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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은하의 밤
고독과 태만
삼년 전 은하가 차디찬 회복실에서 깨어나 한 결심은 이런 것이었다. 삶에 피하지방처럼 껴 있는 모든 영양가 없는 관계들과 결별해야지. 그것들이 은하 인생에 달라붙어 얼마나 만성적인 스트레스를 일으켜왔는지는 막 수술을 마친 은하의 몸이 증거하고 있었다. 마흔여섯은 암에 걸려도 놀랄 나이는 아니었지만 암 발병이 흔한 나이대도 아니었다.
처음 유방암 ― 지인들에게는 갑상샘암이라고 속였다 ― 선고를 받은 뒤 은하는 그 모든 상황이 일종의 징벌 같다고 생각했다. 어려서 엄마를 따라 성당에 다녔지만 이후 발길을 끊었기 때문이다.
“은하 니는 믿음 없이 어찌 살라카나.”
그때 안타까운 실망을 담아 채근하던 엄마는 이제 곁에 없고 은하는 혼자 남아 벌을 감당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처음에는 기가 죽고 위축이 되었다. 하지만 수술과 항암 치료로 본격적인 통증이 시작되고부터는 다른 누군가들의 죄를 뒤집어쓴 듯한 억울함에 사로잡혔다. 이 고통은 내 것이 아니라고 마땅하지 않다고 매일 매 순간 생각했다. 그러나 투병의 과정은 엄연한 현실이었고 아픈 것, 그것이 바로 은하의 몸에서 벌어지는 일이었다. 암센터에서 치료를 받고 어질어질한 정신으로 병원을 나와 죽집에 앉아 있으면 그 한그릇조차 입맛이 없어 도저히 손이 가지 않고 은하는 마치 기도를 하듯 고개를 숙여 죽의 표면이 공기 중에 산화되는 것을 음울하게 내려다보았다. 그러면 이런 장면들이 떠올라 입안이 까슬해졌다. 수술을 앞두고 마음이 약해진 은하가, 미혼인 채로 늙어죽는 건 괜찮은데 고독사는 걱정된다며 조카 겨레가 초상은 치러주겠죠, 라고 자조적으로 얘기했을 때 새언니가 “왜 애한테 부담을 지워요?” 하고 정색한 일 같은 것.
“고모, 요즘엔 부모도 자기 자식한테 그런 기대 안 해요. 바라지 마세요.”
막상 그 말을 들었을 때는 은하 편에서 사과하고 그런 뜻이 아니었다고 해명했지만 죽집에 혼자 앉아 있는 날들이 이어지자 자신이 했던 사과가 곧 상처가 되었다. 오빠네가 경제적 도움을 청할 때마다 대부분 들어주었던 건 차치하고라도 그런 푸념 하나도 듣기 싫었던 걸 보면 대체 은하는 그들에게 어떤 존재였을까.
프로그램에 섭외하기 위해 지문이 닳도록 보냈던 이메일과 문자메시지 같은 대화들도 알알이 고통이 되어 박혔다. 섭외자를 향한 신실한 구애의 문장들이었지만 때로는 읽히지도 않은 채 혼자만의 지껄임으로 끝이 났던 일도. 언젠가 은하는 한 디자이너의 집으로 섭외 미팅을 갔다가 설거지를 한 적도 있었다. 분명 초대를 받아 갔는데 밥을 다 먹고 출연에 대한 이야기가 본격화되자 같이 있던 피디가 은근히 은하를 건너보며 “선생님 나중에 힘드실 텐데 설거지 좀 해드려” 하고 말한 것이었다. 그때 은하는 식탁 앞에서 일어나 그릇이 반질반질해질 때까지 설거지를 했고 이후에도 그런 ‘설거지스러운’ 일들이 닥칠 때마다 기꺼이 해내며 기름때 하나 없이 아주 야무지게 수세미를 비벼가며 버텼다. 자기만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 ― 후배, 신입, 막내 ― 에게도 그렇게 하자고 들볶아가며 버텼다. 못하겠다고 하면 그런 설거지가, 애원이, 자존심이 뭐라고 그래, 그까짓 게 뭐라고, 너 빚 없니? 집 안 어려워? 재계약 안 할 거니…… 하면서.
그런 일들을 맹렬히 생각하다보면 은하는 마음이 지옥처럼 어두워졌고 어린 시절의 주기도문을 떠올리며 어떤 돌파구를 찾아보곤 했다.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같은 구절이었다.
