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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 양서류야.
나는 말이야. 오늘 아침에 창문을 열고 눈이 휘둥그레졌어. 바다, 온통 바다였어. 왼편에는 떠오르는 해, 오른편에는 바다를 향해 떠나는 노란 배 한 척, 그 가운데는 오로지 바다뿐이었단다. 내가 만약 올빼미처럼 시선을 옆으로 넓힐 수 있다고 해도 바다밖에 볼 수 없었을 거야. 옆으로 누운 물음표 같은 까만 물새들이 하늘을 날고 있었어. 새들은 해가 떠오르는 곳에서 출발해서 출항하는 배 쪽으로 날아갔어.
천상에서 지상으로, 무생물의 세계에서 생명의 세계로 향하는 여행자들 같았어. 새들이 날아가는 하늘 아래, 코코넛 껍질로 만든 지붕 너머에서 힘찬 비질 소리가 들려왔어. 대체 누가 이 아침에 이렇게 씩씩하게 비질을 하는 걸까? 노란 티셔츠에 노란 슬리퍼를 신은, 여위었지만 단단해 보이는 청년이 나타났어. 나는 그에게 손을 흔들었어. 그도 나에게 손을 흔들었어. 나는 그의 비질 소리가 루이 암스트롱이 연주한 〈성자들의 행진〉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 리듬에 맞춰 이를 닦았어. 식당으로 내려가서 오이주스를 마셨어. 어디선가 보이지 않는 닭이 몸부림치듯 울었단다. 수탉과 비질 소리가 아침 그리고 공간을 옆으로 활짝 열어젖혔어.
오후에 나는 팡라오 섬, 알로나 비치Alona Beach의 코코넛나무 아래 앉아 있었어. 코스트 가드, 존, 킹덤 같은 이름을 단 하얀 배들이 바다에 떠 있었어. 사라져버린 것들을 향기로 살려내고 싶어하는 것처럼 바다 냄새가 강렬했어. 나는 바다로 뛰어들어갔어. 내 옆에선 나이들고 살찐 유럽 남자가 검은 수영복을 입은 젊은 필리핀 여자의 귀에 대고 이런 말을 속삭이고 있었지. I don’t care money. 뮬란처럼 생긴 그녀는 심란한 표정으로 수동적으로 파도에 흔들리고 있었어. 조금 전까지도 세상 전체가 소크라테스라도 된 듯 이구동성으로 ‘너 자신을 알라!’라고 아우성쳤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지 않니?
그 두 사람 옆에는 수영을 즐기는 두 명의 장난꾸러기 꼬마 숙녀들이 있었어. 그 애들의 이름은 앨리스와 자라였고 홍콩에서 왔어. 두 애들은 수영복을 입은 장난꾸러기 돌고래들 같았단다. 그 애들의 다리는 꼬리였어. 그 애들은 물속에서 깡충 뛰어서 몸을 활처럼 휘어서 왼쪽으로 점~프. 낙하! 다시 오른쪽으로 점~프 낙하! 이번에는 뒤로 벌~렁. 낙하! 다시 위로 점~프 낙하! 이 동작을 몇 번이나 반복했어. 나는 웃음을 터트렸어.
‘애들아, 추락 연습을 하다니 벌써 삶이 뭐냐고 묻는 것 같구나!’
나도 그 애들과 조금 떨어져서 왼쪽으로 점~프! 낙하! 오른쪽으로 점~프 낙하! 팔을 쭉 뻗고 뒤로 벌~렁 낙하! 팔을 더 길게 뻗고 위로 점~프 낙하! 수없이 따라했단다. 물속 모래는 아주 부드러웠어. 내가 그동안 숱하게 추락했어도 너무 아프지는 않았던 이유를 알 것 같았어. 내 발밑을 부드럽게 받쳐줬던, 내 눈에 보이지 않았던 황금 그물망이 있었던 거야. 나는 서커스장의 안전한 곡예사였어. 그 그물망은 행운이나 우연이란 이름만은 아닐 거야. 내가 모르는 사람, 내가 아는 사람, 셀 수도 없이 많은 인간들의 선의의 그물망이 내 밑에서 나를 받치고 있었겠지. 비트겐슈타인의 말이 생각났어.
나는 서툰 기수가 말을 탄 것처럼 삶 위에 타고 앉아 있다. 내가 곧바로 떨어지지 않은 것은 그저 말의 성격이 온순한 덕분이다.
나는 물속에서 부드러운 모래 위에 책상 다리를 하고 앉았어. 내 키는 아주 작아졌고 내 눈높이도 낮아졌어. 바로 나에게 필요한 눈높이였어. 모든 것이 나보다 높은 곳에 있었어. 요가 자세로 책을 읽는 청년, 일광욕을 하는 네 명의 친구들. 등을 맞대고 앉아 각기 반대쪽을 보는 중년 여인들. 아이스크림을 먹는 아이들. 자신의 짐 가방을 베고 누워 자는 배낭족 청년. 모두들 간격을 두고 떨어져 앉아 있었기 때문에 조금씩 외로워 보이기도 했고 그 거리가 꼭 필요한 것처럼 보이기도 했어. 키가 아주 큰 코코넛나무들이 한결같이 차분한 현인賢人들처럼 그들 모두를 굽어보면서 서 있었어.
그사이 파도가 거칠어졌어. 나는 바다에서 나와 해변 식당으로 가서 커피를 주문했어. 정박중이던 배 중 한 척이 세 명의 다이버들을 태우고 거친 바다를 향해 출항했어. 해변 식당에 앉아 있던 사람들과 떠돌이 개들이 손과 꼬리를 흔들면서 그들을 배웅했어. 걱정스러운 마음을 감추지 못한 누군가가 바다를 가리키면서 말했지. Big wave!
파도의 흐름은 왈츠의 흐름과도 같아 보였어. 순환하는 파도는 왈츠처럼 돌아오고 돌아오고 또 돌아와. 점점 약해져서 돌아와. 먼 곳에서 왔기 때문에 약해진 여행자처럼 돌아와. 그러나 약해졌기 때문에 오히려 더 잘 세상과 조화를 이룰 수 있을 만큼 약해져서 돌아와.
이제 뭐 좀 먹으러 갈게. 곧 더 이야기하자.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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