드 운동의 역사는 길지만 현대에 들어와서 조직적이고 대규모적으로 시작된 지하드 운동의 역사는 소비에트에 대항한 아프가니스탄전쟁이 시초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그 전에도 지하드 그룹의 무장투쟁이 있었지만 지하드 운동을 더욱 군사적으로 조직적으로 정예화한 곳은 아프가니스탄이었다. 대규모의 아마추어 지하드들을 프로페셔널 지하드 용사들로 탈바꿈시켰고 지하드의 이론을 더욱 정교화 내지 발전시킨 곳이 아프가니스탄이었다. 또한 많은 지하드 지도자들을 배출시킨 곳도 바로 아프가니스탄이었다. 아프간전쟁을 경험한 지하드 분자들은 1990년대에 벌어진 발칸전쟁에서도 주요한 역할을 수행했고 이라크전쟁과 시리아의 전쟁에서도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해왔다. 여기서 ‘주요한 역할’이란 민족분쟁을 무슬림과 이교도의 종교적인 전쟁으로 변질시키면서 많은 지하디스트들을 끌어들였다는 의미이다.
1990년대의 발칸전쟁도 사실은 지하드 그룹들과 유고슬라비아연방을 고수하던 밀로셰비치를 권력에서 몰아내고 유고슬라비아연방을 해체하려던 미국과 유럽의 이해와 맞아떨어지면서 전개됐다. 보스니아전쟁이나 코소보사태는 모두 아프가니스탄 출신의 무자히딘들에 의해 일어났으며 이를 미국과 유럽에서 지원했다. 현재 독립된 보스니아와 코소보공화국이 그 결과물이다.
IS는 안정된 영토를 확보할 때까지는 절대로 전쟁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이라크와 시리아에서 진행되는 전쟁의 끝은 여전히 보이지 않고 있다. IS가 평화협상을 원한다는 소리는 지금까지도 나오지 않고 있다. 평화협상이란 영토를 분할하는 협상으로 IS에 영토를 떼어주고 전쟁을 멈추게 하는 일이다. 현재 서구 열강은 아사드 정권에 계속 평화협상에 임하라는 압력을 넣고 있지만 IS와의 전쟁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평화협상이란 비현실적인 얘기이다. 그렇다고 IS의 전쟁이 영원히 계속될 수는 없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게 마련이다.
시리아내전과 더불어 IS의 공격으로 인해 시리아와 이라크에서는 수백만 명이 피난민으로 전락했다. 현재 레바논에만도 시리아에서 넘어온 난민의 숫자가 백만 명 이상을 헤아리고 있으며, 터키에도 시리아에서 넘어온 난민이 180만 명에 이른다. 요르단도 마찬가지로 수십만의 난민으로 인해 몸살을 앓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난민들은 필사적으로 중동 땅을 탈출해 유럽행을 택하고 있다. 2015년 유엔은 시리아와 이라크를 떠나 이웃 나라들로 넘어간 난민들이 거의 4백만 명에 이른다고 발표했다.
지금 세계가 처한 난민문제도 만만찮다. 난민들은 기하급수적으로 계속 불어나고 있지만 이들을 구호할 지원의 손길은 계속 줄어드는 상황에 있어 갈수록 세계적인 문제로 확대되고 있는 실정이다. 국제사회는 난민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도 반드시 IS를 저지해 난민들을 본국으로 안전하게 귀환시켜야 할 처지에 놓여 있다.
그렇다면 IS의 끝은 어디인가? 만약에 이라크가 IS에 의해 계속 수세에 몰리고 바그다드가 IS에 넘어간다고 가정할 때 이라크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 이란이 IS와의 전쟁에 개입할 것이다. 이란과의 전쟁이 시작되면 중동 일대는 거대한 전화에 휩싸일 것이다. 몇 년 동안 양쪽이 큰 진전 없이 줄다리기만 계속할 경우 평화협상이란 명목으로 국경선을 그을 것이다. 이렇게 되면 이전의 시리아나 이라크는 사라지고 거대한 IS가 대신 들어설 것이다. 반면에 아주 작게 축소된 이라크와 시리아, 이라크 북부의 쿠르디스탄이 남게 될 가능성이다. IS의 전진으로 인해 시리아의 반 이상의 영토가 이미 IS에 넘어간 상태다. 사실상 이전의 시리아는 사라졌고 이전의 시리아를 회복하기란 이제는 거의 불가능해졌다. 그리고 사우디와 IS의 중간에 위치하면서 IS에 적대적인 태도를 보여 왔던 요르단의 미래도 굉장히 불투명해지고 있다. 요르단도 IS의 침공을 받고 함락당할 가능성이 존재한다. 물론 요르단의 안보문제는 이스라엘의 안보문제와 직결돼 있기 때문에 그렇게 간단하게 예견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그리고 다른 가능성도 있다. 현재 IS가 차지한 땅은 사우디와 국경을 접하고 있다. 영토가 어느 정도 확정되고 주변 국가들과의 전쟁이 어느 정도 정리가 되면 IS의 사상적 모국이자 든든한 후원자인 사우디와 통합을 선언할 수도 있다. 단지 남는 문제라면 IS가 이슬람제국인 ‘킬라파’를 선언했고 ‘알바그다디’를 ‘칼리프’로 선언했기 때문에 사우디와 통합을 선언하게 되면 사우디 왕족과의 관계를 어떻게 정리할지가 가장 큰 고민거리가 될 수도 있다. IS나 사우디나 그렇게 큰 차이가 없기 때문에 통합을 하면서 대사우디아라비아가 들어설 가능성도 있다.