그런 날들을 일년 가까이 반복한 끝에 은하는 어떤 체념과 자기극복이 깃든 묘한 평화에 이르렀다. 이후에 어떤 인생을 살아야 할지는 모르겠으나 발병 이전처럼 살지는 않을 것이며 그런 삶에는 오로지 고독, 크기를 잴 수 없이 크고 깊은 고독만이 필요하리라는 결론이었다. 그것은 어느 흐린 날 거리를 걷다가 낙엽이 떨어져내리는 가로수 밑을 지나거나, 어느 늦은 시간 택시를 타고 강변북로를 달리다 한강에 어른대는 불빛들을 애잔하게 바라볼 때와는 차원이 다른 고독이었다. 설명하자면 아주 무섭도록 자기 삶 속으로 포섭된 고독이었다. 참여자 없는 연극이자 듣는 이 없는 아리아, 만남이 불발된 채 혼자서 나누는 열렬한 악수 같은 것.
이후 그 고독의 힘으로 혼자 남미 여행까지 다녀온 은하는 마침내 이른 봄, 방송국에 복직했다. 그간 예능 작가로 MTN의 적지 않은 프로그램들을 성공시켰으므로 복귀는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다. 문제는 채널 경쟁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던 방송국이 거의 재개국에 가까운 조직 개편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뉴스를 비롯한 시사, 교양프로그램들이 대폭 축소되었다. 은하는 복직을 계기로 교양 다큐멘터리로 옮겨 가고 싶었지만 하는 수 없이 원래의 예능국으로 돌아와야 했다. 바라던 바가 그나마도 이뤄지지 않았으므로 첫 출근을 하면서도 덤덤했다. 복직을 한다는 기대나 설렘은 없었고 예상되는 전개에 대한 미약한 피로감마저 들었다.
그래도 한시간 일찍 출근해 사무실에 도착한 은하는 원래 자기가 쓰던 자리에 마치 곰처럼 체격이 큰 남자가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은하가 돌아오면 바로 그 책상에, 쓰던 볼펜 한자루까지 그대로 세팅되어 있으리라고 남 국장이 말했기 때문에 은하는 의아한 기분으로 걸어가 의자 뒤에 섰다. 삭삭삭삭삭삭삭삭…… 기척도 못 듣고 뭘 하나 싶었는데 남자는 소독제를 조금씩 뿌려가며 책상을 닦는 중이었다. 티슈를 4분의 1로 접어 오른손 검지와 중지로 잡고 마치 밀대를 밀듯 꼼꼼하게 이동하며 열중하고 있었다. 동작에 절도가 있고 좁은 표면을 정성스레 닦고 있어서 은하는 제지하거나 말을 걸 수가 없었다. 저렇게 힘을 주다가는 담에 걸리지 않을까 생각하며 지켜볼 뿐이었다.
그러다 은하는 조금씩 신경이 곤두서기 시작했는데, 남자의 손가락이 전진과 전진을 거듭해 독서대 아래까지 나아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느 출판사의 독서모임에서 받은 그 독서대는 책이나 원고를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은하가 볼펜으로 책상을 찍어 누른 그 숱한 흔적들을 감추기 위해 놓여 있었다. 만약 남 국장이 정말 자리를 삼년 전 그대로 세팅해놓았다면, 이 책상이 바로 은하의 그 책상이라면 흔적 역시 그대로일 거였다. 물론 책상의 흠집은 흔한 것이었지만 발견되는 게 싫은 마음도 어쩔 수 없었다. 그러나 남자의 손가락 밀대는 몇 개의 볼펜이 꽂힌 오거나이저를 지나 독서대로 향했고 여태껏 해온 그 디테일한 절차대로 독서대를 착착 접어들어올린 다음, 그 볼펜 자국들, 너무 잦은 분노와 스트레스로 머그컵의 원지름만큼이 되어버린 그 자국들을 닦아내기 시작했다.
삭삭삭삭삭삭삭삭……
당연히 지워지지 않았다. 남자는 자리에서 엉거주춤 일어나 좀더 힘을 실어 닦기 시작했다.
삭삭삭삭삭삭삭삭……
저렇게 열심히 마찰하다보면 손가락 사이에서 불꽃이 일어나지 않을까. 자신의 히스테리컬한 버릇이 발견되는 일도 싫은데 그렇듯 무모한 반복에 열중하는 사람을 지켜봐야 하는 데서 오는 갑갑증까지 더해져 은하는 더 기다리지 못하고 “저기요” 하고 남자를 불렀다. 남자는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에 놀랐는지 네엣? 하고 소리치며 은하를 돌아보았다. 남자의 키는 눈짐작대로 거의 은하의 두 배였다. 가슴팍까지 내려오는 남자의 네임태그가 은하의 눈높이에 가까울 정도였다. 보도국 아나운서 오태만이라는 이름이었고 그가 이 시각에 여기 있다는 건 바로 그가 보도국에서 예능국으로 발령받은 불운한 전보자라는 얘기였다. 그리고 또다시 불운하게도 그의 진짜 자리는 전력을 다해 청소한 그곳이 아니라 은하의 옆자리였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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