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01
공부가 밥이 될까?
나의 실험 01
회사에서 함께 공부를 시작하다 : 협동조합 스터디
공부 멤버를 모으다
남산강학원+감이당에 드나든 지 6개월쯤 지났을 때이다. 바깥에서의 공부에 재미를 붙인 나는 직장 동료들과 공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루 8시간 이상 같은 공간에서 부대끼며 사는 동료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은 없는지 궁금했다.
당시 나는 네이버에서 메인페이지에 공익 콘텐츠를 소개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이윤이 아닌 가치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발굴하여 소개하는 일이었다. 마을기업, 사회적기업, 소셜벤처, 스타트업, 공유경제, 코하우징, 귀농, 도시농업, 슬로라이프, 인문학, 열린 인터넷, 빅데이터, 공동체…. 일을 하면서 알게 된 이런 키워드가 내 관심사와 맞물리면서 머릿속에 늘 둥둥 떠다녔다. 그즈음 사회적으로도 가치를 중심에 둔 공익적인 활동을 지속하는 방법에 관한 논의가 한창 떠오르고 있었다. 같은 공간에서 일하는 또래 동료들과 머리를 맞대고 이런 문제를 풀어보고 싶었다.
남산강학원+감이당에서 만난 신나리 디자이너와 물꼬를 텄다. 신나리는 같은 회사에 다니면서도 서로의 존재를 모르다가 공부하면서 알게 된 친구이다. 왕초보의역학을 같이 듣던 한 언니가 “내가 공부하는 대중지성 프로그램에도 네이버 직원이 있던데, 혹시 신나리라고 알아?” 하고 물었다. 같은 회사에 다니는 디자이너라니, 게다가 대중지성 과정에 있다니어떤 사람일지 궁금했다.
다음날 사내 메신저로 슬쩍 말을 걸었다. 알고 보니 그 친구는 나보다 먼저 공부를 시작했고 디자인비평 세미나도 하는 공부쟁이였다. 우리는 공부로 단단하게 엮였다. 그 후 둘 다 대중지성을 신청하게 되어 목요일마다 퇴근 후에 함께 공부하러 다니는 사이가 되었다.
당연하게도 회사에서의 공부도 의기투합하여 같이 세미나 기획에 들어갔다. 평소 친하게 지내던 해피빈재단의 이경은 과장도 합류했다. 우리는틈틈이 회사 식당에서 점심을 먹으며 각자 어떤 공부를 하고 싶은지 이야기를 나누며 공부의 콘셉트를 정했다.
네이버는 인터넷 기업이라 청년층이 많았다. 자연스레 주제는 또래의 관심사인 일과 결혼, 내 집 마련에 대한 고민으로 모였다. 그즈음 협동조합법 개정과 그에 따른 정부 지자체의 지원이 한창 이슈일 때라서 공부 주제를 이렇게 정했다.
‘함께 일하기에 대하여: 협동조합 스터디 중심으로’.
우리는 각자 지인들에게 책을 추천받고, 인터넷에서 읽을 만한 책을 가려 뽑았다. 나는 세미나의 취지와 함께 읽을 책 목록을 적어 같이 공부할만한 사람들에게 메일을 보냈다. 그 사람들이 주변에 전달하여 이틀 동안 11명이나 모였다. 내심 평소 알고 지내던 대학 선후배들이 합류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회신을 준 사람들은 대부분 처음 보는 동료들이었다.
첫 모임 날 우리는 퇴근 후 회의실에 모여 조금 서먹한 분위기에서 각자 자기소개를 했다. 개발자, 디자이너, 기획자, 마케터 등 다양한 업무 분야의 직원이 참여했다. 나는 공부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여러 직군에 다양하게 포진해 있다는 사실이 놀랍고도 반가웠다. 우리는 개발팀의 손병대 과장을 시작으로 인사를 주고 받았다.
