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 있는 집에서 하룻밤, 공간을 공유한다는 것
민박은 우리 계획에는 전혀 없는 일이었다. 여행하면서 낯선 곳에서 잠도 많이 자봤고 가난한 시절에는 여관에서부터 모텔, 펜션, 콘도, 여유가 생긴 다음에는 고급 호텔까지 수많은 숙박업소를 경험했다. 그때마다 우리가 생각하는 숙박업이란 어렵고, 더럽고 힘들기만 한 3D업종이었다. 주변에 은퇴한 분들이 수익사업으로 펜션을 짓고 운영하는 걸 더러 보면서도 ‘나이 들어서 저렇게 힘든 일을’이라고 생각했던 우리 부부다.
숙박업을 조금이라도 긍정적으로 봤던 건 유럽 여행을 했을 때였다. 유럽의 책마을은 대부분 깊숙한 산골 어딘가에 있기 때문에 예약할 수 있는 최적의 숙소는 현지 민박이다. 인터넷을 뒤지고 또 뒤져 찾아냈던 유럽 시골 마을 민박집들. 그곳은 값도 쌌지만 그 외의 것들도 하나같이 맘에 들었다.
남프랑스 시골 마을에선 목초지가 있는 넓은 농가 한 채를 단독으로 빌려 묵었는데 무척이나 싼값에 피레네 산맥 아래 맑은 별빛을 독차지할 수 있었다. 몽톨리외 책마을 근처에선 나이 든 노부부가 살고 있는 농가에 방 한 칸을 얻어 들었다. 이튿날 아침 노부부가 직접 생산한 벌꿀, 손수 만든 과일잼과 빵, 금방 내린 커피 한 주전자를 같이 앉아 먹고 마시며 말도 안 되는 호사를 누렸다. 그런 친절과 그런 편안함과 그런 자연의 밥상. 아, 이게 지금 우리나라에선 모두 사라져버리고 정 없이 돈만 지불하는 펜션식 숙박으로 몽땅 바뀌어버린 가정 민박의 원형이로구나, 하고 느낄 수 있었다.
집주인이 살고 있는 집에 방 한 칸을 빌려 머무는 숙박의 경험, 그건 돈을 주고받는 거래 행위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친척 집, 친구 집에 놀러온 듯한 친밀감과 따뜻함을 느끼게 해주었다. 아침에 일어나 인심 좋은 주인아주머니의 푸짐한 시골 밥상을 받아먹는 이 따뜻함은 여행의 기억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 아닐까 싶다.
우리는 이렇게 행복했던 시골 민박의 경험을 떠올렸다. 그런 만남의 공간이라면 우리도 기꺼이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집을 지을 때부터 2층 다락방은 아들 방으로 정해 놓았었다. 하지만 괴산으로 이사한 후 아들이 그 방에서 시간을 보낸 적은 많지 않다. 고등학교 때는 기숙사에 있었고 대학에 진학한 이후는 학교 앞에 방을 얻어 독립했기 때문이다. 어쩌다 집에 오는 아들을 위해 많은 날들 방을 비워 두었다. 그 방이 자연스럽게 손님방이 되었다.
민박을 하겠다고는 했지만, 사실 지인들이 많이 찾아올 것이라 생각했다. 본격 사업을 한다기보다는 우리와 알고 지낸 이들이 그냥 와서 묵기는 염치없으니 일정한 비용을 정해놓으면 편하게 묵어 갈 것이라 생각했다. 또 가정식 민박이라는 게 투자가 들어갈 일이 없으니 비용 부담도 없고, 만일 하다가 힘들면 그만두면 된다는 가벼운 생각도 있었다.
그런데 생면부지의 사람들에게서 숙박 문의가 들어왔다. 블로그에 올린 소개를 보고 ‘바로 내가 찾던 그 집’이라는 사람들의 전화가 이어졌다. 조금 겁이 났다. 이 낯선 상황은 뭐지?
