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먹는 풍경
둥그렇게 어둠을 밀어올린 가로등 불빛이 십원일 때
차오르기 시작하는 달이 손잡이 떨어진 숟가락일 때
엠보싱 화장지가 없다고 등 돌리고 손님이 욕할 때
동전을 바꾸기 위해 껌 사는 사람을 볼 때
전화하다 잘못 뱉은 침이 가게 유리창을 타고
유성처럼 흘러내릴 때
아이가 아이스크림을 사러 와
냉장고 문을 열고 열반에 들 때
가게 문을 열고 닫을 때마다
진열대와 엄마의 경제가 흔들릴 때
가게 평상에서 사내들이 술 마시며 떠들 때
그러다 목소리가 소주 두병일 때
물건을 찾다 엉덩이와 입을 삐죽거리며 나가는 아가씨가
술 취한 사내들을 보고 공짜로 겁먹을 때
이놈의 가게 팔아버리라고 내가 소릴 지를 때
아무 말 없이 엄마가
내 뒤통수를 후려칠 때
이런 때
나와 엄마는 꼭 밥 먹고 있었다
봄밤입니다
봄밤이 시작되었습니다. 어디에서 출발했는지 모르지만
뜰에는 목련이 두그루입니다. 두그루밖에 되지 않아도
뜰은 가득합니다.
목련은 봄밤에 몰래 꺼내 써야 합니다.
아내에게 걸리고
딸아이에게 걸리면
봄밤 중이라고 부끄러워하면서 말하겠습니다.
불행한 시를 오늘만은 쓰지 않고
오늘만은 쓸쓸함에 기대거나
슬픔에 만족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고양이 한마리가 울고 있습니다. 듣지 못하는 고양이는
제 울음소리를 한번도 듣지 못한 고양이는
쓰다듬어주어야 합니다.
귀를 잡아당겨서
자루처럼 길어질 때까지 잡아당겨서
고양이 울음소리를 담아주어야 합니다.
봄밤인가요? 봄밤입니다. 혼자 묻고 혼자 대답해도
봄밤입니다.
당신이 걷고 있는 길은 살아서 길길이 날뛰나요?
봄밤입니다.
겨울이 내 살을 만진다
우리 집은 노을이 필요하지 않다.
일을 끝내고 집에 돌아와 저녁을 먹고 나면
끓는 물을 대야에 붓는다. 저리 가.
겨울을 피해 방으로 들어온 늙은 개 워키가
구석에서 새끼를 낳는다. 낳다가 좁은 방을
돌아다니며 피를 흘린다. 몇마리일까?
워키가 낳은 새끼 등에서 꼬물거리며 수십마리
물고기들이 천장을 향해 헤엄을 친다.
소금 한줌을 대야에 뿌리고 나는
물이 뜨거운지 뜨겁지 않은지 엄마에게 말해야 한다.
물이 식는 속도를 센다.
물고기를 세는 방법으로
물고기가 더이상 도망가지 않을 때까지
엄마의 발가락을 감고 있던 붕대가 풀리자
피가 쏟아진다. 엄마는 등을 돌린다. 나는
저 등을 좋아하지 않는다.
등 너머에 엄마의 발가락이 보인다.
발가락 끝이 벌어지고 뼈 한마디가 톡
대야에 떨어진다.
대야에 붉은 꽃잎이 한장 두장
오래도록 펼쳐진다. 한송이가 될 때까지
물을 버리기 위해 대야를 들고 밖에 나가
엄마의 허연 뼈 한마디를 들고 서서 고민한다.
누구에게 엄마라고 불러야 하지?
거울 속에 다시 노을이 끓는다.
나는 내 살이 어디까지인지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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