“친구들과 함께 ‘동구밭’이라는 텃밭 소셜 앱을 만들고 있어요. 이 일이 창업으로 이어질지 모르지만, 재미도 있고 의미도 있어서 좋아요. 업무가 빡빡해도 틈나는 대로 주말농장에서 농사도 짓고 있어요.”
그가 만들고 있던 동구밭은 도시농부들이 텃밭이나 베란다에서 농사짓는 데 필요한 소식과 정보를 공유하는 소셜 앱이다. 그렇게 한 사람씩 자기소개를 하고 어떤 공부를 하고 싶은지 꺼내놓았다.
첫 모임이라 그저 간단하게 앞으로의 방향을 나누는 자리였는데, 어느샌가 현재의 일에 대한 고민과 사적인 이야기를 넘나들게 되었다. 점점 서먹했던 분위기는 사라지고 뭔지 모를 설렘과 기대감이 차올랐다.
우리는 일과 기업에 대한 책(『기업은 누구의 것인가』, 『나는 왜 이 일을 하는가?』, 『일의 발견』)과 협동조합 관련 책(『협동조합, 참 좋다』, 『지역을 살리는 협동조합 만들기 7단계』, 『몬드라곤의 기적』)을 함께 읽기로 했다. 야근이 많고업무량도 만만치 않았지만, 우리는 어김없이 매주 한 번 퇴근 후 회의실에 모여 공부했다. 공부가 끝나면 다시 사무실로 돌아와 밤늦게까지 일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런 상황인데도 대부분 열성적으로 세미나에 참여했다. 회사 일로 몸은 지쳤지만 공부한 것을 나누고 떠들어대는 과정에서 우리는 생기를 되찾았다.
보통 일할 때 회사 동료들과는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 그런데 세미나에서는 기업의 불합리한 구조를 논의하다가 종종 분노를 표출하기도 하고, 어떨 때는 책에서 희망을 발견하며 들뜬 감정을 나누기도 했다. 함께 공부하면서 나는 사회와 기업의 부조리에 눈뜨게 되었다. 때로는 ‘이대로 좋은가?’ 반문도 하면서 기업과 일 그리고 협동조합에 대한 생각을 하나씩 하나씩 정리했다.
공부는 질문을 남긴다
‘나는 왜 이 일을 하는가?’
세미나 첫날, 우리는 『나는 왜 이 일을 하는가?』의 저자 사이먼 사이넥의 테드TED 강연 영상을 함께 보면서, 일을 찾을 때 ‘무엇을’ ‘어떻게’가 아니라 ‘왜’라는 질문을 먼저 해야 한다는 것에 공감했다. 그는 기업의 경우 ‘왜’라는 질문은 곧 제품의 목적과 신념을 뜻한다면서 그 사례로 ‘애플’을 꼽았다. 잡스는 세계적으로 시선을 끄는 애플의 신제품 발표회에서 언제나 애플의 가치를 앞세운다. 그는 ‘왜’ 이런 제품을 만들었는지를 먼저 이야기 한 뒤 그 가치에 기반하여 새로운 제품의 기능을 조목조목 설명한다. 이야기는 언제나 ‘왜’에서 시작해 ‘어떻게, 무엇을 만들었다’로 이어진다. 그리고 많은 사람을 애플이 내세우는 가치를 지지하는 충성스런 이용자가 되게 한다. 공부를 거듭할수록 우리는 무거운 숙제를 떠안게 되었다. 사이먼 사이넥의 질문, ‘왜 이 일을 하는가’에 대한 답을 정리해야 한다는.
기업의 목적은 이윤이다. 우리는 오랫동안 그렇게 배웠고 의심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정말 이윤이 기업의 목적에 대한 근본적인 답이 될 수 있을까? 돈은 행복한 삶을 위한 수단일 뿐인데 우리는 종종 돈 자체를 목적으로 착각한다. 한 개인의 삶의 목적이 돈이 아니라면, 개인들이 모인 조직인 기업의 가치나 목적도 돈이 되어선 안된다. 우리는 이윤은 기업을 지속하기 위한 필요조건이지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왜 누구는 취업을 못해 좌절하고, 취업해도 매일 야근에 시달리며 좀비같은 삶을 살아야 하죠? 정말 화나요. 조금 덜 일하고 여럿이 함께 일하는 게 합리적이고 좋은 것 아닌가요? 최소한의 투자로 최대의 성과를 보려는 기업의 이윤 중심주의가 결국 사람들의 삶을 갉아먹는 거죠.”
