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도시였다. 무슨 선사시대의 존재처럼 겨울밤 불쑥 계곡에서 솟아나 힘겹게 산허리를 오르고 있는 듯한 도시. 도시의 모든 것이 돌이고 노후해 있었다. 길과 샘을 비롯해 몇백 년 된 커다란 집들의 지붕에 이르기까지 그랬다. 회색 돌기와로 덮인 지붕들은 거대한 비늘을 연상시켰다. 이처럼 굳고 단단한 외피 속에서 삶의 부드러운 과육이 생장하고 있으리라고는 믿기 어려웠다.
처음 발을 들인 나그네는 이 도시를 무언가에 비교하고픈 욕구를 느끼지만 그것이 덫이라는 사실을 곧 깨닫게 된다. 어떤 비교도 불가능한, 실은 그 무엇과도 닮지 않은 곳이었으니까. 지붕들 위로 왔다가는 사라지는 비와 우박, 무지개, 혹은 다양한 색깔의 외국 국기들을 비교할 수 없듯이 말이다. 그것들이 일시적이고 비현실적인만큼이나 도시는 항구적으로 실재하는 무엇이었다.
경사가 진 도시였다. 일체의 건축 원리와 도시공학을 무시해버린.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경사진 도시였는지 모른다. 한 집의 용마루가 다른 집 들보에 닿아 있는가 하면 길 한쪽으로 미끄러지면 어느 집 지붕 위로 떨어질 수도 있는(특히 술꾼들이 그런 일을 경험하곤 했다), 분명 세상에 둘도 없는 도시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한 도시였다. 길을 걷다가 팔을 조금 뻗으면 사원 첨탑에 모자를 걸어둘 수도 있었다. 기이한 점이 한둘이 아니었고, 꿈의 왕국이라 할 만한 것들이 부지기수였다.
그 사지와 돌 갑옷 속에 사람의 생명을 간신히 품고 있었지만 그 생명을 찢고 할퀴며 온갖 고통으로 짓누르는 것도 사실이었다. 돌로 이루어진 도시여서 당연히 그 촉감은 거칠고 차가울 수밖에 없었다.
이런 도시에서 어린아이로 산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1
밖에서는 겨울밤이 바람과 물과 안개로 도시를 휘감고 있었다. 나는 이불에 몸을 파묻은 채 우리집의 커다란 지붕 위로 떨어지는 희미하고 단조로운 빗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경사진 표면 위를 굴러 땅바닥으로 곧장 떨어지는 무수한 빗방울들은 내일이면 수증기가 되어 저 위 하얀 하늘로 다시 올라갈 테지. 빗방울들은 처마밑에 홈통이라는 심술궂은 덫이 기다리고 있는 줄은 꿈에도 모른다. 그러다 지붕에서 바닥으로 뛰어 내리려는 순간 문득 자신이 무수한 동료들과 함께 좁다란 관에 갇혀버린 걸 알고 겁에 질려 묻는다. 우리는 어디로 가는 걸까? 우릴 어디로 데려가는 거지? 그렇게 빗방울들은 광란의 질주를 하다 미처 정신을 가다듬기도 전에 난데없이 깊디깊은 감옥, 큼직한 우리집 저수통 안에 처박혀버린다.
자유롭고 유쾌했던 빗방울들의 삶은 그곳에서 종말을 맞는다. 빗방울들은 어둡고 먹먹한 저수통 안에서 두 번 다시 보지 못할 천상의 공간과 저 아래 보이던 놀라운 도시들, 번개가 갈라놓은 지평선을 우울하고 처량한 심정으로 떠올릴 게 틀림없다. 간혹 내가 작은 손거울을 흔들어 빗방울들에게, 기껏해야 내 손바닥만한 하늘 한 자락을 전해준다. 그 한 자락이 잠깐 사이 명멸한다. 무한한 하늘에 대한 덧없는 추억.
한참이 지나 엄마가 양동이를 들고 올 때까지 빗방울들은 저 밑에서 어둠에 길을 잃고 멍해진 채 서글픈 며칠 몇 달을 보낼 것이다. 엄마는 그렇게 빗물을 길어올려 우리 속옷을 빨고 집 마룻바닥과 계단을 닦겠지.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빗방울들은 편편한 돌 위를 아무런 의심없이 유쾌하고 떠들썩하게 달리고 있었다. 그 소리를 듣자니 내 안에서 연민 같은 것이 싹텄다.
