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꾸민 것 같지만 진실인 이야기
이 책의 바탕이 된 이야기는 감쪽같이 꾸며 낸 것 같다. 전혀 다른 분야의 두 사람이 한 가지 의문에 이끌리고 딱 한 번 우연히 만나서 잠깐 그 의문에 관해 논의한 다음에 헤어졌고, 이후로 다시는 서로 만나지 못했다. 둘 중 한 명인 대니 브라워는 2007년에 쉰다섯의 나이로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나머지 한 명은 (의사였다가 과학자의 길을 가고 있는) 나인데, 우리 둘의 이야기를 마무리 지어야 할 처지이다. 우리가 단 한 번 우연히 만난 인연에서 이 책은 시작되었다. 이 책은 인간에 관한 근본적인 질문들을 던진다.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떻게 여기에 이르게 되었는가? 왜 우리는 지금 이대로의 모습인가? 그리고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우리 두 사람의 삶의 배경이 얼마나 달랐는지 생각해 보면, 이 이야기는 더욱 꾸며 낸 말같이 들린다. 대니는 1951년 11월에 태어나 미국의 서민 가정에서 자랐는데, 이후 꾸준히 노력한 결과 투손에 있는 애리조나 대학교의 분자세포생물학 교수 및 학과장이라는 영예로운 지위에 올랐다. 나와 만났을 무렵 그는 이미 인테그린integrin이라는 단백질 세포에 관한 선구적인 연구로 잘 알려져 있었다. 인테그린은 세포들이 주위 환경을 인식하여 알맞게 대응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단백질이다. 대니는 당시 인기 있던 초파리 모델을 이용하여 이 과정을 연구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사람에게 생기는 암을 이해하는 데에도 이바지할 수 있었다.
알고 보니 대니는 자신의 연구와 관련이 있는 또 한 가지 관심사가 있었다. 바로 지구의 모든 생명체가 지난 30억 년쯤에 걸쳐 출현하게 된 과정을 연구하는 학문인 진화생물학이었다. 그런 주제에 관심을 갖게 되자 자연스레 그는 우리 종, 호모 사피엔스의 기원이 궁금해졌다.
한편 나는 대니보다 딱 두 달 늦게 태어나 지구의 반대편인 인도에서 자랐다. 인도 남부의 케랄라에서 전통적인 동방 정교회 가정에서 자랐지만, 영어 학교에 다녔고 생명을 살린다는 꿈을 안고 의과대학에 진학 했다. 의대이다 보니 교과에는 흥미진진한 생물학 과목들이 많았고, 그런 계기로 마침내 생명 의학 과학자가 되어 사회에 더 큰 기여를 하자고 결심했다. 하지만 1970년대 인도에서는 그런 길을 가기가 쉽지 않았다. 과학 문헌을 읽다 보니 미국이야말로 의사가 다른 분야의 과학자들과 함께 연구하게끔 지원과 격려를 보내는 유일한 나라임을 알았다. 그래서 1975년에 단돈 6달러와 옷가방 하나를 들고 미국으로 건너왔고, 내과와 혈액학과 및 종양학과에서 의사 면허 시험에 합격했으며, 더 나아가 캘리포니아 대학교 샌디에이고 캠퍼스 UCSD 의 교수라는 지금의 자리에 이르렀다.
원래 희망했던 대로 길을 걷게 된 덕분에 나는 의학 연구자로 활동할 수 있었고, 결국에는 환자 치료에서는 손을 떼고서 당생물학Glycobiology이라는 신흥 분야에 매진하게 되었다. 당생물학은 인체의 각 세포에 작용한다고 알려진 조밀하고 복잡하며 다양한 당 사슬sugar chain을 연구하는 생물학 분야이다. 전문적으로는 ‘글리칸 glycan’이라고 불리는 이 사슬을 분석하기가 어려웠던 까닭은 분자생물학 혁명의 초기 단계에서는 주로 DNA, RNA, 그리고 단백질에 초점을 맞추었던 탓에 비교적 주목을 덜 받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밝혀지기로 이런 글리칸 사슬은 생명체에 필수적이며 질병 감염에서부터 암 발생, 나아가 두뇌 발달에 이르기까지 정상적이든 비정상적이든 인체의 모든 상태에 관여한다.
독립적인 연구자의 길을 시작하면서도 나는 여전히 내과 및 암 전문의로서 틈틈이 환자를 맡았다. 암을 다루다 보니 자연스레 삶과 죽음의 문제들을 숙고하게 되었고 특히 말기 암 환자들이 어떻게 온갖 악조건 속에서도 용감하게 싸워 나갈 수 있는지 궁금해졌다. 환자와 의사 모두 예후가 암울한 상황에서도 실제로는 자신들이 맞닥뜨리고 있는 현실을 부정하는 것 같았다. 이처럼 불리한 상황에서도 삶을 이어가게 해 주는 낙관적인 사고는 단지 생사가 걸린 상황에만 등장하지 않는다. 그것은 인간성의 일부여서 인간 활동의 매우 다양한 분야에서 등장한다.
