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승균34세, 서울 출생, 영어 교사은 수용소에서의 첫날을 기억하지 못한다. 마취제 민감성 체질인데, 정부에서는 그런 점을 전혀 고려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승균은 평균치보다 두 배는 긴 시간 동안 의식을 잃었다.
수용소에서의 둘째 날을 맞고야, 뻣뻣한 목을 문지르며 소장과 면담을 할 수 있었다.
“선생님께서도 저희 입장을 충분히 이해하고 계시리라 믿습니다만…….”
소장은 키가 작고 눈웃음이 인상적인 오십 대 남자였다. 체구가 작고 매무새가 깔끔했지만, 근원을 알 수 없이 위압적인 분위기를 풍겼다. 작은 접이칼처럼 위험한 남자가 아닐까, 승균은 마취에서 덜 깬 정신으로 생각했다. 마취 후유증은 꼭 숙취 같았다.
“제가 왜 이런 일을 당해야 하는지 전혀 모르겠는데요.”
어렴풋한 의심은 있었지만, 그것을 입 밖으로 꺼내 말하면 정말로 위험해질 것 같아 안간힘을 써 잡아떼고 싶었다.
“지금, 선생님 제자들 중 무려 열여섯 명이 살인자가 되었다는 사실을 부인하시려는 겁니까?”
소장의 눈매가 날카로워졌다. 승균은 불편한 의자 위에서 움찔거리고 말았다. 희미하게 뭔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을 하긴 했다. 기간제로 2년, 정교사로 4년째인데 맡았던 아이들의 소식이 늘 흉흉했다. 열여섯 명이라는 구체적 숫자까지는 몰랐지만 승균에게도 들려오는 소식들이 있었다. 처음은 졸업생이 군대에서 사고를 일으켰다는 것이었다.
“그 녀석 온화하고 조용한 성격이었는데, 왜?”
“그런 애들이 뺑 돌면 더 못 말리잖아요. 선임을 쐈대요.”
소식을 전한, 같은 해 졸업생이 인상을 찌푸렸다.
“폭력 성향이라곤 전혀 없었는데 이상한 일이네.”
예전보다 나아졌다 해도 군대는 끔찍한 곳이지, 사람은 변할 수 있지……. 씁쓸하게 생각했지만 크게 마음에 두진 않았었다. 세상은 망가져 있고 교사가 할 수 있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시민들을 양성해 내보내고 시민으로 기능하길 바랄 수밖에.
그다음으로는 엠티에 가서 동기를 계곡에 밀어 떨어뜨린 아이, 술집에서 시비가 붙어 맥주병을 깨 상대를 찌른 아이, 음주운전 뺑소니를 친 아이, 성관계 도중 상대의 목을 졸라 죽인 아이, 방화 살인을 저지른 아이, 집단 자살 팀을 모아 다른 사람들만 죽게 내버려두고 혼자 빠져나온 아이, 사람을 지하실에 가두고 고문한 아이, 유괴 살인을 저지른 아이, 지하철 코인로커에 폭탄을 설치한 아이, 링거액에 독극물을 타는 수법으로 병원 하나를 초토화시킨 아이, 공사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행인에게 대형 전기드릴을 떨어뜨린 아이, 고깃집에서 손님과 싸움이 붙어 화로 집는 꼬챙이로 찌른 아이…….
졸업생들의 소식을 곱씹으면 잠이 오지 않았지만 약을 처방받아 어떻게든 버텨내려 했는데, 곧 재학생들이 일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패싸움 중에 사망자가 나왔다. 개교 이래 최초였다. 심지어 사건이 일어난 것은 수업 중이었고, 교사가 어쩌기도 전에 날카로운 학용품과 순식간에 쪼갠 청소도구로 서로를 찔렀다고 했다. 리놀륨 바닥에서는 오랫동안 핏기가 가시지 않았다. 목격자들은 한동안 상담 치료를 받았다. 속수무책이었던 교사가 징계를 받은 것은 물론이었다.
승균이 여고로 옮긴 것은 위벽에 염증을 만드는 직감 때문이었다. 뭔가가 크게 잘못된 것만 같아, 새벽마다 메슥거림에 잠들지 못했다. 마치 인류가 얼마나 흉악한 종인지 누군가 그에게 개인적으로 알려주기 위해 세상을 움직이는 듯했다. 대단히 열정적인 교육자는 아니었지만 학생들에게 애정이 없지 않았는데, 교단에 서면 어디를 바라봐야 할지 모르는 상태가 되어버렸다. 특단의 조치가 필요해 여고로 향했다. 그러나 여고에 가면 그런 일이 멈추리라 생각한 것은 착오였고, 여자라고 사람을 못 죽이는 건 아니었다.
“통계를 벗어난 일이라고 여겼지만 제가 그런 일에 어떻게든 영향을 준 적은 없습니다. 그 아이들이 다 제 담임반이었던 것도 아니고요.”
승균의 미미한 항의에 소장이 다시 눈으로 웃었다.
“선생님의 목소리 때문이었습니다.”
“제 목소리요?”
“그 학생들은 담임반이든 아니든 선생님의 목소리를 6개월 이상 들었지요. 수업은 담당하셨잖습니까.”
“개네를 담당한 교사가 저 하나만은 아니었을 텐데요?”
“우리 요원들이 오래도록 잠복해서 얻어낸 결과입니다. 선생님의 목소리 샘플로 국립기관에서 실험도 했어요. 폭력적 인자를 가진 이들에게 들려주면 일종의 각성 효과를 내더군요. 특이한 주파수를 가진 것도 아닌데 어째선지 선생님의 목소리는 살인자들을 깨웁니다. 선생님의 얼굴도 아니고 냄새도 아니고 바로 목소리입니다.”
냄새? 냄새도 채집한 적이 있나? 얼떨떨하게 중요하지 않은 정보에 잠시 정신이 팔렸다.
“그게…… 사실이라 해도, 제가 의도한 건 결코 아닙니다. 아무 악의 없이 평범하게 살던 사람을 이런 곳에 가두다니요? 민주 국가에서 이게 무슨 일입니까? 대체 여긴 어딥니까?”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그리고 저희는 선생님을 가둘 생각이 없어요. 적당한 합의에 이르면 바로 내보내드리겠습니다.”
“합의요?”
“성대 제거술을 받으시지요.”
승균은 충격을 받았다. 소장의 믿기 어려운 설명이 진실에 가까우리란 걸 깨달았고, 일견 합리적인 제안이었으나 잠시 말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전 교직에 있어요. 그렇게 되면…….”
“연금을 최대한도로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말을 할 필요가 없는 다른 직장도 알아봐드릴 거고요. 뭐, 곧바로 결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며칠 고민해보세요.”
“만약 제가 끝까지 제거술을 받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선생님께서는 지금 해외 장기 연수를 받는 것으로 해두었습니다. 만약 제거술을 받지 않겠다고 결정하시면 연수 중 사고를 당해 사망했다고 가족분들께 통지가 갈 것이고 선생님께서는 여기에 계속 계시게 될 겁니다. 그 경우에도 선생님의 편의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만, 부디 신중히 선택해주세요.”
(본문 중 일부)
#문학나눔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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