비가 사나흘 계속 내리면 아빠는 홈통의 방향을 틀어 저수통이 넘치지 않게 했다. 우리집 전체 면적과 맞먹는 기다란 모양의 수조였다. 이 수조의 물이 넘치는 날에는 지하실이 침수되고 집의 토대가 붕괴될 수도 있었다. 비스듬히 기울어진 도시인지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랐다.
나는 사람과 물, 이 둘 중 누가 더 갇혀 있는 것을 괴로워할지 혼자 생각해보고 있었다. 그때 발소리가 나는가 싶더니 옆방에서 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서들 일어나라, 홈통 돌려놓는 걸 잊었더구나.”
아빠와 엄마는 허겁지겁 침대에서 뛰쳐나왔다. 흰 속바지를 입은 아빠가 캄캄한 복도 끝까지 달려가 작은 창문을 연 다음 긴 막대로 홈통의 관을 돌려놓았다. 그러자 곧 마당으로 콸콸 물 흐르는 소리가 들렸다.
엄마가 석유램프에 불을 붙인 뒤 앞장을 서고 아빠와 할머니가 그 뒤를 따랐다. 나는 창가로 다가가 밖을 내다보았다. 사납게 휘몰아치는 바람에 빗줄기가 유리창에 와 부딪고 낡은 처마가 삐걱대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호기심이 일어 도저히 침대에 남아 있을 수 없었다. 계단을 내려오자 근심 가득한 얼굴을 한 세 사람이 보였다. 그들은 내가 내려온 것도 모르는 채 수조 뚜껑을 열어 상황이 어떤지 살피고 있었다. 엄마는 램프를 들었고 아빠는 목을 빼고 수조 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전율이 몸을 훑고 지나갔다. 나는 할머니 치마폭에 찰싹 달라붙었다. 할머니가 내 머리에 다정하게 손을 올려놓았다. 마당의 대문과 현관문이 바람에 덜컹댔다.
“억수로 퍼붓는구먼!” 할머니가 말했다.
허리를 구부린 채 한참 수조 안을 들여다보던 아빠가 엄마에게 말했다.
“신문을 가져와요!”
아빠는 엄마가 가져온 신문을 뭉쳐 불을 붙인 뒤 수조 안에 떨어뜨렸다. 엄마가 가느다란 한숨을 내뱉었다.
“물이 끝까지 차올랐어.” 아빠가 말했다.
할머니의 입에서 기도 소리가 새어나왔다.
“램프를 이리 줘요! 어서!” 아빠가 말했다.
엄마는 떨리는 손으로 램프에 불을 밝혔다. 엄마의 얼굴이 창백했다. 아빠는 커다란 검정 비옷을 머리에 둘러쓰고 엄마에게 램프를 받아든 다음 문 쪽으로 향했다. 엄마도 낡은 겉옷을 걸치고 아빠를 따라갔다.
“어디들 가신 거예요, 할머니?” 내가 놀라서 물었다.
“이웃 사람들을 부르러 간 게지.”
“왜요?”
“사람들 도움을 받아 물을 내려가게 하려고.”
희미하고 단조로운 빗소리 사이로 문 두드리는 소리가 어렴풋이 들렸다. 다른 문, 또다른 문을 차례로 두드리는 소리.
“어떻게 하면 물이 내려가는데요, 할머니?”
“양동이로 물을 퍼내야지.”
나는 수조 입구로 다가가 그 안쪽을 내려다보았다. 깜깜했다. 온통 어둠뿐이어서 더럭 겁이 났다.
“우우우!” 나는 나지막이 소리를 질러보았다. 그러나 아무 반응이 없었다. 내가 부르는 소리를 듣고도 수조가 묵묵부답인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 나는 수조를 몹시 좋아해서 걸핏하면 그 커다란 아가리 위로 몸을 기울이고 한참 동안 이야기를 나누었고, 수조는 동굴에서 울리는 듯한 소리로 지체 없이 내게 화답하곤 했다.
“우우우!” 나는 또 한번 소리를 질렀지만 수조는 여전히 침묵을 지켰다. 결국 수조가 몹시 화가 난 거라고 단정지을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그 무수한 빗방울들이 저 안에서 자신들의 분노를 끌어모은 것일까. 오랫동안 수조 안에서 침체되어갔던 빗방울들은 무슨 고약한 일을 벌이려는 속셈인지 그날 밤 뇌우가 쏟아놓은 새 빗방울들과 몸을 섞고 있었다. 아빠가 깜박하고 홈통의 관을 돌려놓지 않은 건 정말이지 안타까운 일이었다! 얌전한 우리 수조에 폭풍우가 침입해 반란을 부추겨놓는 건 어떻게든 막았어야 했는데.