인생의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특히 딸의 성장 과정을 지켜보면서 나는 어떻게 우리가 인간이 되었는지 궁금해했다. 즉 진화상 우리의 가장 가까운 친척인 침팬지 등 이른바 유인원—고릴라, 보노보 및 오랑우탄—과 갈라져 어떻게 지금의 인간으로 진화했는지 말이다. 유인원과 인간은 꽤 달라 보이지만, 이미 1960년대와 1970년대에 과학자들이 밝혀냈듯이 유전자상으로는 매우 비슷하다. 사실 유전자 측면에서 보면 쥐와 생쥐가 서로 비슷한 정도보다도 더 우리와 침팬지는 비슷하다! 그리고 침팬지는 고릴라보다 인간과 더 많은 유전자를 공유한다.
따라서 이런 굵직한 질문이 떠오른다. 왜 인간은 유전자상으로는 매우 비슷하면서도 침팬지나 고릴라와 외모, 행동 및 기타 여러 특징이 확연히 다른가? 왜 침팬지나 고릴라는 지금 내가 하는 일 — 미래에 영향을 끼칠 과거의 사건에 대해 독자와 이야기를 나누는 일 — 을 할 수 없는가? 그리고 서로 만난 적이 없는데도 어떻게 독자들은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이해하며, 나는 독자들이 그럴 것임을 알 수 있는가?
1984년 나는 그런 문제에 갑자기 관심이 쏠렸다. 희귀한 혈액 질환을 치료하기 위해 투여한 말馬혈청에 어떤 환자가 면역 반응을 일으키는 걸 보게 되면서였다. 그 사례를 계기로 관련 연구를 진행했는데, 1990년대 중반에 이르자 내 연구팀은 인간과 유인원 사이의 분명한 유전자상 차이를 최초로 발견했다. 사실 과학자들은 인간에게 고유한 유전적 특징들을 지난 20여 년 동안 찾고 있었던 터여서 내가 첫 사례, 즉 CMAH라는 유전자의 손실 사례를 찾아낸 것은 정말 행운이었다. 이것은 인체의 모든 세포에서 시알산sialic acid이라는 세포 표면 당을 독특하고 미묘하게 변화시키는 유전자이다. 이후 우리는 건강과 질병 상태에 영향을 끼치는 듯 보이는 시알산 변화의 추가적인 여러 과정을 밝혀냈다. 하지만 지금의 논의와는 다른 주제이므로 다음 기회에 설명하겠다.
이런 뜻밖의 발견 덕분에 나의 원래 전공 분야와는 한참 멀지만 늘 마음에 품고 있던 주제에 더욱 관심이 기울었다. 인류의 기원에 관한 설명이 바로 그 주제이다. 인간은 어디에서 왔는가라는 질문은 두말할 것도 없이 최대의 미해결 불가사의에 속한다. 물론 지금은 많은 과학자들의 연구 덕분에 대강 윤곽이 잡히긴 했지만, 당시로서는 인간에게 고유한 분자생물학적 과정들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그래서 1990년대 후반에 나는 인류 기원론, 즉 인류의 기원과 진화를 다루는 고전적인 이론이지만 오랫동안 주목을 받지 못했던 분야에 연구의 초점을 맞추기 시작했다.
쉽사리 짐작할 수 있듯이 이 매력적인 분야를 탐구하려면 꽤 다양한 주제를 이해하고 있어야 하는데, 그 중 다수는 내가 교육받지 못한 것들이었다. 하지만 의학과 당생물학이라는 주요 연구 분야에서 얼마간의 과학적 성공과 유명세를 얻은 덕분에 나는 이 새로운 탐구에 더 많은 시간을 낼 여력이 생겼다. 그래서 영장류학, 진화생물학, 신경과학, 언어학 및 인류학 등 다른 관련 분야들에 몰두할 수 있었다. 이런 독학 연구의 일환으로서 그 분야의 다양한 전문가들에게서 조언을 얻기 시작했는데, 그 결과 마침내 인류의 기원과 진화에 관심 있는 과학자들의 국제적인 학제 간 협력 연구팀을 (1996년에) 결성했다.
주로 뉴욕의 매서스 재단의 지원 덕분에 이 연구팀은 최근에 규모를 확장하여 인류 기원론에 관한 학문적 연구 및 교육 센터Center for Academic Research and Training in Anthropogeny, CARTA로 이름을 바꾸었다. 캘리포니아 대학교 샌디에이고 캠퍼스 및 솔크 생물학 연구소와 연계하여 ‘장벽 없는 센터’인 CARTA는 자연과학, 사회과학 및 생체 의학 분야는 물론이고 인문학과 예술 분야, 더 나아가 지구과학, 공학, 수학 및 컴퓨터 과학 분야에서 이 주제에 관심을 가진 학자들을 끌어들였다. 전통적인 학문 간 장벽을 허물고 모든 관련 학문 분야 출신의 전문가들이 창의적인 학제 간 논의에 참여해야만 인류의 기원이라는 불가사의에 관한 결정적인 해답이 가장 잘 도출될 수 있을 거라는 가정에서 나온 사상 초유의 연구진이었다. CARTA의 핵심 강령은 “모든 합리적이고도 윤리적인 방법을 이용하여, 인간 현상의 기원을 탐구하고 설명해 줄 모든 검증 가능한 사실들을 모든 관련 분야에서 찾아내는 것”이다.
(본문 중 일부)
★ 저작권법에 의해 한국 내에서 보호를 받는 저작물이므로 무단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