그래서 전화나 이메일 문의가 오면 자세히 물어봤다. 우리 집은 어떻게 알게 되었는가, 우리 집은 여타 민박이나 펜션과는 다른 곳인데 그걸 알고 있는가, 블로그에 소개한 내용을 자세히 읽어봤는가, 그러고도 우리 집에 와서 머물고 싶은가?
가장 중요하고도 핵심적인 마지막 질문은 이거다.
“책을 좋아하세요?”
우리 집은 일반 유흥지나 숙박업소와 달라서 책을 좋아하지 않는 분들은 와서 실망할 수 있다는 걸 재차 강조하고서야 손님을 받았다. 그랬더니 손님들 사이에서 우스갯소리로 이곳은 민박을 신청했더니 심층면접을 보더라는 소문이 났다.
사실 우리 집은 민박을 하기에 적합한 구조가 아니다. 그냥 가정집으로 지은 곳인 데다 평소엔 우리 부부 두 사람만 살기 때문에 욕실과 화장실도 한 개밖에 만들지 않았다. 1층엔 주인장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앉아 있고, 손님들은 2층 다락방에 머물기 때문에 낯을 가리는 사람들에게는 불편한 구조다. 블로그에 그 점을 매우 강조했다. 여행 와서 독립 공간에서 혼자 편히 쉬고 싶은 분들에겐 맞지 않는 집이라고, 하지만 가까운 친척 집이나 친구 집에 놀러온 것처럼 우리와 함께 공간을 나누고 싶은 분들에게는 적합하다고.
심층면접을 세게 보기 때문인지, 예습을 열심히 하고 올 수밖에 없어 이런 점들을 다 고려하고 와서인지 숙박에 대한 만족도가 높았다. 우리도 몹시 즐거웠다. 낯선 사람들과의 하룻밤은 의외로 대단히 신선했다. 방문객들과 술 한잔 혹은 다과를 함께 하면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신기하게도 꼭 겹치는 부분이 있었다. 한두 단계만 거치면 서로 알 만한 사람들이 나오기도 했고, 굳이 그렇지 않더라도 책이라는 공감대가 있어서 함께 나누는 시간들이 즐거웠다.
무엇보다 만남과 관계의 폭이 굉장히 넓어졌다. 사람이란 전혀 의외의 사람들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 원래부터 친구이거나, 사회에서 만난 관계라면 대개 비슷한 일을 하거나, 비슷한 환경의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나이가 들수록 이런 만남의 폭은 더욱 좁아져서 주변을 답답하게 느끼게 되고 그래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살롱문화를 그리워하게 되는 법이다.
우리도 비슷했다. 특히 10년 넘게 작은 도서관 일을 하면서 도서관과 책문화, 출판 관계자들과 만나왔고 친구들도 책과 관련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조금 다른 범위라면 아들을 중고등학교 모두 대안학교에 보냈기 때문에 대안학교 선생님이나 학부모 정도랄까.
그러나 민박집에서 만나는 이들은 너무도 다양해서 시민단체와 도서관, 대안학교 등 기존에 우리와 관계를 맺던 분야와는 전혀 무관한 다른 세상이 많았다. 수녀님이나 스님 같은 종교계 사람들, 병원에서 일하는 이들, 복지관이나 보육원에서 일하는 사회복지사들, 전직 혹은 현직 군인들. 물론 그들 중에는 하룻밤 연을 맺고 그것이 전부인 관계도 있었지만 하룻밤의 인연이 서로의 기억 속에 잊을 수 없이 깊이 새겨져 블로그나 페이스북을 통해 꾸준히 연락하거나 몇 번씩 재방문을 하는 등 마음을 나누는 관계로까지 발전하는 경우도 많았다. 아, 이유나 내용이 어찌되었든 하룻밤을 같이 보낸다는 게 얼마나 깊은 인연인지를 절절하게 깨닫게 되었다. 하룻밤에 만리장성을 쌓는다는 말,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 말을 온몸으로 느꼈고 사람이 사람을 만난다는 것의 엄중함에 대해 깊이깊이 느끼는 시간이었다.