문소리가 나더니 제조와 마네 보초가 들어왔고 다음으로 나조가 며느리를 데리고 따라 들어왔다. 뒤이어 아빠가 왔고, 엄마가 몸을 떨며 들어왔다. 그래도 문이 삐걱대는가 싶었는데, 이번에는 야베르와 나조의 아들 막수트가 손에 양동이를 들고 현관 안으로 힘차게 발을 들여놓았다.
이들이 모두 들이닥치는 모습을 보자 나는 안심이 되었다. 쇠줄과 양동이가 달그락거렸다. 그것들이 쩔렁대는 소리에 내 마음속 불안도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나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시끄럽고 분주하게 오가는 그들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후리후리한 체격에 머리가 회색인 마네 보초, 나조의 아들과 졸음이 깃든 눈매가 부드러운 나조의 며느리, 가쁜 숨을 몰아쉬는 제조. 마네와 제조와 나조가 차례로 양동이로 물을 퍼올리면 다른 이들은 마당 문간에다 그 물을 쏟아냈다. 밖에서는 여전히 폭우가 퍼부었고 이따금 제조가 콧소리를 냈다.
“맙소사, 아주 홍수가 났구먼!”
양동이가 하나씩 비워질 때마다 나는 조용히 물을 타일렀다. 가버려, 꺼져버리라고. 넌 우리 수조에 있으려 하지 않았잖아. 갇혀 있던 빗방울들이 양동이마다 가득했다. 나는 그중 가장 심술궂은 싸움꾼들부터 내보내 위험을 줄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제조가 잠시 쉬려고 양동이를 내려놓은 뒤 담배에 불을 붙이고 할머니 곁으로 다가가 말했다.
“자네, 체초 카일의 딸한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는가? 턱에 수염이 났다지 뭔가.”
“별 망측한 말을 다 하네!” 할머니가 기겁을 했다.
“내 두 눈을 걸고 맹세해. 남정네처럼 꺼먼 수염이래. 그래서 아비가 딸을 밖으로 내보내질 않는다는구먼.”
나는 귀를 바짝 세웠다. 나도 아는 누나였다. 그러고 보니 동네에서 그 누나를 본 지도 꽤 된 것 같았다.
“아! 셀피제.” 제조가 한숨을 내쉬었다. “액운이야! 신께서 우리에게 흉조를 내보이시는 거야. 오늘밤 이 물난리는 또 뭐고!”
제조는 결혼한 지 석 주도 채 안 된 나조의 아름다운 며느리를 눈으로 좇다가 할머니의 귀에 대고 뭐라 소곤댔다. 할머니가 입술을 깨물었다. 궁금해서 다가갔더니 제조는 담배꽁초를 내던지고 벌써 수조 입구에 가 있었다.
“몇시나 됐을까?” 마네가 물었다.
“자정이 넘었어요.” 아빠가 말했다.
“커피를 가져옴세.” 할머니는 이렇게 말하고 나더러 따라오라는 몸짓을 해 보였다.
우리가 계단을 올라가는데 또다시 문이 삐걱대는 소리가 들렸다.
“사람들이 또 오는구나.” 할머니가 말했다.
나는 누가 오는지 보려고 난간 너머로 목을 뺐지만 소용이 없었다. 복도가 너무 어두웠다. 악몽에서처럼 음산한 그림자들이 벽면에서 일렁였다.
우리는 삼층에 있는 ‘겨울 방’으로 갔다. 할머니가 벽난로에 불을 지폈다. 나는 다시 잠자리에 들었다.
밖에서는 폭풍우가 울부짖었고 지붕 위의 굴뚝들은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끙끙 신음 소리를 냈다. 우리집 들보는 단단한 땅에 뿌리박지 않고 그 일부가 수조의 엉큼한 물속에 잠겨 있는 게 아닐까 싶었다.
세월이 흉흉하네그려. 불안하고 믿지 못할 시절이지. 커피포트의 물이 끓는 기분좋은 소리에 졸음이 엄습해왔다. 어른들이 주고받는 대화의 동강들이 의식에 가물가물 와 닿곤 했다. 물처럼 손에 잡히지 않는, 의미가 모호한 말들이었다.