야근을 밥 먹듯 하는 개발팀의 문지애 대리는 이런 말로 우리를 놀라게했다. 평소 말도 별로 없고 차분한 사람인데 그렇게 격하게 감정을 드러내는 모습은 처음이었다. 다들 “오오!” 하고 놀라면서도 반가워했다. 이후로도 그녀는 종종 과격한 발언을 쏟아냈다.
세 번째 모임 때 우리는 신나리가 추천한 『기업은 누구의 것인가?』를 읽었다. 이 책은 ‘왜 기업의 사장은 노동자가 뽑으면 안 되는가?’라는 파격적인 질문을 던지며 그래도 되는 이유를 설명한다. 궁극적으로 회사는 주식을 소유한 주주가 아니라 실제로 그 안에서 몸을 쓰고 시간과 정성을 쏟으며 일하는 노동자가 뽑아야 한다고 했다.
이 책은 그동안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들을 전혀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게 해 주었다. 저자는 하나의 질문을 던지고 그 질문에 대해 설득력 있는 근거를 제시하며 기업의 존재 이유를 다시 생각해 보게 했다. 그날 세미나 직전에 우리는 놀라운 사실을 접했다. 얼마 전 손병대 과장이 어느 회사에 면접을 보고 왔다고 털어놓은 것이다.
“이 책 읽으면서 깜짝 놀랐어요. 사실 얼마 전에 반차를 내고 면접을 보고 왔는데, 그때 회사 대표가 했던 질문이랑 똑같은 내용이 여기 있더라고요.”
우리는 흥분한 목소리로 그곳이 어디인지 물었다. 얼마 전 한 방송에 소개되어 반향을 일으켰던 소프트웨어 기업 ‘제니퍼소프트’였다. 이 회사는 북유럽의 노동과 복지 시스템을 모델로 삼고 실현하는 곳이어서 직장인들 사이에 꿈의 직장으로 불린다. 아이들을 회사에 데려와도 되고 심지어 회사에 수영장도 있다. 주 노동 시간은 35시간이고 연간 20일의 휴가를보장한다. 방송 이후 ‘제니퍼소프트’와 대표 ‘이원영’이라는 키워드가 한동안 네이버 실시간 검색에 뜨며 화제가 되기도 했다. 우리는 궁금한 것을 꼬치꼬치 캐물었다.
“사옥이 정말 그렇게 좋던가요? 대표랑 직접 인터뷰를 했나요?… ”
나는 개발자 외 다른 직군은 안 뽑는지 묻기도 했다. 손병대 과장은 면접 때 받았던 질문이 무척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대표가 회사를 ‘공동체’로 생각해서 놀랐다고 말했다. 그가 받았던 질문은, “회사 내에서 자유와 의무가 충돌할 때 어떻게 하겠느냐”는 것인데 제대로 답하지 못해 아쉬웠다고 했다. 그런데 이 책을 보니까 이원영 대표가 얘기했던 내용이 그대로 나와 있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의 말을 듣고는 깜짝 놀랐다.
이 책에 따르면, 자유를 생각할 때 우리는 어디를 가고 무엇을 먹을지 입을지 등 소유와 관련하여 뭔가를 선택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진짜 자유는 자신의 활동을 스스로 만들고 규정할 수 있는 능력과 권리라는 것이다. 기업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자유도 활동에 근거하므로, 협업할 때 서로 주체가 된다면 자유와 의무는 대립하는 개념이 아니라는 말이다.
