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초대장
“또 주인 없는 얼굴들 속에 계시네요, 우리 원장님.”
연정은 고개를 들지 않은 채 가만히 미소를 지었다. 여전히 손과 눈은 찰흙을 만들어진 얼굴에 집중한 채였다. 세 시간을 투자하고 나니 찰흙 더미는 요즘 여성 환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일직선의 콧날을 가진 얼굴 형태가 되었다. 이 얼굴에 색을 입히면 원본이 찰흙이라고 누가 생각할 수 있을까. 연정은 그게 얼굴이 갖는 특성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원본이라는 것은 없고 고정된 것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대부분의 사람이 아름다운 얼굴을 위해 성형을 선택하지만 그 아름다움이라는 것도 꽤나 유동적이라는 것 말이다. 사실 현재 인간의 얼굴만을 ‘얼굴’이라고 생각해버리면, 이 지구상엔 얼굴 없는 존재가 백만 종이 넘는 셈이었다. 그러나 생물학적으로 보자면 다른 종과 마찬가지로 그저 오랜 세월이 거쳐 진화한 결과물일 뿐이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에겐 이 얼굴이라는 건, 반드시 바뀌어야만 하는 무언가이기도 했다. 성범죄를 당한 여성들을 오히려 조롱하는 분위기인 한국 사회에서 피해자들은 종종 성형을 의뢰하곤 했다. 트랜스젠더나 인터섹스의 경우도 그러했다. 과거엔 전쟁 피해자들이 성형의 힘을 빌리기도 했다. 인간의 얼굴이란 그런 점에서 굉장히 중요하고 까다로운 신체 부위였지만 또한 매력적이기도 했다. 연정은 얼굴에 집중하면서도 상대로부터 이어질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두 가지 의미에서였다. 하나는 ‘상담실장님, 원래 하시려던 말씀 해주세요’였고 또 다르게는, 지금 상담실장이 하는 말에 악의가 전혀 없다는 걸 인정하는 의미로서였다. 연정의 미소가 무슨 뜻인지 다 안다는 듯 상담실장은 어느새 연정 너머의 소파에 앉았다. 상담실장은 연정이 찰흙으로 얼굴 형태를 만들어 이리저리 살필 때마다 한 소리씩 하곤 했다. 상담실장은 이 바닥에서 벌써 20년 차였다. 젊은 미혼 여성을 주로 상담실장으로 쓰는 성형 업계에 흔치 않은 사십대 기혼 여성이었으며 당연히 베테랑이기도 했다. 그런 상담실장의 논리는 이랬다. 환자 얼굴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성형외과 의사 구연정의 태도는 너무나 존경스럽지만, 골프 라운딩과 같은 업계 사람들의 취미 생활도 중요하다는 거였다. 물론 연정도 알고 있다. 전체 매출의 50프로를 커버할 수 있는 사람을 그곳에서 만날 수도 있다는 걸 말이다.
“구 원장님. 강남 바닥 먹여 살리는 거 얼굴이 전부인 건 맞는데요. 여기는 또 얼굴 아래에 숨겨진 거 너무 많은 동네야, 그죠? 그러니까 우리 단골 언니들 가게 가서 술도 좀 팔아주시고 대표원장님하고 골프로 친교도 좀 하시고, 응?”
처음에 연정은 상담실장이 저럴 때마다 표정 관리가 안 될 정도로 기분이 좋지 않았다. 상담실장은 얼굴 아래 다른 게 많다고 하는데, 사실 연정은 얼굴로 보여지는 게 전부인 사람이었다. “연정이 너야 돈 많은 남편 있었으니까, 뭐. 세상에 웃는 얼굴 드러낼 필요 없었잖아.” 주변 사람들이 그렇게 말할 때마다 연정은 더욱 자신을 단속하려고 노력했었다. 그 말은 마치 연정에게 치기 어린 아이 같다고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사람들은 솔직한 게 좋다고 하면서도 정작 솔직한 사람들을 좋아하지 않았다. 물론 솔직하게 산다는 건 친구들의 말처럼 무언가를 가졌을 때에야 가능하니 어려운 일이긴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연정은 얼굴 아래 숨겨진 게 많다던 상담실장 말의 의미를 알게 되었다. 자꾸만 인맥을 들먹이던 이유도 말이다. 강남에 성형외과가 대체 몇 개일까, 수익적인 면에서도 광고 보고 오는 환자만으로는 한계가 있었고 무엇보다 사고가 많은 업계였다.