잠에서 깨어났을 때는 집안이 쥐죽은 듯 고요했다. 아빠와 엄마는 자고 있었다. 나는 조용히 일어나 추시계를 쳐다보았다. 아홉시였다. 할머니가 자는 다른 방으로 가보았다. 할머니도 자고 있었다. 이 시각에 모두 잠들어 있기는 처음이었다.
폭풍우는 그쳐 있었다. 나는 거실 창가로 다가가 밖을 내다보았다. 높다란 하늘은 움직임 없는 잿빛 구름에 뒤덮여 있었다. 차가운 날씨인 것 같았다. 밤사이 수조에서 길어올린 물은 이제 저 위로 증발해 구름과 한몸이 되었는지도 몰랐다. 거기서 축축한 지붕들과 어두운 땅을 매몰찬 시선으로 내려다보고 있는지도.
아랫동네로 시선이 향한 순간 내가 맨 처음 목격한 건 멀리 보이는 범람한 강이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 날씨에 달리 어쩌겠는가. 강은 늘 그렇듯 다리의 아치를 넘어가려고 밤새도록 분투했을 테지. 상처를 주는 길마에서 벗어나려고 날뛰는 미친 말처럼 아치를 흔들어댔겠지. 밤새 강이 쏟은 노력은 무엇보다 그 피투성이 등짝에 각인되어 있었다. 그래도 강은 결국 다리를 넘지 못하고 쏟아져내려 도로를 집어삼켰다. 엄청나게 불어난 강은 이제 도로를 자기 안에 녹여버릴 태세였다. 그러나 그런 사나운 공격에 길들여진 도로는 꿋꿋이 버텨냈다. 지금 이 순간도 붉고 탁한 물 아래서 강이 물러갈 순간을 기다리며 차분히 견뎌내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참 한심한 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해마다 겨울이면 도시의 발치를 물어뜯으려 하니까. 그래도 보이는 것만큼 위험하지는 않다. 산 아래로 질주하는 급류가 더 위험했다. 이 급류도 강처럼 도시를 물어뜯으려 했다. 강은 도시를 공략하기 전에 그 발치에서 꼴사납게 으스댔지만, 급류는 비열하게 도시의 등을 덮쳤다. 평소에는 죽어 비틀어진 뱀처럼 메말라 있던 급류가 폭풍우가 몰아치는 밤이면 되살아나 부풀어올랐고 휘파람 소리를 내며 울부짖었다. 견공들(출로, 피초, 츠파크)처럼 이름이 짤막한 급류는 분노로 파랗게 질려 윗동네에서 탈취한 흙덩이나 바윗덩이를 실어 날랐다.
밤사이 변해버린 풍경을 바라보면서 나는 생각했다. 강이 다리를 미워하는 것처럼 도로는 강을 미워하고, 급류는 담벼락을 미워하며, 바람은 광기 어린 제 분노를 저지하는 산을 미워한다고. 그리고 그것들 모두가 이런 파괴적인 증오 한복판에 거만한 자태로 누워 있는 축축한 잿빛 도시를 미워한다고. 그래도 나만은 이 도시를 사랑했다. 이 전쟁의 와중에 도시는 그 모두에 홀로 맞서고 있었으니까.
지붕들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는데 문득 머릿속에 체초 카일의 딸에게 난 불길한 턱수염이 떠올랐다. 전날의 폭풍우와 그 턱수염 사이에 무슨 연관이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보다가 문득 우리집 수조를 생각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계단을 내려갔다. 복도에 물이 흥건했다. 바닥에는 양동이들과 밧줄들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그것들로 인해 정적이 한층 뼈저리게 와닿는 이유가 뭘까. 나는 수조 입구로 다가가 뚜껑을 열고 몸을 굽혀 밑을 내려다보았다.
“우우우!” 나는 어떤 괴물의 잠을 깨울까 두렵기라도 한 듯 나지막이 소리를 질렀다.
“우우우!” 수조가 내키지 않는 목소리로 답해왔다. 왠지 낯설게 느껴지는 쉰 소리이긴 해도 분노가 가라앉았다는 의미로 들렸다. 그래도 평소보다 소리가 희미한 걸 보면 분노가 완전히 누그러진 건 아니었다.
나는 삼층 거실로 다시 올라갔다가 반가운 광경을 목격했다. 거리를 가늠할 수 없는 먼 곳에 무지개가 떠올라 있었다. 산과 강, 다리와 급류와 돌과 바람이 이 도시와 이제 막 평화조약을 맺은 것 같았다. 물론 그건 잠시 동안의 휴전에 불과하다는 걸 모르지 않았지만.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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