손병대 과장은 “한 주만 먼저 세미나를 했어도 제대로 대답할 수 있었을텐데… ”라며 몹시 아쉬워했다. 보도된 기사를 보면 이원영 대표는 기업을 ‘생존공동체’라고 표현하며, 제니퍼소프트에 대해 물질적인 복지가 좋은 곳이라는 내용보다는 공동체로서의 기업을 실험하는 측면을 봐달라고 한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시도를 하는 회사가 있다니… 놀랍고도 반가웠다.
기업 공부를 하면서 우리 마음은 그리 가볍지 않았다. ‘이건 아닌 것 같은데’라는 의심에서 시작했던 우리의 공부는 새로운 질문으로 이어졌다. 왜 누군가는 일상적인 야근에 시달리고 한쪽에서는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자살하기도 하나? 왜 회사의 주인은 직원이 아니라 한낱 종잇조각에 불과한 주주란 말인가?
한편으로는 책에 소개된 협동조합 사례를 보며, 이미 이런 실험을 하는 곳이 있고 꽤 오랫동안 이어 오고 있다는 것을 알고는 가슴이 뛰었다. 많은 협동조합이 단단한 역사를 쌓으며 지속해 왔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분야도 농업이나 수산업뿐만 아니라 서비스와 금융업에 이르기까지, 협동조합의 원리로 불가능할 게 없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게 전부가 아니었다. 새삼 그래서 공부가 필요함을 실감했다.
가장 인상적인 사례는 스페인의 몬드라곤 협동조합에서 직원들 간의 월급 격차를 제한하는 규정이다. 최고 연봉과 최저 연봉의 격차가 7배를 넘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한 기사에 따르면 월가 상위 5대 은행에서 시이오CEO와 직원들의 평균 연봉은 124배에 달한다고 한다. 직원이 월 100만 원 받을 때 시이오는 월 12억원이 넘는 돈을 받는다는 것이다. 몬드라곤 협동조합은 이 격차를 최대 7배로 제한했다.
이런 규정이 가능한 이유는 협동조합이 ‘공동선의 원리’를 바탕으로 운영하기 때문이다. 공동선의 원리에선 한쪽을 희생해 다른 쪽의 이익을 취하는 방식은 인정하지 않는다. 수학적으로 비유하자면 공동선에서는 곱하기의 원칙이 적용되는데, 4×0은 0이 된다. 하나라도 0이 있으면 모두 0이 되는 것이다. 반면 일반기업에서는 ‘전체선’을 따른다. 전체선에서는 더하기의 원칙(4+0=4)이 적용되는데, 전체를 위한다면 한쪽의 희생이 가능하다.
협동조합은 한쪽을 희생해 다른 쪽이 큰 이익을 누린다면 전체로 보면 결국 마이너스가 된다는 공동선의 원칙이 명확하다. 모든 사람이 기본적인 권리를 나누어 누린다는 원칙 말이다. 나는 왜 이런 원칙을 상상할 수없었을까. 협동조합이라는 기업 형태가 좋은 대안이 될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덴마크의 코펜하겐 도시 벌꿀 협동조합도 인상적이었다. 양봉 일로 도시 노숙인들의 자립을 돕는 협동조합인데, 조합을 만든 사람은 올리베르 막스웰이라는 평범한 시민이다. 그는 도시환경에 도움이 되고 사회적 약자도 돕는 일이 뭐가 있을까 생각하다가 양봉을 시작했다고 한다.
“환경과 경제가 위기에 처한 지금, 경제 구조에 대해 돌이켜봐야 할 때라고 생각해요. 지금 우리 사회는 지속 가능하다고 보지 않습니다. 코펜하겐 사람들이 꿀 한 병을 샀을 때 단지 꿀만이 아니라 봄날이 담긴 꿀을 샀다는 것을 깨닫길 바랍니다. 바로 자신을 둘러싼 환경이 담긴 꿀 말이죠.”