“여기는 원본이 없어지는 곳이잖아요. 원래대로 해달라는데 말이 돼야지, 그게.”
상담실장의 저런 넋두리에도 처음에 연정은 환자의 입장을 최우선으로 생각했었다. 웬만하면 환불해주고 재수술을 해주는 방향으로. 다른 곳도 아니고 제일 먼저 보게 되는 얼굴이니까. 무엇보다 환자에게 책잡히기 싫어서 사고를 봉합하려는 병원들의 행태가 싫었다. 하지만 병원 입장과 환자 입장 사이에 끼어서 봉직의인 자신이 모든 위험을 감당해야 할 때가 많았다. 자꾸만 환자에게 문제를 넘기는 병원도 스트레스였지만 가끔 의학적으로 이상이 없는데도 본인의 기준에 못 미친다고 환불을 해달라는 환자들도 압박감을 주는 건 마찬가지였다. 이해는 할 수 있었다. 다만 그럴 때면 또 어김없이, “뭐, 여기가 여자한테 더 가혹한 동네잖아요. 웃겨, 아주. 어차피 다 여자들로 먹고살면서 말이야” 하던 상담실장의 지난 넋두리가 떠올랐다. 겪으면 겪을수록 부인하지 못할 사실이었다.
연정의 고객층은 주로 여성들이었다. 호스트바 출신의 ‘선수’들을 제외하면 거의 전부가 여성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였다. 다만 그들은 하는 일과 속한 집단에 따라 철저하게 구분되었다. 최고가의 귀족성형으로 맞춤 케어 받는 VIP들, 시술 직후에도 티 나지 않는 관리가 필요한 홍보직들, 이른바 화류계라고 불리는 텐프로와 쩜오 들, 그리고 아이돌 연습생과 이미 데뷔한 연예인들. 그중 연정에게 가장 탄탄한 소득을 보장해주는 사람들은 텐프로와 쩜오 들이었다. 상담실장 말마따나 여자들로 먹고살면서 또 가장 쉬쉬해야 하는 부분이기도 했다. 물론 가혹한 건 병원에서 일하는 여자들에게도 매한가지였다. 상담실장이나 코디, 간호사들이 감당하는 근무량만 봐도 알 수 있었다. 특히나 지금 연정의 병원에서 상담실장의 역할은 더욱 그랬다. 의사 한 명이 모든 걸 담당하는 의원급이 아니라면 병원에서 상담실장은 거의 ‘관문’ 같은 역할이었다. 환자의 예약 관리부터 대기실의 티백에 소독용 알콜솜 하나까지, 상담실장을 거치지 않는 일이 없을 정도였다. 정서적인 부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상담실장이 없었더라면 대표원장의 재미도 없고 분노까지 유발하는 농담에 연정은 수술 때마다 속수무책 기분만 상했을 거다. 사실 이 업계에 발 들이기 전까지 연정은 환자에 대해 이상한 농담을 하는 건 뉴스에서나 나오는 특이 케이스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런 일을 방관하는 의사나 간호사 들은 다 뭔가 싶었는데 실제 그런 일이 닥치자 연정의 입도 쉽게 움직이지 않았다. 그래서 여자 인턴이 산부인과 남자 인턴의 성추행을 고발했다는 기사를 보면서는 그 용기에 박수를 보내고 싶을 정도였다. 먹고살아야 하는 데다가 여자 무시하는 게 당연한 이 업계에서 그런 말을 꺼낸다는 것 자체가 대단해 보였다. 그리고 그제야 친구들의 말이 이해가 되었다. “남자 상사치고 마지막까지 괜찮은 사람이 없는 것 같아.” 면접 땐 그렇게나 젠틀해 보이던 대표원장이 이상한 농담을 할 때마다 친구들의 말이 무슨 의미인지 확실히 알 것만 같았다. 