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내가 최상의 기분이 아니라는 것은 인정해야겠다. 그렇다고 내가 아주 못하고 있다는 뜻은 아니다. 그렇다고 내가 정말이지 불평할 게 조금이라도 있다는 뜻은 아니다. 그렇다고 불평할 게 있다 해도 실제로 입으로 불평을 할 거라는 뜻은 아니다. 아니다. 나는 ‘긍정적으로 생각하고/긍정적으로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쭈그리고 앉아 사람들이 머리를 들이밀기를 기다리고 있다. 누가 머리를 들이민 지 십삼 일일 지났고 이제 재닛은 나에게 점점 더 영어로 말을 많이 하고 있지만. 그것도 내가 기분이 아주, 뭐랄까, 엿같은 이유 중 하나다.
“아이고.” 그녀는 오늘 아침 나를 보자마자 말한다. “구운 염소가 너무 지겨워서 비명이라도 지르겠어.”
거기에 대고 내가 뭐라고 한단 말인가? 이 때문에 나는 곤란한 지경에 놓인다. 그녀는 내가 위에 잘 보이려고 하는 인간이라 자기가 영어를 하면 불편해한다고 생각한다. 맞는 말이다. 불편하다. 우린 좋은 조건이기 때문이다. 매일 아침 새 염소, 막 잡은 염소가 우리의 ‘대형 투입구’ 안에 자리를 잡는다. 그리고 우리의 ‘소형 투입구’에는 떼어 쓰는 종이 성냥. 그래도 어떤 사람들보다는 낫다. 어떤 사람들은 덫으로 야생 토끼를 잡아야 한다. 어떤 사람들은 개척자 복장으로 닭 모가지를 잘라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다. 나는 그저 ‘대형 투입구’에서 죽은 염소를 들어올려 날카로운 부싯돌로 껍질만 벗기면 된다. 재닛은 그냥 불만 피우면 된다. 따라서 아주 괜찮은 상황이다. 예전처럼 좋지는 않지만, 그래도. 그렇게 나쁘지는 않다.
예전에 사람들이 머리를 계속 들이밀 때는 우리도 우리가 하는 일이 마음에 들었다. 정말이지 과장된 연기를 했다. 끙끙거리는 소리를 내며 작은 싸움을 벌이곤 했다. 그녀의 얼굴에 흙 한줌을 던지려고 할 때면 먼저 성난 모습으로 돌에 돌을 두들겨 신호를 보내곤 했다. 그럼 그녀는 다음 순간에는 눈을 감고 있어야 한다는 걸 알았다. 가끔 그녀는 서툴게 옷감 짜기 비슷한 것도 했다. 그건 ‘옷감 짜기의 뿌리를 찾아’ 같은 거였다. 가끔 우리는 바비큐를 하러 ‘러시아 농민 농장’에 내려가기도 했는데, 내 기억으로 거기에는 머리와 리언이 있었고, 리언은 아일린과 사귀고 있었고, 아일린 주위에는 고양이가 엄청 많았다. 지금은 들이미는 머리 수가 크게 줄면서 ‘러시아 농민’은 다 다른 데 가 있는데, 일부는 ‘사무국’으로 갔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못해서 아일린의 고양이들은 길냥이가 되었다. 하느님 앞에서 솔직하게 말하는데 가끔 나는 ‘대형 투입구’에 갔다가 그 안에 염소가 없는 걸 보게 되지나 않을까 걱정이 된다.
2
오늘 아침 ‘대형 투입구’에 가보니 염소가 없다. 염소 대신 메모가 한 장 있다.
버티시오, 버티시오. 염소는 올 테니까, 젠장. 너무 오만해지지 마시오.
문제는, 부싯돌로 염소 가죽을 벗겨야 하는 시간 동안 뭘 하느냐는 거다. 나는 죽을 만큼 아픈 척하기로 한다. 나는 한쪽 구석에서 뒹굴며 신음한다. 하지만 곧 지겨워진다. 부싯돌로 염소 가죽을 벗기는 일은 거의 한 시간을 잡아먹는다. 한 시간 동안 뒹굴며 신음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빌어먹을 염소가 없어?” 그녀가 말한다.
나는 끙끙거리는 소리를 내고 몸짓을 하는데 그 뜻은 이렇다. 큰비가 내리고, 그러자 우르릉 쾅, 염소들이 달아나고 그래서 염소들은 지금 멀리, 높은 산속에 멀리 있는데, 나는 더럭 겁이 나서 쫓아가지 않았다.
재닛은 겨드랑이를 긁으며 원숭이 같은 소리를 내더니 담배에 불을 붙인다.
“이 무슨 똥무더기 같은 짓이야.” 그녀가 말한다. “왜 네가 굳이 이러는지, 나야 절대 모르겠지. 여기 누가 있어? 여기에 우리 말고 또 누가 보이는데?”
나는 그녀에게 담배를 끄고 불을 피우라고 몸짓을 한다. 그녀는 나에게 자기 엉덩이에 뽀뽀나 하라는 몸짓을 한다.
“왜 내가 불을 피워?” 그녀가 말한다. “염소가 오기도 전에 피우는 불이라. 그거 뭐 소망의 불 같은 거야? 희망을 담은 불? 아니, 미안, 난 지긋지긋해. 현실 세계에서 천둥이 치고 그래서 우리 염소들이 진짜로 달아났다면 나는 뭘 해야 할까? 어쩌면 애도를 표하겠지. 그 부싯돌로 내 몸을 긋는다든가 해서. 아니면 비가 오는데 염소를 밖에 그대로 두는 멍청한 짓을 한 네 엉덩이를 걷어찰지도 모르고. 뭐야, 저 사람들이 그걸 ‘대형 투입구’에 넣어두지 않은 거야?”
나는 그녀를 향해 사납게 얼굴을 찌푸리며 고개를 젓는다.
“흠, ‘소형 투입구’는 확인해봤어?” 그녀가 말한다. “어쩌면 작은 염소라서 진짜로 그 안에 욱여넣었을 수도 있잖아. 어쩌면 이번에는 멋진 메추라기 같은 걸 줬을 수도 있고.”
나는 그녀에게 눈총을 주고 건들건들 ‘소형 투입구’를 확인해보러 간다.
아무것도 없다.
“하, 이런 염병할.” 그녀가 말한다. “당장 여기서 나가서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아봐야겠어.”
하지만 그러지 않을 것이다. 그녀도 그걸 알고 나도 그걸 안다. 그녀는 통나무에 앉아 담배를 피우고 우리는 함께 ‘대형 투입구’에서 덜컹 소리가 나기를 기다린다.
점심때쯤 우리는 ‘예비 크래커’를 먹는다. 저녁때쯤 다시 ‘예비 크래커’를 먹는다.
아무도 머리를 들이밀지 않고 ‘대형 투입구’나 ‘소형 투입구’ 어느 쪽에서도 덜컹 소리는 나지 않는다.
이윽고 빛의 질감이 바뀌고 그녀는 자신의 ‘분리 구역’ 문간에 서 있다.
“내일도 염소가 없으면 나는 여기서 나가 언덕을 내려갈 거야.” 그녀가 말한다. “하느님한테 맹세해. 두고 봐.”
나는 나의 ‘분리 구역’으로 들어가 신발을 신는다. 코코아를 조금 마시고 ‘파트너 일일 수행평가 양식’을 꺼낸다.
태도상 곤란한 점이 눈에 띄는가? 띄지 않는다. 나의 파트너를 전반적으로 어떻게 평가하는가? 아주 좋다. ‘명상’이 필요한 ‘상황’이 있는가?
없다.
팩스를 보낸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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