비록 글자로 만났을 뿐인데, 지구 반대편에 사는 청년의 목소리는 생생하게 내 마음을 울렸다. 나도 뭔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환경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하고 자연이 주는 선물에 감사함을 느낄 수 있는 도시 양봉 사업! 나도 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어떤 일을 하고 싶은가?
공부 모임은 점차 무르익었다. 불합리한 상황에 대한 불만으로 시작했던 공부는 협동조합의 다양한 사례를 만나며 ‘다른 원리로 회사를 구성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가능성으로 나아갔다. 질문은 다시 ‘그렇다면 나는 어떤 일을 하고 싶은가’로 이어졌다. 시작은 ‘이건 아닌데’였지만, ‘나는 이걸 하겠어’로 넘어가야 했다. 책에서 봤던 수많은 성공 혹은 실패 사례가 앞으로 우리가 어떤 일을 시작하는 데 좋은 자양분이 될 거라 믿었다. 그 사이 손병대 과장과 몇 명의 멤버들은 농사 앱 동구밭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세미나에 참여한 계기로 신나리도 프로젝트에 합류했다.
처음 정했던 열한 번의 세미나를 마치고 우리는 성미산마을에 다녀왔다.마을 사람들이 출자하여 만든 카페 ‘작은나무’와 매일 정성스런 밥상을 차리는 ‘성미산밥상’, 대안학교 ‘성미산학교’를 지나 공동주택 ‘소행주’(소통이 있어 행복한 주택)를 둘러보았다.
소행주는 출자금을 모아 지은 5층짜리 주거건물이다. 소행주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곳은 매일 저녁 따듯한 국과 밥이 있는 공동 주방이다. 소행주 사람들은 뜻을 모아 밥 해 주는 분을 구했다. 그러니 혹여 엄마 아빠가 늦더라도 아이들 밥 걱정은 덜 수 있다. 아이들은 매일 저녁 공동 주방에서 윗집 아랫집 언니 오빠들과 아저씨 아줌마와 둘러앉아 밥을 먹는다. 밥을 먹고 나면 아이들은 2층 공동 공부방에서 과제를 하기도 한다. 퇴근하고 돌아온 이들은 종종 먹을거리 파티를 열기도 하고.
야근이 많았던 우리 회사 사람(특히 여성)들은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데 무척 힘들어했다. 거의가 맞벌이다 보니 양쪽 부모님의 도움을 받거나 늦게까지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맡겼다. 하지만 맘이 그리 편해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소행주처럼 어려움을 함께 해결하는 방식이 있었다.
세미나와 성미산마을 투어를 마치고 우리는 각자의 고민과 삶에 대한 구상을 안고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즉흥적으로 조직된 게릴라 세미나였는데 석 달동안 함께 길을 찾아가는 행복한 시간이었다. 자신감도 생겼고 무엇보다, 이런 고민을 하는 게 이상한 일이 아니구나 싶어서 안도감이 들었다.
놀랍게도 그때 함께 공부했던 11명 중 9명이 그 후 이직을 하거나 전혀 다른 일로 옮겨갔다. 비영리단체로 옮겼거나 퇴직하고 협동조합을 만든 사람도 있다. 세미나 때 과격한 발언으로 모두를 놀라게 했던 문지애 대리는 도넛 가게에서 시간제 일을 하고 있었다. 도넛 가게라니, 역시나 파격적인 행보다.
어쩌면 약속이나 한 듯이 그렇게들 회사를 떠났을까? 아마도 공부하며 가졌던 ‘나는 왜 이 일을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각자의 답을 찾아 떠났을 것이다. 함께한 공부가 그런 변화의 계기가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뿌듯하기도 했다.
그리고 나는, 백수가 되었다. 특별한 계획은 없었다. 처음 나를 흔들어 놓았던 그런 공부를 계속 하고 싶었다. 언젠가 돈이 떨어지면 다시 일해야겠지만 일단은 시간에 쪼들리지 않고 계속 공부하고 싶었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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