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센 우세에게
친애하는 형, 형에게 이 소략한 작품을 보내오. 이것을 보고 머리도 꼬리도 없다고 말한다면 부당할 수밖에 없는 것이 여기서는 오히려 모두가 동시에, 번갈아서 서로서로,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기 때문이지요. 이런 구성이 우리 모두에게, 형에게, 저에게 그리고 독자에게 얼마나 놀라운 편의를 가져올지 생각해보시길 바라오. 우리가 원하는 곳 어디에서나 저는 제 몽상을, 형은 원고를, 독자는 자기 독서를 중단할 수 있지요. 저는 어기대는 독자의 의지를 쓸데없이 장황한 줄거리의 끝날 줄 모르는 줄 끝에 매어놓는 것이 아니니까요. 만일 척추뼈 하나를 들어내신다 해도, 이 꿈틀거리는 환상은 두 토막이 났다가도 어렵지 않게 다시 결합할 것이오. 여러 토막으로 도막을 치시더라도, 그 토막 하나하나가 따로따로 생존하는 것을 보게 될 것이오. 그 가운데 몇 도막이 형을 기쁘게 하고 즐겁게 하리만큼 충분히 생생하리라 기대하며, 감히 이 뱀을 통째로 형에게 드리는 바요.
형에게 잠시 고백해야 할 것이 있소. 알로이지우스 베르트랑의 저 유명한 『밤의 가스파르』를(형이 알고, 제가 알고, 우리의 몇몇 친구들이 알고 있는 책이라면, 유명하다고 호명될 모든 권리를 지닌 것이 아니겠소?) 적어도 스무 번은 뒤적이던 끝에, 그와 비슷한 어떤 것을 시도해보려는, 그가 옛 생활의 묘사에 적용했던, 그토록 비상하리만큼 회화적인 방법을 현대 생활의 기술記述에, 아니 차라리 현대적이면서 한결 더 추상적인 한 생활의 기술에 적용해보려는 생각이 제게 떠올랐던 것입니다.
우리들 가운데 누가, 그 야심만만한 시절에, 리듬도 각운도 없이 음악적이며, 혼의 서정적 약동에, 몽상의 파동에, 의식의 소스라침에 적응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유연하고 충분히 거친, 어떤 시적인 산문의 기적을 꿈꾸어보지 않았겠소?
특히 거대한 도시를 빈번하게 왕래하고, 그 수많은 관계와 교섭하는 가운데 이 끈질긴 이상理想이 태어나는 것이지요. 친애하는 형, 형도 유리 장수의 날카로운 외침을 한 편의 노래로 번역하려고, 더 나아가서 이 외침이 거리의 더할 수 없이 높이 쌓인 안개를 뚫고 다락방까지 올려보내는 그 모든 한심한 암시를 일종의 서정적인 산문으로 표현하려고 시도하시지 않았소?
그러나 사실을 말한다면, 제가 부러워했다고 해서 그것이 행운을 가져다주는 것은 아닐 수도 있었을 터이니 그게 두렵소. 일을 시작하자마자, 저는 제가 그 신비롭고 빛나는 모범과 동떨어져 있을 뿐만 아니라, 기묘하게도 전혀 다른 어떤 것을(그것을 어떤 것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말이오) 만들어내고 있음을 깨달았소. 저 아닌 다른 누구라면 필경 자랑스럽게 여길지도 모를 이 예기치 못한 결과는 자기가 만들어내려 기도했던 것을 정확하게 완성하는 것이 시인의 가장 큰 명예라고 여기는 정신을 오직 심각하게 모욕할 따름이오.
형의 다정한 벗
C. B.
1. 이방인
“자네는 누구를 가장 사랑하는가, 수수께끼 같은 사람아, 말해보게. 아버지, 어머니, 누이, 형제?”
“내겐 아버지도, 어머니도, 누이도, 형제도 없어요.”
“친구들은?”
“당신은 이날까지도 나에게 그 의미조차 미지로 남아 있는 말을 쓰시는군요.”
“조국은?”
“그게 어느 위도 아래 자리잡고 있는지도 알지 못합니다.”
“미인은?”
“그야 기꺼이 사랑하겠지요, 불멸의 여신이라면.”
“황금은?”
“당신이 신을 증오하듯 나는 황금을 증오합니다.”
“그래! 그럼 자네는 대관절 무엇을 사랑하는가, 이 별난 이방인아?”
“구름을 사랑하지요… 흘러가는 구름을… 저기… 저… 신기한 구름을!”
2. 늙은 할멈의 절망
조그맣게 쭈그러든 할멈은 아기를 보자 아주 기뻤다. 누구나 예뻐하고 모든 사람이 즐겁게 받들어주려는 그 귀여운 아기는 작은 할멈처럼 가냘프고 또 할멈처럼 이가 없고 머리털도 없었다.
그래서 할멈은 아기에게 다가가 웃음을 띠며 보기 좋은 얼굴을 해 보이려 했다.
그러나 아기는 이 착한 늙다리 여자의 손길에 겁이 나서 발버둥을 치며, 온 집안에 가득차게 날카로운 소리를 질러댔다.
그 서슬에 착한 할멈은 제 몫의 영원한 고독 속으로 밀려나, 한쪽 구석에서 울며 중얼거렸다―“아! 불쌍한 우리 늙은 여편네들은 누굴 즐겁게 해줄 나이가 지났구나, 아무것도 모르는 애들이라고 할지라도. 우리는 어린애들을 사랑해주고 싶어도 두렵게 할 뿐이구나!”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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