상담실장이 아니었으면 연정도 다른 봉직의들처럼 몇 달 만에 병원을 옮겼을지도 몰랐다. 하루는 연정이 마음먹고 상담실장에게 물었다. 기껏해야 봉직의인 자신을 왜 이렇게 잘 챙겨주냐고 말이다. “나 이 바닥에서 곧 끝장인 처지잖아요. 구 원장님 개원할 때 나 데리고 가라고.” 상담실장은 그저 그렇게 답했다. 하지만 이 병원에서 가장 큰 고객인 텐프로들을 데리고 오는 것도 상담실장이었으니 정말 뭔가가 아쉬워서 연정에게 마음 쓰는 게 다는 아니엇다. 그러니 상담실장이 ‘주인 없는 얼굴들’ 운운하며 들어온다고 해서 이전처럼 왜 또 저러나 싶은 마음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분명 무슨 중요한 말이 뒤따를 텐데 싶기도 했다.
“원장님, 이번 주말에는 추리소설 뭐 봐요?”
상담실장의 예상치 못한 말에 잔뜩 긴장했던 연정의 어깨가 조금 풀어졌다. 이번엔 연정이 고개를 들어 작은 웃음을 터뜨렸다. 연정의 또 다른 취미가 있다면 바로 추리소설 읽기였다. 평일에는 퇴근길에 지하철에서 휴대폰으로 보다가 주말에는 집에 틀어박혀 소파에서 쌓아두고 읽었다. 물론 상담실장에게는 역시나 속이 타는 취미였다. “아이고, 아주 흙더미에 책 더미에. 총 쏘고 막 사람 죽고. 사람 찾아내느라 생고생하고 그런 게 왜 좋아요?” 연정의 사정을 모를 때 상담실장은 진심으로 열불이 난다는 표정을 지어 보이며 말하기도 했었다. 물론 연정의 사정을 안 지금은 오히려 상담실장의 안타까움을 끌어 올리는 취미가 되어버렸지만. 그때의 상담실장 얼굴이 생각나 연정은 얼핏 웃음이 묻어 나오는 걸 참았고 이내 다시 얼굴에 집중하며 중얼거렸다.
“저 이번 주말에는 보던 영화 이어서 볼까 해요.”
“이어서? 또 인기 없는 영화 보려고 하죠, 구 원장님? 뭐 보는데?”
“아, 이건 상담실장님도 보면 좋으실 수도 있겠다. 「피닉스」라는 영화인데요. 1940년대 제2차 세계대전 끝나고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여자가 얼굴이 망가졌다가 성형으로 완전 다른 얼굴이 되면서 시작되는 내용이거든요? 여자는 남편을 믿고 얼굴이 달라져도 자길 알아볼 거라고 생각해서 찾아가는데 그 남자는……”
연정이 숨도 안 쉬고 거기까지 말했을 때였다.
“아휴, 나 유럽 영화는 안 봐. 공감대 형성이 안 돼. 문화가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가.”
‘어, 그런데 이거는 결말이 중요해요, 실장님. 남자가 여자를 어떻게 알아본 줄 아세요? 얼굴도 아니고 여자의 말도 아니고 남자의 기억이에요. 자신의 아내가 생전 좋아하던 노래를 이 여자가 부른 거죠. 남자도 그걸 기억하고 있었던 거고요.’ 상담실장의 말에 연정이 속엣말이나마 이렇게 웅얼거리고 있을 때였다. 상담실장은 갑자기 몸을 좀 낮추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러더니 이번엔 환자용 의자를 끌어다 데스크에 바짝 붙어 앉았다.
“아니면, 그 일로 또 수술해요?”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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