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시
온몸으로 앉아 있는 바위
전신만신의 둥근 달
혼신을 다해 붉은 꽃
멍청한 돌부처
그리고 사랑은
세상에 이제 막 태어난 것이니
가을빛
스스로 켠 불로
너는 아름다워라
저녁의 은행나무
작은 별과
어디엔가 있는 지혜
경건하게 아름다워
사랑을 닮으며 자란 네 가슴
그 위로 달린 감에도 불 켜지고
가만하게 멀리서 보는 불빛
슬픔은
세상의 맨 나중이니
환하다
그 섬
아버지가 칼피스를 사주셨던
이층 다방은
남쪽 섬 작은 포구 맨 앞에
맏이처럼
앞니처럼 서 있었지
앞니 두 개 빠진 어린 나는
파란 바다도
유리잔에 든 하얀 파도 거품도
너무나 눈부셨다
어린 날들이
잔잔한 물결로 잘강잘강 흔들리고 있다
그물이 있다면
그날들을 고스란히 건져 올릴 수 있는데
두 손을 넣으면
그날의 시간이 들어 있는
칼피스 잔을 꺼낼 수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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