사람이 온다는 건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그는그의 과거와현재와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부서지기 쉬운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마음이 오는 것이다.그 갈피를아마 바람은 더듬어볼 수 있을마음,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낸다면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방문객’, 정현종)
시골 마을 가정식 민박집에서 손님들을 맞고 또 보내면서 우리는 가슴으로 이 시를 읽는다. 한 사람의 일생을 만나는 엄중함. 그들의 마음 갈피를 조금이라도 헤아려주는 크나큰 환대를 베풀 수 있는 민박집 주인이 되기만을 바랄 뿐이다.
꿈을 파는 오두막 책방
남편이 열심히 도를 닦은 덕에 집 안 곳곳에 공간들이 생겨났다. 비어 있는 틈 없이 빼곡하게 책장을 채우고 서가를 정리하노라니 창고 속에 묵혀두었던 책들이 긴 잠에서 깨어나기 시작했다. 도서관에 두고 오래도록 보면 좋을 책, 우리가 개인적으로 소장해서 간직하고 싶은 책들을 추리고도 책들이 많이 남았다. 그 책들을 정리해 마당에 있는 오두막에 꽂아두고 ‘오두막 책방’을 열었다. 우리 집을 오가는 사람들이, 혹은 지나는 마을 사람들이 누구나 들러 편히 책을 볼 수 있는 공간이면 좋겠다 싶었다.
그런데 방문객들이 늘어나면서 이 책들을 살 수 있는지 묻기 시작했다. 책이 있는 집, 책 읽기를 권하는 집에서 하루를 보내다 보니 우리가 이야기하는 책, 추천하는 책을 사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생각해보니 어차피 마을회관에 도서관을 열 것이고, 도서관에 놓을 장서는 따로 정리해두었으니 이 책들을 굳이 갖고 있을 필요가 없겠다 싶었다. 새 책이 아니니 정가보다 많이 할인한 가격에 판매를 한다면 방문객들에게도 좋은 일일 것이었다.
그렇게 책을 팔기 시작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서점을 염두에 둔 것은 아니었다. 도서관에서 보던 책을 한 번씩 정리해 중고책 벼룩시장을 열었던 것처럼 갖고 있는 책을 처분하는 정도의 의미였다. 돈이 모아지면 그걸로 다시 새 책을 사서 도서관 장서를 늘릴 수 있으니 좋은 일이기도 했다.
그런데 의외로 책이 잘 팔렸다. 우리는 조금 놀랐다. 물론 새 책 같은 중고책이니 좋은 책을 싸게 살 수 있다는 장점이 컸을 것이다. 게다가 방문객들의 특성에 맞게 적절한 책을 골라주니 모두들 좋아했다. 갖고 있던 좋은 책이 많이 팔려나갔다. 우리가 추천하는 책이 다 우리 집에 있는 건 아니니 이러저러한 책을 보라고 권해주면 다들 제목을 적어가며 인터넷서점에서 사야겠다고 했다. 어디서 사든, 좋은 책이 잘 팔리는 건 좋은 일이고 원래 작은 도서관을 운영할 때부터 우리의 주된 일이 이용자들에게 좋은 책을 소개하는 것이니 나쁠 거야 없었지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지금 갖고 있는 중고책뿐 아니라 새 책도 갖다놓고 팔면 어떨까?’
당시는 도서정가제 시행 이전이라 인터넷서점에서 엄청난 할인판매를 하고 있었고, 우리는 주위에 추천하고 싶은 좋은 책을 두세 권씩 사서 모았다. 방문객에겐 사들인 가격에 이윤을 조금 보태서 판매했다. 수많은 책 가운데 좋은 책을 골라내고, 권해주는 우리의 노력에 매기는 대가라 생각했다. 사람들이 좋아했다.