물론 현실성은 크게 없지만 다른 시나리오도 배제할 수 없다. 가령 IS가 쿠르드나 이라크군, 그리고 러시아와 미국의 맹공격으로 격퇴당하면서 움츠러드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이 상황에서는 중동의 정치판이나 지형이 이전과는 다르게 변할 수 있다. 이라크 북부의 작은 영토만 가진 쿠르드 민족의 영토가 터키나 시리아로 확대될 가능성이 있으며 독립국가의 수립 가능성은 현재보다 훨씬 커질 것이다. 또한 IS와 맞붙어 승리한 이란의 판세가 당연히 중동에서 커지면서 IS를 지원해왔던 터키나 사우디의 영향력이 줄어들게 된다. 어쨌든 중동 세계에서는 IS가 캐스팅보드를 쥔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
아랍의 봄으로 불리는 아랍의 민주화 바람은 IS의 발흥으로 인해 완전히 수그러들었다. 이 때문에 중동의 많은 전문가들은 IS가 발흥하면서 중동의 민주화 바람이 쇠퇴한 데 대한 의혹을 제기해왔다. 사실 IS가 점령한 곳에서는 민주주의나 자유, 평등이란 단어조차 입 밖으로 꺼내기 힘들게 됐으며 아예 이런 단어들은 금지어로 지정됐다. 당연히 의혹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도 IS를 뒤에서 지원하는 국가들은 모두 반민주국가들로 사실상 민주주의를 인정하지도 않고 민주주의를 가장 두려워하는 나라들이어서 더욱 의혹은 커질 수밖에 없다. 사우디나 카타르, 아랍에미레이트 같은 국가들은 민주주의와는 아예 상관도 없는 샤리아법(쿠란에서 언급한 원리적인 법)을 그대로 적용하는 왕정국가로서 여성들의 인권은 아예 찾아볼 수 없는 전근대적인 국가들이다. 당연히 아랍의 민주화 바람은 이 국가들의 존립에 엄청난 위협일 수밖에 없었다.
또한 터키는 세속주의를 지지하는 군부가 실세인 독재국가임에도 표면적으로는 세속적인 다당제 민주주의를 표방하고 있다. 현재 정권을 잡고 있는 대통령 에르도안 집권당인 정의발전당AKP은 이슬람주의자들이 대거 모여서 만든 정당으로, 이슬람주의를 표방하는 무슬림형제단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보수적인 우익이라 자칭하지만 사실상 이슬람주의적인 정당이다. 몇 년 전에는 공공장소에서 여성들에게 스카프로 머리를 가리는 걸 금지하는 세속주의 헌법을 개정하려는 시도를 하다가 큰 저항에 부딪히기도 했다.
그리고 대통령인 에르도안 과거에 대중연설에서 이슬람주의적인 시를 낭송해 세속주의적 헌법을 위반한 혐의로 10개월 징역을 선고받고 4개월을 복역한 적도 있는 이슬람주의자이기도 하다. “모스크들은 우리들의 요새이며, 돔은 우리들의 헬멧이고, 미나렛(모스크의 솟은 탑)은 우리들의 검이자 신뢰하는 우리들의 병사들……”이라는 시를 대중연설에서 낭송했다.
에르도안과 정의발전당은 지난 총선에서 헌법을 개정해 절대권력을 휘두르기 위해 3분의 2이상의 득표를 꿈꿨지만 단지 40%만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과거 오토만제국의 술탄과 같은 영광을 꿈꾸던 에르도안의 꿈도 함께 날아가 버렸다. 그러나 그는 쉽게 포기하지도 않을뿐더러 술탄의 꿈을 계속 시도할 것이다.
지금까지 왕정이나 독재를 통해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러왔던 중동의 지배세력들은 민주화 바람을 차단하기 위해 IS에 모든 기대를 걸고 있는 눈치다. IS가 흥하게 되면 당연히 중동에서는 민주화니 자유니 하는 개념조차 사라지고 오직 전쟁만이 지배하는 세상이 될 것이다. 인류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간혹 IS와 같은 반동적인 세력이 등장해 인류의 전진을 가로막았던 때도 있었다. 그렇다고 인류의 역사 발전이 후퇴하는 법은 없었다. 후퇴하는 것처럼 보여도 일시적인 후퇴였고 다시 전진은 계속돼왔다.
IS가 발흥하면서 얻은 게 있다면 나라 없이 수천 년을 고통받아온 쿠르드 민족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졌다는 사실이다. 터키와 이웃 나라들이 쿠르드 민족의 존재를 지금까지 덮어왔지만 IS에 핍박당하면서도 끝까지 맞서 싸워 승리한 쿠르드 민족이 알려진 것은 거의 기적에 가깝다. 또한 6.25전쟁에 참전한 터키 용사들의 60%가 쿠르드 용사들이었다는 사실은 쿠르드 민족의 IS와의 투쟁을 통해 알려진 사실이다.
무엇보다도 IS의 발흥으로 인해 우리가 누리고 있는 민주주의, 자유와 평등이 절대적으로 소중한 가치라는 사실과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것이 종교적 맹신이라는 사실도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중동 땅에서 IS가 완전히 격퇴되고 민주화의 바람이 다시 불기를 고대한다. 사막의 척박한 땅에도 민주화의 씨앗이 뿌려지고 뿌리가 내려 민주화의 꽃이 활짝 피는 날이 반드시 올 것을 기대하면서 글을 맺는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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