책을 사가는 사람들이 늘자 영업 허가 없이 그냥 책을 판매하는 게 마음에 걸렸다. 이거야말로 무허가, 무자료 거래 아닌가 말이다.
“우리 정식으로 서점을 한번 해보면 어떨까?”
어느 날, 속으로만 생각하던 말을 부부가 마주보고 앉아 드디어 입 밖으로 내놓았다. 아무래도 말이 안 되는 얘기라 서로가 차마 드러내고 하지 않던 그런 말.
‘책을 읽지 않고, 책이 팔리지도 않고, 동네서점들이 우수수 문을 닫는 이런 때 서점 창업이라니? 그것도 상권 좋은 도심 어딘가가 아니라 시골 마을 귀퉁이에서? 지금 장난해?’
이런 생각이 서로가 이 말을 입 밖으로 꺼내는 걸 막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마음 한편에선 스멀스멀 다른 생각이 피어올랐다.
‘도심 한복판에선 절대 못 하지. 왜? 당연히 망할 테니까. 우리 노후연금 다 털어먹고 말년에 아파도 병원 한 번 못 가보고 노상객사할지도 모를 테니까. 시골 마을 귀퉁이니까 가능한 거 아냐? 일단 임대료가 안 들잖아. 모든 자영업자들의 마지막 꿈이라는 ’자가 건물‘. 여기는 우리 집이니 망할 염려가 없지. 책 안 팔리면 어때? 그러면 우리가 다 껴안고 살면 되잖아. 그동안 서점 같은 거 안 했어도 여태까지 우리가 매달 사들인 책을 돈으로 환산하면 웬만한 서점 매출은 될 텐데. 이거, 말 안 될까?’
도서관이든, 서점이든 책을 기반으로 하는 문화공간이라는 점에서는 같다. 도서관은 공공 기관이고, 서점은 영업장이지만 책이라는 물품의 성격상 어느 정도 공공성을 기초로 한다. 도서관은 책을 보관하고 빌려주는 곳이지만, 서점은 책을 순환하고 판매하는 곳이다. 방식은 다르지만 거래의 대상이나 관계망은 거의 같다고 할 수 있다. 도서관은 독서문화를 장려하고 교양 있는 시민을 키워내기 위해 낭독회, 전시회, 토론회, 저자 초청 행사 등 각종 문화 행사를 연다. 서점 역시 독서문화를 장려하기 위해 같은 행사들을 연다. 다른 점이 있다면 책을 한 권이라도 더 팔아야 한다는 상업 목표를 꾀하는 사실이다.
그동안 내가 도서관에서 해왔던 모든 일들을 서점에서 동일하게 할 수가 있다. 업종의 형태가 도서관이든, 서점이든 관계없이 그 공간에서 내가 하고 싶은 책문화 활동을 할 수만 있으면 좋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부부도 시골에서 먹고 살기 위해 최소한의 생계유지비는 필요하니 어쩌면 도서관의 형태보다는 영업을 하고 이윤을 추구할 수 있는 서점의 형태가 더 어울릴 수 있겠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알아보니 서점을 창업하는 데 특별한 조건이 필요하지는 않았다. 시골 가정집에서도 서점을 열고 영업 행위를 할 수가 있었다.
그래, 이제 우리 서점을 열자. 번듯한 도심 빌딩에 자리 잡은 대형서점도 아니고, 사람들 발길 끊이지 않는 대학가 소형서점도 아닌, 시골 마을 한 귀퉁이에 자리 잡은 한국 최초의 가정식 서점. 누군가는 시골 빵집에서 자본론도 굽는다는데 우리는 시골책방에서 책을 사고파는 그런 기적 같은 일을 한번 만들어보자.
2014년 4월 30일, 동청주세무서에서 서점 사업자등록증을 받아들고 우리 부부는 흥분한 얼굴로 소주잔을 들었다. 취하지도 않았다.
‘숲속작은책방’의 첫걸음이었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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